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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 미술의 진정한 경지에 오르다, 아잔타 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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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 미술의 진정한 경지에 오르다, 아잔타 석굴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5.0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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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 석굴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의 도시 아잔타에 있는 불교 석굴인 아잔타 석굴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30여개의 이 석굴은 기원전 2세기부터 5세기에 걸쳐 지어졌으며,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나다. 석굴 내부에는 인도의 불교 예술을 보여주는 부조와 벽화가 남아 있다.

아잔타 석굴에서 약 100㎞ 떨어진 곳에는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석굴 단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엘로라 석굴(Ellora Caves)이 있는 등 인도 전역에 광범위한 석굴들이 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두 석굴은 인도를 대표하는 불교 석굴이기도 하다. 
 

수많은 부처 조각들 /flickr

대개 불교 예술의 걸작으로 꼽히는 석굴에는 고대 인도 예술의 훌륭한 사례인 그림, 바위를 깎은 조각, 섬세한 몸짓과 자세를 표현한 부처의 모습들이 포함된다. 아잔타 석굴에는 75미터 암벽에 새겨진 조각들과 함께 부처의 재탄생을 묘사한 그림들이 많다. '아잔타'라는 용어에는 '영원하다'란 뜻이 있는데 이 석굴들이 시간이 지나도 영원하고, 조각이나 그림 또한 변하지 않는 것으로 믿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기록에 따르면 이 석굴들은 고대 인도 상인들이나 순례자들의 휴식처였고 승려들에게는 휴양지의 역할도 했다. 중국 불교 여행자들의 회고록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석굴은 우연히 누군가에게 '발견'될 때까지 정글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1819년 영국 식민지 시대 장교였던 존 스미스 대위가 발견한다. 당시 호랑이를 쫓던 존 스미스 대위는 인도의 아잔타 마을 근처에 있는 동굴을 발견한다. 마을에 살던 양치기 소년이 그에게 지금의 아잔타 10번 석굴 입구를 안내했다고 한다. 이 석굴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곳이었고, 존 스미스는 석굴 앞을 막고 있는 덩굴을 제거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도끼와 창, 횃불 등을 들고 현장으로 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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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819년 10번 석굴의 입구를 발견한 후 자신의 이름과 발견한 날짜를 새겼고, 자연히 벽에 그려진 이미지들은 훼손됐다. 발견 이후 석굴은 이국적인 환경과 특별하고 독특한 그림들로 유명해진다. 1861년 아잔타 석굴은 인도 고고학 조사의 핵심 장소가 되었다. 마하라슈트라 주의 아우랑가바드 지구는 1610년에 건설된 도시로,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통치자 미르 오스만 알리 칸이 유적지의 그림을 복원하고, 관광객들이 올 수 있게 도로를 건설했다. 물론 이 조치가 초기 유적지가 제 모습대로 보전되는 것을 방해했다는 견해도 있다. 
 

절벽에 있는 석굴 /flickr

아잔타 석굴은 백악기 말기 연속적인 화산 폭발로 인한 현무암의 분출로 50만km에 이르는 광대한 용암대지 데칸트랩의 일부인 절벽에 만들어졌다. 수평으로 층을 이루고 있으며 수 세기 동안 균열과 붕괴를 반복했다. 아마 조각을 맡은 예술가들은 바위에 복잡한 조각을 새기는 일을 맡았을 것이다. 

아잔타 석굴의 그림들은 주로 자타카를 묘사한다. 자타카는 전생 이야기라고 하며, 불교에서는 석가가 보살로서 수많은 전생에 신이나 각 계층의 인간과 새, 짐승 내지는 어류, 용 등으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 여러가지 착한 일을 쌓은 결과 마지막으로 이승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그 전생에 있어서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자타카라 부른다.
 

기둥에 그려진 그림 /flickr
인물들이 군집을 이루는 모습 /flickr

석굴 벽화는 초기와 후기 모두 무사히 살아남은 예술 중 하나다. 보존되어 있는 벽화 조각들, 특히 10번과 11번 석굴 벽화는 이 시기 인도 고대 회화의 독특한 문화다. 사타바하나 시대 인도 화가들은 자연주의적 스타일이 많았고, 아잔타의 벽화는 진부함이 적고 고전적이면서 풍부하다는 평을 받는다. 많은 인도 벽화와 달리 아잔타 석굴 벽화는 중앙의 한 인물이나 그룹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대형의 그림을 보여준다.

미술사학자 월터 스핑크에 따르면 아잔타 석굴에 조각된 모든 것들은 바카타카 왕조의 하리셰나 황제가 통치하는 기간 동안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이 견해가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스핑크에 따르면 하리셰나는 새 석굴을 작업하는 것을 원했고, 발굴 시도는 있었지만 이웃이었던 아슈마카 왕의 위협으로 대부분 중단되었다. 이후 하리셰나의 의뢰를 받은 석굴 작업이 계속되었다가 잠시 중단된다.

작업은 다시 재개되었지만 아슈마카 왕이 직접 개발에 후원하고 있었던 26번 동굴을 제외하고는 대규모 발굴은 다시 중단된다. 아슈마카는 하리셰나의 아들에게 반란을 일으켰고 바카타카 왕조는 막을 내린다. 모든 발굴은 중단되었고, 바카타카 왕조의 후원자들 대부분은 왕조에서 쫓겨났다. 새들의 지저귐과 원숭이들의 울음소리에 뒤덮인 석굴은 다시 원시적인 옛날로 돌아갔다.
 

멀리서 본 아잔타 석굴 /flickr

석굴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번호가 매겨져 있으며 옛날과는 다르게 석굴들의 입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초기 아잔타 석굴은 조각보다는 구조에 중점을 두었다. 9번, 10번 석굴은 부도 형태이며 1번, 12번, 13번, 15번 석굴은 중정 공간을 중심으로 승려들이 수행을 할 때에 거처로 사용하는 작은 방들을 돌아가며 배치한 형태의 '비하라' 건축 양식을 기반으로 한다.

원래 부처는 자신의 이미지를 그리거나 조각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하지만, 대승 불교가 나중에 퍼지며 바뀌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불교의 메시지와 부처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그의 삶, 이야기를 시각적인 표현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기 석굴들의 내부에는 초기 소승 불교의 전통에 따라 부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부조와 벽화가 남았다면 대승 불교가 발달한 후기 석굴에는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벽화에 부처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불상 등을 볼 수 있다.
 

거대한 와불의 모습 /flickr

특히 26번 석굴은 가장 중요한 곳으로 꼽히는데, 대승 불교 법당으로 쓰였던 곳이다. 기대어 누워 있는 자세로 조각된 거대한 와불이 유명하다. 이 불상은 부처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묘사한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부처와 선녀들의 다채로운 벽화 /flickr

17번 석굴도 대승 불교 예술의 대표적인 예시로, 극락에서 내려온 음악가들의 모습과 선녀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잔타 석굴들 중에서 가장 표현이 풍부한 벽화가 있는 곳으로, 아잔타 석굴 벽화의 정수라 불리는 곳. 

이후에는 1-8번 석굴, 11번, 14-29번 석굴이 건설된다. 하리셰나 왕은 석굴 건설의 주요 후원자였다고 하며 대승 불교가 성행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놀라운 수준의 조각과 그림들이 제작될 수 있었다. 19번, 26번, 29번 석굴은 기도원으로 쓰였고 나머지 석굴들은 승려들의 거주지로 쓰였다. 모든 석굴들이 어떤 용도로 쓰인 것은 아니고, 하리셰나 왕이 죽은 이후 버려진 석굴들도 있었다.
 

1번 석굴 내부 /flickr

1번 석굴은 비하라 양식으로 마당과 베란다, 중앙 홀이 있다. 아름다운 그림, 조각 등이 눈에 띄는데 이 곳은 하리셰나 황제가 후원했던 정통적인 석굴이었다고 한다. 부처를 묘사한 벽화는 노란색과 녹색을 번갈아 섞어 사용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생생한 색감을 자랑한다. 아잔타 석굴은 건축 양식 자체로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내부에 있는 벽화와 조각도 가치가 크다. 인도의 불교 예술 발달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훼손된 부분이 있어도 오랜 시간 보존되어 온 부처의 모습 /flickr

아잔타 석굴은 마하라슈트라의 주요 관광 명소 중 하나다. 와고라 강을 따라 위치한 이 석굴은 인도 고대 역사를 나타내는 훌륭한 예시이고, 석굴 건축과 함께 종교에 대한 예술을 탐험하는 상징적인 장소다. 석굴을 구경하는 건 꼼꼼하게 본다면 약 2-3시간 정도 걸린다.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싶다면 겨울에 가는 게 좋다. 4-5월은 이 때 날씨가 매우 덥고, 우기에는 비가 많이 내려 날씨가 좋지 않다.

스핑크는 이 석굴을 '인간의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창의적인 업적 중 하나'로 평가한다. 아잔타 석굴은 인도 원주민의 문화, 사회, 종교 등을 알 수 있는 창구이며 다양한 학자들이 인류학의 관점에서 이 유적지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다. 유네스코는 굽타 왕조와 후대 왕조 방식의 예술적 업적 가운데 장식의 세련된 색감, 탄탄한 구성, 여인상의 놀랄 만한 아름다움이 아잔타 벽화에 잘 나타남으로써 인류 회화의 걸작이라 칭송했다.

인도는 오랫동안 동굴을 신성한 장소로 여겼다고 한다. 공예가와 예술가들이 모여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 오랜 시간 조각을 하고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거기엔 동물, 식물을 포함해 부처의 전생이라는 자타카를 빼곡히 볼 수 있다. 동굴을 찾는 사람들을 단순한 전생 이야기가 아닌 불교라는 한 종교 그 자체를 그림과 조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과거로 데려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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