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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구분은 불필요해진 시대, 젠더리스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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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구분은 불필요해진 시대, 젠더리스룩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3.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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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와 강혁의 캡슐 컬렉션 /삼성물산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최근 삼성패션연구소는 '올해 SS 시즌 남성복 트렌드'를 제시했다.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은 "편안함과 성별 구분을 넘은 젠더 플루이드 트렌드가 지속될 것"이라며 "스트리트 감성을 더한 프레피룩(미국 사립 고등학교 학생이 즐겨 입는 스타일)과 스포츠웨어에서 영감받은 일상 캐주얼룩 등 창의적인 패션이 주목된다"고 밝혔다. 

우선 다양성을 추구하고 성별의 경계를 두지 않는 젠더 플루이드룩을 제시했다. 부드럽고 유연한 일상복과 함께 성별과 무관하게 체형에 맞도록 조절 가능한 스트랩 및 여밈 등 디테일을 살렸다. 젠더리스 트렌드를 반영해 여성복의 실루엣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테일러드 슈트를 주목했다. 여성복에서는 최근 부상한 컷아웃 디테일, 짧은 재킷 기장, 드레시한 부츠컷 팬츠, 스커트 레이어드 팬츠가 인기라고. 
 

쿠엔틴 마티스 'The Money Changer and His Wife' /flickr
치마를 입은 남성 /flickr

플랑드르 화가 쿠엔틴 마티스가 1514년 그린 작품 '돈을 바꾸는 사람과 그의 아내'를 보면 그림에 묘사된 두 사람의 의상이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19세기까지 치마는 여성들만 입는 옷이 아니었다. 중세 유럽이나 르네상스 시절 치마는 남성복 종류로서 흔한 옷이었다. 남자아이들은 성별에 상관없이 치마를 입곤 했지만 19세기부터 이 행위는 점점 사라졌다. 성의 역할이 뚜렷해지기 시작한 건 산업화가 진행되고 가부장적 경향이 강해지면서부터다.  
 

여성들도 운동하기 편한 의류였던 블루머 /flickr

1824년, 미국 인디애나주 남서부에 위치한 뉴하모니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처럼 바지를 입는 것을 허용해 큰 논란이 일어났다. 1900년대 후반에는 블루머가 등장한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에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 여성 해방 운동가들이 여성복을 간소화하고 남성복과 비슷하게 만들자는 운동을 일으켰을 때 미국의 여성 개혁가 아멜리아 블루머가 처음 만든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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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루머는 짧은 드레스 안에 입을 수 있었던 바지로, 자유도가 높고 여유가 있어 구속형 의복으로부터 여성 의복의 전환이란 평가를 받는다. 20세기 들어 자전거, 테니스, 승마 등의 스포츠를 여성이 즐기게 되면서 블루머는 운동복으로도 입을 수 있게 된다. 이 진보적인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될 무렵 진행되었고, 전쟁 기간 동안 성 역할의 차이는 다시 벌어졌다. 남자들은 자동차를 수리하고, 축구와 사냥을 하는 등 활동적인 일을 했다. 아버지들은 아들을 남자로 키웠고, 축구나 차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들은 여자 같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남자들의 머리 스타일은 짧은 머리가 일반적이었고, 제임스 딘이나 존 웨인 같은 영화배우들은 남성다움의 상징으로 찬사를 받았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은 아이를, 가정을 돌봐야 하고 집안일을 책임지는 가정주부라는 역할이 이상적이라는 교육을 받았다. 여성복은 여성스러움이 철철 넘쳐흘렀고 여성적인 특징을 부각했다. 여성들은 무릎까지 오는 드레스와 힐을 신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매력적인 '여배우'로서 존재했다. 철저하게 나누어진 성 역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놀림을 받고, 심지어 따돌림까지 당했다고.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문화는 성 역할에 갇히도록 종용했다. TV에서는 남자들은 일하러 가고, 여자들은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영상으로 내보냈다.

1960년대 여성들은 성의 구별이 없는 의류라는 개념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1960년대는 성별, 계급 등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이 재정의되던 시기였다. 여성들이 턱시도를 입고, 남성들이 치마나 스키니 팬츠를 입기 시작했다.
 

망사도 이제 남성들에게는 익숙하다 /flickr

프로이트는 "사람을 만날 때 당신이 가장 먼저 하는 건 '남성인가, 여성인가?'라며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프로이트가 지금의 사람들을 보면 그 구별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사실 2000년 이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남자가 입는 옷과 여자가 입는 옷은 큰 차이가 있었다. 물론 여기엔 가부장적 경향이 컸던 것도 있다. 그리고 이젠 남자다운 스타일, 여자다운 스타일이란 말은 고리타분하고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말이 됐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에 따르면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언급한 수는 2014년 34만 4천55건에서 2018년에는 14만 4천521건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이에 반해 젠더리스 언급량은 같은 기간 700건에서 7만 7천113건으로 100배 이상 증가했다.

유니섹스라 하면 포용과 다양성을 뜻하는 상징으로, 의류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없어 남성과 여성 모두 착용이 가능하다는 걸 가리킨다. 그래서 사이즈도 다양하고 오버핏이 대부분이다. 젠더리스룩은 남녀 공용으로 입는 패션인 유니섹스룩과는 다른 개념으로 여성이 주로 착용하는 개념의 치마나 레이스, 벨벳 등을 남자들도 착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여성들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넥타이, 슈트 등을 자유롭게 착용한다.
 

스튜디오톰보이는 여성 브랜드로 시작했지만 남성 수요도 노리고 있다 /스튜디오톰보이

여성이 입는 옷, 남성이 입는 옷이라는 경계는 어느샌가 사라져 가고 있다. 젠더라는 건 현재 어떤 것보다 적절한 마케팅 도구가 되었다. 옛날엔 단순히 유니섹스룩이 유행했다고 하면 이제는 사회가 변화하고 소비자들이 패션 업계에 다양성과 포용성을 요구하면서 쇼핑의 형태가 바뀐 것도 크다.

이제는 패션 브랜드들이 빠른 속도로 남녀 공용인 유니섹스보다 젠더리스룩 디자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젠더리스는 SS23 뉴욕, 런던패션위크에서 선입견을 배제하는 중성적인 패션들을 선보이면서 하나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영국 백화점 온라인숍인 셀프리지는 3개 층의 매장을 성의 구별이 없는 쇼핑 지역으로 바꾸었다. 남성 마네킹들은 하이더 아커만, 앤 드뮐미스터 같은 디자이너들의 옷을 입었다.

독일 글로벌 리서치 플랫폼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Z세대 응답자의 85%, 밀레니얼세대의 75%가 젠더리스룩을 구매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다. 미국의 젊은 세대들이 더 많은 젠더리스룩을 구매할 것이라는 얘기다. 소비자들이 성별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하면서 업체들 또한 이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의류를 이것은 여성복, 이것은 남성복이라 굳이 경계를 나누진 않는다. 자연히 의류 업체나 브랜드는 성별에 따르지 않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맞추고, 이들이 의류를 구매하는 데 있어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다. 
 

아미 23SS 컬렉션 /삼성물산 
2023년 S/S 컬렉션 화보 /컴젠

남성복 '갤럭시'는 디자이너 강혁과 협업해 캡슐컬렉션을 출시했다. 남성복의 범주를 넘어 젠더리스 실루엣과 디자인적 포인트를 더했으며 오버사이즈 스타일, 구조적 실루엣, 볼륨감을 토대로 젠더리스한 남성복의 미래를 제안했다. 또 에스앤에이의 젠더리스 컨템퍼러리 브랜드 '컴젠'과 함께 한 2023년 S/S 컬렉션 화보에서는 컴젠의 메인 모델인 배우 이수혁과 배우 이이담이 트렌디한 젠더리스룩을 소화했다. 베이직하고 미니멀한 형태에 포인트를 주어 실루엣은 다채롭고 풍성해졌으며, 텍스처가 돋보이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고급스러움을 극대화했다. 
 

배우 봉태규의 젠더리스룩 /TVN
가수 에릭남의 젠더리스룩 /에릭남 공식 SNS

젠더리스룩은 고정관념을 반대한다. TVN 주말드라마 '판도라'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봉태규는 숏팬츠를 입었다. 상의와 하의를 가죽으로 매치했고 반스타킹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그는 2020년 드라마 '펜트하우스' 제작발표회에서 회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등장하기도 했다. 그는 SNS에 치마는 놀라울 정도로 신선하고 멋졌다며, 어떤 경계가 사라진다는 건 개인에게 놀라울 만큼의 자극을 주고 새로운 우주가 펼쳐진다는 말을 남겼다.

가수 에릭남은 “Skirt era starts now”라는 글과 함께 패션 브랜드인 톰브라운을 태그한 사진을 올렸다. 셔츠와 타이, 그리고 일반적인 바지가 아닌 주름치마로 감각적인 스타일을 선보였다. 남성들에게는 숏팬츠도, 치마도 더 이상 여성만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옛날에는 남성들이 치마 자체를 선택지에 넣지 않았지만 이제는 치마가 자신에게 어울릴지, 어울리지 않을지 고민을 하는 선택지의 하나가 되었다. 그동안 선택 자체에 존재하지 않았던 치마, 숏팬츠, 하이힐 등은 자신을 꾸미고 싶어 하는 남성들에게는 훨씬 더 많은 패션 스타일을 제공한다. 젠더리스룩이 여성에게도, 특히 남성들에게도 더 즐거운 이유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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