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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국립고궁박물관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 혼례복》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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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국립고궁박물관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 혼례복》展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10.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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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날아온 우리 활옷, BTS RM과 만나 아름다움을 빛내다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 혼례복》 /김서진 기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12월 13일까지 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공주, 옹주, 군부인(왕자의 부인) 등 왕실 여성들의 활옷 9점을 포함한 관련 유물 총 110여 점을 선보이는 특별전시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 혼례복》을 개최한다. 활옷은 조선의 공주, 옹주가 결혼식에 갖추어 입었던 의례복으로 우리 고유 복식의 오랜 전통 속에서 탄생한 옷이다.

공주의 결혼식은 왕통과 직접 관련이 있는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의 국혼보다 한단계 낮은 국가의례로 치렀고 비와 빈이 적의를 착용한 것에 대해 공주·옹주를 비롯한 그 외 왕실 여성은 노의와 홍장삼 즉 활옷을 입었다. 조선은 국가통치를 위해 국가의례를 체계화했고 왕실의 주인공들은 위계에 맞게 의례 복식을 갖추고 의례에 나아갔다.

이때 의례 복식은 엄격한 제도 아래 제작하고 착용했는데 특히 중요한 원칙은 낭비와 사치를 배척하는 것이었다. 활옷은 조선 왕실 여성 의례복으로서 확립해 운용하는 가운데 왕실 혼례를 상징하는 색과 장식으로 화려하기가 으뜸이었다. 엄격한 조선 왕실의 복식 제도를 넘어 정성스레 짠 화려한 붉은 비단에 백수를 베풀어 신부의 새로운 출발을 축복하고 왕실의 새 가족을 맞이하도록 했다.

전시는 총 2부로 구성된다. 먼저, 1부에서는 ▲긴 홍색의 옷, 홍장삼(紅長衫)과 활옷 ▲가례(嘉禮), 아름다운 왕실의 혼례 ▲공주, 궁을 떠나다 의 3개 세부 주제를 통해 왕실 여성들의 의례복, 혼례복과 그에 관한 왕실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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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명성황후 가례도감의궤 /김서진 기자

왕실의 결혼식은 경사스러운 의례로 오례 중 관례, 혼례, 책례 및 연례 등의 의례를 포괄하는 가례에 속한다. 동시에 가례는 좁은 의미로 왕실 혼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주인공의 위상에 따라 엄격히 진행한 왕실 혼례는 진행 절차와 의례 물품에 차등을 두었고 준비하는 기관도 달랐다.

왕통과 관련이 있는 왕비와 왕세자빈의 혼례는 특별히 귀하게 다루어 임시 기구인 가례도감을 설치하고 관청의 업무 일지인 『가례등록』과 행사의 모든 과정을 기록한 『가례도감의궤』를 편찬했다. 반면 왕자녀의 혼례 때는 격을 낮추어 가례청을 설치하고 『가례등록』만이 남았다.
 

적의 그림, 대한제국기 황실 여성의 적의 그림이다 /김서진 기자

왕실 여성의 의례복으로는 적의·노의·장삼·원삼·당의 등이 있으며 의례의 성격이나 신분에 따라 갖춰 입는 예복이 엄격히 규정되었다. 최고 신분의 여성인 왕비와 왕세자빈의 대표적인 혼례복은 적의이다. 가례의 주요 절차에 모두 적의를 입었다. 조선시대 왕비와 세자빈은 각각 대홍색과 흑색 적의를, 대한제국 황후와 황태자비는 심청색 적의를 착용했다. 비·빈을 제외한 왕실 여성의 혼례에는 적의 다음가는 의례복인 노의와 장삼이 마련되었다.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가는 친영 행차 때 노의를, 부부로 맺어지는 의식인 동뢰에 장삼을 입었다. 장삼은 본래 가례, 상장례, 연향 등의 의례에서 왕비부터 내·외명부까지 입을 수 있던 예복으로 신분에 따라 흉배의 유무, 복색 등에 차이를 두었다. 귀한 대홍색 비단 위에 각종 길상무늬를 곱게 수놓은 홍장삼인 활옷은 특별히 왕실 혼례를 위해 마련된 의례복이었다.
 

당의와 저고리, 대란치마 /김서진 기자
화협옹주 화장용기와 거울 /김서진 기자

신부는 활옷을 입기 위해 우선 머리, 화장, 복식 등 혼례 꾸밈을 책임지는 수모의 손을 빌려 머리와 얼굴을 곱게 치장했다. 머릿기름과 빗으로 머리를 정리한 후 백분을 발라 얼굴빛을 밝히고 붉은 연지로 입술과 볼에 색조를 더해 화려한 색상의 활옷에맞게 단장했다. 왕실 의례복을 착용할 때에는 겉옷 안에 속옷뿐만 아니라 여러 벌의 받침옷을 갖춰 입는데 중대한 의례일수록 옷의 가짓수가 많아졌다.

공주의 활옷은 먼저 하의 속옷으로 다리속곳-속속곳-속바지-단속곳을 차례로 입고 그 위에 속치마인 무지기치마, 대슘치마를 입어 풍성하게 연출했다. 상의는 분홍색 속저고리 위에 송화색 삼회장 저고리를 입고 초록색 당의를 덧입었다. 하의로는 스란단을 덧댄 남색과 홍색 치마를 겹쳐 입었다. 이렇게 받침옷의 기본 구성이 갖춰지면 마지막으로 활옷을 걸친 후 의례복의 부속품인 대대와 후수, 폐슬, 패옥 등으로 장식하고 머리에 가체를 올려 공주 혼례복 착용을 완성한다.
 

활옷의 아름다움 /김서진 기자

동뢰연 때 착용했던 활옷은 아름다운 형태와 화려한 장식으로 조선왕실 여성 의례복 가운데 단연 최고로 꼽힌다. 활옷의 형태와 색상은 보기에도 아름답고 화려할 뿐 아니라 동양 고래부터 담긴 의미들로 의례 주인공의 미래를 축복해 준다. 조선은 유교문화에 의해 화려한 자수 복식을 엄격히 금지했지만 활옷만은 예외로 가장 화려하고 고급진 재료와 기법을 총동원해 만들었다.

그런 만큼 제작이 어려워 왕실을 넘고 신분을 초월해 함께 입는 풍습이 나타났고 점차 다양한 개성을 담거나 변형도 가해지면서 민간 활옷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다양한 활옷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현재 복온공주 홍장삼을 비롯해 국내 30여점, 국외 20여점이 확인된다. 
 

동뢰연 중 신랑, 신부가 마주 서 절하는 교배례에 펴놓는 자리인 교배석. 전시 영상을 통해 온전한 모습을 되찾은 교배석을 만날 수 있다 /김서진 기자

왕실 혼례의 절차 중 마지막 순서인 동뢰는 마침내 신랑 신부가 마주해 부부의 연을 맺는 핵심적인 의식으로 오늘날의 결혼식에 해당한다. 고대 중국 예서인 『예기』에 의하면 동뢰는 '뢰(牢)', 즉 희생을 함께 나누어 먹는 행위로 특히 혼례에서 부부가 '몸을 합하고 존비를 같이 함으로써 친하게 함'을 뜻한다. 조선시대 공주의 동뢰연은 왕통을 잇는 왕비와 비교해 전체적인 구성은 비슷하지만 왕실 위계에 따라 절차나 준비되는 물품의 규모를 달리했다.

본격적인 예식은 음양이 만나는 시각인 해질녘에 이루어졌다. 신랑 신부는 자리로 나아가 부마는 양인 동쪽, 공주는 음인 서쪽에 마주보고 앉았다. 동뢰연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로 서로 절을 주고받는 교배례와 하나의 표주박을 갈라 만든 근배에 술을 나누어 마시는 합근례를 행했다. 음양의 결합을 상징하는 여러 요소를 갖춘 동뢰를 치름으로써 공주와 부마는 진정한 부부가 되었다.  
 

다양한 활옷들 /김서진 기자

이번 전시에서는 현존 활옷 가운데 유일하게 착용자가 알려진 ‘복온공주 활옷(1830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등 국내에 전하는 활옷 3점과 미국 필드 박물관(Field Museum), 브루클린 박물관(Brooklyn Museum), 클리블랜드 미술관(The Cleveland Museum of Art),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활옷을 비롯한 국외소장 활옷 6점 등 조선왕실 활옷의 특징을 잘 간직한 작품들이 대거 나왔다.
 

활옷 /김서진 기자

독일인 수집가인 움라우프가 수집한 것을 1899년 미국 필드박물관이 구입해 소장한 활옷이다. 필드박물관 소장 활옷 중 가장 많은 수의 봉황이 표현된 활옷이다. 양쪽 앞길의 하단에는 각각 11마리, 총 22마리의 봉황이 수놓여 있다. 다른 활옷과는 다르게 이 활옷의 한삼에는 여러 새끼를 거느리며 등을 맞대고 있는 봉황 한 쌍이 양쪽 소매에 각각 수놓여 있다. 앞길의 상단 전체를 자수로 채웠고 바랜 홍색 사이로 보이는 선명한 홍색 비단이 새롭게 보수한 흔적임을 알 수 있다. 
 

활옷 /김서진 기자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활옷이다. 이 활옷의 등장은 큰 삼각형 형태의 앞부분과 뒤로는 곡이 진 형태가 이어져 크기가 제법 크다. 어깨 부분과 소매 상단에는 금박으로 장식한 천이 덧대어 있고 무늬로 보아 혼례 시 함께 착용했던 뒷댕기로 보수한 것을 알 수 있다. 모란과 나비, 새, 물결, 파도, 연꽃, 봉황 등이 대칭으로 견고하게 자수된 형태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옷과 비슷하다.
 

활옷 /김서진 기자

2부 전시장을 들어서면 고요한 공간 하나가 보인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소장 활옷은 지난해 BTS RM의 후원을 받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최근 보존처리를 완료한 작품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려보내기 전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자리라서 더욱 뜻깊은 의미를 가진다. 
 

활옷 /김서진 기자
해당 활옷은 BTS RM의 후원으로 보존처리 했다 /김서진 기자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의 활옷으로 1939년 미술품 수집가 벨라 매버리가 기증했다. 겉감은 홍색의 민무늬 비단으로 안감은 청색의 복숭아·석류·불수감무늬 비단으로 되어 있다. 연꽃, 모란, 봉황, 백로, 나비 등 길상무늬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앞길 상단에는 동자무늬와 함께 '수여하해 복여하해 (바다와 강처럼 오래 살고 재물이 쌓이다)'가, 뒷길에는 '이성지합 만복지원 (남녀의 결합은 곧 만복의 근원이다)'이 수놓아져 있다. 양쪽 어깨선과 소매 뒤편의 활옷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직물과 복숭아·석류·불수감무늬 비단을 부착하여 보완했고 앞길 중앙에 홍색을 안료로 덧칠한 흔적도 확인된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2부 ‘여러 손길로 정성스레 만든 활옷’에서는 상의원(尙衣院) 등 관청과 장인을 중심으로 온갖 재료를 조달하고 각 재질이나 작업에 따라 세분화되어 완성되는 활옷의 제작 과정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소장 활옷’의 보존처리 과정 등을 살펴본다. 
 

활옷 /김서진 기자

활옷은 앞길과 뒷길, 소매, 동정으로 이루어진다. 자수를 비롯해 여러 장식을 베풀기 위해 안감을 둔 겹옷으로 만들어 형태를 단단하게 했고 겉감과 안감 사이에 한지, 무명천 등 심을 덧대기도 했다. 전통 복식은 일반적으로 뒷길에 두 장의 천을 이어붙이는 반면, 활옷의 뒷길은 한판으로 하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소매가 넓은 대수, 앞길이 짧고 뒷길이 긴 전단후장의 형태이다.

활옷의 어깨부터 이어지는 소매 끝에는 여러 색의 색동을 붙이고 마지막에는 흰 한삼을 덧달았다. 손을 모았을 때 보이는 한삼 부분에 봉황, 물결, 꽃 등을 수놓았으며 손목이 닿아 더러워지기 쉬운 윗부분에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한지로 덧대기도 했다.

또한 겨드랑이 아래로 긴 옆트임을 두어 신부의 움직임이 편하고 자수 부분이 울지 않도록 했다. 활옷은 양 옷자락을 교차하지 않고 맞닿게 여미는 합입이며, 깃을 따로 재단해 달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목이 닿는 부분에 흰 동정을 달았으며 특히 여러 신부가 빌려 입는 경우 뒷목 부분에 크고 둥근 천이나 종이로 동정을 달았다. 
 

상세 모습 /김서진 기자

활옷에는 신부의 행복을 기원하는 다양한 무늬들이 장식되어 있다. 전통 복식에서 무늬는 장식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유교·불교·도교사상에 기인한 여러 상징물을 사용해 길상적인 염원을 담았다. 이러한 무늬들은 직물을 짜면서 무늬를 낼 수 있는 직조, 색색의 실로 무늬를 표현하는 자수, 금분이나 금박으로 무늬를 찍는 부금과 같은 방법으로 표현된다. 활옷은 겉감과 안감, 소매 등에 무늬가 직조된 옷감을 썼다.

상징성이 좋아 왕실 혼례 시 마련되는 패물의 보자기나 침구 등에도 사용되었던 복숭아·석류·불수감을 소재로 한 도류불수무늬가 주로 보인다. 신부가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을 때 잘 보이는 활옷의 위치 곳곳에 자수가 놓이는데 구도나 형태는 각기 달라도 유형은 비슷하다. 봉황 혹은 백로 한 쌍, 크고 풍성한 연꽃과 모란, 나비, 물결과 괴석 등으로 음양의 조화, 자손번창, 장수, 부귀를 염원했다. 부금 장식으로는 복온공주 홍장삼을 비롯한 일부 국내외 활옷에서 원형의 원앙·봉황·문자무늬를 볼 수 있다.
 

홍장삼 자수본 /김서진 기자

활옷에 자수를 놓을 때 사용한 본이다. 하나의 활옷을 만들 때 사용하기 위한 한 벌로 보이며 각각 뒷면의 소매와 뒷길의 아랫단에 해당한다. 부부의 화목을 의미하는 짝지어 날아다니는 새, 자손의 번창을 의미하는 연밥을 품은 연꽃과 물새 가족, 부귀를 의미하는 모란, 장수를 의미하는 복숭아와 불로초 등 복을 담은 다양한 무늬를 수놓아 혼례를 치르는 부부의 삶이 행복하기를 축복했다. ‘덕온공주 홍장삼 자수본(1837년)’은 조선 왕실 자수의 섬세함과 우수함을 증명해 주는 유물들로서 완성된 활옷과 견주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무늬판 /김서진 기자

무늬판은 옷이나 물품 등에 금박을 찍거나 자수를 놓을 때 사용한 나무판이다. 사용될 도안을 종이에 그린 뒤 나무판에 옮기고 여백을 깎아내 만들었다. 금박을 찍을 때는 무늬가 새겨진 나무판에 접착제를 발라 옷감 위에 찍은 뒤 접착제가 마르기 전에 금박지를 올리고 무늬 바깥 부분의 금박지를 떼어내 무늬가 드러나도록 했다.
 

면사 꽃무늬 나무판 /김서진 기자

면사에 금박을 찍을 때 사용한 나무판이다. 면사는 왕실 여성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썼던 보자기 형태의 쓰개다. 왕비와 왕세자빈은 최고 예복에는 자적색 라(羅)로 만든 면사를, 다른 의복에는 자적색 사(紗)로 만든 면사를 썼고 공주는 남색 사(紗)로 만든 면사를 썼다. 임오년인 1882년 왕세자였던 순종과 순명효황후의 혼례 때 착용한 면사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활옷 제작 영상 /김서진 기자

이외에도 활옷 제작 장인의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 활옷 자수를 모티브로 한 미디어 아트 등을 상영하고, 활옷에 사용되는 실, 직물과 같은 기본 재료로 활옷 작업 공간을 연출하는 등 평소 접근하기 어려웠던 전통 복식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공간을 마련하였다.
 

여러 직물의 모습 /김서진 기자

공주 활옷의 옷감으로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직물을 사용했다. 18세기 이전까지는 활옷의 겉감으로 고급 직물인 필단을 주로 쓰다가 영조대부터 다른 종류의 옷감도 사용하기 시잙했다. 『상방정례』에 의하면 활옷의 겉감, 안감, 동정에 광적, 정주, 능 등 다양한 종류의 직물을 활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모두 비단의 일종으로 실의 종류와 품질, 직조 방식에 따라 그 종류가 나뉜다.

필단은 가장 교차점이 적은 직조 방식인 주자직을 활용한 단의 종류로 궁중이나 중국에서 생산되던 고급 직물이었다. 내구성은 약하지만 부드럽고 광택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주는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직조 방식인 평직을 활용한 주의 한 종류다. 조선 전기에는 튼튼하고 실용적인 면주가 대표적이었으나 조선 후기 다양한 품질의 실이 들어오면서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광적은 용어 사용이 광범위해 직물의 종류를 특정하기 어렵고 넓은 폭의 직물 전체를 가리키는 의미로 짐작한다.
 

다양한 자수 기법 /김서진 기자

활옷은 옷 전체에 여러 종류의 자수 무늬가 화려하게 들어가는 만큼 쓰인 자수 기법도 활옷마다 다양하다. 자수는 옷감 위에 다채로운 색실로 점·선·면·체를 형성하며 무늬를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궁중자수의 경우 왕실 소속 화원이 자수의 밑그림인 수본을 제작하고 침선장과 침선비가 그 도안을 바탕으로 자수를 놓았다.

현전하는 활옷들에서는 무늬마다 평수·자릿수·자련수·선수·가름수·매듭수 등의 기법들이 다양하게 활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복온공주 홍장삼은 천연 염색의 자연스러운 빛깔을 담은 색실, 화려하면서도 정제된 표현과 섬세하고 정교한 기술이 느껴지는 궁중 자수의 전형을 보여준다.
 

활옷 /김서진 기자

적극행정의 일환으로 특별전시 기간 중에는 활옷의 역사, 제작 방법 등에 대해 전문가에게 배울 수 있는 ‘왕실문화 심층탐구 강연’(성인 대상, 10.4.~10.25 중 매주 수요일, 총 5회)과 ‘공주의 웨딩드레스 활옷’(초등학교 1~3학년 어린이 대상, 9.22. ~ 12.8. 매주 금요일, 총 9회) 체험 교육도 함께 진행된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국내외에 소재한 활옷 관련 유물과 다양한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는 이번 특별전을 통해 국민이 조선왕실 여성들의 혼례 문화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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