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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일상을 영위하는 이들의 올곧은 감성, 이누이트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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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일상을 영위하는 이들의 올곧은 감성, 이누이트 예술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5.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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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a Myth, Becoming Real (신화, 현실이 되다)> /이강하미술관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5월,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광주에서는 현재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남구 이강하미술관은 올해 2023년 '캐나다X한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해를 맞이해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캐나다 파빌리온 《Once a Myth, Becoming Real (신화, 현실이 되다)》 전시회 및 온라인 버츄얼 워크숍 프로그램을 개최 중이다.

이번 전시는 ‘West Baffin Eskimo Cooperative(웨스트 바핀 에스키모 쿠어퍼레이티브)’ 가 오랜 시간 순수한 자연과 동물, 인간의 민속 신화에 대한 전통과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Inuit(이누이트) 예술과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지원 및 연구한 최대 최초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캐나다 큐레이터 윌리엄 허프먼은 "이누이트 예술 커뮤니티와 협동조합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故 케노주악 아셰바크의 작품을 가져왔다"며, 나머지 작품은 3, 4세대 이누이트 예술가들이 최근 1년 동안 제작한 것이라 밝혔다. 이누이트 예술은 이누이트족의 생활과 주변의 생물들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회화와 조각이 특징이다. 
 

옛 이누이트족의 생활 /flickr

선사 시대, 이누이트 예술은 대부분 샤머니즘 의식에 사용하는 부적이나 도구 등이 많았다. 유물은 교육에 쓰이는 도구, 장난감, 선물용으로도 만들어졌으며 이누이트가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란 것을 감안하면 물건들은 아주 작은 형태가 많았다. 기원전 4000여 년 전, 유목민들은 시베리아에서 베링 해협을 건너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극, 그린란드 등으로 건너갔다. 당시의 유물은 남아 있는 건 거의 없지만 상아와 암석을 조각한 몇몇 유물들이 보존되어 예술 작품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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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캐나다 북부와 동부, 그린란드에 걸쳐 분포하는 에스키모 문화인 '도싯 문화'가 뚜렷해지면서 사람들은 바다코끼리의 상아와 뼈, 순록 뿔, 돌을 이용해 조각을 하며 조형 예술을 즐겼다. 조각의 모양은 새, 곰, 바다코끼리, 사람의 마스크도 포함되었다. 도싯 문화 속 사람들은 상아의 표면에 곰을 포함한 커다란 동물들을 묘사했다. 주술이나 종교적 의미로 악령을 쫓기 위해 조각을 부적처럼 사용하거나 종교 의식에도 사용했다.

오늘날 이누이트의 조상인 툴레 문화의 사람들은 알래스카 북부에서 이주해 와 초기 도싯 주민들을 학살하거나 강제로 이주시켰다. 툴레 예술은 알래스카의 영향을 받았으며 빗, 단추, 창이나 작살 같은 실용적인 물건도 있었다. 이 물건들에 새겨진 장식은 그저 장식용에 불과했으며 종교적 의미 같은 건 없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물건을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쓰였다. 이누이트족이 쓰는 식기와 도구, 무기는 돌과 뼈, 상아, 동물 가죽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해 수작업으로 완성됐다.
 

지금의 빗이라 해도 그럴듯하다 /flickr
지금의 사진 등을 넣어 목걸이에 다는 작은 갑인 '로켓' /flickr

유목민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 말고는 소지할 수 없었으며 섬세한 장식의 귀걸이, 가면, 부적이나 빗 등을 휴대하거나 착용할 수 있도록 작게 조각하곤 했다. 16세기 들어 이누이트족은 선교사들을 포함해 북쪽을 방문한 방문객들과 차, 무기, 술 등을 물물교환하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은 이누이트족이 만든 이 창의적인 물건들과, 그저 이누이트 개인이 갖고 놀던 장난감들을 놀라우면서도 기발한 유물이라 생각했다. 이누이트족에겐 그저 장난감이었지만, 상인들은 일상용품과 이 장난감처럼 생긴 유물들을 교환했다. 이전에는 동물 조각, 주술사가 쓰는 도구나 부적으로 제작된 아이템이 무역 상품의 대상이었다.

이누이트 예술가들은 유럽인들이 쓰는 소총, 배, 악기 등을 장식하기 위해 상아로 된 작은 조각을 무역 상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고래잡이꾼들에게는 바다코끼리와 일각고래의 이빨을 조각해 판매하기도 했다. 선교사들은 기독교 관련 이미지를 쓰길 원했지만 이 경우는 제한적이었다고. 전통적으로 이누이트족은 장식용, 종교적 목적이나 개인의 목적으로 물건을 조각했다. 그러나 유럽과 캐나다 등 여러 나라와 접촉하면서 이누이트 조각의 성격과 기능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정교한 조각 /flickr

이 변화는 이누이트족이 지역 사회에 정착하고 캐나다 정부가 이누이트의 수입원으로 조각 산업을 장려하기 시작한 194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예술품들은 관광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손바닥에도 들어갈 만큼의 작은 물건에서 큰 작품으로 변했고 테이블 위에 전시할 수 있는 상품으로도 진화했다. 이누이트 예술은 크기, 주제, 스타일 면에서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1940년대 후반, 예술가였던 제임스 휴스턴은 이누이트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북극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는 배핀 섬의 킨게이트를 여행하던 중 그곳에서 만난 이누이트 예술가들의 조각품을 사 남쪽으로 이동한다. 그는 이누이트 예술을 캐나다수공예조합에 소개했고, 이누이트 조각을 홍보하는 전시회를 후원했다. 그 해 이 작품들은 몬트리올에서 전시되며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상아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작은 동물 조각들 /flickr

1960년대 들어 대부분의 이누이트 커뮤니티에 협동조합이 설립되었고 이누이트 미술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누이트 조각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서 전통적인 조각 재료였던 상아로는 이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워, 예술가들은 상아보다 더 저렴하고 풍부한 돌을 선택했다. 돌을 많이 쓰기 시작하면서 조각의 평균 크기도 커졌고 수집가들도 이 변화를 반겼다. 대신 상아는 작은 형태를 조각하는 데 쓰였다. 

이누이트 조각은 서양과 접촉하기 전부터도 주민들이 계속해 왔던 작업이었고, 오늘날에도 수작업으로만 조각하는 걸 계속해 오고 있다. 드릴 같은 전동 공구가 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도끼와 끌을 사용하는 걸 선호한다. 돌과 뼈에 조각하는 건 이누이트 대대로 전수해 오는 기술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이누이트족은 나이가 많은 친척을 도와주면서 조각을 배운다고.
 

곰 조각 /flickr
조금 무서워 보이는 사람 조각의 모습 /flickr

돌은 가장 인기 있는 재료로 회색과 흰색, 검은색부터 녹색까지 다양한 색상으로 조각한다. 다만 조각에 사용할 돌을 구하는 건 많은 돈과 시간이 든다. 채석장의 좋은 돌을 구하기 위해 이누이트족은 육로, 또는 배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한다. 가장 흔한 재료는 역시 돌이며 순록 뿔, 상아, 동물의 뼈 등 다양하다. 대부분의 이누이트 예술가들은 겨울철에도 밖에서 작업하는데, 돌을 작업하는 데 나오는 먼지가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북극을 방문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건, 조각가들이 집 밖에서 돌을 깎고 망치질을 하는 모습이라고.
 

서 있는 곰 /flickr

이누이트 예술가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라 왔다. 겨울에는 이글루에서, 여름에는 동물 가죽으로 만든 텐트에서 살았다. 이들은 바다표범과 순록, 고래 같은 바다의 포유류를 보며 살았다. 자연히 북극에 사는 새, 동물은 이누이트 예술가들에게는 중요한 주제였다. 북극곰이나 물개, 늑대, 올빼미 등은 이들이 보는 수많은 동물들 중 극히 일부였다.

이누이트 예술에 등장하는 새와 동물을 들여다보면 각 동물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으며 이들이 동물을 조각한 이유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경심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이누이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에서는 또 다른 생명체가 우주에서 인간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많이 다룬다. 이들은 이 세계에서 영적인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전설에서 등장하는 영혼들은 오늘날에도 이누이트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다. 망아(忘我) 상태 중에 지식을 얻는 종교적 능력자를 의미하는 ‘사만(saman)’에서 유래한 '샤먼'은 이누이트 예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다. 전통적으로 이누이트들은 샤먼이 신비한 힘을 가진, 지혜로운 사람이라 믿었다. 또 주술사들은 바다 밑으로 내려가고, 달나라에 갔다 돌아오기도 하며 온갖 동물로도 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사람과 동물 모양의 조각 /flickr

조각에 보이는 해골 문양은 영혼 또는 비물질화된 본질로서의 신체, 주술적이나 종교적 의미의 도구 등 여러가지 초자연적인 의미를 가진다. 도싯 문화에는 나무로 만든 얼굴 가면, 인물상, 동물 이미지가 많은데 대부분 상아와 뼈, 나무 등으로 조각되어 있고 크기가 매우 작다. 이 조각들은 매우 입체적이고, 강렬하며 표면이 매우 매끄러운 마감 처리가 되어 있다. 

북극 또한 식민 시절을 겪었고, 개종 요구에 시달렸다. 기독교 선교사들은 19세기 후반 북극에 살고 있던 주민들에게 가톨릭이나 성공회 등으로의 개종을 강요했다고 한다. 선교사들은 주민들의 영혼을 구해야 한다며 이누이트의 전통을 이교도적이고 야만적인 의식이라 비판하고 영적 관습이나 전통을 따르는 것을 금지했다. 이누이트 문화가 이렇듯 식민지화, 복음화에 의해 폄하당하며 억압받는 동안 이누이트족은 자신들의 가치를 존중하고 문화가 보존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사람과 동물의 모습 /flickr
모여 있는 사람들, 아마 이누이트족의 일상 생활이 이랬을까 /flickr

이누이트 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이들이 살아온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다. 이들은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예술로 보여주면서 그들의 역사를 전한다. 이누이트 예술은 이들이 어떻게 사냥을 했고, 의복을 만들고, 보금자리를 만들었는지를 기억한다. 즉 많은 이누이트 예술가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기후 지역이라 여겨지는 곳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살았는지를 알려준다.

예술가들은 조상들이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이야기와 전통, 전설, 삶의 방식을 예술로 표현한다. 어떤 이누이트 석조 조각가는 예술 작품을 제작하며 "조각을 할 때엔 1940년대 초 이누이트의 삶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하며, 어떤 이누이트 그래픽 아티스트는 "이 모든 건 역사, 즉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것이다. 기억과 역사를 잊을 사람들을 위한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 젊은 사람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알도록 하기 위한 것, 이 모든 것들이 기억이다. 난 이 생활 방식, 내 이누이트 생활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Once a Myth, Becoming Real (신화, 현실이 되다)> /이강하미술관

허프만 큐레이터는 《Once a Myth, Becoming Real (신화, 현실이 되다)》 전시 장소로 이강하 미술관을 선택한 것에 대해 “지난해 이강하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5·18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광주 시민들이 겪었던 5·18의 트라우마와 몇 천 년을 살아왔어도 사라지지 않은 이누이트족의 트라우마로 남은 상흔이 닮은 것 같다”고 전했다. 유독 5월에는 더 고요히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보는 광주의 한 켠에는 이누이트족이 지켜 온 예술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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