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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적인 우아함으로 빛나는 유리 예술, 오레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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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적인 우아함으로 빛나는 유리 예술, 오레포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10.0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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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포스 유리 글라스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비케 린드스트란드(Vicke Lindstrand)는 유리 공예가로 잘 알려져 있다지만 섬유예술가,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조각과 도예로도 활동했다. 1928년 예술가 사이먼 게이트가 오레포스에  고용된 이후, 린드스트란드는 사이먼 게이트와 에드워드 할드라는 예술가들과 함께 오레포스에서 일했다.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에드워드 할드는 훗날 '스웨디쉬 그레이스(Swedish Grace)'라는 찬사를 받는 스타일의 아트 글라스를 만들었다. 1925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선보인 사이먼 게이트와 에드워드 힐만의 유리 글라스 스타일은 대중들에게 성공적이었고, 진정성 있는 장인 장신과 창의적인 디자인이라는 오레포스의 전통을 확립시켰다.
 

오레포스 유리 글라스 /flickr

고대 사회에서는 흑요석을 사용해 창과 칼을 만들었다. 그러나 유리를 만들려면 사람들에게도 기술이 필요했다. 유리 세공은 이집트와 로마 제국 시대에도 존재했고 유리 생산에 대한 지식은 유럽으로 퍼져나간다. 중세 초기 시리아에서는 가장 예술적인 유리가 생산되어 무역로를 통해 전세계로 퍼졌다. 베니스는 유리에 대한 지식이 탁월했고 강의 모래를 유리 제조에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오랫동안 베니스는 보헤미아와 함께 유럽 유리의 주요 생산 도시였고 주요 수출품이었다.

완전히 투명한 유리를 얻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생산에 성공한 사람들은 완벽한 거울을 만들어냈다. 이 거울은 사람들이 쓰거나 가구에 장식으로 붙이는 식으로 이용했다. 네덜란드의 유리 제작자들이 스웨덴으로 유리 생산에 대한 지식을 가져왔고 스웨덴 현지에서는 중세 초기 수도원의 유리창을 만들었다. 이후 16세기 초 이탈리아 유약 장인들이 스톡홀름에 생산 공장을 설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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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만 해도 스웨덴의 유리는 유럽만큼 예술적인 성향이 강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확실히 자리를 잡은 시기였다. 스웨덴은 숲이 많았기 때문에 유리 생산이 상대적으로 쉬웠던 것도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 같은 국가에서는 국내에 대규모 유리 생산 공장을 설립하기 어려웠는데 이유는 산림이 부족해서라는 단순한 이유였다. 스웨덴의 침엽수림은 빠르게 성장한다는 특성상 유리를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재생 자원이었다.
 

오레포스의 여러 유리 글라스 /flickr

오레포스의 이야기는 철과 숲에서 시작한다. 1726년 초 요한 실베르스파르는 오레나스 호수로 흐르는 아름다운 강변이 있는 곳에 용광로와 대장간을 지을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오레포스는 오래된 제철소 부지에 1898년 설립되었다. 이 제철소 이름은 '오레 폭포'라는 뜻의 '오레포스'로 지어졌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러 북쪽에서 더 좋은 광석들이 채굴되었고 자연스레 철은 수익성이 떨어졌다. 수익성이 낮아진 제철소는 곧 유리 공장으로 대체되었다.

이전까지 오레포스는 주로 링곤베리 잼을 담는 잼병과 잉크, 향수병 등을 소규모로 만들고 있었다. 1899년까지만 해도 직원은 50여명에 불과했다. 초창기에는 항아리, 테이블 유리, 전등갓 등 간단한 유형의 유리 제품들이 생산되었다. 보다 복잡한 기술에 대한 전문 지식은 다른 유리 공장이나 대륙에서 온 노동자를 고용해 습득했다.

슬슬 장인들이 빠르게 오레포스에 모여들었고 단기간에 이 유리 공장은 전문 지식들을 다져 나갔다. 그러다 1913년 회사의 새로운 CEO 요한 에크만이 부임했는데, 처음에 그는 유리 공장을 운영할 마음은 없었다. 그는 원래 제지 생산을 목적으로 이 숲을 샀기 때문에 유리 생산은 계획에 없었는데, 유리 공장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직원들을 보고는 생각을 바꾸게 된다. 이들에게는 일자리가 필요했고 이미 인기가 있었던 공장 또한 그곳이었기 때문이라고. 곧 그는 크리스탈과 유리 공예로 상품 생산의 방향을 정한다.
 

유리 글라스 /flickr

요한 에크만 취임 이후 오레포스의 유리 생산량도 크게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는 유능한 유리 장인들을 대거 영입했고, 예술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고 제품을 생산하길 원했다. 1914년부터 오레포스는 크리스탈 생산을 시작했고 오버레이 기법을 사용해 아트 글라스를 만들었다. 새 경영진은 곧 이 비지니스에 예술가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1916년 초상화 및 풍경화가인 사이먼 게이트를 고용하고 1년 후에 에드워드 할드를 합류시켰다. 게이트는 고전적인 디자인으로, 할드는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디자인을 선호했다. 할드는 프랑스의 유명한 예술가 마티스에게 사사하기도 했다고.

특히 프랑스의 유리 공예가 에밀 갈레의 아르누보 작품은 오레포스 공예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를 통해 숙련된 유리공예 장인들과 재능 있는 디자이너가 협력하는 형태가 오레포스의 전통의 토대가 된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다양한 비지니스 속 한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오레포스 유리의 생존을 이끌었다.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한 1920년대의 혁신적인 디자인과 스타일은 오레포스 유리 공예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오레포스도 대공황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대공황 시기 스타일과 디자인에 대한 공예가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부드럽고 단순한 점이 특징인 새로운 유리가 탄생한다. 대공황이 끝나고 이 스타일의 유리는 오레포스의 특징이 된다. 
 

에드워드 할드의 유리 글라스 /flickr

오레포스 유리 공장이 있는 스몰란드 지역에는 오레포스 말고도 뉘보로, 웁비딩에시, 레세보 등 여러 유리 공장들이 있다. 녹아내리는 유리가 반짝이는 크리스탈로 변하는 과정은 오레포스의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디자이너, 유리공, 화가, 조각가들이 매일 이 숙련된 작업을 거치며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한다. 오레포스의 모든 유리잔은 독특하고 정교하며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다. 완성된 유리가 공장을 떠날 때까지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생산 과정에 참여한다.

지금도 오레포스의 유리 공장에서는 숙련된 유리 장인들이 스웨덴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들과 함께 디자인과 기술 개발을 하고 있다. 2004년부터는 생산량의 일부를 유럽과 아시아로 돌려 여러 유리 공장에서 생산 중이다. 모든 유리 공장에서는 스웨덴에서 자체 개발한 생산 기술을 똑같이 사용한다고.
 

유리 글라스 /flickr
유리 글라스 /flickr

유리 글라스는 얼어붙은 액체를 연상시키는 생생한 크리스탈이 특징이다. 오레포스 크리스탈의 또 다른 특징은 단순한 라인으로 숙련된 예술성과 시간을 초월한 디자인으로, 장식품이나 식기는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실제 회사는 여러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1930년 비케 린드스트란드가 유리벽 안에 공기를 가두는 기술을 만들고 이 기법의 이름을 셰익스피스어의 희곡 「The Tempest」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인 '아리엘'이라고 붙였다. 그는 보다 대담한 유리 디자인을 개발했고 오레포스에서 12년간 일하면서 틀에 불어 만드는 유리(mold-blown glass)로 초기 작품들을 만들었고 다양한 기법들을 개발해 소개했다.
 

오레포스의 '그랄'기법을 적용한 여러 유리 글라스들 /구글 캡쳐

사이먼 게이트는 새로운 유리 디자인 기법인 '그랄'을 개발했다. 그랄은 투명한 유리 위로 다른 색깔의 유리층을 칠해 가열하고 불어주는 형식이다. 만드는 기술이 워낙 어려워 '성배'로 불렸고 그랄(Graal)이라는 이름도 중세 소설에서 특별한 신비력을 가진 것으로 전해지는 잔인 'Grail, Holy'에서 따온 것이라고. 그랄 유리는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제품은 아니라고 하며, 2-4명의 인원이 여러 층의 용융 유리를 함께 작업하는 식이다.

여러 유리층을 조각하고 모양을 만들고 최종적으로 투명한 유리로 감싸는 과정을 통해 작품은 천천히, 공들여 쌓여진다. 그랄 기법으로 만든 유리공예는 최고급 투명 크리스탈의 느낌을 준다. 이 복잡한 공정의 결과로 입체적인 효과를 얻는다. 마치 꽃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고 반짝거리는 물고기는 마치 깨끗한 스칸디나비아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레포스 유리 글라스를 판매하는 가게의 모습 /flickr

오늘날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은 유리를 통해 자신만의 시대를 해석한 작품을 만든다. 오레포스는 스웨덴 남부 깊은 숲 속 어떻게 세계적인 수준의 장인 정신과 우수성이 탄생했는지를 알린다. 이들은 가볍고, 무겁고, 투명하고, 불투명하면서도 반사되는 투명한 유리라는 결과물을 얻기 위한 기술과 문화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이 추구하는 건 최고의 품질과 정교한 디자인이다. 오레포스는 에드워드 할드와 사이먼 게이트의 유산을 지금도 보존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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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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