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9 01:35 (월)
[기자생각]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은 헛수고하셨습니다'···선 넘은 광고들
상태바
[기자생각]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은 헛수고하셨습니다'···선 넘은 광고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6.20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로고만 봐도 아는 코카콜라 광고 /unsplash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흔히 광고의 정의라 하면 다수 소비 대중을 상대로 상품, 또는 서비스 등의 존재를 알려 판매를 촉진하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라 한다. 기업이나 단체, 개인이 전하고 싶은 의미나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표현할 때 쓰기도 한다. 의미나 메시지를 전할 때엔 글, 그림, 사진, 영상, 소리 등 표현 메시지를 신문이나 포스터 등 전달 매체에 게재한다.

유명한 기업이라면 홍보를 하고 싶은 제품 그 자체만 내보내도 누구나 알 수 있으며 사회 이슈를 담거나, 특정 세대가 쓰는 유행어를 광고에 끼워 넣거나 하는 일도 흔하다. 그러나 기업이 홍보하고 싶은 것을 지나치게 위트 있게 보이고 싶어 한다든지, 일명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오히려 선을 넘거나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게 하고 광고 자체로 아무 의미조차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종종 등장한다.
 

한 아파트 시행사가 내걸었던 광고 /온라인 커뮤니티

6월 초, 한 광고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등장한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주소를 영어로 기재해 놓은 아파트 광고였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아파트 시행사가 내건 이 분양 광고에는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이란 글귀가 눈에 띈다. 분양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들어설 예정인 주상복합 아파트 '더 팰리스 13' 시행사는 6일 공식 사과문을 올리고 "홈페이지 내에 사용된 문구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사과문에는 또한 이런 문구가 눈에 띄는데, "의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중하지 않은 표현으로 많은 분께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라는 문구다. 네티즌들은 처음에 이 광고 문구를 보고 자신이 잘못 본 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로 놀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언제나 평등한 세상'이어야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말이지,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이란 말은 충분히 '내가 잘못 봤나?'란 생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이쯤 되면 해당 광고는 비싼 아파트에 살며 계급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핸드메이커는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적인 기사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화·예술 작품이 ‘기회의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핸드메이커와 동행해 주세요.

후원하기

해당 광고는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청나게 비싼 아파트, '궁전'이란 뜻이 있는 아파트에서부터 광고 문구 밑에는 굳이 '영어'로 된 서초구 반포동이란 주소까지 해당 광고의 모든 것에는 일종의 '계급'의 차이를 두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진다. 광고의 아파트는 누군가에게 특별할 수도 있고, 차별화될 수도 있다. 문제는 특별할 수 있고 차별화될 수 있다는 문구를 써도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굳이 '평등하지 않은 세상'이란 문구에는 이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의미로 들릴 수밖에 없다. 거기에 이 세상을 평등하게 살고 싶지 않은 그 누군가들까지 광고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현재 해당 홈페이지는 닫혀 있다 /더 팰리스 13 공식 홈페이지

사람이라면 당연히 비싼 아파트에 사는 게 꿈일 수도 있고, 고가의 아파트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을 수도 있다. 몇십억, 몇백억짜리 아파트에 살며 다른 사람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고, 우월감을 갖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대개 생각으로만 끝내며,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광고는 대놓고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으로 하여금 입 밖으로 내어, 당당히 카피 문구로 내세웠다. 타인과 나의 삶이 이 정도의 격차가 있다며 당당히 내세우고, 심지어 굳이 주소를 영어로 적어 놓는 이 모습 자체가 네티즌들이 '천민자본주의'라 꼬집는 이유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이라 하며 그네들이 정한 타깃에 읍소하고, 한껏 영어로 표기한다고 해서 그들이 원하는 고급이라는 품격과 인품이 생기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이후 나온 사과문 또한 네티즌들에겐 공감을 가져다 주진 못한 모양이다. 특히 '의도하지 않았음에도'라는 말은 긁어 부스럼인 셈이다. 이미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이란 말을 보면 누구보다 정확히 주체의 의도를 드러냈음에도 말이다. 그저 이 문구를 쓰고, 통과가 되기까지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개탄스러운 것이다. 천박함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 자체가 사회가 절망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티웨이 광고 /온라인 커뮤니티

아파트 시행사가 해당 사과문을 걸었던 6일, 티웨이항공은 충북 청주·대전의 일부 대학교에 ‘이번 학기도 (헛)수고하셨습니다. 티웨이로 떠나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부착했다. 당시 티웨이항공은 지역 대학생을 대상으로 청주공항발 국제선을 홍보하는 여행단을 모집하는 프로모션을 진행, 지난달 31일부터 청주에서 해외로 떠날 대학생에게 무료 항공권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각각 세 장의 포스터에는 각각 ‘청주에서 해외여행 갈 사람 드루와’, ‘올여름 비 예보 75일 해외여행 마렵다’, ‘이번 학기도 (헛)수고하셨습니다 티웨이로 떠나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해당 포스터의 문구는 '헛수고'와 '마렵다'라는 밈을 이용한 것으로 '헛수고'같은 경우는 한 SNS 이용자가 '회의 끝날 때마다 헛수고하셨습니다로 인사하고 싶다"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대학생들을 상대로 '헛수고'라는 말을 쓰고, 심지어 배설물 관련에나 쓰이는 '마렵다'라는 말을 게재해 네티즌들의 비난을 샀다. 이후 티웨이항공은 포스터 문구를 바꾸겠다는 말을 남겼다. 관계자는 “메인 카피는 솔직한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밈을 활용해 ‘유머 콘셉트’로 제작했으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광고물 철거 후 카피를 조정해 다시 제작할 예정”이라 밝혔다.
 

대학생들에게 이번 학기에도 헛수고하셨다는 말은 결국 실패한 밈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아마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을 인용해 공감과 즐거움을 얻고 싶었다는 의도가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셈이다. 6월이면 대학생들은 한창 시험과 과제 준비로 바쁠 시간인데, 애초에 그 대학생들을 상대로 '이번 학기도 헛수고하셨습니다'라고만 적어 놓는다면 대학생들이 이 문구를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말인가. 말 그대로 정말 '이번 학기도 헛수고했다'라고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밈을 쓰려면 적어도 해당 상황에 맞게, 누구도 불쾌하지 않게, 또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써야 한다. 심지어 '헛수고'라는 밈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밈도 아니고, 상황에도 맞지 않는다. 학기 중에 바쁜 대학생들에게 '헛수고했다'라고 말하면 누가 그 말을 밈으로 받아들이겠는가. '헛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과 여행을 떠난다는 말의 상관관계조차 없다. 누구도 이 문구를 유쾌한 밈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오히려 불쾌해할 뿐이다. 

'마렵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이 말은 여행 광고에서 쓸 용어조차 아니다. 해당 어구는 아프리카TV나 인터넷 방송 등 일부 사람들이나 유행어처럼 쓰는 말일뿐더러 일반 사람들에게는 배설물과 관련된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즉 유머랍시고 썼지만, 일반적으로 '마렵다'라는 말을 누구나 볼 수 있는 광고에 맥락도 없이 쓰는 건 그저 저급하고 천박해 보일 뿐이다.

'헛수고'나 '마렵다' 모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고 어설프게 따라 하려다 오히려 거부감만 들게 한 셈이다. 아마 제작사 측은 'YOUNG'하고 'MZ'한 유머를 인용하고 센스 있다는 말을 들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여행을 떠난다는 광고와는 전혀 동떨어진, 실패한 광고로 남았다. 
 

 ‘킥스’ 광고 영상 /GS칼텍스
너는 나의 윤활유 /GS칼텍스

이렇듯 광고에서 무언가를 홍보할 때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고, 유머나 밈이라는 것 하나에 꽂혀 광고에 맞지 않게 인용해 오히려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면 누구도 불쾌하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로 광고 효과를 적절히 보고 있는 사례도 있다. GS칼텍스는 ‘너는 나의 윤활유, Kixx’ 광고 영상이 지난 4월 26일 Kixx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지 한 달 만에 200만 조회수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번 광고는 자동차를 앞세워 윤활유 제품의 성능과 특징을 표현하던 기존 업계의 일반적인 광고 형태에서 벗어나, 제품 및 브랜드의 노출을 최소화하고 영상의 스토리를 강조하는 드라마타이즈 기법을 시도했다. 윤활유라는 제품군을 소비자들에게 친근하게 인식시키면서도 그 안에서 Kixx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데에 집중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광고 영상 속 주인공은 농구 경기, 달리기 시합, 프러포즈 순간 등 삶의 다양한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항상 곁에서 함께 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시련을 이겨내고 승리를 쟁취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열심히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윤활유를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친구 혹은 조력자로 의인화해 Kixx의 가치를 광고에 담았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이번 광고를 통해 고객들에게 초심을 잃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우리 곁에서 도움을 주는 친구 같은 브랜드인 Kixx의 마음을 전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결국 광고 제작자들이 얼마나 신경쓰느냐에 달린 일이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운운하며 겨우 아파트 하나에 계급을 강조하지 않아도, 유쾌하지도 않은 밈을 적절한 상황에서조차 쓰지 못하고 비난을 사지 않아도 얼마든지 좋은 광고를 만들 수 있고 제품을 홍보할 수 있다. 제품을 내보이지 않아도 문구 하나로, 영상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게 되면 그 제품은 자연스럽게 호감으로 따라올 테니 말이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핸드메이커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독립 매체로서 주체 적인 취재와 기사를 통해 여러 미디어·포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광고 배너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독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핸드메이커가 다양한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된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후원을 통해 핸드메이커는 보다 독자 중심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미래를 관통하 는 시선으로, 독립적인 보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이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에는 항상 핸드메이커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가들 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 다. 앞으로 핸드메이커가 만들어갈 메이커스페이스에 동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단 한차례라도 여러분의 후원은 큰 도움이 됩니다. 후원하기 링크를 통해 지금 바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응원해 주세요.

후원하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경기도 시흥시 은계로338번길 36 3층 301호(대야동)
  • 대표전화 : 070-7720-2181
  • 팩스 : 031-312-10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리
  • 법인명 : (주)핸드메이커
  • 제호 : 핸드메이커(handmaker)
  • 등록번호 : 경기 아 51615
  • 등록일 : 2017-08-23
  • 발행일 : 2017-08-15
  • 발행·편집인 : 권희정
  • Copyright © 2024 핸드메이커(handmaker).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handmk.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