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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개념 미술의 대가 로렌스 위너 타계 후 첫 회고전 《LAWRENCE WEINER: UNDER THE SUN》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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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개념 미술의 대가 로렌스 위너 타계 후 첫 회고전 《LAWRENCE WEINER: UNDER THE SUN》 개최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9.0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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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SUN 태양 아래> /김서진 기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개관 5주년을 맞아 개념 미술의 대가 로렌스 위너(Lawrence Weiner, 1942-2021)의 개인전 《LAWRENCE WEINER: UNDER THE SUN》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21년 작가 타계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자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이다.

뉴욕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작업했던 로렌스 위너는 칼 안드레(Carl Andre), 로버트 배리(Robert Barry), 댄 플라빈(Dan Flavin),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솔 르윗(Sol Lewitt) 등과 함께 미니멀리즘과 개념 미술의 흐름에 핵심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19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선보였던 '언어 조각(Language Sculpture)' 작업이 대표적이다.
 

<LONG AGO FAR AWAY 오래 전 멀리에서> /김서진 기자

작가는 언어를 특정한 의미를 가리키는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물질로 여겨 이를 조각적 개념으로 제시했다. 1969년 발표한 『의도의 진술』에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개념적 틀이 담겨 있다.

1. 예술가는 작품을 고안할 수 있다.
2. 작품은 제작될 수 있다.
3. 작품은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다.

각 항은 예술가의 의도와 동등하고 일치하며 조건에 대한 결정은 수용 당시 수용자에게 달려 있다.
 

<IMPACTED TO THE POINT OF FUSING SAND INTO GLASS 모래를 녹여 유리가 되는 지점까지 충격을 가한> /김서진 기자

이번 전시는 작가의 대표적인 언어 조각 40여점 외 에디션 작업, 드로잉, 포스터 모션 드로잉 등 다양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작가의 폭넓은 작품 세계를 전반적으로 조명한다. 〈UNDER THE SUN(1999/2000)〉와 〈A BIT OF MATTER AND A LITTLE BIT MORE(1976)〉를 포함한 언어 조각 대표작 47점을 선보인다.
 

<MANY THINGS PLACED HERE + THERE TO FORM A PLACE CAPABLE OF SHELTERING MANY OTHER THINGS PUY HERE + THERE 여기 + 저기 놓인 많은 것들이 대피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여기 + 저기 놓인 많은 것들> /김서진 기자

미국의 조각가 로렌스 위너는 1942년 뉴욕에서 출생, 2021년 타계했다. 뉴욕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작업을 이어 갔던 작가는 조셉 코수스, 로버트 베리와 함께 미국 전후 예술 흐름에 핵심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작업 초기에 회화, 건축 및 조각에 대한 실험을 했으며 1968년에 발표한 '성명서'를 기점으로 언어를 주재료로 하는 언어 조각을 제작했다.

작가가 언어 조각에서 유일하게 제공하는 작품 정보는 '언어 + 언어가 가리키는 재질, 가변크기'로, 언어의 재질적 특성을 활용하거나 언어로 상태를 표현하는 작품 등을 고안함으로써 조각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작가는 언어 조각 외에도 아티스트 북과 에디션 작업, 음악, 영화, 영상 작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했다. 
 

<LEARN TO READ ART 예술 읽는 법을 배워라> /김서진 기자

로렌스 위너는 미국의 개념미술가 더글러스 후블러, 조셉 코수스, 솔 르윗과 같은 예술가들과 함께 개념미술을 창시한 인물로 꼽힌다. 위너는 추상표현주의가 한창이던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의 경력을 쌓아 갔지만 정작 그는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진 못했다. 그의 부모님 또한 예술 문화 활동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위너는 1950년대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MoMA를 방문했을 때 미술을 처음 접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회고했을 때 "나는 중산층이라는 이점을 누리지 못했다. 나에게 예술은 벽에 적힌 글이나 다른 사람들이 남긴 메시지들이었다. 나는 내 작품을 벽에 붙이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기억하거나, 또 다른 누군가가 와서 그 위에 다른 것을 덧칠한다"고 밝혔다. 그는 16살이 되고 나서 예술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너는 상처받을 것이다, 예술은 부자들을 위한 것이고 그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란 인상적인 대답을 했다고.
 

로렌스 위너의 포스터와 드로잉 /김서진 기자
영상 속 로렌스 위너 /김서진 기자

위너는 19살이 되던 해 〈Cratering Piece〉라는 작품을 공개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마린 카운티 국립공원의 넓은 들판의 네 모퉁이에 폭발물을 설치, 동시에 터뜨리는 형태의 액션 작품이었다. 그의 작업은 언어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을 조각으로 간주한다. 1970년대 초부터 작품의 벽면 설치는 위너의 주요 작업이었지만 그는 비디오, 영화, 책, 오디오 테이프를 사용한 사운드아트, 조각, 설치예술 및 그래픽 아트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작업했다.

개념미술의 선두 주자 중 하나인 위너가 대문자로 표현한 언어 또는 텍스트 조각은 전세계에 전시되어 다양한 언어로 해석되기도 했다. 경력 대부분을 암스테르담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던 그는 현대 미술계에서 매력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존재로 남아 창의적인 활동을 펼쳤다.
 

<AS FAR AS THE EYE CAN SEE 시선이 닿는 곳까지> /김서진 기자

작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다양한 관계와 그 안의 상호작용에 걸쳐 있다. 〈시선이 닿는 곳까지〉는 이러한 탐구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 바라보는 대상까지의 거리를 지칭하는 물리적 시선과 우리의 통찰력을 나타내는 시선의 이중적 의미는 맥락과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ON VIEW 시야에 들어온> /김서진 기자
<REMOVED FROM VIEW 시야에서 사라진> /김서진 기자

〈시야에 들어온〉과 〈시야 밖으로 사라진〉은 물리적 가시성과 존재에 대한 관계성을 탐구하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나타나는 존재론적 의문을 제기한다. 『의도의 진술』에서부터 위너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개념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 나타나는 관계성으로 작품을 통해서 작가와 관객이라는 관습적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상호적 관계를 통해 주체성에 도달하고자 한 작가를 발견할 수 있다. 
 

로렌스 위너의 작품과 고미술 소장품들 /김서진 기자

전시가 열리는 국가의 문화적 요소에 반응하고자 한 작가의 철학에 따라 한국 전통예술의 미감을 보여줄 수 있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고미술 작품을 언어 조각과 함께 전시해 새로운 의미를 모색한다. '주체와 대상', '과정', '동시적 현실'이라는 3가지 주제 아래 펼쳐지는 언어 조각과 고미술품의 어울림을 통해 동서고금의 아름다움을 한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다.
 

목제나전흑칠유어화조문경대 /김서진 기자

앉은 자세에서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매만질 수 있도록 경사지게 만든 거울과 화장 도구를 넣어두는 서랍이 합쳐진 나전흑칠 경대다. 앞면은 거북 등껍질을 형상화한 귀갑문을 빽빽이 채워 베풀었고 윗면은 '아(亞)'자를 도안화한 문양으로 분할한 두 화면에 천도복숭아 나무 위 날개를 펼치고 있는 학 그림을 앞뒤로 배치했다. 좌우측면은 물가 풍경을 나전상감기법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다양한 나전 기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백동투각화조문자문향로 /김서진 기자

제례뿐만 아니라 실내 난방용 화로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백동 향로다. 몸체 네 측면에는 물고기 무늬를 바탕으로 복을 기원하는 '수복', '강녕'의 문자문이 새겨져 있다. 향로를 받치는 다리 부분은 박쥐 형태의 풍혈이 있고 뚜껑은 향이나 온기가 새어나올 수 있도록 투각으로 제작되었다. 고종황제가 1896년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예물로 보낸 향로와 기형이 비슷해 대한제국기 금속공예 수준을 엿볼 수 있다. 
 

<THINGS MADE TO BE SEEN FORCEFULLY OBSCURED 강제적으로 가려진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 /김서진 기자
김홍도, <세마도> /김서진 기자

단원 김홍도가 당나라 시인 한굉의 시를 그림으로 그린 작품이다. 따뜻한 봄날, 버들가지가 드리워진 연못에서 한 관리가 한가롭게 말을 씻기는 모습을 서정적으로 담아냈다. 시원한 듯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는 말의 표정이 생생하다. 유연하고 활달한 필치, 생생한 묘사에서 김홍도의 뛰어난 역량을 읽을 수 있다. 
 

<ONE SHEET OF PLYWOOD SECURED TO THE FLOOR OR WALL 바닥이나 벽에 고정된 합판 한 장> /김서진 기자
<SCATTERED MATTER BROUGHT TO A KNOWN DENSITY, WITH THE WEIGHT OF THE WORLD, CUSPED 세계의 무게가 실려 알려진 밀도로 모아진 흩뿌려진 물질, 겹쳐진, 첨두> /김서진 기자
<MILK AND HONEY TAKEN FAR FAR AWAY 멀리멀리 빼앗긴 젖과 꿀> /김서진 기자

스스로를 '물질주의자'라 정의했던 위너는 예술이 본질적으로 사물 사이에서 나타나는 물리적 현실에 관한 것이라고 믿었다. 용접과 적층, 폭파와 채굴 등의 다양한 공정 과정을 다루며 사물의 본질을 탐구했다.

장인들의 섬세한 기술이 담긴 결과물은 다양한 가치를 지니며 언어 조각이 말하는 산업적 공정과 함께 동서고금의 조우를 이룬다. 위너의 작품은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는 언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가의 언어는 물질적 개념에서 더 나아가 시대적이고 문화적인 개념까지 아우르며 문화, 매체를 초월한 첨두에 도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A TURBULENCE INDUCED WITHIN A BODY OF WATER 어떤 수역에 일어난 격량> /김서진 기자
<FLOATED ON WATER SUSPENDED AT THE PONT WHERE CLOCKWISE & COUNTERCLOCKWISE CEASES TO APPLY 시계방향 & 반시계방향이 적용되지 않는 멈춰진 지점에 유보된 채 물 위에 떠 있는> /김서진 기자

이번 전시실은 작가가 점진적으로 회귀한 주제인 '동시적 현실'에 대해 탐구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동시성을 '역사의 한 순간을 다른 순간 위에 놓는 것'이라 표현한 작가는 현실을 인간의 신체적 상태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인식과 가치 체계를 포괄하는 것이란 개념적 정의에 도달한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전시실 중앙의 조선백자들과 위너의 작품들 /김서진 기자

전시실 중앙에 놓인 조선백자 7점은 조선시대 미감과 가치를 드러내는 상징적 요소로 기능한다. 16세기에서 19세기를 아우르는 백자 작품들은 언어 조각과 함께 전시되어 두 세계의 다른 문화가 시각적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물의 본질적 물질성을 언어로 표현한 위너의 언어 조각과 조선 백자가 이루는 조우를 통해 두 세계관의 공존을 경험한다.
 

백자청화운룡문호 /김서진 기자

당당한 형태의 몸체에 격식을 갖춘 용의 모습을 그린 항아리로 '용준'이라고도 부른다. 용준은 왕실의 권위와 신성함을 상징해 연향이나 의례에 술을 담거나 꽃을 꽂는 용도로 사용했다. 이 작품은 수직으로 솟은 구연부 아래 가슴 부분에서 팽창한 뒤 좁아지는 18세기 백자호의 형태를 보여준다.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는 용을 매우 정교하게 묘사하여 화원이 그린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왕실의 위엄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백자청화모란문합 /김서진 기자

넓적한 발에 꼭 맞는 뚜껑을 갖춘 백자합이다. 전체적으로 둥글고 풍만한 형태를 가졌다. 기면 가득히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을 풍성하게 장식했다. 합의 굽 주변을 따라 '뎌동궁디밀고간이뉴일'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순조의 셋째 딸인 덕온공주가 거처하던 '저동궁'의 침실 곳간에 보관하던 그릇으로 추정된다. 명문을 통해 사용처와 시기를 알 수 있어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이번 전시는 작품에 하나의 특정한 의미가 담기는 것을 거부했던 작가의 철학을 존중해 구체적인 작품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 대신, 인터뷰 등에서 발췌한 작가의 말을 인용해 더욱 직접적으로 작가의 예술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언어를 재료로 고유한 작업 세계를 구축한 로렌스 위너의 이번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세상과 문화,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확장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2024년 1월 28일까지 진행되며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다. 전시 예약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핸드메이커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독립 매체로서 주체 적인 취재와 기사를 통해 여러 미디어·포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광고 배너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독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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