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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도시 상하이의 은기는 어떤 역사적, 문화적 토양에서 형성되었나 《상하이역사박물관 소장품 특별전-찬란한 은빛 보물》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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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도시 상하이의 은기는 어떤 역사적, 문화적 토양에서 형성되었나 《상하이역사박물관 소장품 특별전-찬란한 은빛 보물》展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6.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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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역사박물관 소장품 특별전-찬란한 은빛 보물>展 /김서진 기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상하이는 중국 직할시 중 하나로 태평양의 서쪽 연안 아시아 대륙의 동쪽 가장자리, 장강 삼각주의 동쪽 끝 남북 해안선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원나라에서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상하이가 위치했던 장강 하류 지역은 중국에서 매우 번성한 지역이었다. 근대 상하이는 거대 도시, 최대 항구로서 대외 교류의 기지, 여러 분야의 경제적 중심, 중국의 문화적 중심 중 하나가 되었다. 

문물은 역사적 산물이자 증거다. 또 은기는 상하이의 역사 발전을 증명해 주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다. 이번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하이역사박물관 소장품 특별전-찬란한 은빛 보물》전시는 상하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우수한 은기와 그와 관련이 있는 문헌을 발굴 및 정리해 구성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은기라는 특별한 시각을 통해 유물이 품고 있는 상하이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고, 우아하고 시적인 정취가 넘쳤던 고대 상하이 사람들의 사회 생활을 재현하고, 근대 상하이의 발전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나아가 도시 상하이의 정신적 품격이 어떤 역사적·문화적 토양에서 형성된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당·송 이후 중국 강남 일대는 점차 번성해 갔다. 당대 이후 오늘날 상하이 관할 구역 대부분은 강남의 여러 부현에 속해 있었다. 원나라 시기 상하이에는 유명한 은세공 장인이 등장했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 강남 일대는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손꼽혔다. 경제가 번영하자 사람들은 높은 삶의 질을 추구했다. 막대한 세금을 떠맡으면서도 대량의 수공예품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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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장인과 다양한 기술은 쑤저우, 항저우와 견줄 만큼 뛰어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하이역사박물관이 소장한 고대 은기들은 상하이 지역에서 발굴되거나 전승된 명·청 시대 유물이 주를 이룬다. 이 은기들은 세공 솜씨가 정교하고 그 형태가 우아하며 속에 담긴 내용도 풍부하다. 은기들은 고대 은세공 장인의 장인 정신과 독창성이 발휘된 작품이며 동시에 고대 상하이 사람의 심미적 취향을 보여 준다. 
 

동제 은상감 띠고리 /김서진 기자

고대 상하이 은기는 정교한 장신구가 대부분이다. 은 장신구는 옷 장식과 머리 장식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강남의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은기와 마찬가지로 고대 상하이 은 장신구는 공예 기술이 정교하고 장식이 화려하며 품격이 우아하고 상서로운 문양으로 꾸며져 있다. 이 은기들은 고대 상하이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물질적 증거다. 뛰어난 강남 지역 장인들의 출중한 기예, 근면함과 지혜가 녹아 있는 결정체이기도 하다. 띠고리로 대표되는 옷 장식과 비녀로 대표되는 머리 장식은 고대 상하이의 사회 경제 발전 수준,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띠고리는 중국 고대 남성들의 고급 장식품 중 하나로 옷을 고정하거나 묶는 데 사용했다. 서로 다른 모양과 재질로 된 띠고리는 신분과 지위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착용자의 고유한 미적 취향도 반영한다. 전시되어 있는 동제 은상감 띠고리는 좋은 재료를 사용했고 힘있는 기운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겸비하고 있다. 
 

은제 금도금 봉관하피 장식 /김서진 기자

명대 진소온 부부의 무덤에서 출토된 은기다. 진씨의 부인이었던 왕씨는 '숙인'(친절하고 상냥한 부인)이라는 품계를 받았다. 
 

은제 금 도금 속발관 /김서진 기자

1981년 상하이 후동신구 동창로에 위치한 육심 후손의 무덤에서 출토된 은기다. 이 은기는 은 전반적으로 공예 기술이 정교하고 문양이 상서로운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중에서 금 도금 발관은 명나라 시기 금·은기의 가장 큰 특징인 화사(중국 공예품에서 두께가 다른 금·은 조각이나 굵기가 다른 금실 은실을 엮는 것)공법을 적용해 비단처럼 얇고 투명하고 정교해 같은 시기 공예품 중 걸작으로 꼽힌다. 
 

근대 상하이 은기들 /김서진 기자

근대 상하이는 경제가 발달하고 중국 문화와 서양 문화가 서로 융합해 해파문화라는 독특한 지역 문화를 형성했다. 근대 상하이의 은기는 해파 문화를 담고 있는 일종의 매개체이다. 외국의 금속 제조 기술과 중국의 전통 금은제작 기술이 융합된 해파 은기는 디자인이 세련되고 조형이 독특하며 제작이 정교해 명성을 떨쳤다.

근대 상하이 은기는 식기와 화장함 등 그 종류가 늘어나고 예물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은기는 일찍이 근대 상하이 사회의 각 영역에 침투했다. 제2부에서는 상하이 사람들이 사교 선물, 스포츠 행사, 일상 생활 등에서 사용했던 다양한 은기를 전시한다.  
 

상하이 대영담배회사에 근무하는 중국인들이 외국인 임원에게 증정한 선물 /김서진 기자

근대 상하이는 각 지역에서 온 중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였다. 경제는 발달했고 경쟁은 치열했다. 사회적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친척과 친구들은 특별한 기념일에 자주 선물을 주고받았다. 은기는 상하이 중국인과 외국인간의 사교 행사에서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던 선물 품목이었다. 이러한 은제 선물들은 다양한 모양과 상서로운 문양으로 장식되어 아름다운 우정을 간직했다. 

중국 청동기 조형을 따른 트로피에는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중국 전통 길상 문양인 '희상미초'(행복으로 빛난다)가 조각되어 있고 선물 중간에는 영문으로 증정자와 수여자의 정보가 새겨져 있다. 
 

근대 은제 선물 /김서진 기자

중국인이 외국 친구에게 준 결혼과 생일 축하 선물이다. 서양식 조형에 중국식 명문과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중국 전통 새김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짱샨리우가 만든 은제 복숭아 /김서진 기자

청나라 시기 명장인 짱샨리우가 만든 은 복숭아는 복숭아 형태 몸체에 사슴뿔 모양의 꼭지, 장수를 뜻하는 글자 壽, 날박쥐 문양 등 '복녹수'를 의미하는 장식을 더해 생일축하 선물로 적당했다. 
 

중국인들의 일상에 자주 보는 은기 /김서진 기자

상하이의 일상 생활에서도 은기는 널리 사용되었다. 은기는 주방, 서재, 욕실, 거실, 침실 등 사적인 공간과 레스토랑, 호텔 등 공공 공간에 출현했다. 은세공 장인들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은기를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냈다. 실용성과 장식성을 겸비하고 있는 다양한 은제 생활용품은 상하이 시민들의 행복한 삶을 꾸미는 장식이 되었다. 
 

은제 단장 세트 /김서진 기자

외출 전 외모를 다듬기 위해 사용한 단장 세트로, 귀한 재료를 사용해 정교하고 상서로운 문양을 새겼다. 당시 상하이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미적 취향을 느낄 수 있다. 
 

상하이 여자골프협회대회 트로피 /김서진 기자

상하이는 다양한 근대 스포츠의 발상지다. 상하이 시민들은 오락과 여가를 위해 여러 근대 스포츠를 즐겼다. 수많은 스포츠 행사의 주최자들은 규모가 있는 장신구 상점에서 은제 기념품을 주문·제작하고 참가자들을 격려하거나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상품으로 수여했다. 근대 상하이에서 개최되었던 스포츠 행사에서 수여되었던 각종 은제 기념품들이 오늘날까지 다수 남아 있다. 
 

상하이 자전거대회 은제 용 문양 트로피 /김서진 기자

서양식 머그잔 형태의 우승컵에 중국 전통의 길상 문양인 용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당구 장애물 대회 트로피 /김서진 기자

이 트로피의 조형은 서양식으로 측면은 식물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광동 상인이 운영한 홍창 은루에서 제작했다. 
 

중국 전통 은루들의 위치 /김서진 기자

근대 상하이 사람들의 금·은기에 대한 수요는 점점 왕성해졌다. 시장의 높은 수요로 주변의 중국식 은루들이 앞다투어 상하이로 모여들었을뿐 아니라 외국의 은기 상점(장신구 상점)도 잇따라 상하이로 모여들었다. 근대 상하이의 주요 상업 거리에는 중국식 은루와 외국 은기점이 즐비해 상하이의 중요한 상업 문화 경관을 형성했다.

국내외 은기 업자, 특히 우수한 장인들이 상하이로 모였다. 이들은 경쟁 속에서 교류, 모방, 개척, 혁신을 통해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선명한 특색을 가진 해파 은기를 무수히 만들었다. 상하이의 도시 위상이 높아지면서 상하이 은기는 근대 중국 은기 무대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바오청위지 은루 송장 통지서 /김서진 기자

바오청위지 은루는 바오청쩐지가 남경로에 개업한 분점으로 1987년 1월 영업을 시작했다. 위치는 대략 지금의 난징로 바오따샹 자리에 위치했으며 저장성 닝보시 상인 비씨 가문의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1932년 화재로 문을 닫았다.
 

은제 병, 뚜껑이 있는 은갑, 은제 분항아리 /김서진 기자

상하이 라오펑샹 유한회사는 중국 금은 세공기술을 잇는 중요한 전승자다. 상하이 라오펑샹의 은루의 은제품은 조각이 정교하고 우아하며 풍부한 특징을 갖고 있다. 장신구 외에 라오펑샹의 은제 식기와 장식물 등의 공예품들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은제 컵 /김서진 기자

근대로 접어들며 외국 은기가 상하이로 들어왔다. 중국 광동인이 상하이에 개설한 서양식 은기점이 점차 증가했다. 광동방 은루의 금은기물은 중국의 전통적인 금속 세공 기법을 전승함과 동시에 세계 선진 문명을 도입하고 차용해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향의 혁신을 시도했다. 20세기 초 상하이 광동방 은루의 은기 공예는 외국 은기 공예와 필적할 수준이었다. 중국과 외국의 은기 상점은 상하이 시장에 이국적인 다양한 은기를 함께 제공했다. 
 

은제 주전자 /김서진 기자

시신은 1920-1940년대 광동인이 상하이에 설립한 서양식 장신구점으로 광동방 은루의 후발주자였다. 은기의 모양이 아름답고 디자인이 섬세하기로 유명했다. 
 

은제 쟁반과 차 세트 /김서진 기자

시화는 상하이에서 가장 유명한 광동방 은루의 하나였다. 이 상점은 1910년 일찍이 남양권업회에 참가해 상을 받았다. 시화의 은기는 트렌디하고 아름다워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은제 화조 무늬 그릇 /김서진 기자

흥창은 1880년대 광동인이 상하이 난징로에 개업한 금은장신구점이다. 이 가게가 제작하고 판매한 서양식 은기는 중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유명했다. 표면에는 '희작등매(까치가 매화에 몰라탄)'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은제 물그릇 /김서진 기자

상하이는 원나라 시기 1292년 송강부의 독립 현이 되었고 명나라 시기 1553년에는 성벽이 구축되면서 도시로서의 본격적인 면모를 갖추었다. 상하이의 역사는 도시 곳곳에 투영되어 남아 있으며 전시 중인 은기는 그 중 하나다.

상하이의 은기는 단순한 수공업 제품이 아니라 이 도시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특성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유물이다. 상하이에서 은기를 제작, 판매하던 상점은 '은루'라 지칭한다. 은루는 은 제품만을 취급하는 상점은 아니고 금이나 보석류도 함께 취급했다. 은루라는 명칭을 그대로 쓰게 된 건 은 제품 위주로 취급했던 시기에 유래한 용어가 용례로 굳어진 것.
 

은제 용무늬 투각 그릇 /김서진 기자

상하이에 은기 위주로 취급하던 은루가 많았던 것은 은 재료 공급과 은기 수요 등 여러 면에서 유리한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은은 화폐로 사용되던 재화였으며 금융업의 중심으로 부상해 온 상하이에는 은이 풍족했다. 이 은을 장식, 기물로 가공하면 가격이 수십배에 달했기 때문에 은루업은 유망한 사업이었다.

때문에 이곳에는 주변 지역의 은루와 은 장인들이 계속 모여들었다. 경제적 성장에 따라 사교, 오락, 스포츠 등 이 도시 주민들의 다양한 활동 영역에서 은기에 대한 소비가 부단히 증가했다. 또한 개항 이후 중국, 서구 문화가 활발히 융합하던 가운데 새로운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은기도 활발히 제작되었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은은 화폐의 기능뿐만 아니라 희고 밝은 색상, 잘 늘어나고 펴지는 특성으로 인해 공예품 제작에 자주 사용되었다"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오는 상하이의 은기에는 도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이를 통해 상하이 사람들의 생활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상하이역사관은 상하이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역사박물관으로 2018년 3월, 상하이경마클럽 건물에 재개관했다. 상하이역사박물관은 약 11만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고대부터 현대 상하이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다. 현대 중국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자 혁명의 발상지인 상하이의 근현대사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쉽고 재미있게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8월 27일까지.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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