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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환상으로 빠져드는 착시, 옵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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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환상으로 빠져드는 착시, 옵아트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7.14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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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콤테의 벽화 / 김서진 기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현재 글래드스톤 갤러리 코리아는 스위스 출신 작가, 클라우디아 콤테의 신작을 선보이는 전시 《Marine Wildfire & Underwater Forests》를 열고 있다. 클라우디아 콤테는 1983년 스위스 모르쥬 출생으로 현재 바젤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이다. 뉴욕퍼블릭아트펀드, 취리히하우스 컨스트럭티브 등 다수의 기관에서 개인전 및 단체전을 치른 바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운 벽화 작업 <Underwater Wildfire>을 통해 벽화를 넘어 전시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탐구를 이어 간다. 전시장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이어지는 설치 작업은 몰입적인 환경을 만들어 내며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작가의 예술적 접근을 보여준다.
 

벽이 우글거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김서진 기자

대담하고 두꺼운 곡선은 밀도와 그라데이션을 아래위로 변화시키며 전시장의 벽면을 미끄러지듯 흐른다. 작가는 공기와 하늘, 또는 공기와 물 사이의 진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자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우리 존재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빛과 공기의 파동을 가시적이고 구성적인 형태로 제시한다. 이 역동적인 모티브의 리드미컬하고 반복적인 요소는 전시 공간을 활기차게 만들며 작가가 제시하는 생태계에 감각적인 에너지를 부여한다. 

콤테의 벽화 작업은 마치 옵아트를 연상시킨다. '옵아트'라는 용어는 1964년에 공식적으로 만들어졌으며 타임지에서는 옵아트를 두고 착시를 일으키는 추상 예술의 한 형태로 정의했다. 옵아트는 기하학적 형태와 미묘한 색채 관계, 원근법 등을 이용하여 사람의 눈에 착시를 일으켜 환상을 보이게 하는 과학적 예술 종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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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나 정서와는 무관하게 원근법상의 착시나 색채의 장력(張力)을 통하여 순수한 시각상의 효과를 추구한다. '옵티컬 아트'의 줄임말인 옵아트는 시각적인 미술의 약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예술과는 달리 지나치게 지적이고 조직적이며 차가운 느낌을 주고, 사상이나 정서를 벗어나 착시와 색채의 변화 등의 과학적 요소를 기본으로 하므로 자연과학에 더 가까운 예술이라 불린다. 
 

보기만 해도 착시가 일어나는, 웹 작업으로 만든 옵아트 /flickr

옵아트는 추상성이 짙으며, 보는 관람객들에겐 깜박임, 진동, 뒤틀림 등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착시를 보이게 한다. 콤테의 벽화 작품을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림 표면이 마치 뒤틀리거나, 구불구불하게 움직이는 듯한 착시를 준다.

미술사 초기부터 착시 기법은 자주 쓰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착시는 인간의 시각과 정신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데 쓰였고 특히 시각 착시의 매커니즘에 관심이 많았던 19세기에는 숨겨진 이미지의 착시 형태가 인기가 많았다고. 오락의 한 형태로 착시는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곧 예술 세계로도 진출한다. 옵아트의 선구자로는 신인상주의, 입체파, 미래파 등 다양한 학파들이 존재한다.
 

앙리 마티스 <디저트:붉은색의 하모니> /flickr

특히 야수파의 대표 화가 앙리 마티스의 <디저트:붉은색의 하모니> 작품에서도 벽지와 테이블의 푸른 나뭇가지 문양은 옵아트의 특징인, 마치 그림 속에서 움직이며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옵아트에서의 주요한 특징인 줄무늬는 주변 배경에 녹아들기도 하며, 또는 주변 배경에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빅토르 바사렐리의 작품 <얼룩말>이 그 예시다. 이탈리아 건축가 프랑크 그리냐니의 옵아트가 중심이 된 그래픽 디자인 '울마크 로고'도 그의 작품 중 유명하다.

옵아트는 시각 경험과 관련된 지각적 경험이라 불린다. 작가는 원근법을 이용해 보는 이로 하여금 착각을 일으킨다. 또 몇 가지 색을 혼합해 빛과 그림자를 만드는 등의 시각적인 트릭을 제공한다.

옵아트는 눈의 망막과 뇌 사이의 기능적 관계를 영리하게 활용한다. 특정적이고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패턴은 이 두 기관에 혼란을 일으켜 두 가지 효과를 준다. 첫 번째 효과는 브리짓 라일리의 초기 작품처럼 특정 패턴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보면 신체적 어지럼증을 느끼는 것이며 다른 효과는 특정 색상들의 조합을 한참동안 보고 난 후 눈에 나타나는 잔상을 들 수 있다. 
 

옵아트는 그림이 마치 움직이는 듯하며, 어지러운 느낌을 준다 /flickr

현실적으로 모든 옵아트 작품은 평면적이고 정적이며, 2차원적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은 자신이 보는 작품이 마치 움직이고, 진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즉 옵아트는 단순한 패턴과 색상의 반복을 통해 혼동을 주고 기타 시각 효과를 주는 추상미술의 형태다.

현실을 반영하는 기타 예술 장르와 달리 옵아트는 현실을 재현하지 않는다. 특정한 주제도 없으며 지각 효과 그 자체가 중요하다. 옵아트 작품들은 관객이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품에 가깝다는 평도 있다. 비평가들은 트릭을 이용한 기교라며 무시하는 경향도 있었지만 옵아트는 대중에게 인기를 얻으며 패션과 광고 등 대중 문화로도 빠르게 확산되었다. 

옵아트에 대한 현대의 관심은 1965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기획전 《The Responsive Eye 반응하는 눈》에서 촉발했다. 이 전시에서는 빅토르 바사렐리와 브리짓 라일리의 작품을 포함해 백여 명의 아티스트가 참석해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큰 인기를 끌었던 이 전시회는 움직이는 듯한 환영과 색채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했고 큰 호평을 받았다. 1960년대 옵아트는 유행을 탔지만 이후 주기적으로 작은 부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 형태로서는 급격히 쇠퇴했다. 
 

빅토르 바사렐리 <얼룩말>을 감상하는 관람객 /flickr

빅토르 바사렐리는 옵아트의 가장 중요한 대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한창 컴퓨터, 항공우주, TV의 발전이 이루어지던 즈음 과학과 색채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초현실주의와 추상학 이론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1906년 헝가리 페츠에서 태어난 그는 바우하우스 운동(20세기 초 독일에서 일어난 혁명적인 디자인 운동)에 익숙해지며 성장해 나갔다.

부다페스트에서 모홀리나기로부터 바우하우스 전통의 교육을 받은 그는 1930년 헝가리를 떠나 파리에 정착했다. 파리에서는 처음 생계를 위해 상업 예술가로 활동하였으나 곧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쳐 갔다. 그의 삶과 대부분의 작품은 옵아트 스타일에 속한다. 그는 기하학적 도형과 화려한 그래픽을 활용해 공간의 깊이가 느껴지는 매력적인 착시를 만든다.
 

빅토르 바사렐리 <Antonis> /flickr

그는 면밀하게 계산된 조형의 기하학적 추상을 추구하고, 부분의 미묘한 변화와 착란을 이용해 화면에 생생한 움직임을 주어 시각적 모호성과 분산을 느끼게 했다는 평을 받는다. 1930년대 그는 구성주의의 영향을 받고 1940년대에 기하학적 형태와 생생한 색으로 특징짓는 그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한다. 그의 스타일은 1960년대까지 더 성숙해졌고, 더 밝고 역동적인 색을 써서 시각적인 환각을 통한 움직임의 형태를 구현했다. 
 

프랑수아 모를레의 네온을 이용한 추상미술 /flickr

프랑수아 모를레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비롯해 옵아트, 미니멀리즘 등 그의 넓은 작업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14살 당시 파리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며 정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학업을 마친 후 코브라 운동(1948년부터 1951년까지 일어난 유럽의 아방가르드 운동)을 따르며 그림을 꾸준히 그렸다.

이 기간 동안 구상과 표현에 대한 공부를 마친 모를레는 1950년 스위스의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막스 빌의 영향을 받아 추상화로 방향을 튼다. 이후 그는 선, 정사각형, 삼각형 및 기타 기하학적 모양과 교차하는 선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작업했다. 1960년대부터 모렐레는 네온, 테이프, 직물 등 여러 재료로 작업하며 설치미술 및 환경미술 작가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네온 /flickr

그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스위스,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 개인 소장품 제작 의뢰를 받기도 했다. 미국의 미니멀아트 미술가 댄 플래빈처럼 네온을 재료로 사용해 예술로서의 기하학을 탐구했으며 네온은 그의 미적 언어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그의 작품 중 상당수는 전원을 켜고 끄는 전기 시스템으로 인해 관찰자와의 상호 작용이 일어난다.  
 

브리짓 라일리의 거대한 작품 /flickr

영국의 화가 브리짓 라일리는 런던 출생이다. 처음에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작은 세모 모양의 배열과 줄무늬 곡선으로 마치 파도가 치는 듯한 시각 효과를 추구했으며 후반기에는 색채 또한 대담하게 쓰기 시작했다. 골드스미스미술학교와 왕립미술학교를 나와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개시했고, 1965년 MoMA에서 열린 《응답하는 눈》 전시에 출품해 옵아트의 대표적 작가로서 국제적인 평가를 받았다. 브리짓 라일리는 빅토르 바사렐리가 창조한 '옵아트' 장르에서 활발히 활동한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flickr

그렇기에 그의 미술이 바사렐리의 기본 개념과 비슷한 건 맞지만 실제 기법과는 차이를 두었다. 라일리는 크기나 형태를 변화시키고, 또는 연속적인 단위를 배치해 패턴을 만드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관람객들은 시각적으로 혼란스럽고 어지러움을 느낀다.
 

그의 작품은 계속 보면 어지럽다 /flickr

그의 작품은 보고 있노라면 시선을 곧 다른 쪽으로 돌려야 할 정도의 현기증을 유발하기도 했다고. 1960년대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은 또 패션디자이너, 산업디자이너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1960년대 그의 작품은 흑백의 대비가 눈에 띄었고 1962년 서른한 살에 런던의 원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포함해 수많은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다.

1980년대 이집트 여행 중 화려한 상형문자 장식에 영감을 받은 라일리는 색과 대비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일부 작품에서는 색의 선이 반짝이는 효과를 주거나, 또 다른 작품에서는 캔버스가 테셀레이션 패턴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1980년대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해외에서 발견한 색채 팔레트를 라일리가 자유롭게 재구성한 것들이다.

그는 아크릴 물감보다는 유채 물감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이후 1983년 라일리는 베네치아로 돌아와 유럽 색채주의의 기초가 되는 회화를 다시 연구한다. 라일리는 이전 작품의 특징이었던 수직 줄무늬 대신 대각선을 도입하며 변화를 주었다. 오늘날 그는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업을 하고 있고 그의 작품은 뉴욕 MoMA, 영국 Tate Modern,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미술관 컬렉션에 소장 중이다.
 

클라우디아 콤테의 옵아트를 연상시키는 벽화 /김서진 기자

옵아티스트들은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와 선, 패턴을 흑백의 색 또는 대담하게 대비되는 색상을 사용해 새로운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옵아트의 근간에는 움직임, 입체감, 잔상 등 다양한 효과를 이용해 착시를 만드는 예술가의 독특한 방식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스타일의 인기는 대부분 사라졌어도, 시각적 효과를 탐구하는 체계적인 접근 방식과 시청자의 지각 반응에 대한 강조는 인터랙티브아트 및 파리에 기반을 둔 시각예술탐구그룹(GRAV:Groupe de Recherche d'Art Visuel)에도 영감을 주었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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