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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펜데믹 이후 사람들의 관계는 예술이 될 수 있을까 《Close Society_밀접한 사회》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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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펜데믹 이후 사람들의 관계는 예술이 될 수 있을까 《Close Society_밀접한 사회》展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8.16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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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 Society_밀접한 사회 展》 /김서진 기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오산시립미술관은 8월 27일까지 한국·독일 수교 140주년 특별기획전 《Close Society_밀접한 사회 展》을 개최한다. 

독일과 한국은 국가와 국가를 잊는 지리적 위치해 있어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 상처를 통한 다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특히 전쟁 후 지역적 특성으로 전쟁 피해로 유랑민이 되어버린 인구가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고, 그로 인해 역사적으로 유럽에서 다양한 대중 예술 문화가 가장 발달된 곳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사회 경제적 구도의 인간 문화 속 ‘관계’에 대해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양한 관점을 드러내고 예술가 6인의 60점 작품을 소개하는 기획으로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디지털아트, 설치미술로 구성됐다.
 

《Close Society_밀접한 사회》 /김서진 기자

《Close Society 밀접한 사회》는 '관계'라는 키워드로 예술가들의 시선을 빌어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전시다. 일정 공간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사회라 한다면 인류사에 유례 없던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여전히 코로나 변종에 관한 뉴스가 가끔 등장하지만 허망하게 죽음을 목도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점차 사그라지는 모양새다. 전염병이 등장했을 때 인류는 인간이 인간을 서로 멀리 하는 방식으로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모순적인 형태로 개인을 고립시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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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벗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지금, 역설적으로 사회는 다시 한번 '개인'을 강조한다. 특히 '소비에서 개인'은 '트렌드'라는 미명 아래 대상화되고 있다. 일견 우리가 경험했던 세계화는 끝났고, 모든 것이 점차 분절되는 사회적 현상과 부합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현상을 규정하기 위한 정의를 내리기 전에 그것들을 산업 또는 서비스의 이름으로 다루기 전에 지나간 사건의 후유증쯤으로 치부되기 전에 진정 우리는 '개인'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끝끝내 가져가야 할 무엇을 찾을 수 있는가.

틈에서 적극적 탈주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일상이 더는 일상이 되지 않는 순간, 예술가들이 포착하는 일상의 틈은 이면의 다양한 양상을 앞으로 밀고 나와 관계의 구체성을 짓기 시작한다. 그리고 벌어진 틈에 머무는 방식으로 반사적 행동을 하지 않고 멈춤의 시간 속에서 관계의 열쇠를 찾아내 외연을 넓혀 나간다.
 

베티나 바이스 <soho> /김서진 기자

베티나 바이스의 만화경 같은 작품들은 역동적이고 그 울림으로 가득 차 있으며, 선명한 컬러와 추상적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들은 그림의 틀을 넘어 전시 공간으로 뻗어 나간다. 사실상 그의 그림은 사각의 그림 틀 안에 머물지 않고 그림의 경계를 뚫고 나간다. 페인팅 너머의 페인팅이 되는 셈이다. 이것이 그의 작품이 가진 힘이다.
 

베티나 바이스 <Suva> /김서진 기자

베티나 바이스의 기하학적인 형태는 불투명하고 밝은 색채의 반복적인 자리 잡기와 밖으로 뻗어 나가는 듯한 선의 요소간 상호작용을 통해 역동적이면서도 개방성을 발산한다. 어디 하나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연결의 진동은 폐쇄적이거나 닫혀 있지 않고 화면 밖까지 연결되는 일조으이 시스템으로써 경험케 한다. 강조하는 개인의 삶 이면에 수많은 개인의 삶이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하는 전율이다.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일은 이렇듯 고정적 위치가 아니라 방향성을 띤 움직임 자체일 것이다. 
 

임정은 작가의 작품 /김서진 기자

임정은은 단단한 재료로 3차원적 입방체를 만들어 다양한 작품을 구성한다. 입방체는 마치 자연적이고 살아 있는 존재들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입방체의 구성 모양이 한 무리의 날개 달린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은 깨지기 쉬운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것처럼 여겨진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벽에 고정되어 받쳐져 있지만 날고 있고,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임정은 <깊이의 단서-선 201812> /김서진 기자
임정은 <사각형의 흔적-깊이의 단서_빛2020626> /김서진 기자

임정은의 <깊이와 단서>에서도 기초적인 조형 요소를 토대로 보이는 것을 존재케 하는 것들의 단서를 모색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위치정보만 가지고 있는 0차원의 점이 1차원의 선으로, 2차원의 면으로 나아가는 형태와 더불어 진출과 후퇴라는 색의 속성을 단서로 시각화한다. '있음'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보이는 것들의 이면을 알기 위해 관성적인 시선을 버리고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 방향성을 담보한 움직임을 요청하고 있는 셈이다. 
 

박종규 <노스피어> /김서진 기자

박종규의 작품을 보면 흔적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흔적들은 마치 모호하게 얽힌 그들의 이야기 구조 속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 요소들을 새로운 기호로 조합하고, 이미 익숙하고 알고 있는 것을 새로운 것으로 읽도록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와 같다.

<노스피어>는 집단지성이 사이버 공간에서 만들어가는 인류 통합의 세계, 곧 집단지성의 세계를 가리킨다. 개인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개인이 사라지기 더욱 쉬운 구조일 수 있다. 외부적 변화나 자극에 그대로 휘말리기보다, 잠시 멈춰서 볼 일이다. 
 

박종규 <수직적 시간> /김서진 기자

박종규의 <수직적 시간>또한 움직임을 내포한다. 그는 화면에 발생하는 노이즈를 화폭에 옮겨 담고 있는데 노이즈는 기계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는 신호로써 교정 또는 수정, 차단, 없애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일상의 노이즈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러한 노이즈는 특정한 대상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무차별적으로 발생하는 노이즈는 사실 나일 수 있다. 내가 그들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로써 화폭에 옮겨 담는 전환의 움직임이다. 

틈에서 우연성이 깃들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틈을 포착한다는 건 능동적 행위를 전제한 것으로, 예술가는 벌어진 공간에 개인의 신체적 감각과 서사에서 비롯된 형상을 우연하게 등장시켜 새로운 공간의 주인이자 이미지로 만든다.

섣불리 말로 정의하기 이전에 우리가 이미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 있다. '보는 것'이 그것인데,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 존 버거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일상을 쉬이 놓치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틈을 포착한다는 것은 능동적 행위를 전제한 것으로 예술가는 벌어진 공간에 개인의 신체적 감각과 서사에서 비롯된 형상을 우연하게 등장시켜 새로운 공간의 주인이자 이미지로 만든다. 
 

케스틴 세쯔 <Rabbit with Jacket> /김서진 기자

케스틴 세쯔의 작품을 보면 사람들이 식물과 함께 자라고, 인간은 꽃과 동물과 어우러져 있어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매혹적이다. 모든 것이 권력과 연약함, 믿음과 불안, 힘과 무기력함 사이에서 상호작용을 하며 움직인다. 이러한 양가적 의미 속에서 관객들은 자신들이 투영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케스틴 세쯔 <You Can't say I'm Not Trying> /김서진 기자

케스틴 세쯔의 작업에서 등장하는 각각의 생명체들은 우리가 아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이 결합하여 만들어 낸 형상은 마치 과거 자연과 인간이 구분되지 않았던 인류의 오래 전 이야기처럼 보인다.

우리의 인식 구조가 이름을 붙이며 구별하고 소외시켜버린 그것들, 끊임없이 나눴던 모든 것들을 우리의 일상적 순간에 등장시킨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시간의 틈에서 자연적 요소들은 불현듯 튀어 올라 함께 있는 방식으로 세계를 재구성해나간다. 서로의 일상에 '겹쳐'있음을 한 사람의 얼굴에서 찾아내기도 한다. 
 

윤종석 <위대한 유산 (0308)> /김서진 기자

하나의 의미로 축소될 수 없는 불가능성. 윤종석의 작품은 그 의미가 미끄러져 나가기 때문에 간단하게 해석하기 어렵다. 그의 작품에서 부드러움이 단단함으로, 인간이 동물로, 혹은 그 반대로 전복된다. 그의 작품은 재료들의 유희라 할 수 있는데, 이 유희가 숨겨진 메시지와 기울어진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재료를 접고, 구부리고, 꼬고, 비트는 실험이 놀라운 결과물, 작품을 만든다.
 

윤종석 <당신의 자리에 꽃이 피었습니다 (0713)> /김서진 기자
하나하나 점으로 찍었다 /김서진 기자

윤종석의 작업에서 등장하는 대상들의 교집합은 날짜다. 해당 날짜에 포착한 이미지와 과거 흘렀던 시간을 하나의 구조로 엮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무한에 가깝지만 안개와 같은 조합에 이야기에 구체성을 띠게 만드는 것은 하나하나 찍어 넣는 점이다. 확률로서 존재하나 관측이라는 간섭 행위로 비로소 결정되는 양자물리학처럼, 조합에 의해 다수의 가능성으로 펼쳐지는 다중우주처럼, 점을 찍는 행위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가진 미래를 현재에서 하나의 일상으로 잡아채며 확고히 펼쳐나가는 적극적 관계의 실마리다. 
 

글랩 바스 <I Auge im Wasser> /김서진 기자

글랩 바스는 시간의 층을 이미지로 겹쳐 쌓음으로써 작업을 한다. 층층이 쌓인 이미지들은 순간적이고 일시적이지만 끊임없이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그의 작품에는 순간성에 저항하지만 사라지는 이미지들이 드러나 보인다. 그의 작품은 시간이 얽힌 역사성에 관한 것이다. 
 

글랩 바스 <Patiopie>, <Schlunzopie>, <Janopie>, <Janranopie> /김서진 기자

글랩 바스는 주변 인물의 역사적 총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방식으로 화면 위에 천을 덧대어 여러 번 겹칠한다. 그렇게 화폭 위에서 수많은 요소의 간섭과 중첩으로 맺어지는 축적이 지나고 나서야 한 사람이 등장한다. 개인은 매끄러운 표면으로 완성된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있다'라는 이렇게 화폭 위에서조차 수많은 요소 간의 간섭과 중첩으로 맺어진다. 때론 한 사람이 선택한 시간과 날짜를 중심으로 관계를 시도해 수많은 경우의 일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코로나19가 창궐했던 당시 최선이었던 '고립'은 사회가 무엇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를 명백히 보여주는 근거가 되었다. 제한적인 일상과 단절된 교류는 범위나 깊이와 관계없이 연결, 관계에 대한 욕구를 확인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파편화되고 있는 현상은 오히려 조각날수록 한 개인의 일상에 무수한 개인이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일-온라인상에서 클릭 한 번으로 물건을 사고, 새벽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이런 시스템-의 연속이다.

이렇듯 개인과 개인이 연결될 때, 신체적 감각이 거세된 비가시적 관계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수한 개인을 잊기 십상이다. 그 길에는 타인뿐만 아니라 나 또한 그렇게 잊혀진다. 보려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일이고, 보려 한다면 수만 가지의 방법으로 보게 될 것이다. 여기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보려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건 어떨까.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유영동 전시총괄감독은 "이번 전시의 목적은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디지털 아트 등 다양한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에게 전시 공간을 지원함으로써 다채로운 기회의 발판을 제공하고 국제 교류를 통한 다문화 예술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안나 크레비니 박사는 "유영동 감독이 기획한 이 작품들은 한국과 독일, 여섯 명의 작가들, 그리고 우리와 작품들 사이에서 또 다른 관계의 실타래로 짜여져 우리의 인식에 더 깊숙이 반영될 것이다"라며, "140년이 된 한국과 독일의 관계는 예술 문화 교류에 있어서도 한국과 독일, 그리고 전세계에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라고 밝혔다. 전시는 8월 27일까지.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핸드메이커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독립 매체로서 주체 적인 취재와 기사를 통해 여러 미디어·포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광고 배너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독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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