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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자신만의 작품을 위해 수많은 도안을 그린 나전장들의 작품 속으로 《나전장의 도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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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자신만의 작품을 위해 수많은 도안을 그린 나전장들의 작품 속으로 《나전장의 도안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5.2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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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장의 도안실> /김서진 기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서울공예박물관은 7월 23일(일)까지 그동안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근현대 나전칠공예의 희귀 자료를 공개하는 특별 전시 《나전장의 도안실》을 개최한다. 

나전칠공예란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형태로 오려 옻칠한 기물이나 가구의 표면에 감입시켜 꾸미는 공예를 가리킨다. 이번 《나전장의 도안실》전시는 기존의 나전칠공예 전시와는 달리 ‘그림으로 보는 나전’을 주제로, 나전 작품이나 가구를 제작하기 위한 설계도 역할을 했던 ‘나전도안’을 중심으로 전시한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특히 우리나라 나전칠공예 무형문화재들의 스승격인 ▴김봉룡 ▴송주안 ▴심부길 ▴민종태 ▴김태희를 비롯하여, 1900년대 초 나전칠 분야에 ‘근대적 도안’의 도입과 ‘공업용 실톱’의 확산을 주도하며 나전칠공예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수곡 전성규(1880전후~1940)의 작품들을 집중 조명한다.
 

전성규 '나전칠 산수문 서류함' /김서진 기자

수곡 전성규는 서울 하상기의 공장에서 엄항주 등 6인의 어깨 너머로 칠과 나전 기술을 갈고 닦았다. 이후 하상기의 공장과 장인들을 인수하고 경성칠공회와 나전칠기실습소 등 여러 활동을 통해 기술 개량과 대량 생산, 후학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1920년에는 조선나전사로 초빙되어 2년간 일본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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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뒤에는 삼청동 142번지에서 공장 운영과 함께 조선미술전람회와 국외 박람회에 출품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혈쳤다. 1940년 태천칠공예소 소장으로 부임해 후학을 양성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는 붓으로 산수, 동물, 인물, 넝쿨무늬 등을 즐겨 그렸다. 특히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유려한 선으로 표현한 산수 무늬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는 제자인 김봉룡, 송주안, 심부길의 초기 작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전성규 '나전철 산수문 탁자' /김서진 기자

전성규 특유의 유려한 곡선과 산수무늬가 올려진 대형 탁자다. 현재 전하는 총 3점의 산수문 탁자는 모두 좌우로 산을 배치하고 사이에 강물이 흐르며 대범한 구도 속 기암괴석, 나무, 누각 등에 대한 섬세한 표현이 돋보인다. 화면 위쪽에는 그림과 어울리는 한시를 나전으로 쓰고 '수곡 전성규'라는 이름과 인장을 넣었다. 
 

김봉룡 '나전칠 쌍룡봉황문 상' /김서진 기자

김봉룡은 통영에서 박정수와 전성규에게 차례로 기술을 배웠다. 1920년 전성규를 따라 일본에서 2년간 활동하고 서울로 함께 돌아와 작업을 이어 나갔다. 1924년부터 국외박람회와 조선미술전람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수차례 출품하고 국내외 초대전에 참가해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625때는 고향인 통영으로 내려가 제자들을 양성하다 1968년 옻나무 생산지인 원주로 이동해 작품 활동과 제자 양성을 이어 나갔다. 김봉룡의 도안은 세필붓으로 그린 유려한 넝쿨 무늬가 대표적이며 다양한 문양과 함께 조화를 이룬 짜임새가 돋보인다. 또한 대칭 구도나 공예품의 형태에 따라 분할 도면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김봉룡 '나전칠 넝쿨문 팔각화병' /김서진 기자

입구부터 옆면과 바닥면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고 장식적인 넝쿨 무늬가 빼곡하게 채워진 꽃병이다. 이처럼 나전 장식은 수십 면에 이르지만 도안은 단 세 장이다. 도안을 살펴보면 꽃병의 모든 면을 이어 반복되는 무늬를 전부 그리지 않고 반복되는 면을 분할해 한 번만 그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할 도안의 형식은 김봉룡 도안의 특징 중 하나로 꼽히며 같은 무늬를 중복해 그리는 시간을 단축해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장인의 묘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전칠 난초문 반' /김서진 기자

송주안은 통영에서 박정수와 전성규를 통해 기예를 익혔다. 통영군립공업전습소를 졸업하고 1920년 전성규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전성규와 김봉룡이 귀국한 뒤에도 남아 활동했다. 이후 1940년 태천칠공예소에 1년간 소장으로 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통영칠기제작소에서 근무했다.

해방 이후에는 통영칠기제작소를 인수해 운영하다 1958년 자택에서 태평공예사를 운영하며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 송주안의 도안은 붓 선에 강약을 두어 중심 문양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도안에서부터 송곳상사 기법으로 표편한 섬세한 산수 끊음질은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만큼 뛰어났다. 

'나전칠 난초문 반'은 연회 등에서 1인분의 식기와 음식을 놓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반이다. 붓으로 망설임 없이 그려낸 듯 나전으로 올린 난초가 쟁반 위로 피어 있고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고 있다. 1920년 송주안은 전성규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나전사에서 활동했고 전성규와 김봉룡이 귀국한 뒤에도 1929년까지 남아 작업을 이어 나갔다. 송주안의 도장이 찍힌 탁본 도안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조선나전사에 있을 때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송주안 '나전칠 화조문 삼층농' /김서진 기자

다양한 금구장식으로 꾸민 삼층농이다. 각 층의 문마다 원형의 틀 안에 각기 다른 새와 꽃무늬가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윗층에 잎이 무성한 넝쿨나무에 모여 있는 세 마리의 새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가운데 층에는 풍성한 모란과 괴석 위로 화려한 꽁지깃을 자랑하는 공작을 담아 부귀와 번영, 현실 생활의 복을 염원했다. 아래층에는 석류나무 가지 위에 앉은 새 한 마리에게 또 다른 새 한 마리가 날아드는 모습을 표현해 자손 번성과 부부간의 애정을 기원하고 있다. 또한 각 층 사이와 손잡이가 달린 서랍들에도 각종 보배 무늬를 장식함으로써 사용자의 가정에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고 있는 작품이다. 
 

심부길 '나전칠 흉배문 문갑' '나전칠 장생문 함' /김서진 기자

심부길은 서울에서 전성규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1942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선배인 김봉룡과 함께 특선을 차지했으며 이듬해에도 입선했다. 그는 끊음질의 대가로 인정받아 김봉룡과 민종태를 비롯한 여러 공방에서 초청을 받았다.

1980년부터 한국나전칠기보호협회, 통일공예연구원의 기술고문으로 활동하고 한국전통공예작품전시관 관장직을 맡는 등 나전칠공예의 발전과 전승을 바랐다. 그는 도안 없이도 자유자재로 상사를 끊어 가며 기하학적인 문양을 균형감있게 붙여나가는 능력이 탁월했다. 작품 위에 바로 펼쳐진 그의 도안은 전통 문양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부길 '나전칠 만자문 서류함' /김서진 기자

높이가 낮은 서류함이다. 함 전체에 싸리무늬, 만卍자무늬, 국화무늬, 백무늬 등 심부길이 생전에 주로 쓰던 기하무늬들로 빼곡하지만 조화롭게 채워 넣었다. 윗면과 옆면의 중앙에는 모두 굵은 상사로 만자와 부자를 교묘하게 연결시킨 무늬를 채워 넣었다. 윗면은 그 주위를 국화문으로 두르고 능화형으로 공간을 나눈 뒤 바깥은 싸리만자를 배치했다. 각 옆면은 원형의 남은 여백에 다양한 기하무늬로 가득 새겼다. 이 작품은 끊음질로 표현할 수 있는 각종 문양의 매력이 한껏 발휘된, 끊음질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민종태 '목제 양각 수자문 구절판' /김서진 기자

민종태는 1929년 삼청동 142번지에 있던 전성규 공방에 들어가 1934년까지 나전칠기 제작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전성규 문하를 떠나 한일상회에서 근무하던 1937년과 1939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했고 광복 이후인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는 김기주, 김영주, 김태희 등과 함께 입선했다. 웅장하면서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작품 세계를 추구하며 한국 나전칠기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그는 공방에 소목부, 칠부, 나전부, 조각부 등을 두고 규모 있는 작업을 진행했으며 많은 장인들이 그의 공방을 거쳐 갔다. 민종태는 나전칠기와 더불어 조각을 한 가구들도 제작했다.

민종태는 나전칠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각 작품도 제작했다. 그는 소목부 내 특별히 조각부를 두기도 했는데 이는 다른 공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민종태 공방만의 특징이다. 민종태는 조각 작품에서도 거북, 사슴, 꽃과 새, 수복문 등 다양한 문양을 활용했다. 팔보와 수복 문양이 화려하게 조각된 구절판, 매화와 새가 양각으로 새겨진 협탁, 그리고 제작 과정에 사용된 각종 도안들을 살펴볼 수 있다. 
 

민종태 '나전칠 원형상' /김서진 기자

상판 중앙에 수복문을 두고 학과 구름 모양이 둘러져 있으며 그 주위로는 십이지신 문양이 자리하고 있다. 원형상의 가장자리에는 사슴, 거북, 학, 소나무 등의 십장생문으로 둥글게 장식해 마치 하나의 소우주를 연상케 한다. 관련 도안을 통해 작은 부분도 섬세하게 표현한 장인의 실력을 알 수 있다. 
 

김태희 '나전칠 나비문 의걸이장' /김서진 기자

김태희는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한 사촌 매형 김기주를 통해 나전칠공예에 입문했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는 김기주, 김영주, 민종태 등과 함께 처음으로 입선했다. 1952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1960년 케네디 대통령 등 국빈들에게 경무대와 청와대에서 선물용으로 제작 의뢰하는 나전작품을 만들었다. 더불어 일본 수출용 보석함, 서류함, 차 도구 등도 활발히 제작했다.

그는 동시대 검은색 일색이던 나전칠기 작품들 사이에서 홍색과 녹색 등 풍부하고 다채로운 색감과 유려한 선을 자랑하는 문양을 담은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전통 질화기법과 나전상감기법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는 평을 받는다. 
 

김태희 '나전 십장생문 의걸이장' /김서진 기자

중앙의 십장생 무늬를 축으로 상, 하단에 '수(壽)자 문양대가 화려하게 둘러져 있다. 하단에는 길상을 상징하는 칠보, 학무늬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중앙에는 서랍을 설치패 물건을 보관하도록 했다. 다채로운 문양의 활용과 은근한 광채 등 절제된 마감을 통해 장인의 기량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여러 형상과 문양을 담은 도안들 /김서진 기자
토끼와 박쥐 등 다양한 도안 /김서진 기자

우리나라 근현대 나전칠기를 대표하는 6인의 도안 360여 점을 대규모로 소개한다. 이중에서 40여 건의 작품과 270여 점의 도안은 그동안 일반 대중에게는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최초 공개 작품들이다. 
 

김태희 장인의 제자인 오왕택 나전장의 인터뷰 영상 /김서진 기자

이번 전시는 6인의 작품과 도안을 주로 소개는 한편, 이들 장인의 제자들의 인터뷰도 볼 수 있다. 대부분 오늘날 나전칠공예 분야 무형문화재로 활동 중인 제자들은 스승들의 살아 생전의 활동뿐 아니라 나전칠공예에 대한 신념과 나전도안에 대한 특별한 생각들을 진정성 있게 털어놓는다.

전시 관계자 측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업을 위해 수천 장의 그림을 그린 나전장들의 작품을 관람하며 6인의 장인들이 연 새로운 시대와 그 내면을 자유로이 읽고 상상해 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7월 23일까지.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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