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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펄프로 만드는 영감의 활동, 파피에 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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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펄프로 만드는 영감의 활동, 파피에 마세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1.0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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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탈 같은 파피에 마세 작품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어린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우고 싶을 때, 또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혼자 재미있게 놀 거리가 궁금할 때 여러 공예 관련 놀이를 찾게 된다. 그중에서도 종이와 풀로 만드는 '파피에 마세'는 여타 공예 종류에 비해 이름이 생소한 편이다.

조금 옛날, 어렸을 때 초등학교에서 종이나 신문지를 갖고 풀을 이용해 종이탈을 만들어 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파피에 마세는 종이나 펄프로 구성된 공예의 한 종류로 녹말 풀이나 접착제로 겹겹이 쌓이고 붙여 작품을 만든다. 공예 예술의 목적 말고도 전통적이거나 의례적인 건축 재료로도 쓰인다.
 

파피에 마세 작품 /flickr

파피에 마세는 기본적으로 종이를 이용해 붙이고, 찢고 겹쳐 형태를 만들고 층을 쌓아 건조해 작품을 만든다. 이름만 들어 보면 프랑스어지만 이 기술은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헬멧을 만들 때 종이를 쌓아 붙였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 겹의 옻칠로 종이를 코팅했다. 이 기술은 일본과 페르시아로 무역을 통해 퍼졌다. 당시 파피에 마세는 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던 때였다. 이후 프랑스인들이 이 기술을 '파피에 마세'라 명명한 후부터 서구 국가로 전파되었다.

파피에 마세는 다양한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술이다. 한나라 시대 중국인들은 종이 만드는 법을 배운 후에 금방 파피에 마세 기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전사들이 쓰는 헬멧, 거울 케이스, 담배 상자 또는 의식용 마스크를 만들기 위해 이 기법을 썼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을 묻는 관과 죽음을 상징하는 가면 등을 만들 때 파피루스나 리넨, 회반죽을 섞어 썼다. 페르시아에서는 상자, 쟁반, 케이스 등을 만드는 데 썼고 일본과 인도에서는 갑옷과 방패에 장식적인 요소를 추가하는 데 파피에 마세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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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에 마세 기법을 적용한 해골 모양의 탈 /flickr

멕시코에서는 영화 '코코'를 연상케 하는 전통 공예품들이 있는데 이 또한 파피에 마세 기법이 적용된 작품들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멕시코에서는 기념일이나 '죽은 자의 날'을 위한 다양한 장식품을 만드는 데 쓴다.

멕시코에서 파피에 마세는 식민지 시대 도입되었는데 원래는 교회에서 쓸 물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페드로 리나레스 같은 멕시코의 대표적인 종이 공예 작가들이 만드는 작품들이 예술로 인정받았다. 최근 세대에서는 인기가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정부와 공공 기관에서 이 문화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유럽에서 파피에 마세 기법을 적용한 작품은 약 100여 년 정도 대규모 생산이 지속되었다가 1870년대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현재 대량 생산은 중단되었지만 파피에 마세 기법의 공예는 지금도 인기가 많고, 관련된 장인들 또한 많다.
 

채색하는 모습 /The Hindu 유튜브

파피에 마세라고 하면 예술적으로 따졌을 때 인도 카슈미르의 파피에 마세가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잘 팔리는 물건 중 하나로, 고급 수공예품 시장의 일부를 차지한다. 파피에 마세는 카슈미르의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의 형성 과정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카슈미르에서 이슬람 종교의 출현과 함께 파피에 마세도 시작되었다고. 

헝가리 태생의 영국 고고학자, 탐험가 오렐 스타인은 이슬람교가 점진적으로 카슈미르에 들어왔다고 전한다. 라다크 출신의 왕자 린차나는 원래 불교였지만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카슈미르의 첫 무슬림 통치자인 술탄 사드루딘이란 이름으로 통치를 하게 되면서 이슬람교는 점점 퍼져나갔다.

파피에 마세는 카슈미르 제8대 술탄에 의해 들어왔다고 하지만, 카슈미르인들은 파피에 마세가 대중화된 것은 이슬람 학자이며 시인이었던 '미르 사이드 알리 하마다니'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는 이란 출신인 700여 명의 장인들과 함께 카슈미르에 들어왔고, 이들이 카슈미르에서 카펫을 제작하는 방법, 목공예, 파피에 마세를 포함한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수공예품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형태를 조각하는 모습 /The Hindu 유튜브

파피에 마세는 주로 카슈미르의 이슬람 분파인 시아파에 의해 많이 만들어졌다. 이들 중엔 전통적으로 이 직업에 계속 종사해 온 장인이 많으며, 그들의 조상은 하마다니와 함께 이주한 장인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누군가는 그들의 혈통과 이주한 사실 등을 문서화해 남겨두는 반면 누군가는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나 이야기로 치부하기도 한다. 물론 카슈미르에 있는 수많은 공예가들이 모두 이란에서 온 장인들의 혈통에서 나온 건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 파피에 마세는 카슈미르와 이란과의 역사적인 연결고리를 증명한다. 

카슈미르의 파피에 마세는 처음에는 전통적인 카슈미르 종이로 만들어졌다. 여기엔 당시 종이 산업이 발달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종이 펄프로 작품을 만드는 장인을 '사흐타사'라 부르는데, 이들이 작품의 기초 구조를 만들면 '나카시'라 불리는 장인이 디자인하고 연마하는 작업을 맡는다.

이 둘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며 작품을 만든다. 우선 사흐타사가 모든 재료의 혼합물을 손으로 주무르고 조각을 한 다음 표면을 부드럽게 만든다. 그럼 나카시가 이를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바꾸는 작업을 맡는다. 디자인은 빨간색과 녹색의 사과, 석류, 복숭아 등의 과일 모양이나 연꽃, 물고기, 새, 사슴, 토끼 등의 생명체를 주 모티브로 한다.
 

파피에 마세는 여성도 참여할 수 있다 /The Hindu 유튜브

장인들의 작업장은 동시에 공예품을 파는 장소이기도 했다. 카슈미르의 겨울은 길고 혹독해, 사람들은 주거지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고 이것이 가내수공업을 촉진시키는 계기도 됐다. 작업장이 집에 있으니 아이들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공예품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업장과 판매하는 가게가 자연스럽게 분리되었고, 카슈미르의 수도와 상업 지역에는 판매장이 많지만 작업장은 주로 시아파 인구들이 사는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고.

장인들의 수는 줄고 있지만 남아 있는 장인들은 여전히 작품을 만든다. 여성은 마지막으로 작품의 광택을 내는 작업 등을 돕는다. 여성이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주요 디자인은 수석 장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달걀 모양의 파피에 마세 작품 /The Hindu 유튜브

카슈미르의 파피에 마세 전통은 대부분 가족 대대로 내려온다. 장인들은 대개 그들의 아버지에게, 할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파피에 마세는 보통 집안의 어른들이 가르치지만 가족 구성원이 아닌 외부인들도 이 기술을 배우는 데 제한은 없다. 이 기술과 관련 없는 일을 했어도, 다양한 이유로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는 단순히 파피에 마세에 대한 관심으로,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이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한다. 어쨌든 파피에 마세는 카슈미르 사회 속 여러 문화와 전통이 깊게 스며들어 있고, 수 세기 동안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통이 이어지는 오래된 문화유산 중 하나다. 
 

파피에 마세 기법으로 완성된 작품 /로베르토 베나비데스 공식 SNS

수년간 종이는 다양한 재료와 혼합되어 파피에 마세를 형성해 왔다. 오늘날 사람들이 파피에 마세에 쓰는 재료는 물, 밀가루, 하얀 접착제 등으로 일반 사람들은 놀이나 공예품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만, 현대 예술가들은 파피에 마세로 예술 수준의 작품을 만든다.

미국 텍사스 출신의 아티스트 로베르토 베나비데스는 파피에 마세 기법을 즐겨 쓰는 대표적인 작가다. 그는 세밀하고 화려한 조각을 만들기 위해 주로 종이를 재료로 쓴다. 그는 "종이에는 매우 관대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물에 살짝 적시면 내 뜻대로 만질 수 있지만, 건조가 되면 다시 견고해진다"란 말을 남겼다. 
 

작업하는 모습 /flickr

전통적인 파피에 마세는 종이를 작게 찢어 접착제나 풀을 바르고, 그 혼합물을 틀에 붙여 층을 쌓으며 형태를 만들어 조각하는 식이다. 건조되면 표면은 단단해지고 내구성이 강해진다. 거칠어진 표면은 사포로 매끄럽게 만든 뒤 채색을 한다. 반죽한 종이 더미를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할 때 틀로 그릇이나 풍선 등을 쓴다. 오늘날의 파피에 마세는 종이뿐만이 아닌 신문지도 재료가 되며 접착제와 물을 혼합해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채색하기 전 /flickr
파피에 마세 기법으로 만든 동물탈 /flickr

일반인들도 쉽게 만들 수 있게 '파피에 마세'라는 재료가 시중에 나와 있어 이것만 따로 구입해도 작품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파피에 마세 한 봉지에 접착제 역할을 하는 물을 넣고 밀가루 반죽하듯 주무르면 커다란 반죽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주무르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 있다. 이후 만들고 싶은 모양의 뼈대나 물건에 반죽을 치덕치덕 붙여 형태를 만든 후에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하루 이틀 건조한다. 반죽이 마르면 마치 빳빳해진 닥종이나 한지처럼 되는데, 마른 반죽을 배경으로 여러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을 하는 식으로 작품을 만든다.

파피에 마세는 과정 자체도 찰흙 놀이나 지점토 놀이처럼 쉽고, 칠하는 물감 또한 재료에 제한이 없어 만들기 쉬운 편이다. 무엇보다 파피에 마세의 좋은 점은 모든 연령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놀이라는 점이다. 손으로 반죽을 주물주물 하는 것 자체가 흥미를 유발하며, 손을 쓰는 것은 두뇌 발달에도 좋다. 미적 감각 같은 건 없어도 멋진 도예가처럼 도자기를 만들 수는 없어도 집에서 파피에 마세로 작품 하나를 뚝딱 만드는 건 가능하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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