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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스포츠의 금지된 규칙은 때로는 예술에 닿는 길이 된다, 《flop: 규칙과 반칙의 변증법》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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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스포츠의 금지된 규칙은 때로는 예술에 닿는 길이 된다, 《flop: 규칙과 반칙의 변증법》展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4.26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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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op: 규칙과 반칙의 변증법》 /국민체육진흥공단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국민체육진흥공단 소마미술관은 오는 8월 6일까지 《flop: 규칙과 반칙의 변증법》을 개최한다. 소마미술관이 전시 기획자를 발굴 및 육성하고 스포츠와 예술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2021년부터 시작한 기획공모의 두 번째 전시다.

소마미술관은 '스포츠와 예술의 단순 융합이 아니라, 규칙과 반칙이라는 주제 아래 스포츠, 예술 사회 간에 서로 닮아 있는 모습을 발견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기획'으로 본 전시를 선정했다.

이번 전시는 올림픽에서 금지된 규칙들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이번 전시에는 가토 츠바사, 김효재, 조희수, 크리스티안 얀콥스키, 하상현, 홍민키 등 다양한 국적과 세대, 정체성을 넘나드는 여섯 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다채롭고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인다.
 

배면뛰기 /flickr

《flop: 규칙과 반칙의 변증법》은 스포츠에서 주어진 규칙의 한계를 실험하면서 발생하는 복잡한 역학에 주목한다. 1968년 높이뛰기 선수인 딕 포스베리(Dick Fosbury)는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몸을 뒤집어 등 쪽으로 뛰는 ʻ배면뛰기'를 최초로 시도했다. 영어권에서 배면뛰기는 그의 이름을 따 포스베리 플롭 (Fosbury Flop)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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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베리는 몸을 살짝 뒤집는 그 작은 혁명으로 기록을 혁신적으로 갱신하였고, 그 이후로 높이뛰기 종목에서 이전처럼 앞으로 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 쉽게 주어진 규칙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스포츠 정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규칙의 한계를 실험하거나 규칙의 허점을 찾아내는 실천 또한 스포츠의 도전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도전이 다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수영에서의 무한 잠영, 투포환에서 풍차돌리기, 체조에서 평행봉 위에 올라서는 코르부트 플립 등 주어진 규칙의 한계에 도전했지만 반칙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더욱 많다. 이유는 규칙을 둘러싼 규칙들의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포츠 내부 규칙뿐만 아니라 스포츠와 전혀 상관 없는 외부 맥락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flop: 규칙과 반칙의 변증법》 /김서진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의 한계를 밀어내거나 주어진 규칙의 구멍을 찾는 실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탐구하다 보면 흥미로운 원리가 발견되기도 한다. 규칙의 한계를 실험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여 그 내부의 플레이어가 되어야 규칙을 뒤집을 가능성도 열 수 있다.

이렇게 주어진 게임에 기꺼이 참여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의심하는 역설적인 투쟁은 예술의 작동 방식을 떠오르게 한다. 이번 전시는 예술의 범주 자체를 질문하는 아방가르드적 실천이나, 이미 주어져 있는 매체의 한계를 성찰적으로 뒤집는 예술가들의 실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조희수 <철인 3종 경기> /김서진 기자

<철인 3종 경기>는 이번 전시를 통해 만들어진 신작으로 스포츠가 이미지로 재현될 때 발생하는 규칙들을 입체적으로 탐구한다. 인간의 신체는 그 자체로 가장 사적인 영역이지만 스포츠 중계를 통해 재현되는 선수의 몸과 움직임은 마치 공적인 사건처럼 비추어진다. 스포츠에서는 힘 있는 신체들만 다루어지기도 한다.

조희수는 여기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유한한 것과 영원한 것,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등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역전을 시도한다. 4채널의 영상은 수영, 사이클, 달리기를 연달아 경주하는 트라이애슬론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영상을 전시 공간 곳곳에 흩어 놓아 순서가 없는 다층적인 시간의 지평에 펼쳐진다. 
 

가토 츠바사 <부서지기 전에 부숴라> /김서진 기자
많은 사람들이 구조물을 끌어당기고 있다 /김서진 기자

가토 츠바사의 '당겨 세우기' 프로젝트에는 퍼포먼스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도 세우기 어려운 규모의 구조물이 나온다. 처음부터 줄을 잡고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구경하던 사람들도 달려들어 힘을 보태야 구조물은 겨우 일으켜 세워진다. 구조물의 물질성이 사람들의 행위를 촉발시키면서 일시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2015년 <부서지기 전에 부숴라>는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모로족 분쟁을 통해 코타키나발루에 살고 있는 난민들과 함께한 작업이다. 작가는 정부가 그들의 집을 부수기 전 먼저 부수기를 제안한다. 그렇게 시작한 퍼포먼스에 쓰인 구조물은 언제든 허물 수 있도록 만든 난민들의 거처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퍼포먼스가 끝난 뒤 난민들은 파괴된 구조물의 파편들을 챙겨 또 다른 곳에 마을을 재건하기 위해 떠났다.
 

가토 츠바사 <등대-11.3 프로젝트> /김서진 기자

<등대-11.3 프로젝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역의 상징인 시오야자키 등대를 닮은 구조물을 제작하고 이재민, 자원봉사자, 주민 등 약 500명이 참가해 그것을 당겨 세웠다. 작가는 본인이나 관객들이 직접 피해를 입은 이들의 경험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 프로젝트는 재난을 겪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김효재 <파쿠르> /김서진 기자
실제로 파쿠르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 구조 /김서진 기자

'여정'을 뜻하는 프랑스어 'parcours'에서 유래한 파쿠르는 인간의 몸으로 도시나 자연환경의 다양한 장애물들을 극복하는 훈련 방법이다. 파쿠르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기존의 규칙을 벗어나는 운동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영화 등 미디어에서는 익스트림 스포츠로 비지지만 파쿠르는 순위를 매기지도 않고 정해진 규칙을 갖고 있지도 않다.

파쿠르를 수련하는 트레이서들은 파쿠르를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신체와 환경의 호응을 통한 수행이자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파악하는 예술로 보기도 한다. 그들에게 환경이란 극복의 대상을 넘어 교감의 대상이다. 이런 파쿠르를 깊게 연구하는 김효재는 2021년작 <파쿠르>를 통해 모든 것이 데이터로 존재하는 세계에서 몸이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감각하길 제안한다.

개인전 《노 트레이스》에서는 파쿠르 트레이서의 신체와 공간, 그리고 모빌리티를 뜻하는 '유르트'를 조망하며 영상 작업과 실제 전시 환경이 호응하는 구조를 실험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파쿠르 연작을 미술관의 건축적 구조와 어우러지면서도 화이트큐브의 규칙을 이상하게 바꾸어 버리는 공간 속에 펼쳐낸다. 
 

크리스티안 얀콥스키 <Heavy Weight History> /김서진 기자
<Heavy Weight History> 비디오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관람객들 /김서진 기자

폴란드의 바르샤바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크게 파괴되었다. 그 도시에서 기념비들은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다시 만드는 역할을 했다. <Heavy Weight History>에서 폴란드계 독일인 크리스티안 얀콥스키는 역도 선수들과 그 도시의 기념비들을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작가는 기념비들을 기존의 역사적 서사와 완전히 다른 규칙 속에 놓는다. 그의 유머러스한 개입으로 물질적 무거움과 역사적 무거움은 이상하게 뒤섞인다.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에서 스포츠 아나운서는 역도 선수들의 도전을 긴박하게 중계하는데, 미디어의 스포츠 중계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이렇게 우리 눈앞에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집니다"같은 멘트는 여기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피스톨 스쿼트' 조각 옆에서 몸을 지탱한다. 조각에 가까운 쪽 다리를 몸 앞쪽으로 뻗어 그대로 유지한다. 그 상태에서 반대쪽 다리를 구부리고 방향을 바꾼다. 양쪽 각 5회씩 반복한다 /김서진 기자

<Aritistic Gymnastics>는 스위스의 올림픽 체조 코치와 함께 스위스 빌/비엔의 공공 조각 작품들을 운동 기구로 바꾸는 작업이다. 한밤중에 플래시를 터뜨려 촬영한 흑백 사진들에서 살과 돌의 대비는 사라진다. 이 예술적인 체조는 멈춰 있고 단단한 조형물들을 일시적이고 동적이며 촉각적인 오브제로 바꾼다.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거대한 수건 /김서진 기자

홍민키 <Sweety Balls>는 게이 배구 클럽 활동을 기반으로 한 영상과 설치 작업이다. 정상성 규범이 작동하는 사회에서 퀴어들은 항상 존재하지만 쉽게 숨겨진다. 이런 맥락에서 퀴어 공동체는 섹슈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사교 모임이 주를 이루는데, 작가는 외모나 성적 끌림으로 형성된 관계와는 전혀 다른 공동체를 배구 클럽에서 만나게 된다.
 

홍민키 <Sweety Balls> /김서진 기자

다양한 세대, 외모, 성향 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드는 배구 클럽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공동체 내부의 또 다른 다양성까지 성찰해 나간다. 팀스포츠이면서 동시에 상대 팀과 신체 접촉이 발생하지 않는 배구라는 스포츠 특유의 형식에서 다양한 층위의 접촉이 교차되는 문제가 다루어진다.

중의적인 <Sweety Balls>라는 제목처럼 게이 배구 클럽에는 스포츠의 규칙, 섹슈얼리티의 규칙이 미묘하게 뒤섞여 있다. 홍민키는 배구 클럽을 경유해 정상성의 규칙, 퀴어의 규칙의 세계의 겹침을 감각하고 나아가 공동체라는 것 전반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최상현 <Overcross> /김서진 기자

하나의 스포츠를 한다는 건 공동체의 정체성을 얻는 것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훈련된 몸은 고유한 움직임을 기억한다. 퍼포먼스 <Overcross>에서 펜싱 선수와 복싱 선수는 경기를 치른다. 이들은 서로를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는 방식, 장비와 도구, 경기장과 몸의 규칙을 바꾼다. 복싱 선수는 펜싱 마스크를 쓰고 검으로부터 자신의 머리를 보호해야 한다. 펜싱 검의 부피와 길이는 복싱 글러브에 맞춰 세심하게 조정된다.
 

경기장은 관람객이 올라가 퍼포먼스의 주인공들처럼 직접 뛸 수도 있다 /김서진 기자

그렇게 진행되는 퍼포먼스는 하나의 규범과 체제를 완성해 나가는 모습이 아닌 개별적인 두 몸이 만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2014년 처음 선보였던 <Overcross>를 이번 전시를 통해 이어 가며 펜싱 피스트와 복싱 링을 겹쳐 놓은 경기장의 공간적인 구조를 도입했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영화 같지 않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굳이 영화를 찍는 예술가는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질서도 비슷하다. 주어진 사회의 구조 안에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변화시키려는 수많은 운동들을 떠올린다. 

규칙과 반칙의 변증법은 그 자체로 세계가 변화해 나가는 원리다. 이번 전시에는 스포츠의 규칙과 움직임을 전유하여 정치적인 운동으로 만들어내는 예술 실천, 정상을 강요하는 세상의 규범에 겹쳐 있는 또 다른 규칙들을 들추어내는 예술 작업들이 펼쳐진다.

전시 측 관계자는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리서치를 진행하며 전시를 선보이고, 전시 연계 연구서를 통해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연구 텍스트를 생산하기도 한다"며, "스포츠에서 예술, 그리고 세상의 규칙에 대한 질문까지 확장해 나가는 예술 작업들을 통해 세계를 향한 시선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뒤집어지는 순간을 감각해낼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8월 6일까지.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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