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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화가 윤중식, 박수근, 이중섭이 나누는 시대공감과 화풍에 대해 《화가의 벗: 시대공감》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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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화가 윤중식, 박수근, 이중섭이 나누는 시대공감과 화풍에 대해 《화가의 벗: 시대공감》展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6.1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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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벗: 시대공감》 /김서진 기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성북구립미술관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주요 작가인 윤중식, 박수근, 이중섭 작가의 3인전 《화가의 벗: 시대공감》展을 2023년 6월 30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22년 3월 윤중식의 유족들이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한 작가의 컬렉션 500점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개최된 《회향懷鄕》展(2022.3.30.-7.3.)에 이어 새롭게 기획된 전시이다.
 

윤중식 '귀로' /김서진 기자

본 전시는 한국 근대 서양화 도입기에 해당하는 윤중식(1913-2012)과 함께 동시대 화가이자 벗이었던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이 작품 초기 서양화를 받아들이며 시도했던 다양한 조형적 실험들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한다. 

아울러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 등 격동과 변화의 근현대사 속에서 그들이 공유했던 시대적 감성과 화풍 그리고 예술적 동지로서의 교류 관계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에서는 윤중식, 박수근, 이중섭 작가의 주요 작품 및 자료 등 총 100여 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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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전시실 풍경 /김서진 기자

3층 전시실에서는 월남 이후의 피난 시절을 비롯하여 1950, 60년대의 서울 시절 등 화가의 시선으로 기록해놓은 시대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특히, 전시실 내 별도로 마련된 「은지화의 방」 공간에서는 최초로 공개되는 윤중식의 은지화를 비롯하여 이중섭, 박수근 등의 은지화를 선보인다.  
 

박수근 '언덕 위의 풍경' /김서진 기자

박수근은 1914년 강원도 양구 출생,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 <봄이 오다>가 입선된 이후 1936년부터 1944년의 마지막 회까지 이 전람회에 응모해 임선하는 등 화가로서의 활동을 이어 나간다. 1939년부터 결혼과 함께 평남도청 사회과에서 근무하며 평양으로 근거지를 옮겼고 이 시절 최영림, 장리석, 황유엽 등과 '주호회'을 결성해 활동했다.
 

박수근 '아기(영인본)' /김서진 기자
은지화의 방 /김서진 기자
최영림이 윤중식에게 보낸 연하장, 은지에 채색 /김서진 기자

6·25전쟁 이후 피난 시절을 거쳐 1952년 상경한 작가는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구 전농동 등지에서 거주하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대한미협전 등에 참여하며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1959년부터 국전의 추천 작가가 되었고 1962년에는 국전 심사위원이 되었다.

박수근 타계 이후 부인 김복순과 장남 박성남의 노력으로 해외로 반출된 작품들 대부분이 다시 국내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가족들과 동료 화가들, 지인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2002년에는 박수근의 고향인 양구군에서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이 개관했다. 
 

박수근 '인물화' /김서진 기자

그는 “나는 인간의 착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며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라고 하였다.

주제에 있어서 앞의 말대로 그가 실제로 체험하였던 주변의 가난한 농가의 정경과 서민들의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생활 정경을 주로 사용하였다. 또한 이러한 주제에 풍부한 시정(詩情)을 가미하여 일관성 있게 추구하였다. 그리고 표현 방법에 있어서도 향토색 짙은 자신의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하였다.
 

박수근 '사랑(바위와 새)' /김서진 기자

특히 돌밭이나 화강암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마티에르는 그의 화풍상의 큰 특징이다. 박수근은 가장 좋아하는 밀레를 비롯해 모딜리아니, 브라크, 르누아르, 루오 등 서양 화가들의 작품 사진으로 직접 화집을 만들거나 미술 잡지 등을 구입해 독학으로 서양화를 공부했다. 

붓과 나이프를 사용하여 자잘하고 깔깔한 물감의 층을 미묘하게 거듭 고착시켜 마치 화강암 표면 같은 바탕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 독특한 감흥을 주는 굵고 우직한 검은 선으로 형태를 단순화시켜 한국적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1952년 이후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여 말년에 이르러 한층 더 심화되었다. 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요약화된 형태들을 평면적으로 대비시켜 배치함으로써 그의 특이한 구성미와 현대적 조형성을 더욱 충실하게 이룩하였다.
 

2층 전시실 /김서진 기자

이어지는 2층 전시실에서는 자기 고유의 작품 스타일을 형성하기에 앞서 세 작가들이 심취했던 서양의 미술 양식들과 구체적으로 영향을 받은 화가들을 파악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윤중식 '무제' /김서진 기자

윤중식은 1913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 숭실중학교 2학년 때인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서 소녀와 풍경을 그린 유화 두 점이 입선하며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35년 숭실중학교 졸업 후 일본 동경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으며 6·25전쟁 이후 부산, 대구 등지에서 피난 생활을 거친 작가는 휴전 직후 상경했다. 
 

윤중식 '서커스' /김서진 기자

1954년 화신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 이후 14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하며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1953년 <가을풍경>으로 제2회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했으며 1956년 <교회와 비둘기>로 제8회 미협전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2010년 성북구립미술관 개관전을 비롯한 다수의 기획전시 등에 참여했던 윤중식 작가는 2012년 국내 화가로는 첫 상수(上壽, 100세)전이자 자신의 마지막 개인전인 《윤중식》展을 끝으로 작고했다. 
 

윤중식 '무제' /김서진 기자
윤중식 '무제' /김서진 기자
윤중식 '비둘기' /김서진 기자

학습기 이후 일본 서양화단의 영향으로 야수파 경향이 강하여 단순한 형태에 강렬한 색채, 굵은 윤곽선 등이 특징이었으나 해방 후에는 분단 상황으로 인한 실향민으로서의 향수를 표현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며 조형적인 순화 과정을 보였다. 소재로는 비둘기와 같이 어린 시절의 기억과 연관된 것들과 저녁놀, 농촌 풍경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색채 화가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색채를 주로 한 그림을 그려온 건 확실해요. 색을 늘 칠하다 보면 좀 강렬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자연에서 가장 강렬한 색은 일출과 석양의 빛과 그 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물체라고 봐요. 그래서 자연히 석양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하지요." -윤중식-
 

이중섭 '임화 피카소' /김서진 기자

작품 <황소>로 잘 알려진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 출생,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보인 이중섭은 평양 공립종로보통학교와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유학을 떠났다. 1936년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으나 1년 후 도쿄문화학원으로 옮겼다.

재학 중 자유미협전에 출품해 제4회 '태양상'을 받는 등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45년 문화학원 후배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 6·25전쟁 때 가족들과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왔다. 이후 제주도와 부산에서 함께 생활하던 가족을 일본으로 보낸 뒤 홀로 통영·마산·진주 등지를 전전했다.
 

이중섭 '해변의 가족' /김서진 기자

부산 피난 시절 박고석, 한묵, 이봉상 등과 같이 만든 기조전(基潮展)과 신사실파 전시에 참여했으며 통영·서울·대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1955년 12월 말부터 19556년 6월말경 박고석, 한묵 등과 함께 성북구 정릉에서 거주하며 유화, 표지화, 삽화 등 다수의 작품을 제작했다. 1956년 서대문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그가 사망하자 동료 화가 및 문인들과 함께 장례를 치른 박고석은 이중섭의 뼛가루 일부를 정릉 청수골에 뿌려 주었다. 

그가 추구하였던 작품의 소재는 소·닭·어린이[童子]·가족 등이 가장 많다. 불상·풍경 등도 몇 점 전하고 있다. 소재상의 특징은 향토성을 강하게 띠는 요소와 동화적이며 동시에 자전적(自傳的)인 요소이다.

이중섭 '가족' /김서진 기자
이중섭 '복숭아와 아이들' /김서진 기자

40세의 이른 나이로 죽기까지 이중섭은 어린이의 모습을 통해 천진한 인간성을 예찬하고, 소를 통해 민족과 개인 감정을, 또 싸우거나 만나려고 애쓰는 닭이나 까마귀를 통해서는 분단과 동족상잔을 치른 민족의 통합을 절실하게 표현했다.
 

윤중식 작가의 피카소 스크랩북 /김서진 기자
화가들의 사진들 /김서진 기자

이 외에도 세 작가의 인연뿐만 아니라 당시 함께 참여한 전시 활동 살펴볼 수 있는 사진과 영상 등으로 구성된 아카이브 섹션도 마련된다. 또한 영상실에서 상영되는 화가들의 유족 인터뷰와 미술사가(평론가)의 인터뷰를 통해 윤중식의 성북동 시절(1963~2012), 이중섭의 정릉동 시절(1955~56)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 관계자 측은 "격동과 변화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낸 화가들이 공유했던 시대적 감성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이룩해 나간 화가들의 열정과 순수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핸드메이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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