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7 21:05 (토)
[현장스케치] 제기 조형의 영감을 현대 예술로, 《신양제기(新樣祭器): 하늘과 땅을 잇는 도자기》展
상태바
[현장스케치] 제기 조형의 영감을 현대 예술로, 《신양제기(新樣祭器): 하늘과 땅을 잇는 도자기》展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8.14 09: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양제기(新樣祭器): 하늘과 땅을 잇는 도자기》 /김서진 기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한국도자재단은 11월 12일까지 경기도자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2023 경기도자박물관 기획전 《신양제기(新樣祭器): 하늘과 땅을 잇는 도자기》를 개최한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서경문화재연구원 등 국내 문화재 관련 기관과 협력해 고려부터 근대까지의 도자 제기, 금속 유물, 전통 회화, 현대작품 등 제기 관련 유물 및 자료 89점을 선보인다.

도자제기는 금속제기와 함께 국가예제의 상징물로서 규범의 정통성과 보수성을 유지했다. 흙이 주는 무한한 조형의 가능성을 여둔 채 시대를 반영한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해 왔다. 그렇다면 도자제기는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기획전 《신양제기: 하늘과 땅을 잇는 도자기》는 고동기형 도자기가 국가제기로 선택된 고려부터 규범을 고수하는 조선까지 한국도자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도자제기의 모습에 주목한다. 나아가 현대화된 제례관념 속 제기조형에 영감을 받은 다양한 예술 작품을 소개한다.
 

핸드메이커는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적인 기사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화·예술 작품이 ‘기회의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핸드메이커와 동행해 주세요.

후원하기
백자 황이, 백자 희준 /김서진 기자

고려는 통치이념의 정립과 왕권강화를 위해 예제정비로 사회를 재편하고자 했는데 이때 중국의 유교예제를 반영한 고려제기의 변화가 일었다. 고려왕실의 태묘를 건립한 성종은 최신 청자기술에 주목해 북송 태조가 반포한 삼례도식을 바탕으로 청자제기를 처음 제작하고 정성껏 진설했다.

도자제기는 태묘의 대사뿐만 아니라 적전, 선잠 등 중사, 풍사, 우사, 문선왕묘에 지내는 소사 등 국가제사 전반에 점차 확대되었다. 1113년 예의상정소가 설치되는 예종대가 되면 또 한번의 예제정비가 이루어진다. 북송 휘종이 보내온 제례음악인 대성악과 보, 궤, 정과 같은 각종 제기를 통해 고대 고동기를 바탕으로 정비된 송 예제가 고려에 도입된 것이다.

곧이어 국가전례서인 『상정고금례』가 완성되는 한편 청동제기와 함께 고동기를 모방한 청자의 제작도 이루어졌다. 이후 성리학적 이념이 도입된 원 간섭기에 들어와 공자의 위패를 모신 문묘제례가 활성화되었으며 원의 제도를 모방한 문묘제기가 고려에서도 제작되었다. 
 

백자 보, 백자 궤 /김서진 기자

이 그릇은 고려시대에 나라의 중요한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었다. 바깥쪽이 네모나고 안쪽이 둥글게 파인 그릇은 '보', 반대로 바깥쪽이 둥글고 안쪽이 네모나게 파인 그릇은 '궤'라고 한다. '보'와 '궤'에서 둥근 부분은 하늘을, 네모난 부분은 땅을 뜻한다. 이 두 그릇은 서로 짝을 이루며 각각 그릇 가운데 움푹 파인 부분에 곡식을 담아 제사상에 올렸다.

해당 작품에는 뚜껑이 없지만 '보'와 '궤'의 뚜껑에는 원래 거북이 장식이 있다. 거북이 장식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거북이의 몸이 옛 중국인들이 생각했던 하늘과 땅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다. 거북이를 옆에서 보면 동그라미를 반으로 잘라 놓은 것처럼 보인다. 중국인들은 거북이의 넓적한 배는 땅을, 둥근 등딱지는 하늘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둘째로는 먹이를 많이 먹지 않는 거북이를 보며 음식을 너무 욕심내지 말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청자양각 이룡문 받침 /김서진 기자

고려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차를 즐겨 마시곤 했다. 나라에서도 차를 중요하게 생각해 차, 다과 등을 관리하는 '다방'이라는 관청을 세우고 나라의 중요한 행사 때마다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차를 담는 찻잔과 찻잔 받침 '잔탁'을 사용한다. 이 찻잔의 받침에서는 도마뱀처럼 생긴 용 세 마리를 볼 수 있다.

이 동물은 중국의 옛 이야기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로 뿔이 없고 물 속에 산다고 전해지는 '이룡'이다. 비슷한 이룡 그림이 새겨진 또 다른 찻잔 받침이 전라남도 영안군 월출산에서도 발견되었다. 이 곳은 고려시대 때 나라의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주위에서 향로 같은 고려시대 의례용 그릇도 함께 발견되었다. 월출산에서 발견된 찻잔 받침처럼 이 찻잔 받침도 고려시대 때 나라의 중요한 행사를 지낼 때 사용한 물건이었을 수도 있다. 
 

청자양각 도철문 향로(좌측), 청자양각 도철문 사각향로(가운데), 청자양각 도철문 사각향로(우측 끝) /김서진 기자

제사나 의례 같은 나라의 중요한 행사는 향을 피우며 시작한다. 향의 연기를 하늘로 올려보내 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신을 부르고, 의례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서다. 향의 재료는 주로 향기가 나는 나무로 향에 불을 피우면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다 탄 향은 재가 되어 아래로 떨어진다. 향을 피우고 재를 받아내는 그릇을 '향로'라 한다. 이 향로는 중국의 오래된 청동 솥을 참고해 고려청자로 만든 것이다.

옛 중국에서 청동기는 왕이나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는 귀중한 물건이었다. 중국 송나라 시대에는 황제가 청동기를 활용해 자신의 힘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국의 청동기는 고려시대에도 영향을 주었다. 고려시대의 왕도 송나라처럼 청동기를 활용해 왕의 힘을 드러냈다. 이후 고려에는 중국의 청동 그릇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도자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자기를 중국의 청동기 모양과 비슷하게 만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고려 사람들의 생활에 맞게 조금씩 모양이 바뀌었다. 청자양각 도철문 사각향로도 그 중 하나다. 
 

분청사기상감 황목운문 준 ,분청사기상감 뇌문 제기 /김서진 기자

분청사기상감 황목운문 준에는 황금색 눈 모양과 위로 올라가는 것 같은 구름이 그려져 있다. 이 항아리는 중국의 오래된 책 『예서』에서 나온 항아리 '뢰'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뢰'의 모습을 참고해 이 항아리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이 항아리보다 중국의 책 『예서』가 먼저기 때문이다. 이 항아리와 비슷하게 황금색 눈 문양을 가진 또다른 그릇 '황이'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

'황이'에서 '이'는 제사에 사용하는 가장 귀한 술그릇을 뜻한다. '황이'는 왕실에서 돌아가신 왕과 왕비들을 기리는 큰 제사인 종묘대제를 지낼 때만 사용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주로 금속 그릇을 사용했는데 현재까지 전해진 '황이'도 모두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황이'에 새겨진 황금색 눈 모양 중 황금색을 중심‧가운데를 뜻하고 눈은 깨끗하고 맑은 힘‧느낌을 뜻한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황이'에 술을 담은 후 따르면 깨끗하고 맑은 힘이 흘러나온다고 생각했을 테다. 
 

백자철화문 작 /김서진 기자
백자철화문 상준, 백자철화문 희준 /김서진 기자

성리학적 유교이념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은 조선왕조는 건국과 함께 문묘의 석전의를 왕이 진행하는 공식 제사로 지내면서 유교국가임을 공표하였다 또 왕조의 근간이 되는 종묘와 사직을 새롭게 영조했다. 이 과정에서 의례상정소를 설립하고 국가예제 정립을 위한 의례절차와 제기제도가 큰 변화를 겪었다. 국가예제는 중국 당‧송의 오례를 참고해 대대적으로 정비되었고 『세종실록』, 『오례』, 『국조오례의』등 국가전례서에 제기도설을 남겨 규례를 준용하도록 하였다. 

국가제사는 길례로 불리며 대사, 중사, 소사로 구분하고 중앙정부가 제관을 파견해 직접 주관하거나 지방수령이 전담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제사는 품계에 따라 제수의 종류, 제기의 수량이 차별화되었으며 제기는 금속제기가 최우선시되는 가운데 재료의 조달 상황과 제사의 위계에 따라 금속기를 모방한 도자제기가 보완적으로 사용되었다. 전국 각지의 공공제례에서 사용된 도자제기의 실례를 통해 국가의 안녕과 사회질서를 위한 조선의 유교적 실천을 살펴볼 수 있다.
 

분청사기 상준(좌측), 분청사기상형 희준(우측) /김서진 기자

왼쪽의 코끼리 모양의 분청사기 그릇은 제사를 지낼 때 술을 담았던 그릇이다. '상준'이라는 이름은 코끼리를 뜻하는 '상'과 술그릇을 뜻하는 '준'을 합친 말로 코끼리 모양의 술그릇이라는 뜻이다. 기록에 따르면 상준은 중국의 옛나라인 주나라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주나라는 여러 나라에서 선물을 받았는데 지금의 베트남 북쪽에 있던 '남월'이라는 나라에서 코끼리를 선물로 바쳤다. 중국 황제의 은혜가 먼 나라까지 퍼졌다는 의미를 담아 코끼리 모양의 술그릇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에서도 중국의 의례 제도가 들어오면서 '상준'을 만들게 된다. 이 '상준'의 코끼리 코는 실제 코끼리보다 코가 짧고 귀가 작다. 조선에서는 코끼리를 실제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림을 보고 코끼리를 상상해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몸통 윗부분에는 술을 넣고 국자로 뜰 수 있는 구멍이 있다. 이 구멍 주변에 코끼리 어깨와 꼬리 쪽으로 새끼줄 무늬를 새겨 마치 코끼리가 항아리를 등에 지고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분청사기 상준(좌측), 분청사기상형 희준(우측) /김서진 기자

오른쪽의 분청사기 그릇은 소 모양을 본따 만들었다. 반듯한 몸통에 소의 얼굴과 다리 모양을 붙인 모습으로 소 얼굴 모양과 뿔, 귀가 잘 표현되어 있다. '희준'이라는 이름은 짐승을 뜻하는 '희'와 술그릇을 뜻하는 '준'을 합친 말로 짐승 모양 술그릇이라는 뜻이다. 농사를 많이 지었던 조선시대에는 소가 아주 중요한 동물이었기 때문에 소 모양의 그릇을 만들었다고 한다. 곡식을 심기 위해 밭을 갈려면 꼭 소와 함께 해야 했다.

소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동물인 만큼 주로 나라의 큰 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바쳐졌다. '희준'은 봄‧여름 제사를 지낼 때 코끼리 모양의 그릇인 '상준'과 함께 썼다. 소와 코끼리 모양의 그릇을 봄‧여름 제사에 사용하는 이유는 『세종실록』의 「오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오례」에는 소의 기름에서 봄을 떠올리게 하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코끼리는 여름처럼 더운 나라인 남월에서 살기 때문이라고. 
 

분청사기 궤 /김서진 기자

경상남도 양산에는 '가야진'이라는 불리는 나루터가 있다. '가야진'은 가야라는 나라로 건너가는 나루터라는 뜻이다. 이 곳은 오래전부터 용이 산다는 전설이 있어, 용에게 '가야진용신제'라는 제사를 바치고 있다. 이 그릇은 제사를 지내던 곳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원래 제사에서 사용하는 그릇은 금속으로 만들지만 금속이 부족해지면 이 분청사기 그릇처럼 흙이나 나무로 만들기도 했다.

제사용 그릇을 흙으로 만들었을 때에는 금속 그릇 본래의 모양과 비슷하게 만들기도 했고 흙이라는 재료의 특징을 살려 모양을 많이 바꾸기도 했다. 이 그릇도 원래 금속 그릇인 '궤'를 흙으로 만든 것이다. 금속에서 흙으로 재료가 바뀌며 손잡이나 뚜껑의 장식이 단순해지고 모양도 원 기둥으로 바뀌었다. 
 

백자청화 '제'자문 사각접시 /김서진 기자

이 접시는 '고족접시'로 다리 길이가 다른 접시보다 긴 접시를 말한다. '고족접시'는 제사를 지낼 때나 잔치를 할 때 주로 사용했다. 이 접시 가운데에는 제사를 뜻하는 '제(祭)'라는 푸른색 글자가 씌어 있다. 그렇다면 왜 접시에 이런 글자를 써 두었나? 바로 이 그릇이 제사용 그릇이라는 것을 알리고 다른 그릇과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은 제사용 그릇과 일반 그릇을 엄격하게 나누어 관리하고 사용했다.

조선시대 제14대 왕 선조, 제16대 왕 인조가 나라를 다스리던 때에는 전쟁이 일어나 제사용 그릇을 따로 사용하거나 관리하기 어려워진 적이 있었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다른 그릇을 제사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때는 제사에 사용했던 그릇이 다시 다른 그릇과 섞이지 않도록 한자 '제(祭)'나 한글 '졔', '졔긔'와 같은 글씨를 썼다. 그릇을 뾰족한 못으로 찍어 무늬를 새기는 점각, 그릇에 먹으로 칠하는 묵서와 같은 방법으로 글씨를 남겼다. 
 

유제 상준, 유제 희준, 유제 용작 /김서진 기자

도동서원은 조선의 성리학자 동방오현을 대표하는 김굉필을 향사하는 서원으로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다.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쌍계서원을 1605년 재건하였으며 1607년 선조가 도동서원이란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면서 토지와 임야, 그리고 노비와 함께 제기를 하사받았다. 김굉필의 묘제, 봄가을 향사로 이루어진 도동서원의 제향의례는 교의에 고두밥을 담은 보‧궤와 변‧두, 삼배주를 담는 작을 진설하고 준소상에는 헌작용 술을 담는 상준과 희준, 향상에는 향로와 향합을 올렸다. 
 

백자 궤 /김서진 기자

17세기 연이은 전란으로 제기가 훼손되고 제기의 재료인 동의 수입이 어려워지자 사회재건을 위한 제기 조달은 시급한 과제였으므로 유제제기를 우선으로 하는 국가대사에서조차 금속기를 모방한 백자제기를 혼용하게 되었다.

18세기가 되고 유제제기가 정상적으로 보급됨에 따라 금속기형 백자의 제작은 줄어들고 보수성을 유지한 왕실 백자명기에서만 금속제기의 정형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조상제사를 의미하는 문소전, 진전, 산릉 등 왕실속제에서는 유밀과를 중심으로 제물을 올리는 특성상 일상기명에 '제祭'자를 표기한 조선식 백자제기가 차별적으로 사용되었다.
 

청동상감 경회루문 화병 /김서진 기자

고동기형 도자제기는 전통사회에서 국가질서 확립과 안위를 위한 핵심 의례기로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해 왔다. 왕조의 흥망성쇠와 근대 문호개방에 의해 국가제례의 의미가 변화하고 금속제기의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고동기형 도자제기의 기나긴 여정이 일단락된다.

오늘날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 가족의 형태와 생활방식이 다양화되었고, 제사 문화는 예의 본질만 남겨진 채 제사관념이나 제사상차림도 합리적으로 변화했다. 전통제기 또한 예술적 재생산과정을 거쳐 제기 모티브에서 착안한 오브제 성격의 작품으로 재해석되거나 작품의 피사체로서 역할하며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예의 형식과 본질이 대립되는 사회의 무게에서 벗어나 제례문화와 전통도자의 미래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백은 작 /김서진 기자
청자음각 초화문 향로 /김서진 기자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원구단 제천례를 새롭게 설치하고, 『대한예전』편찬과 함께 제기를 개수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러나 일제에 국권을 상실한 조선의 국가의례가 축소되고 제사시설이 황폐화됨에 따라 제사의 상징성은 잊혀져 갔다.

공공제기의 기능은 퇴색했지만 고증학의 유행과 함께 고동제기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었다. 고동기의 금문에 새겨진 길상어구와 벽사성격에 따라 실내를 장식하는 병풍으로 제작되었으며 문호개방과 함께 공예품으로 변모해 황실의 외교선물이나 하사품으로, 또 관광기념품으로 재생산되었다. 
 

종정도 /김서진 기자

조선시대는 양반, 학자 사이에서 중국의 옛 청동기가 인기를 끌었다. 조선 후기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옛 청동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청동기가 그려진 그림들도 많아졌다. 어떤 사람은 청동기가 그려진 그림으로 자신의 취향이 뛰어나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림에 주로 복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나쁜 귀신을 쫓아낸다는 의미를 담기도 했다.

청동기의 인기는 이 시기 '금석학'이라는 학문이 널리 퍼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청동기에 빠진 학자들은 옛 청동기에 어떤 글자가 새겨져 있는지 연구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이 병풍에서도 학자들의 옛 청동기, 금석학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다. 이 병풍에는 『선화박고도』에 나오는 옛 청동기 그림이 담겨 있다. 그림 주변에는 청동기에 새겨진 옛 중국 글자도 볼 수 있다. 그 옆에는 글의 내용을 읽기 쉬운 한자로 써 글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도록 했다. 
 

청자음각 국화문 향로 /김서진 기자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이 우리나라의 무덤을 강제로 파헤치는 도굴이 많았다. 도굴된 무덤에서는 귀중한 옛 물건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 하나가 고려청자다. 고려청자가 세상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고려청자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며 비슷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때 고려청자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도자기를 '재현청자'라 부른다. 이 도자기는 '재현청자'의 한 종류로 중국 옛 청동 솥에 있는 것처럼 세 개의 다리가 달려 있다. 다리와 연결된 몸통에는 무늬를 새긴 '음각 장식'과 향을 내보내기 위해 뚜껑에 구멍을 뚫어 놓은 '투각 장식'이 있다. '재현청자'는 주로 포장 상자와 함께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고려청자와 닮아 인기 있는 물건이었다. 
 

좌측부터 백상감 보, 순백 궤 /김서진 기자

해방 이후 한국 미술계는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서구미술을 소화하여 정체성을 재정립하고자 했다. 회화, 사진 등 평면작품에서 높은 굽의 전통제기 위에 제사음식 대신 정물화에 자주 등장하는 모과나 꽃을 배치하는 것이 새로운 특징으로 등장했다.

한편, 도예가들은 전통도자의 가치와 미감을 부단히 탐구하고 해체와 응용을 반복하는 실험적인 도전을 했다. 특히 백자제기를 현대화한 김익영 작가는 박물관에서 처음 본 충효동 분청제기의 분할 굽, 톱니장식, 양쪽 귀 등 제기조형의 특징을 차용해 새로운 기능과 조형언어를 가미해 전통의 현대화를 완성했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재단은 9~10월 중 ‘제례 문화 바로 담기’ 특별 강연과 ‘새로 쓰는 도자 제기’ 교육·체험 프로그램 등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해 도자 역사와 전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계획이다.

강명호 경기도자박물관장은 “도자 제기의 시대적 변화를 문화사적 관점에서 짚어보고 나아가 현대화된 제례 관념 속 전통 도자의 방향성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전시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전시는 11월 12일까지.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핸드메이커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독립 매체로서 주체 적인 취재와 기사를 통해 여러 미디어·포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광고 배너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독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핸드메이커가 다양한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된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후원을 통해 핸드메이커는 보다 독자 중심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미래를 관통하 는 시선으로, 독립적인 보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이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에는 항상 핸드메이커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가들 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 다. 앞으로 핸드메이커가 만들어갈 메이커스페이스에 동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단 한차례라도 여러분의 후원은 큰 도움이 됩니다. 후원하기 링크를 통해 지금 바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응원해 주세요.

후원하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윤진한 2023-08-14 13:00:27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고려 국자감은 고려말에 성균관이 되고, 조선 성균관, 해방후 성균관대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057

윤진한 2023-08-14 12:59:52
한국은 세계사의 정설로,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국으로 수천년 이어진 나라임.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때 외래종교 형태로 단순 포교되어, 줄곧 정규교육기관도 없이, 주변부 일부 신앙으로 이어지며 유교 밑에서 도교.불교가 혼합되어 이어짐. 단군신화는 고려 후기 중 일연이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인 삼국사기(유교사관)를 모방하여, 개인적으로 불교설화 형식으로 창작한 야사라는게 정설입니다.

유교,공자.은,주시대始原유교때 하느님.조상신숭배.세계사로보면 한나라때 공자님도제사,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성립,수천년전승.한국은殷후손 기자조선 기준왕의 서씨,한씨사용,三韓유교祭天의식. 국사에서 고려는 치국의道유교,수신의道불교.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

주요기사
  • 경기도 시흥시 은계로338번길 36 3층 301호(대야동)
  • 대표전화 : 070-7720-2181
  • 팩스 : 031-312-10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리
  • 법인명 : (주)핸드메이커
  • 제호 : 핸드메이커(handmaker)
  • 등록번호 : 경기 아 51615
  • 등록일 : 2017-08-23
  • 발행일 : 2017-08-15
  • 발행·편집인 : 권희정
  • Copyright © 2024 핸드메이커(handmaker).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handmk.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