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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재료로 예술의 영역에 당당히 들어서다, 아르테 포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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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재료로 예술의 영역에 당당히 들어서다, 아르테 포베라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3.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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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섭: 시간의 항해’ /경남도립미술관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경남도립미술관(GAM)은 경남 통영 출신의 조각가 심문섭(1943~ )의 60년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심문섭: 시간의 항해’를 17일부터 6월 25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 1·2층 전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심문섭: 시간의 항해’는 심문섭이 60여년 전 뱃길을 따라 시작했던 오랜 예술항해 중 고향 경남에서 처음으로 닻을 내리는 대형 회고전으로 1970년대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던 그의 초기 실험 작품부터 각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 드로잉 그리고 2004년부터 현재까지 몰입 중인 회화 연작에 이르기까지 약 200여 점에 달하는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집중 조명한다.

작가는 조각, 설치, 사진, 사진 드로잉,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아우르며 장르의 카테고리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작업에 있어 일관되고 뚜렷한 방향성을 유지해왔다. 심문섭의 초기 조각 작품은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미니멀리즘(Minimalism) 일본 모노하(物派, Mono-ha)와의 영향관계 속에서 논의된다. 

그는 국제적 감각과 시대상을 공유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를 투영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태어나고 자란 경남 통영의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환경은 작가의 자연관에 큰 영향을 미치며 몸속 깊이 각인되어 현재까지도 작업의 원천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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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는 신문으로 만들어진 이 구를 토리노 거리에서 굴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flickr

미니멀리즘은 예술가의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며 단순하고 간결함을 추구하는 흐름이다. 또 일본의 모노하는 사물의 존재에 대한 탐구를 추구했고, 이우환 작가는 모노하를 두고 '어떤 긴장과 해방의 세계가 느껴지는 표현을 시도했다'고 평했다. 그렇다면 심 작가의 작품에서 언급되는 아르테 포베라는 어떤 흐름인가.

1960년대 중반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미술 운동인 아르테 포베라는 일상적이고 단순한 재료를 사용해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말한다. 이탈리아의 미술 비평가 제르마노 첼란트가 만든 용어로 '보잘것없는' 재료들을 의도적으로 활용한 미술을 뜻하며 1960년대 말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이 급진적인 경향을 보이던 때에 생겨났다. 개념미술, 환경미술과도 결합해 국제적인 운동으로도 퍼진 아르테 포베라는 이탈리아어로 '가난한 미술', 또는 '빈약한 미술'이란 뜻이 있다. 

전후 시기의 이탈리아는 1960년대 경제 호황, 즉 '이탈리아의 기적'을 실감하고 있었다. 당시 리라는 가장 안정적인 통화 가치였고 이탈리아인들은 자유와 독립을 만끽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은 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도전과 실험을 거쳤지만 그다지 오래 가진 않았다. 이어진 불신은 아르테 포베라의 출발을 야기했다. 
 

피에르 길라디 'Lady with a watermelon' /flickr

아르테 포베라는 이탈리아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일어났는데 밀라노, 로마, 메네치아, 나폴리 등 다양한 곳에서 일어났다. 이탈리아 제노바에 있는 갤러리아 라 베르테스카에서 전시한 '사유의 공간(The Space of Thoughts)'이란 이름의 전시회는 아르테 포베라의 공식적인 출발점이라 여겨진다. 용어를 만들고, 본격적인 지지자들 중 하나였던 제르마노 첼란트는 1967년과 1968년 두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아르테 포베라의 특징은 예술에 쓰인 재료들이 흙, 바위, 옷, 종이, 밧줄 등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었다는 점이다. 이 규칙은 일반적인 예술의 가치에 대한 도전이었고, 이탈리아의 산업화와 기계화를 비판하는 목적이기도 했다. 1950년대 모더니즘으로 인한 추상화의 반작용으로 아르테 포베라는 회화보다는 조각이나 설치미술이 더 많다. 이들은 현대의 기술이 전통을 지워버린다고 생각했고, 과학적인 합리주의를 거부했다.
 

루초 폰타나 'Spatial Concept: Nature' /flickr

아르테 포베라 관련 예술가들은 근대화가 이탈리아의 문화 유산과 관련된 모든 전통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이라 여긴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의 시간에 대한 감각을 흐뜨러뜨리기 위해 새로운 소재와 오래된 소재를 대조하고 병치하곤 했다.

아르테 포베라는 폐품이나 일용품을 비롯하여 여러 물체를 한데 모아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기법 및 그 작품을 뜻하는 아상블라주 운동과도 관련이 있다. 두 가지 운동 모두 당시 시대를 지배했던 추상화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추상화는 개인의 감정, 개인의 표현과 너무나도 관련이 깊었고 회화의 전통에 얽매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르테 포베라는 물성에 관심을 갖고, 일상 생활에서 차용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제안했다. 아르테 포베라에게 있어 일상적인 재료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다른 재료들에 비해 구하기 쉽고 가격 또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흙, 음식, 물, 바위 등의 재료를 사용하는 건 196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미니멀리즘의 감성과도 대조를 이루었다. 바위와 종이, 밧줄과 옷 조각은 산업화 이전 시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일반적이면서도 가공되지 않은 재료들이었다. 이들의 목적은 저렴한 재료들로 독특한 예술을 창조해, 만들어진 작품들이 현대와 전통을 아우르는 예술 세계에서 그 존재 자체로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야니스 쿠넬리스는 불이라는 소재를 즐겨 썼다고 한다 /flickr

예술가들은 조각 하나에도 틀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을 사용했고, 각각의 작품과 관찰자에 대한 상호 작용을 강조했다. 이미 예술계에서 존경받고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개념에 도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보편적인 재료를 쓴다고 해서 '가난한 예술'이라 불렸지만 이 운동을 단순히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끈 건 아니었다.

아르테 포베라의 주요 개념 중 하나는 모든 전통적인 관행과 재료의 제약에서 벗어나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간섭받지 않는 창의력은 아르테 포베라 예술가들 사이의 공통점을 만들었고 집단적인 정체성을 만들었다. 모든 것은 잠재적으로 예술 작품이 될 수 있고, 어떠한 매체나 기술도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가 즐겨 쓴 거울 /flickr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는 1960년대 초반 '거울'을 주재료로 쓰며 환상과 실제의 세계를 넘나드는 설치 작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청중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했다. 그는 전시장 바닥과 수직으로 접한 거울 위에 실물 크기의 실크 스크린된 인물 사진을 붙여 마치 실제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작품 앞에 선 관람자는 거울을 통해 자신이 거울 속 인물과 동일한 공간 속에 있음을 상기하게 되고, 거울 그림은 멈춘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시간 속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현재로서 존재하게 된다.

이렇게 실제와 허상의 날카로운 대비와 부동의 형태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나'란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그의 작품은 우리의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했다. 거울에 비친 사진은 마치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며, 어떤 식으로든 거울을 보는 사람들은 예술 작품의 일부가 된다. 모든 관객들은 자연히 예술 작품을 보는 동안 적극적인 자세가 된다. 
 

'누더기 속 비너스(Venus of the Rags)' /flickr

'누더기 속 비너스(Venus of the Rags)'또한 원래라면 비너스상에 경외심을 가졌을 청중들이 헌옷 속으로 들어가는 비너스상에는 어떤 존경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작가는 청중이 대상을 바라볼 때 어떤 환상에 둘러싸인 채 바라보고 있음을 꼬집는다. 피스톨레토는 회화와 조각, 퍼포먼스 등 여러 장르와 영역을 넘나들며 자기 반성적이고 예리한 현실의 비판 의식을 보여준다.
 

문 사이의 공간은 돌, 나무, 철제 통나무 및 납판으로 닫혀 있어 알려지지 않은 형이상학적, 초현실적 차원을 강화한다 /flickr

오늘날 야니스 쿠넬리스의 이름과 그의 미술가로서의 성취는 아르테 포베라 미술 운동과 거의 동의어로 취급되고 있다. 그리스에서 태어난 쿠넬리스는 스무 살에 로마로 유학을 가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그는 1964년 로마의 아르코 달리베르트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무제(열두 마리의 말)' /VernissageTV 유튜브

그는 다양한 물질, 살아 있는 것들을 작품의 재료로 썼다. 그는 그림 옆에 살아 있는 새를 놓고 그 너머의 세계를 떠올리게 했다. 1967년 아티코 화랑에서 연 전시회에서 살아 있는 새들이 들어 있는 새장을 전시했다. 관람객들 또한 갤러리 공간 속 살아 있는 일부가 되었다. 또 야니스는 1969년 오래된 차고에 말 12마리를 마치 자동차처럼 전시하며 살아 있는 동물들과 인연을 맺었다. 12마리의 말들은 갤러리 벽에 묶여 있었고, 이 전시는 지극히 파격적이었다.

잔디나 울타리도 없이 풀을 뜯어먹는 말들은 청중과 연결되어 있다. 청중들은 말들이 숨쉬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벽을 울리고 소음을 낸다. 그러나 갤러리는 지극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야니스는 12마리의 말들을 벽에 묶어 놓도록 했고, 말들은 이 공간을 채웠다. 야니스에게 있어 살아 있는 말들은 그저 살아 있는 그림이었고, 작품에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살아 있는 말들을 작품으로 전시했다.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에는 경계가 없다. 비평가들과 대중들 모두에게 엄청난 인기와 비난을 받았던 '무제(열두마리의 말)'은 예술이 어떤 재료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리며 아르테 포베라의 시작을 알렸다.
 

마리오 메르츠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네온 불빛 /flickr
'The Lens of Rotterdam' /flickr

마리오 메르츠는 소비주의 예술에 반발해 아르테 포베라 운동을 전개한 이탈리아의 설치 미술가다. 1966년까지 신문지, 병, 우산 등 평범한 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선보였고, 1970년대에도 개념미술이나 미니멀리즘에 반대해 폐품과 같은 일상용품을 재료로 썼다.

그는 건축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의 아버지가 건축가였던 것도 한몫했다. 그의 예술은 공간의 통일,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에 대한 감성을 전달한다. 그는 넓은 공간을 친밀하고, 인간적으로 느끼게 했다. 그는 '우주는 구부러져 있고, 지구 또한 구부러져 있다'고 말하며, 커다란 곡선의 모양을 가진 설치물을 작업하기도 했다. 그는 네온 불빛을 배열한 작품을 통해 에너지의 전달을 알리고, 독립적으로 우뚝 선 이글루 같은 유기적인 구조물을 주로 선보였다.
 

피에르 길라디 'Ipogea' /flickr

아르테 포베라는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후기 예술 운동들에 영향을 주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개념 미술의 발전에 대해 기여했다고들 한다. 원시적이고 보잘것없는 재료를 써서 미국의 미니멀리즘을 비판했고 도시화와 산업화를 풍자하기도 했다. 고도로 가공되고 만들어진 것과, 산업화 이전의 것들을 같이 배치해 처음 봤을 때 누가 봐도 황당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아르테 포베라 운동 속 예술가들은 일상에서 발견되는 재료 자체의 물성을 탐구하고, 삶과 예술에 대한 사색과 성찰을 작품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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