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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만큼은 철저히 바보가 되어도 오히려 좋은 것, 코스튬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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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만큼은 철저히 바보가 되어도 오히려 좋은 것, 코스튬플레이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4.10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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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서울코스트릿' /김서진 기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4월 8일부터 9일까지 양재 AT 센터에서는 서울코믹월드가 주최하는 코스프레 온리 이벤트 '제4회 서울코스트릿' 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제29회 서울디저트페어 행사장 내에서 열렸으며, 매회 다른 테마로 개최되었다.

코스프레는 1930년대부터 이어져 온 취미 중 하나로 영화나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의 의상을 입고 노는 하나의 놀이이자 행위예술 장르의 일종이라 불린다. '코스프레'는 일본어식 영어로, 원래 영어로는 '코스튬 플레이'가 맞는 표현.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1월, 만화 동호인들의 모임인 아마추어 만화연합에 의해 '가장무도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당시 PC통신을 중심으로 코스프레 동호회가 생기고 활동이 활성화되었다. 1998년부터는 서울코믹월드가 매년 서울과 부산 등 여러 지역에서 열리며 코스프레 문화가 자리잡는 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첫 코스프레는 1939년 SF 컨벤션 행사 중 포레스트 J. 애커만이 입은 '미래인의상'(Futuristcostume)을 시발점으로 본다. 코스프레라는 단어는 198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졌고, 1990년대 이후 취미로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일본뿐만이 아닌 서양과 아시아 지역에서도 인기 있는 문화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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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무대 의상의 재현 /flickr

고대 그리스 마을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리기 위해 행사를 열었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입은 의상들은 지금의 무대나 연극 의상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유럽에서는 중세 후기 성경 이야기를 공연으로 다룰 때, 전통적인 비잔틴 궁정 드레스에 기독교 양식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의상으로 입었다. 또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 공연에서 의상은 가장 중요한 시각적 요소 중 하나였다. 1800년대 셰익스피어의 소설을 무대로 옮길 때 의상에 관해서는 더 많은 의견이 오고 갔다.

모두가 화려한 옷을 입고 자신이 누군지를 숨기는 가면을 쓰며 춤을 추는 가면무도회는 귀족들에게 일반적인 일이었고, 결혼식이나 궁정 생활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옛 궁정에서, 귀족들이 화려한 드레스 파티를 열었다면 1900년대 들어 일반 사람들도 직접 의상을 화려하게 입거나 컨벤션 행사에 참가해 영화의 캐릭터를 따라한 의상을 입었다. 

최초의 코스프레는 이 당시 1939년 SF 컨벤션 행사에서 등장한 '미래인의상'이며, 미국의 월드사이언스픽션 컨벤션의 영향을 받아 1978년 가나가와현 아시노코에서 제17회 일본 SF 대회의 가장무도회가 열린다. 지금은 SF 팬들로 구성된 <로레리어스>(ローレリアス)라는 그룹이 화성의 비밀병기라는 소설의 표지를 코스프레한 것을 일본 최초의 코스프레로 본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코스프레 /flickr

1980년대 초 작가 다카하시 노부유키는 LA월드콘을 다녀온 후 일본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인 'My Anime'에 만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변장한 팬들에 대한 내용으로 "Operation Cosplay"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당시엔 코스플레이라는 단어가 없었던 때였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만화 캐릭터로 분장하는 일이 많았지만 정작 이 행위를 묘사하는 단어가 없었다. 이 행위를 요약할 수 있는 용어를 고심하던 다카하시는 의상과 연극이라는 단어를 일본어로 혼합한 '코스플레이' 즉 코스프레로 불렀다. 

한국에 서울코믹월드가 있다면 일본에는 여름과 겨울 동안 열리는 코미케가 있다. 코미케 같은 경우는 수천 명의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이 수십만명의 팬들을 끌어 모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일본은 코스프레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가에서, 가게에서도 만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도쿄 아키하바라 지구에는 팬들을 위한 코스프레 관련 레스토랑이 있고, 직원들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코스프레를 한 채 손님들을 맞는다. 그 밖에도 아키하바라, 하라주쿠 등은 공공장소에서도 코스프레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발칸족의 인사 'Live long and prosper!'를 하는 모습 /flickr

북미에서 코스플레이어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행사는 미국의 샌디에이고 코믹콘과 뉴욕 코믹콘 등이 있다. 특히 미국의 '스타트렉 컨벤션'은 수십 년간 트레키( 《스타트렉》시리즈의 팬을 지칭하는 용어)들을 위한 코스프레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일본의 코스프레가 주로 만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위주라면 서양 코스프레의 기원은 주로 공상과학소설이나 판타지 팬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본의 코스프레가 주로 2D나 3D의 만화 캐릭터라면 서양의 코스플레이어들은 실사 시리즈의 캐릭터를 재현하는 경우가 많다. 

코스프레에도 참 다양한 종류가 있다. 애니메이션과 만화 캐릭터들의 코스프레, 아이돌이나 비주얼 락밴드 등의 코스프레, 심지어 남장과 여장 코스프레도 있고 밀리터리 코스프레 등 다양하다. 코스프레의 핵심인 의상은 매우 다양하며 단순한 옷들부터 기성품, 또는 자신이 직접 의상을 만들기도 한다. 개인이 의상을 직접 커미션을 받아 맞춤 의상, 가발과 소품을 만드는 것도 흔하다.
 

귀여운 코스프레가 눈에 띄는 아이들 /unsplash

기성품으로 판매하는 것을 사는 것보다, 자신만의 의상을 만드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가발부터 소품, 메이크업까지 모든 것을 직접 만든다. 할로윈처럼 단순히 어떤 모습만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코스프레 같은 경우는 어떤 캐릭터의 의상을 입을 때 그 캐릭터의 성격, 행동까지 비슷하게 하려 노력한다. 또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만든 오리지널 캐릭터를 코스프레하기도 한다.

코스프레라는 건 그 캐릭터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고, 애정이 깔려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코스플레이어들은 의상과 소품을 만드는 데에도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쏟는다. 의상 제작에는 장인 정신이라 불러도 마땅한 노력이 들어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플레이어들은 만화나 영화 속 갇혀 있던 캐릭터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다.

코스프레는 캐릭터가 가진 성격과 관련된 스토리,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의상, 캐릭터의 행동과 성격을 최대한 모방하는 것, 그리고 코스플레이어라는 행위자의 정체성 등을 포함한다. 우선 자신들의 좋아하는 캐릭터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다. 변장하는 재미도 있지만, 결국 그 캐릭터를 얼마나 애정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즐거움이 배가 될 수도 있다.
 

스타워즈의 스톰트루퍼 코스프레 /unsplash

코스프레는 현재 가장 독특한 문화 현상 중 하나다. 누군가에게는 별난 취미일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취미일 수도 있다. 코스프레는 19세기 대중문화의 부상과 함께 생겨난 특별한 문화이기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판타지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란 얼마나 재미있는 발상인가. 이 세상에서는 성별을 바꿀 수도 있고, 아이들과 어른이 열정을 공유하기도 한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코스프레라는 관심사 하나로 유대감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 

공통의 관심사는 그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힘을 가진다. 그 캐릭터는 코스플레이어에게 일종의 정체성을 부여해, 행위자를 보다 자신감 있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캐릭터의 의상을 입고 수많은 코스플레이어와 함께 있다는 건 마치 자신이 진짜 그 캐릭터가 된 듯한 느낌과 함께 뜻밖의 자신감을 북돋아 주기도 한다. 

대개 만화 캐릭터들은 현실에서의 보통 사람이 평소에 행동하지 않을 것 같은 행동을 자유롭게 한다. 예를 들어 세일러문의 '세라'나 웨딩피치의 '피치' 등 만화 속 주인공들은 활발하고 떠들썩한 성격이다. 만일 평소 수줍음이 많거나 내성적이거나 소심한 사람들이 이 캐릭터를 코스프레했을 때는 자신의 성격과는 반대로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즉 평소의 자신과는 다른 성격으로 하루를 보내며 소심했던 것이 점점 더 나아질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얘기다. 
 

코스플레이어들 /flickr
고스트 바스터즈! /pixabay

이 모든 건 기본적으로 코스프레가 '재미있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실제로 행사장을 가 보면 연령대도 다양하고, 남녀노소 모두를 볼 수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일본의 한 54세 아저씨가 코스프레를 하는 이유를 언급한 게시물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그는 행사장에 온 이유를 묻자 '이곳에서는 나의 취미,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이나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보여주면서도 비난을 받는 것이 아닌 오히려 환영을 받는다. 좋게 말하면 자기실현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저 바보가 되는 것이다'라며, '그런 날이 1년에 며칠간 있으면 좋지, 나는 바보가 되기 위해 왔다'라는 말을 남겼다.

갑자기 빨간 머리를 하고 농구 유니폼을 입은 채 길거리를 뛰어다닌다면 이상한 눈초리를 받을 게 뻔하지만, 코스프레를 할 수 있는 컨벤션 안에서는 그런 행동이 당연한 것이 된다. 60세의 할머니가 할리퀸 복장을 입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어렵지만, 코믹콘 행사장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건 있지만 그것이 나이나 사회적 지위에 가로막혀 즐기고 싶어도 즐기지 못하는 것이 있다. 코스프레는 그런 장애물 없이 자신이 좋아하던 캐릭터가 되어 돌아다닐 수 있는 취미가 된다. 
 

'제4회 서울코스트릿' /김서진 기자

밖에서 보면 무슨 바보짓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코스프레는 그런 바보들이 모두 함께 모여 즐기는 재미있는 행위로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가도, 나이가 들거나 하면 자연스럽게 이제 그런 건 하면 안 된다며 손가락질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는 일이 많다.

그러나 나이와 지위에 상관없이 자신이 사랑한 매체 속 캐릭터들을 반강제적으로 잊고 살다가, 다시 현실로 끄집어낼 수 있다면 이들은 괴짜든 바보든 이상한 사람이 되든 상관없게 된다. 4월 9일 열렸던 '제4회 서울코스트릿'에서 느꼈던 하나는, 코스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모두 즐거워 보였다는 점이다. 수많은 개인적인 취미들 중 코스프레도 그저 이들이 자연스럽게 즐기는 취미 중 하나일 뿐이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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