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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각] '나이스한 X새끼'의 매력을 경계해야 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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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각] '나이스한 X새끼'의 매력을 경계해야 하는 건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4.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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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의 대표적인 빌런, 박연진 /넷플릭스

(이 기사에는 '더 글로리' 파트 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피해자인 문동은이 가해자인 박연진에게 하는 모든 행동과 말을 통쾌해했다. 〈더 글로리〉 파트 투가 공개되고 나서는 학폭을 저지르고, 잔인한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른 모든 박연진과 관련된 패러디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채웠을 정도다. 

〈더 글로리〉의 주인공은 문동은이지만, 그 화제성만큼은 박연진이라는 캐릭터도 못지 않았다. 선했던 자가 학폭이라는 피해를 입고 가해자를 향해 복수하는 지극히 평범한 스토리 안에서 궁금한 것이라면 주인공이 대개 빌런에게 어떤 식으로 복수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그중에서도 문동은이 극중에서 한없이 불렀던 그 이름과 함께, 박연진이라는 일명 '빌런' 캐릭터는 이미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다. 아주 위험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박연진과 그 똘마니들이라는 빌런들의 캐릭터는 문동은만큼이나 보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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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빌런 중 하나인 조커 /flickr

어떤 줄거리가 있는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 하나의 이야기에는 영웅과 빌런의 대립이 존재했다. '빌런'이라는 단어는 원래 라틴어 '빌라누스(villanus)'에서 유래된 것으로, 빌라누스는 고대 로마의 농장 '빌라(villa)'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빌라누스들은 빌라에 묶인 사람들로, 이탈리아 고대 농장에서 주로 일을 했다. 빌라누스들은 차별과 곤궁에 시달리다 결국 상인과 귀족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폭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이들의 아픈 과거는 결국 악당으로 변하게 됐다는 점에서, 창작물 등에서는 ‘빌런’을 ‘악당’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사실 선역을 구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마블의 히어로들처럼 사람들을 구하고, 동정심을 갖고 있으며, 사람이란 존재가 선해지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 대조적으로, 선역과 반대편에 서 있는 빌런은 일반적으로 악의를 갖고 있으며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순수악이다. 자연히 선역은 빌런에 반하는 영웅의 위치에 서 있게 된다.

빌런의 근본적인 목적인 선역과 반대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며, 이들의 행동은 줄거리에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선역에 서게 만든다. 선역은 용기 있고, 정의를 따르며, 선함을 추구하지만 빌런은 이기심을 기본으로 잔인하고 교활하며, 정의에 반대하거나 부도덕한 행동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

옛날 이야기에서의 빌런은 단순히 흑과 백처럼 극단적인 느낌이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빌런은 마냥 나쁘고 악랄한 캐릭터라기보다는 조금 더 입체적이고 다채로워졌다. 흔히 빌런에게는 일명 '사연'을 주면 안 된다는 의견이 다수지만, 안타깝게도 다양한 미디어 매체에서 나오는 빌런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가진 사연이 있다. 마블의 타노스가,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가, 배트맨의 조커 등등이 그렇다. 
 

타노스 /flickr

마블의 타노스는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도 의견이 많이 갈렸던 빌런에 속한다.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며 어벤저스를 포함해 전세계를 멸망의 위기에 빠뜨리는 역할이지만, 막상 그 이면에는 타노스가 왜 전세계 인구의 절반을 자신이 날리려 하는지를 극심한 고뇌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타노스는 자신이 살았던 행성 타이탄의 유일한 생존자로, 인구는 증가하는데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자원 때문에 행성이 멸망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타이탄이 멸망하기 전 타노스는 차라리 행성 인구의 반을 랜덤으로 죽이자는 제안을 했지만 이 제안이 통할 리 없었고, 타이탄이 멸망하자 그때부터 타노스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강제로 인구를 절반을 줄였다면 그 나머지 절반이라도 살지는 않았을까 하는 강박이다.

타노스가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고 전세계 행성 인구의 반을 죽이겠다는 생각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타노스는 이 행동이 올바른 것이라 믿고 있다. 물론 외부에서 본다면 그저 미친 사람의 소리에 불과하지만, 이미 타노스에게는 왜 그 행동이 적절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사연이 있다. 자신의 행성이 죽은 것을 본 타노스에게는 그런 선택이 올바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타노스 자신도 랜덤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전제 때문에 자신의 목숨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선택이 마냥 빌런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스베이더 /flickr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커의 모습 /flickr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또한 영화사에 남을 전설의 악역이라 일컫는다. 은하 제국의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잔혹한 집행자, 포스와 다크사이드를 이용해 제다이와 반란군을 뒤쫓는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다스베이더와 싸우다가 팔이 잘리고 나서 '당신이 내 아버지를 죽였다'며 절규하자 다스베이더가 "I'm your Father"라 말하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DC 코믹스의 대표적인 빌런인 조커 또한 단순한 '미친 놈'이 아니다. 배트맨과는 철저하게 적대자이지만 책략가, 도둑, 싸이코패스 등 다채로운 성향을 갖고 있다. 게다가 기묘할 정도의 하얀 피부, 강렬한 초록색 머리카락, 귀까지 찢어져 있는 듯한 붉은 입술 등 흡사 멍청한 광대 같은 모습은 한번쯤은 대체 이게 어떤 캐릭터고 어떤 사연이 있는지를 관심갖게 한다.

현대의 빌런은 옛 악역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갖고 있지만 막연히 로봇처럼 미친 짓만을 하진 않는다. 빌런의 행동은 악행이지만, 그 동기에는 어딘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 애매한 목적이 있다. 철저히 빌런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야 이들의 악행의 동기는 더 위로 올라갔을 때 선역의 동기와 일치할 수도 있고,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낫게 만들고 싶어하는 욕망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이들의 행동은 본질적으로는 악이다. 빌런은 철저하게 악인처럼 게임을 하지만, 보는 사람들이 1%라도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이 나오기도 한다. 선역보다 더 영웅으로, 또는 흥미로운 존재로 떠받들어지기도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부도덕하고 부당할 뿐이다. 단지 빌런들의 목적이나 동기에 여러 이유들이 붙음으로써, '악당'이 아닌 인간다워짐을 꾀하는 것이다. 단순히 1차원적인 나쁜 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이들이 '어떻게', '왜' 악행을 저지르는지에 대한 살을 붙이며 독자가 마냥 이들을 미워할 수 없게끔 만든다. 
 

나이스한 개새끼, 하도영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하도영은 '나이스한 개새끼'로 박연진과 그의 똘마니들에 비하면 오히려 비난을 덜 받는 축에 속한다. 박연진이 감옥에 끌려가면서 절규할 때, 전재준이 보이지 않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차에 치일 때, 혜정이 더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울부짖을 때 보는 관객들은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들은 마땅히 죄를 저질렀고,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뒤늦게야 문동은이 내린 벌을 받았다. 이 빌런들은 자신들의 악행에 대한 대가를 당연히 치른 것뿐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도영은 관객들에겐 이 빌런들과 묘하게 다른 존재다. 박연진에게 속은 안타까운 영혼이고, 문동은 주위를 맴돌며 그를 사랑했던 이루어질 수 없는 감정을 품었던 사람이며, 자신의 애가 아님에도 예솔을 품고 미국으로 떠나며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그는 어딘가 '나이스'하다. 준재벌이라 불리지만 그의 태도는 분노를 토할 때에도 지극히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감정이 격해질 때에도 그 '나이스'함을 잃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문동은이 건넸던 삼각김밥을 혼자 먹는 장면에서는 심지어 안쓰러운 외로움까지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극중 말미에서 전재준을 시멘트로 만들어 버린 그의 모습은 수증기처럼 희미해진다. 한 영화 잡지에서는 하도영을 두고 '딸 예솔을 위해(정확히는 소유하기 위해)기꺼이 전재준을 제거하는 하도영의 죄는 <더 글로리>속 공분의 대상이 아니다. 그게 무섭다'라고 평했다. 이 관점은 아주 흥미롭다. 현남과 그의 남편처럼 돈 한푼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사는 것이 아닌, 재벌인 하도영이 사람을 죽이는 행동은 관객들에게 큰 일이 아니다. 돈도, 별 권력도 없는 전재준이 직접 학교 선생을 두들겨 패는 장면은 비웃음을 사지만, 돈과 권력이 있는 하도영이 전재준을 죽이는 것은 선역으로서 '전재준이 문동은을 죽을 정도로 괴롭혔기 때문에'가 아닌 그저 '자신의 딸을 빼앗아 가려 했기 때문에'라는 얘기다.
 

겉으로는 나이스한 모습들의 캐릭터지만.... /넷플릭스

와인의 맛을 모르는 비서가 자신에게 우산을 들게 했다고, 비싼 와인을 사서 마셔 보라 말하는 그의 모습은 미디어에서 흔히 비쳐지는 갑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모습에서조차 하도영은 흔한 '개새끼'가 아닌 '나이스한' 사람이 된다. 아랫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하대하는 그여도, 가해자라는 입장은 사라지고 '나이스'한 하도영의 모습이 남을 뿐이다. 하도영은 문동은이라는 인간이 학대를 당한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정과 연민을 느끼는, 선역이 애초에 아니다.

전재준을 죽인 하도영은 결국 살인자지만, 전재준이 당연히 죽어야 할 존재였기에 그가 전재준을 죽이는 행위 또한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지점이 무서운 것이다. 다른 빌런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에 비해, 하도영 또한 살인을 저질렀지만 각기 나름대로의 벌을 받은 다른 빌런들에 비해 그의 결말은 결이 다르다. 그는 박연진과 이혼했고, 딸 예솔도 되찾고,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떠나는 후련한 꽃길이다. 그는 예솔이 자신의 자식이 아님에도 딸을 끔찍이 사랑하는 모습으로, 또다른 매력을 샀다. 

드라마에서 현실을 찾는 건 바보같은 짓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라면 현실의 인물들 또한 드라마의 캐릭터들에 결국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박연진과 그의 일당들, 하도영까지 빌런이라 불리는 각각의 캐릭터들은 사실 끔찍할 정도로 매력적이기에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기에 더 경계해야 하는 것도 있다. 
 

빌런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 박연진 /넷플릭스

박연진 역의 배우 임지연은 한 인터뷰에서 '이 자품을 할 때 대본을 준비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미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란 말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박연진을 미워해야, 문동은의 입장이 더 이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그의 말처럼 악역은 선역에 공감하고 '선(善)'해야 함을 입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요즘은 오히려 그 빌런이 선역보다 매력적으로 포장되는 일 또한 많아지고 있다.

이따금 문동은을 연민하면서도, 사람들은 어디든 연진이의 이름을 찾으며 하도영이 사실 문동은을 많이 사랑했다는 사실에 열광한다. 하지만 빌런은 반드시 악행과 부도덕으로 남아야 하는 존재이며, 보는 관객 또한 하도영의 '나이스함'에만 물들어 잠겨죽지 않아야 함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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