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7 18:55 (토)
그림 속 흔적 비하인드 스토리... 수정이 필요했던 이유
상태바
그림 속 흔적 비하인드 스토리... 수정이 필요했던 이유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3.08.07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음 /픽사베이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모든 그림은 저마다의 배경과 이유를 가진다. 화가는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담기도 하고 때론 의도치 않게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림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찾고 이를 해석하며 화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시도 역시 숱하게 이뤄져 왔다. 오래된 명화가 가진 숨겨진 이야기들은 현대인들을 매료시키고 그 안에 빠져들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림에 남겨진 흔적들에 대한 비하인드다. 의도치 않게 그림을 수정해야 했던 화가와 화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의해 우연히 남겨져야 했던 그림 속 흔적들을 통해 우리는 어떤 그림이 그려진 동시대의 모습과 화가가 처한 현실을 실감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존 싱어 사전트’의 작품 <마담X>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는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로 유럽 미술계에서 좋은 평판을 받았던 화가다. 많은 화가들이 활동 당시 이름을 알리지 못하거나 가난하게 삶 속에서 그림을 그려야만 했던 사례들이 많은데, 사전트는 이와는 반대다. 그는 미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훌륭한 교육을 통해 순조롭게 유럽 미술계에 입성했다.
 

핸드메이커는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적인 기사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화·예술 작품이 ‘기회의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핸드메이커와 동행해 주세요.

후원하기
1903년 제임스 E. 퍼디가 촬영한 존 싱어 사전트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03년 제임스 E. 퍼디가 촬영한 존 싱어 사전트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사전트의 작품 <마담X>는 그의 대표작이자,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그림이다. 초상화 작업에서 줄곧 호의적인 평가를 받아왔던 그이지만, 이 작품을 1880년대 프랑스 파리 살롱에 출품하면서 역풍을 맞았다. 평단에서 좋은 리뷰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마담X>를 비난했다. 여인의 모습이 괴기하며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림 속에서 한 여성은 흰 피부가 부각되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채 고개를 돌리고 다른 편을 응시한다. 그리고 그녀의 흰 어깨에서 흘러내린 드레스 끈은 관능적인 이미지를 완성한다. 이 그림은 현대 ‘메트로폴리탄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릴 만큼 관람객들의 높은 관심이 이어지는 작품이다. 사전트의 대표작으로 불리지만, 당시 그림에 대한 좋지 못한 평가로 인해 그는 물론, 이름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비공식적으로 그림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여인의 평판까지 떨어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마담 X, 존 싱어 사전트, 1884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흘러내린 어깨끈을 수정한 완성작. <마담 X>, 존 싱어 사전트, 1884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놀라운 점은 일반인의 누드화를 그린 초상화가 많았음에도 유독 해당 작품에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그림 속 여인의 어머니까지 살롱전에 찾아 가 작품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는 규정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흘러내린 그림 속 어깨 끈은 살롱 전시가 끝난 후에야 사전트에 의해 반듯하게 올려진 모양으로 수정됐다. 현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해당 작품은 어깨 끈이 수정된 이후의 그림이다.

작품 <마담X> 살롱 출품 후 비난 쏟아져

사전트는 저명한 초상화가 에밀 오귀스트 카롤루스 뒤랑에게 미술을 배우며 자신만의 초상화법을 개척한 인물이다. 이는 그가 지속적으로 상류 사회 인물들의 초상화를 의뢰 받고 그렸던 원동력이 됐고 그가 떠오르는 초상화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꾸준히 초상화를 그리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명성을 높일 수 있는 특별한 모델을 만나길 원했다고 한다.

문제가 된 그림 <마담X>의 모델은 당시 사교계의 미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비르지니 아멜리 아베뇨(Virginie Amelie Avegno)‘다. 그녀는 프랑스 은행가 피에르 고트로(Pierre Gautreau)의 아내이면서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어 인기가 높았고 ‘마담 고트로(Gautreau)’라 불렸다. 특히 파리 사교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것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중에서도 눈처럼 흰 피부가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마담 고트로는 연보라 빛의 화장을 통해 얼굴을 더 희고 창백하게 보이도록 했다고 한다.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비르지니 아멜리 아베뇨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당시 수많은 화가들은 아름다운 마담 고트로를 그리고 싶어 했으며, 이는 사전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초상화로 남기기 위해 마담 고트로를 끊임 없이 설득하는데, 그 결과 사전트는 겨우 그녀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됐다.

마담 고트로의 초상은 당시 초상화의 주인공을 드러내지 않는 전통에 따라 <마담X>라는 제목으로 살롱에 출품 됐다. 사전트는 이 작업이 자신에게 큰 명예를 가져다 줄 것으로 여겼고 마담 고트로 역시 사전트 특유의 초상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이 극대화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작품 <마담X>는 파리 살롱에 출품했을 당시 평단과 대중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됐다.
 

로그나우의 숙녀 애그뉴의 초상. 인물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하는 사전트 특유의 초상화 작업.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처음 해당 그림을 감상할 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검은 드레스와 대조적인 마담 고트로의 흰 피부 표현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시체를 연상시키는 그림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또 테이블을 지지하고 있는 여성의 팔이 지나치게 꺾여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괴기스러운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크게 문제가 됐던 점은 드레스의 한 쪽 어깨 끈이 흘러 내려 지나치게 선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인데, 이는 마담 고트로가 결혼을 한 기혼자임에도 방탕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결국 그림은 원본과 다르게 수정 됐다. 사전트는 살롱전이 끝나고 어깨 끈이 반듯하게 올라가 있는 모습으로 그림을 수정했다. 마담 고트로는 부정적인 시선에 따라 그림을 매입하길 포기했다. 화가 인생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그림이지만 사전트는 작품 <마담X>를 자신의 작품 중 최고로 여겼으며, 마담 고트로가 사망하고 1년이 지나서야 주인 없는 그림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의해 매입됐다. 당시 사전트는 모델의 이름을 공개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해당 작품은 자신의 그림 중 최고라고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그의 스튜디오에 있는 존 싱어 사전트, 마담 X의 초상, c. 1885년아돌프 지로동,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마담 X의 초상과 사전트의 모습, c. 1885년, 아돌프 지로동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파블로 피카소’ 그림 속 숨겨진 스케치

2020년 7월(현지시간) 다수의 외신들이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1922년 작품 <Still Life>에서 숨겨진 그림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팀은 그림에서 주름진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페인트 층과 영역을 더 자세히 관찰했다고 한다. 그리고 X선과 적외선 영상을 사용하면서 해당 작품에 숨겨져 있는 스케치를 발견하게 된다. 해당 연구는 피카소가 작품 <정물화>를 완성하기 이전에 그 아래 다른 그림을 그렸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Still Life, 1922, Pablo Picasso, Art Institute of Chicago /Flickr
정물화, 1922, 파블로 피카소,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드 /Flickr

연구팀은 숨겨져 있던 스케치에 대해 “주전자, 머그잔, 신문으로 추측되는 사각형 물체가 테이블처럼 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는 그림이다”라고 전했다. 또 숨겨져 있었던 스케치가 피카소의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이와 유사한 작품이 스웨덴 예테보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후 피카소의 또 다른 그림에서도 숨겨진 스케치가 발견됐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연구원들은 역시 적외선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피카소 그림 중 청색 시대 작품인 <늙은 기타 연주자>에서도 그림 아래에 숨겨진 또 다른 스케치를 발견했다.
 

The Old Guitarist, 1903-04, Pablo Picasso, Art Institute Flickr
늙은 기타 연주자, 파블로 피카소 /Flickr

사실 피카소가 사용했던 캔버스를 다시 재사용 하는 일은 꽤 흔했다. 앞서 2014년에도 외신들은 필립스 컬렉션 등 여러 전문가들이 피카소 그림 아래에 숨겨진 또 다른 윤곽선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적외선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서 피카소의 첫번째 걸작 <푸른 방>에서도 나비 넥타이를 매고 있는 한 남성의 스케치가 발견 됐으며, <다림질하는 여자>에도 콧수염을 기른 남자의 초상이 확인됐다고 한다.

왜 피카소는 그림 위에 그림을 그렸을까

‘파블로 피카소’는 입체주의 화풍의 창시자로 모든 작업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명확하게 보여준 거장 중 하나다. 그는 회화부터 조각까지 모든 분야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늘날 가장 성공한 화가로 기억된다. 일찍이 어렸을 때부터 화가였던 아버지에게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았고, 그 후로 입학한 예술 학교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피카소하면 기하학적인 입체파 화풍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사실 피카소는 십대 때부터 사실적 표현이나 명암, 색감 등에서 이미 천재적인 실력을 입증했다. 역시 전형적인 회화 작업에서도 완성도 있는 그림 그 이상을 그려냈다.

하지만 그런 피카소에게도 암울한 시대는 있다. 당시 피카소의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봤지만, 다만 그의 화풍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피카소는 15세 때 입학한 마드리드 왕립미술학교를 그만 뒀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균열이 생기게 되었고 피카소는 19살 때 가출하며 파리 유학길에 오른다.

전문가들은 피카소의 그림을 ‘청색 시대’, ‘장미빛 시대’, ‘원시 시대’, ‘분석적 입체주의 시대’, ‘종합적 입체주의 시대’로 구분한다. ‘청색 시대’에 그린 작품들은 1901년부터 1904년까지의 기간에 그려졌던 그림으로, 세상에 대한 근심과 상실, 고통 등을 청색 계열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그림은 어딘지 우울하며 소재 역시 지친 노동자들, 힘 없는 노인이나 아이 등이다.
 

파블로 피카소 아르헨티나 . 레비스타 베아 이 레아1962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파블로 피카소, 레비스타 베아 이 레아, 1962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그림에서 드러나는 것과 동일하게 이 시기 피카소 역시 여러가지 고통을 겪게 된다. 함께 유학을 떠난 친구의 죽음은 그에게 상실삼과 가져다 줬으며 고국을 떠나 도착한 파리의 풍경은 낯설기만 했다. 특히 도시의 이면에 존재하는 고통 속에서 가난한 이들을 그리며 자신의 감정을 그림에 담는다. 안타깝게도 청색 시대에 그렸던 작품들은 동 시대 사람들에게 외면 받았으며 작품이 팔리지 않자 피카소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피카소가 사용했던 캔버스를 또 사용한 사례는 꽤 많은 것으로 알려지지만, 앞서 언급한 숨겨진 스케치가 발견 된 작품들은 청색 시대에 그렸던 그림이 다수다. <푸른방>, <늙은 기타 연주자>, <다림질 하는 여자> 모두 청색 시대에 그렸던 작품들이다.

그림의 표면 아래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그림의 존재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시 작품이 팔리지 않아 가난했던 피카소의 경제적 상황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림을 의도적으로 숨긴 것이 아니라 한 캔버스에 여러 번 작업하는 과정에서 윤곽이 남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피카소는 그 이후 또 다른 시대를 맞이하면서 성공한 화가로 기록되고 있다. 놀라운 점은 그 이후에도 숨은 그림이 발견되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어, 피카소가 사용했던 캔버스를 재사용한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힘들었던 시절 재정적 이유로 캔버스를 재사용하고 그림을 덧그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정설이다.

비극적인 ‘반 고흐’의 삶

가난으로 인해 캔버스를 재사용한 화가는 또 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현대 강렬하고 열정적인 그림을 통해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로 기록되지만, 생전에는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했으며, 비극적인 삶을 이어갔다. 그를 괴롭혔던 정신질환으로 인해 고통을 겪은 것은 물론, 고갱과의 다툼 이후에 면도칼로 스스로 귀를 잘라버린 일화는 유명하다.
 

자화상, 빈센트 반고흐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자화상>, 빈센트 반고흐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고흐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재능을 인정 받지 못했고 그림 역시 팔리지 않았다. 이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으며 동생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에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또 고흐는 매춘부 출신의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되고 함께 생활하기도 하지만 혼자서는 생활비를 해결할 수 없었던 이유로, 크리스틴과 헤어지고 그림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추후 초기 야수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줬으며, 작품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자화상>, <해바라기> 등 수많은 걸작을 남긴 화가로 평가 되지만 생전에는 가난과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그림 작업을 이어왔다.
 

빈센트 반 고흐,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밤의 카페>, 빈센트 반 고흐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그림 뒤에 숨어 있던 ‘반 고흐’의 자화상

지난해 7월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내셔널 갤러리(NGS)가 소장한 반 고흐의 작품 <농부 여인의 초상> 그림 표면 뒤에서 또 다른 그림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NGS는 당시 전시를 앞두고 해당 작품을 적외선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검사하다가 흐릿한 윤곽을 발견했다고 한다.
 

흰 모자를 쓴 농부 여인의 머리, 빈센트 반 고흐 /퍼블릭도메인, 위키아트
흰 모자를 쓴 농부 여인의 머리, 빈센트 반 고흐 /퍼블릭 도메인, 위키아트

NGS가 공개한 보도자료에서는 해당 그림은 접착제와 판지로 겹겹이 덮여 있다고 한다. 실제로 반 고흐는 가난한 상황 속에서 그림 작업을 하며 종종 캔버스를 아끼기 위해 뒷면에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NGS는 기존의 그림인 <농민 여인의 초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반 고흐의 초상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그림 속 가려진 고래… 이유는?

그림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진 소재도 있다. 바로 네덜란드 해양 화가 ‘헨드릭 반 안토니센(Hendrick van Anthonissen)의 작품 <스헤베닝언 해변의 풍경>은 150년 동안 해변에 나타난 고래가 지워진 채 보존되어 왔다.

2014년 6월 외신들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숨겨진 고래가 나타났다’는 보도를 전했다. 보도 내용은 캠브리지 대학의 피츠 윌리엄 박물관에서 보존 작업을 하는 과정 중 그림 뒤에 숨겨진 고래가 발견됐다고 한다.
 

헨드릭 반 안토니센,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작품 <스헤베닝언 해변의 풍경>복원 전, 헨드릭 반 안토니센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작품 <스헤베닝언 해변의 풍경>복원 후, 헨드릭 반 안토니센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그림 속 고래는 오래된 유화에서 발견되는 노랗게 변한 바니시 코팅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기존의 그림은 그저 해안가와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에 불과 했으나, 바니시 코팅을 제거하면서 사람들이 해안가에 모여 있는 원인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래를 덮는데 사용된 페인트를 분석한 결과 그림이 피츠 윌리엄 박물관에 기증 되기 전인 18세기 또는 19세기에 이러한 수정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 되며, 죽은 동물의 존재가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 고래가 제거 됐을 수도 있으나, 정확한 이유는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그림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는다. 오래된 작품들이 수세기에 걸쳐 전해져 내려오며 전형적인 이미지로 우리에게 인식되지만, 혹시 모른다. 그림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를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

특히 과학이 발전하고, 그림을 보존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그림 뒤에 숨은 또 다른 그림의 이야기들은 꾸준히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핸드메이커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독립 매체로서 주체 적인 취재와 기사를 통해 여러 미디어·포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광고 배너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독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핸드메이커가 다양한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된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후원을 통해 핸드메이커는 보다 독자 중심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미래를 관통하 는 시선으로, 독립적인 보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이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에는 항상 핸드메이커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가들 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 다. 앞으로 핸드메이커가 만들어갈 메이커스페이스에 동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단 한차례라도 여러분의 후원은 큰 도움이 됩니다. 후원하기 링크를 통해 지금 바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응원해 주세요.

후원하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경기도 시흥시 은계로338번길 36 3층 301호(대야동)
  • 대표전화 : 070-7720-2181
  • 팩스 : 031-312-10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리
  • 법인명 : (주)핸드메이커
  • 제호 : 핸드메이커(handmaker)
  • 등록번호 : 경기 아 51615
  • 등록일 : 2017-08-23
  • 발행일 : 2017-08-15
  • 발행·편집인 : 권희정
  • Copyright © 2024 핸드메이커(handmaker).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handmk.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