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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값싼 재료들로 쌓아올려진 공산주의 건축, 브루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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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값싼 재료들로 쌓아올려진 공산주의 건축, 브루탈리즘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8.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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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탈 디자인의 건물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현대에 들어 단순하고 깔끔한 미감으로 인해 인기를 얻고 있다. 장식적인 디자인보다 미니멀을 강조한 건축이라고만 한다면 대개 깔끔하고 단정한 건물을 상상할 수 있지만, 노출 콘크리트 공법을 적용한 스타일 중에서도 특이할 수 있는 '야수적인, 잔혹한'이란 뜻이 담겨 있는 건축 스타일이 존재한다.

'브루탈리즘'은 20세기 후반 건축의 한 경향으로, 가공하지 않은 재료 그대로와 비형식주의가 특징인 건축 스타일을 뜻한다. 브루탈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노출된 콘크리트나 벽돌이 특징이며 단색의 팔레트가 눈에 띈다. 콘크리트나 벽돌 외에도 간혹 강철, 목재나 유리 등 다른 재료가 쓰이기도 한다.
 

브루탈리즘 건축물 /flickr

영국에서는 사회주의 원칙에 영향을 받은 실용적이고 저렴한 주택 설계 스타일의 브루탈리즘이 등장했고 전세계와 다른 지역으로도 퍼져 나갔다. 브루탈 디자인은 대학, 도서관, 법원과 같은 건물에 일반적으로 사용됐다. 브루탈리즘은 1970년대 후반 인기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일부 사람들은 브루탈리즘을 도시 쇠퇴와 연관짓기도 했다.

브루탈리즘이란 용어는 스웨덴 건축가 한스 아스플룬트(Hans Asplund)가 명명한 단어로, 스웨덴 웁살라에 설계된 벽돌 주택을 묘사하기 위해 썼다고 한다. 이 용어는 영국 건축가 스미슨 부부에게 '뉴 브루탈리즘' 운동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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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브루탈리즘은 20세기 후반 건축의 한 경향으로 20세기 초 모더니즘 건축의 뒤를 이어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영국에서 융성했다. '뉴 브루탈리즘' 운동은 영국 건축가 앨리슨 스미슨과 피터 스미슨 부부가 최초로 쓰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1955년 건축 평론가 레이너 밴험의 에세이에도 등장하며 대중화되었다. 헝가리 태생의 모더니스트 건축가 에르노 골드핑거가 특히 이 스타일에 뛰어났다고 한다.
 

스미던 학교 /flickr

앨리슨과 피터 스미슨 부부가 설계를 맡았은 영국 노퍽의 스미던 학교와 1955년 왓포드에 완공된 서든 하우스는 이들의 영국에서의 뉴 부르탈리즘의 초기 사례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다. 특히 스미던 학교는 각종 설비 시설들이 외부로 노출되어 있어 뉴 브루탈리즘을 실현했다는 첫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스미던 학교는 건물을 지은 건축가가 뉴 부르탈리즘이라는 칭호를 붙인 최초의 건물이기도 하다. 당시 영국에서는 "영국에서 가장 진정한 의미의 현대적 건물"이라 묘사되기도. 이후 이 단어는 영국의 건축 평론가 레이너 밴험의 에세이에서 사람들에게 점점 더 널리 인식된다. 에세이에서 밴험은 스미던 학교를 두고 "건축의 뉴 브루탈리즘을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이라 설명했다.

밴험은 또한 뉴 브루탈리즘을, 프랑스의 화가 뒤뷔페가 1945년에 만들어낸 '세련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를 지닌 미술'이란 뜻의 아르 브뤼와 연관지어 생각하기도 했다. 가장 잘 알려진 아르 브뤼 형식의 건축물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들 수 있다.
 

유니테 다비타시옹 /flickr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모듈형 아파트로 이루어진 12층짜리 주택 단지다. 많은 비평가들에겐 브루탈리즘의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 건물을 통해 '수직적인 도시 정원'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3층은 상점, 레스토랑 등이 있고 옥상에는 체육관과 수영장 등이 있다.

337개의 복층으로 구성되어 약 1,600여명이 거주할 수 있는 이 건물은 각 아파트의 양쪽 끝에 테라스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축 평론가 조나단 글랜시는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이 거대 구조물은 이전에도 본 적이 없으며, 견고한 다리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라고 불렀다. 흥미로운 건 르 코르뷔지에는 유니테 다비타시옹이 그에게 첫 번째 공공 프로젝트 의뢰였다고. 
 

트렐릭 타워 /flickr

헝가리의 저명한 망명 건축가, 에르노 골드핑거의 '트렐릭 타워'는 노출 콘크리트로 제작된 총 31층짜리 직사각형 구조를 갖고 있다. 수평선과 수직선의 기하학적 모양과 건축물에 연결되어 있는 수직으로 뻗은 타워가 눈에 띈다. 한 건축가는 '두 건물 요소 사이의 빈 공간은 골드핑거의 진정한 걸작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그러나 주위 환경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평을 받는 이 고층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골드핑거의 가장 인기 없는 작품으로 전락했다는 말도 있다.

주요 거주 공간은 일반 아파트와 두 층을 한 가구가 사용하는 중층형 아파트로 구성되었고, 좁은 서비스 공간에는 엘리베이터, 계단, 쓰레기 수거관, 보일러실이 만들어졌다. 이후 트렐릭 타워는 '공포의 탑'이라 불리며 2,000여명의 아파트 주민들이 서로에게 폭력적으로 변하는 디스토피아 소설「하이-라이즈 (High-Rise」에 영감을 주었다고. 
 

시드니의 시리우스 빌딩 /flickr

브루탈 디자인은 단순하고 정직한 건물을 만드는 것에 목적을 뒀다. 건축가 피터 스미슨은 브루탈리즘의 핵심이 재료에 대한 경외심이라 생각했다. 그는 재료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중요시했다. 예를 들어 재료가 나무나 모래라면 나무 그 자체의 특성이나 모래 그 자체의 특성에 집중했다.

브루탈리즘을 표방하는 건축물들의 공통점은 반복되는 모듈식 구조로, 수많은 반복적인 요소들이 모여 하나로 그룹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은 콘크리트, 벽돌, 유리, 목재, 거칠게 깎은 돌과 같은 재료를 쓴다. 건물의 내부 요소는 외부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스미던 학교의 설계도에는 일반적으로 안으로 숨길 수 있는 시설인 물탱크를 눈에 잘 띄는 탑에 배치했다.
 

체코의 판자형 아파트 /flickr

인상적인 건 브루탈리즘이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점이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공산 국가였던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소련, 유고슬라비아 등에 브루탈 디자인의 건축물이 많이 세워졌다. 체코 프라하는 구 공산주의 시절, 낡은 '판자형 아파트(panelaky)'를 대량 공급했는데 이 건물은 대표적인 브루탈 디자인에 속했다.

소련은 전쟁 피해 복구와 함께 모든 국민에게 주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동일한 평면도와 함께 저렴한 자재를 사용한 조립식 구조물인 '흐루쇼프카'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공공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효율적인 이 방법은 사회적 평등을 반영하는 공산주의 정신에 부합했다. 반면 서구인들은 값싼 원자재를 사용하면서도 장식적인 기능을 추가해 건물에 개성을 부여하는, 공산 국가와는 다른 의미의 브루탈리즘을 추구했다. 
 

브루탈 디자인의 건물 /flickr

노출 콘크리트 방식을 적용한 브루탈리즘은 대규모의 저렴한 주거용 건축물들이 절실히 필요했던 시기에 널리 쓰일 수밖에 없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도시 재건이 시급했던 전후 세계는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폭격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고 도시 빈민가는 철거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서민들의 주거 환경 개선에 대한 열망과 함께 유럽 전역에 대규모로 주택을 리뉴얼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이 흐름 속 브루탈리즘은 저렴한 건축 자재로 인해 인기를 얻었다. 

현실적으로, 브루탈리즘 건축에 대한 비판도 존재했다. 비평가들은 브루탈리즘이 겉으로 보이는 '냉소적인' 외관으로 인해 전체주의적 분위기를 투영하고, 특정 기후에서는 외관 파손이 쉽기 때문에 건축 스타일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영국의 저명한 문명 비평가인 테어도어 데일림플은 브루탈리즘을 두고 냉혹하고, 비인간적이며, 괴물 같은 건물이라 꼬집었다. 그는 특히 철근 콘크리트를 두고 '정갈하게 노화되는 것이 아닌, 무너지고 얼룩지고 부패된다'라고 비판했다. 
 

에르노 골드핑거가 디자인한 건물 /flickr

브루탈리즘은 장식이나 가공을 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하고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노력과 함께 영국의 젊은 건축가들 사이에서 전위적인 건축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전체주의와 관련되어 사회주의 이상을 지향한다는 비판을 받은 브루탈리즘은 도시 쇠퇴의 상징이 되기도 했고, 냉소적이며 위압적인 외관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감옥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우뚝 선 삭막한 건물은 도시 전체의 조화를 망친다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브루탈리즘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세대의 여러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에겐 끝없는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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