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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는 겨울이 아쉽다면 따끈한 한 냄비 어떠세요, 포토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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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는 겨울이 아쉽다면 따끈한 한 냄비 어떠세요, 포토푀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2.1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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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푀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낮엔 영상을 훌쩍 넘는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벌써 겨울이 끝나가는 모양새에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직 꽃샘추위가 기다리고 있어 방심하면 안 될 듯하다.

겨울에는 대개 따뜻한 음식을 많이 먹게 되는데, 넓은 통에 여러 재료를 때려 넣고 오래오래 푹 끓여 먹는 음식들이 특히 인기가 많다. SNS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배추찜 같은 경우도 자신이 원하는 재료를 넣고 계속 끓여 먹는 수프나 스튜의 형태로 인기가 많았다.  

프랑스에도 여러 스튜 요리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요리가 있다. 소고기, 채소 등을 물에 넣고 약한 불에 장시간 푹 고아 만드는 스튜인 '포토푀'다. 감자, 양배추, 소시지, 브로콜리, 카레 등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재료를 한솥에 넣고 끓여 먹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재료가 돋보이는 포토푀 /flickr

『옥스포드 음식 안내서』는 포토푀를 '프랑스 요리의 상징이자 식사 그 자체'라 부르며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에서는 포토푀를 프랑스의 국민 음식이라 부른다. 삶은 고기와 야채를 넣은 이 프랑스의 고전 요리는 프랑스어로 '불 위의 냄비'라는 솔직한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겨울철 농부들이 오래 먹었던 음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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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사람들이 값싸고 질 낮은 고기, 감자, 양파, 당근 같은 채소들과 여타 넣을 수 있는 재료들을 냄비에 넣고 끓여 만들었다. 이 음식은 농부들이 추운 계절을 나는 데 도움을 주는 스튜가 됐다. 약한 불에 오래 끓이는 건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포토푀는 오래 걸리면 하루종일 끓이기도 한다. 푹 끓이면 국물이 마치 젤라틴처럼 변하는데, 이때 완성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프랑스에서는 오래 끓인 포토푀의 부드러운 고기를 와인 한 잔과 함께 먹는 것을 즐기며, 시간을 들인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음식이라 생각한다고.
 

우아한 마나님이 끓이는 포토푀 /flickr

옛날부터 포토푀가 모든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은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고기를 살 돈이 없었고, 심지어 직접 가축을 길렀어도 이들이 포토푀를 먹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16세기 말에 이르러 종교 전쟁 동안 흉작과 전염병이 프랑스를 휩쓸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포토푀 같은 음식은 꿈에도 못 꾸었고 부유층이나 귀족들의 테이블 위에 오르는 음식이 되었다.

프랑스의 앙리 3세는 요리사에게 '아주 부드러운 고기'를 준비해 달라고 하면서 포토푀를 주문했다고 하며 프랑스의 작가 마담 드 세비뉴가 쓴 편지에서도 그가 포토푀를 즐겨 먹었으며, 그의 딸에게도 포토푀를 추천했다는 내용이 있다. 작가 도느와도 스페인에서 포토푀를 담을 접시를 찾는 게 어렵다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고.
 

고기가 돋보이는 포토푀 /flickr

부유층들이 포토푀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면서 레시피의 개발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계절을 타는 채소들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포토푀에 넣는 고기는 왕실 부유층의 취향들을 반영하게 됐다. 저렴한 돼지고기나 베이컨은 점점 없어져 가고, 대신 품질 좋은 소고기와 닭고기가 재료로 빈번하게 사용됐다. 이후 18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포토푀는 점점 범위가 넓어졌다.

본격적으로 산업 경제가 발달하면서 프랑스에서는 시골의 지주, 도시의 부르주아 계급으로 구성된 새로운 '중산층'이 등장했다. 이들은 포토푀에 넣을 높은 품질의 고기를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이 있었다. 이들의 취향은 부유층들의 요리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고, 자신들의 음식으로 포토푀를 변화시켜 갔다. 조금씩 포토푀는 '국가적' 음식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부르봉 왕정 시기에는 프랑스 요리의 중심이었고, 프랑스의 천재 요리사라 불렸던 마리 앙투안 카렘은 자신의 요리책의 첫 요리를 포토푀로 선택했다.

포토푀의 인기는 다른 나라에도 퍼졌고,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미국 로레인을 통과하는 프로이센 군대가 끓이는 포토푀의 맛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멈췄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프랑스 경제가 회복되면서 포토푀에 넣을 수 있는 고기들을 저렴하고 쉽게 얻을 수 있게 되고, 이 음식은 노동자 계층의 집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소시지와 배추가 푹 익은 포토푀 /flickr

지금은 소고기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햄, 닭고기, 소시지도 포토푀에 자주 넣어 먹는다. 채소도 계절에 따라 쓰거나, 혹은 지금 냉장고에 있는 재료라면 상관없지만 프랑스에서는 대개 당근과 순무를 필수적인 재료로 쓴다. 프랑스인들은 포토푀를 딱딱한 빵과 샐러드와 함께 먹거나, 또는 반찬처럼 식사로 먹는다.

수프처럼 육수를 먼저 먹은 다음 나중에 고기와 야채를 따로 꺼내 먹는 것도 일반적이며 가벼운 레드 와인이 특히 포토푀에 잘 어울린다고 한다. 포토푀는 요리에 필요한 기술적인 면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간단한 요리다. 그럼에도 최고의 요리사들이 즐겨 하는 요리 중 하나다. 주방에서 이젠 흔히 볼 수 없는, 10시간 이상 걸리는 긴 시간과 기다리는 인내심이라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라고.

포토푀에서 중요한 건 재료로 무엇을 넣는 것이 아닌, 어떻게 요리하냐는 것이다. 너무 짧게, 또는 너무 길게 끓이면 질겨진 고기와 너무 익은 채소로 인해 뒤죽박죽인 요리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잘만 끓이면 각가의 재료가 조화롭게 뒤섞여 독특한 맛을 내는 깊은 요리가 된다. 
 

포토푀에 들어가는 기본 재료들 /flickr
포토푀 한 그릇 /flickr

약 4인분의 포토푀를 만들기 위해서는 약 1kg의 고기가 필요하다. 야채는 원하는 대로 넣어도 되며 당근, 양파, 부추 등이 필요하다. 채소는 먹기 좋게 썰고, 포토푀에 필요한 양념은 소금과 후추 정도면 된다. 물에 고기와 소금 양념을 해 끓이고, 끓기 시작하면 물 위에 뜬 지방과 찌꺼기는 걸러 낸 다음 다시 찬물을 넣어 끓이며 맑은 국물이 나올 때까지 세 번 정도를 반복한다.

국물이 맑아지면 채소를 넣고, 끓으면 불을 약하게 줄인다. 뚜껑을 덮지 않고 계속 끓이며, 이 과정에서 표면에 뜨는 찌꺼기는 계속 제거한다. 약한 불로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다. 야채가 푹 익으면 꺼내고 나서 고기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계속 끓인다. 3시간에서 최대 5시간까지 걸리며, 부드러워진 고기가 부서지지 않게 주의한다.

고기가 다 익으면 건져내 야채와 함께 두고, 육수에 있는 모든 재료들을 꺼내고 나서 육수를 체에 거르면 맑은 빛깔을 볼 수 있다. 포토푀의 육수는 고기와 야채를 먹기 전 일반적으로 수프처럼 먹으며, 색을 조금 내고 싶다면 구운 양파를 쓰기도 한다. 귀찮다면 간장을 써도 된다. 수프로 나오는 육수를 먹고 나면 고기와 야채를 모든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따뜻한 접시에 나눠 담고 즐긴다. 
 

코시도 /flickr

스페인에도 포토푀와 비슷한 요리가 있다. '코시도'라는 요리는 중세 시대 안식일 기간 동안 먹을 수 있도록 여러 재료를 혼합해 만든 음식인 아다피나가 변형되어 현재의 요리인 '코시도 마드릴레뇨가' 됐다. '코시도'는 스페인어로 '삶다' 또는 '찐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인 ‘코세르(coser)’의 과거분사형 명사로 ‘삶은 요리’라는 뜻이다. 코시도 또한 여러 영양분을 한꺼번에 섭취하면서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어 노동자들의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

코시도도 포토푀처럼 들어가는 재료가 비슷하다. 코시도의 주재료는 병아리콩, 감자, 양배추, 당근 등의 채소에 돼지고기나 소고기, 닭고기를 넣어 만든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그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전날 준비해야 했다.

코시도는 스페인의 '포토푀'란 말이 있다. 안식일을 앞두고 유대인 요리사들은 따뜻한 솥 안에 재료들을 넣고 빵 반죽으로 틈을 봉했다. 내용물은 불 위에서 천천히 익어 토요일 아침 기도가 끝날 때까지 따뜻하게 유지되었다. 이후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코시도에 베이컨, 햄 등을 추가함으로써 자신들의 개종을 알렸다.
 

커다란 냄비에 끓이는 코시도 /flickr

이전까지 코시도는 집에서만 요리하는 음식이었지만 현대의 스페인 사람들은 식당에서도 코시도를 자주 먹는다. 코시도는 병아리콩이 필수로, 사전 준비로 병아리콩을 약 12시간 정도 따뜻한 물에 담가두어야 한다. 이때 약간의 소금을 넣어 불려 놓으며, 고기는 찬물에 담가 핏기를 뺀 후 소금에 절여 몇 시간 동안 재워 둔다.

만드는 방법은 우선 육류와 마늘 구근, 월계수잎, 후추열매를 넣고 육수를 낸 후에 병아리콩을 넣고 함께 45분 정도 푹 끓인다. 다른 냄비를 준비하여 당근 등의 채소를 별도로 볶은 후에 고기와 병아리콩 삶은 냄비에 부어 다시 10분 정도 끓여내면 요리가 완성된다. 코시도는 19세기에 특히 인기를 끌었는데, 양이 많으면서도 값도 쌌고 도시 선술집에서 밥을 먹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좋은 식사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포토푀 한 그릇 /flickr

프랑스 사회에서 함께 요리하고 먹는 건 시민들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사람의 영혼은 맛있는 음식과 와인, 즐거운 대화와 함께 교감이 가득 찬 테이블 위에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들 한다. 테이크아웃 음식, 냉동식품이 가득한 요즘 하루 내내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해야 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신기한 일인 것이다. 이제 추위도 점점 수그러져 가는 날씨 속 친구들을 모아 놓고 와인 한 병과 함께 불 위에 올려놓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냄비 하나,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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