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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탐구] 밀란 쿤데라 별세, 정치도 반체제도 아닌 그저 순수한 작가로 기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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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탐구] 밀란 쿤데라 별세, 정치도 반체제도 아닌 그저 순수한 작가로 기억되기를...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7.25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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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밀란 쿤데라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BBC는 12일(현지시간) 유럽 문학의 거장 중 한 명인 밀란 쿤데라가 94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84년 발표한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그의 고향인 체코 브루노에 있는 밀란 쿤데라 도서관의 대변인 안나 므라조바는 그가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그는 체코 문학계의 거목이었지만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인해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다. 시적이며 풍자적으로도 유명한 그의 소설은 정치와 일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로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체코의 페트로 피알라 총리는 "그의 작품은 모든 대륙의 전 세대 독자들에게 다가갔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말했다.

체코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체코슬로바키아 브루노에서 태어났으나, 체코가 소련군에 점령당한 후 시민권을 박탈당해,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1989년 벨벳 혁명(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정권 붕괴를 불러온 시민혁명으로 피를 흘리지 않고 시민 혁명을 이룩한 것을 비유할 때 쓰는 용어다)이 일어나기 전 체코슬로바키아에 집권한 공산당은 그의 책을 금지하기도. 

그는 유명세에 비해 언론과의 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았다. 1985년 예루살렘 국제 도서전에서 수여하며,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를 주제로 한 작품을 쓴 작가에게 주는 문학상인 예루살렘상, 1987년 오스트리아 유럽문학상, 2000년 국제헤르더상을 수상했고 2021년 슬로베니아 대통령에게 황금공로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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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flickr

쿤데라는 1929년 체코 브루노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밀라다 쿤데로바는 교육자였고, 아버지 루드빅 쿤데라는 체코에서 유명한 음악학자이자 피아니스트로 1948년부터 1961년까지 야나 첵 음악아카데미의 수장을 맡았다. 쿤데라는 아버지에게서 피아노 연주와 작곡을 배웠으나, 부친이 유대인 작곡가였던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스타일을 고집하면서 쿤데라의 음악에 대한 접근은 자연스럽게 약화된다.

18세가 되던 해 쿤데라는 1947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가입한다. 사실 쿤데라는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는 젊은 체코 세대로 그의 이데올로기는 제2차 세계대전과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점령에 큰 영향을 받았다. 1984년, 그는 '공산주의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피카소, 초현실주의만큼 나를 사로잡았다'라고 회상했다고. 음악에 대한 열정은 약화되었어도 계속 음악과 작곡 강의는 참여했고, 프라하의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영화를 공부하기도 했다.

1950년 쿤데라는 공산당에서 추방당한다. 이 추방당한 경험을 『농담』 등 소설 주제로 다루기도 했다. 그의 소설에서 '공산당'은 조롱의 대상이였으며, 그의 첫 번째 저서인 『농담』은 전체주의를 풍자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체코 정부로부터 책의 출판을 보류하고 내용을 수정하라고 요구받았다. 쿤데라가 이를 거절하면서 결국 『농담』은 1967년에야 출판되었고, 사람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영화 '프라하의 봄' /flickr

1967년 제4차 체코 작가연합총회에 참석한 쿤데라는 거대한 유럽의 여러 나라 사이에서 문화적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체코의 노력을 강조한 연설을 하며 '프라하의 봄'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프라하의 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에트연방이 간섭하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의 시기를 뜻한다. 이후 소비에트연방과 바르샤바 조약 회원국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면서 이 개혁은 중단된다.

이 지극히 짧은 시기 동안 쿤데라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개혁을 위해 헌신한다. 그는 정치인이자 작가인 동료 바츨라프 하벨과 함께 인쇄물을 배포하며 "모두가 침착해야 한다. 아직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고 해서 감옥에 갇힌 사람은 없다. 프라하의 가을은 궁극적으로 프라하의 봄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다"고 격려했다. 이로 인해 쿤데라는 곧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그의 책은 서점과 도서관에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으며, 교수직에서도 해고 당한다.

책이 금지된 1968년, 쿤데라는 파리로 여행을 떠나 프랑스 출판사 '갈리마드'의 대표 클로드 갈리마드와 친구가 된다. 프라하로 돌아온 후 갈리마드는 쿤데라에게 프랑스 이민을 권유했고, 심지어『삶은 다른 곳에』원고를 몰래 빼내오기도 했다. 이런 적극적인 움직임에 쿤데라가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하게되고, 1979년 체코슬로바키아 시민권은 취소된다.

시민권을 박탈당한 쿤데라는 고국인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인들과는 연락을 유지했지만 돌아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2019년 체코 시민권을 받았지만 쿤데라는 자신을 프랑스 작가로 생각했고, 그의 작품 또한 프랑스 문학으로 연구하고 서점에서조차 그렇게 분류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밀란 쿤데라의 원고 샘플 /flickr

그의 초기 시 작품들은 친공산주의를 표방했지만, 이후의 소설들은 이데올로기 분류를 거부한다. 쿤데라는 항상, 자신은 정치적 동기를 가진 작가가 아닌 그저 소설가일 뿐이라 주장했다. 그의 정치적 논평은 철학적인 주제와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출판 이후 그의 소설에서 거의 사라진다. 쿤데라는 소설가 로베르트 무질과 니체의 철학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1953년 시집 『Man : A Wide Garden』, 1957년 서정시 모음집 등은 논란이 없는 선전 방식으로 씌어진 것이라는 판단에 공산주의라는 체제 하에서는 어느 정도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1962년 그는 연극 대본을 쓰기도 했고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그의 첫 번째 프랑스어 작품은 1995년에 출판, 8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1975년 프랑스로 이주했을 때 쿤데라는 공산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체코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웃음과 망각의 책』을 출간했다. 소설, 단편소설, 작가의 사색이 다양하게 혼합된 이 책은 작가의 망명 시절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전체주의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신랄한 유머로 풍자하며 전후 체코슬로바키아를 배경으로 한 『웃음과 망각의 책』은 전체주의가 개인과 집단, 또 국가와 개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 
 

밀란 쿤데라 /flickr

1984년 쿤데라는 그의 대표작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출간되고, 미국 영화감독 필립 카우프만이 이 소설을 영화로 제작하기도 있다. 영화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쿤데라는 이 사실을 썩 달갑게 여기진 않았다. 이후 쿤데라는 자신의 소설을 각색하는 것을 금지한다.

자연히 영화의 성공과 함께 망명한 작가라는 유명세가 파도처럼 그를 덮쳤고, 그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지지만, 그는 자신에게 덧씌어진 유명세를 싫어했고, 스포트라이트를 피했다. 인터뷰도 많이 하지 않았고 미화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미국의 문학잡지 'Paris Review'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평생의 꿈이 진지함과 가벼움을 결합하는 것이라 말했다고. 

이후 1990년 쿤데라는 불멸을 향한 인간의 헛된 욕망과 그로 인해 더욱 깊어지는 고독을 그린 『불멸』을 출간한다. 체코어로 쓴 그의 마지막 소설인 『불멸』은 철학적이면서도, 덜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책은 대부분 유머 감각과 함께 약간의 가벼움이 가미되었다.  
 

전시에서 보이는 밀란 쿤데라 /flickr

캐나다 퀘벡 출신의 작가이자 학자인 프랑수아 리카드는 쿤데라를 두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한 번에, 또는 한 권의 소설로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고려해 소설을 구상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쿤데라가 내는 새 책들마다 개인의 철학이 단계적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그의 소설의 주제는 망명, 정체성, 역사, 삶의 즐거움 등 다양하다.

쿤데라의 소설에서는 두 명 이상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 인물을 없앤 뒤 새로운 인물을 시작으로 플롯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는 묘사하는 캐릭터의 외형보다, 캐릭터를 형성하는 단어들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작가로서의 본질에 집중하고자 했지만, 그에게 있어 본질은 인물의 외모나 내면 세계가 아니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그의 모든 책은 개인적인 경험이 들어가 있으며, 정치와 일상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관찰이 돋보인다.

쿤데라는 뉴욕 언론매체 '빌리지 보이스'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의 은밀한 삶은 가치 있고, 독창적이다"라고 말했다. 쿤데라의 초기 소설은 전체주의의 이중적인 면을 다루었다. 비극적인 측면과 희극적인 측면 모두를 탐구했지만 자신의 작품을 단순히 정치적 논평으로만 생각하진 않았다. 멕시코의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 외교관인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쿤데라의 소설을 두고 "그가 흥미롭게 생각한 건, 전체주의 속 개인적인 삶과 공적인 삶이 하나를 이루는 조화로운 사회라는 매혹적인 꿈이었다"라고 밝혔다.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현재 소설 분야 12위까지 올라 있다. 정치도 뭣도 아닌 그저 소설가로 불리길 원했던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책을 읽으려 밀란 쿤데라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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