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7 21:15 (토)
[기자생각] '분노 포르노'의 시대는 그만
상태바
[기자생각] '분노 포르노'의 시대는 그만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12.28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유 없이 눈사람을 부수고, 방송은 대중의 비난을 유도한다
눈사람,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들 /unsplash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최근 며칠간 전국에 많은 눈이 내렸다.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눈이 많이 내려 사람들은 그동안 쓰지 못했던 장난감을 들고 나가 신나게 눈오리를 만들기도 하고, 가지각색의 다양한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까지 보면 평범한 일상 같지만 소중하게 만들어 둔 눈사람을 불특정의 누군가가 무참히 망가뜨리는 일이 생겨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다른사람이 만든 것을 망가뜨리면 만든 사람의 분노와 화를 살 것을 아는데도 스스럼없이 눈사람을 망가뜨리며, 오히려 눈사람이 무너지는 것을 본 사람의 분노를 보는 것을 즐긴다. 

뭔가 특색있게 잘 만든 눈사람이라면 구경을 하거나 사진을 찍는 등 그저 눈으로 보고 지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사고일 것이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남이 애써 만들어 둔 눈사람을 파괴하며 다른이가 분노하는 것을 즐기고, 방송가에서는 시청자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관심을 유도한다. 어떤 이는 이러한 상황을 '분노 포르노'라 칭한다.
 

공들여 눈사람을 만들었지만, 누군가가 다 부숴버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심리학 전문가들은 이 현상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눈사람을 부수는 이유로 ‘관심’과 ‘성취감’을 들었다. 임 교수는 “평소 삶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순간이 없고, 타인의 관심을 받을 기회도 부족한 사람이라면, 성취감의 반대 급부로 눈사람을 부수는 장난을 했을 것”이라 말했다. 즉 인생에서 뭔가 이룬 건 없는데 관심도 받고 싶고 성취감도 들고 싶어 눈사람을 부수며 자신을 치켜세운다는 것이다. 

핸드메이커는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적인 기사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화·예술 작품이 ‘기회의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핸드메이커와 동행해 주세요.

후원하기

특히 이 행동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대상도 눈사람에서 점점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노성원 한양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런 행태가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특성이라며, “한두 번의 장난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주변에 해를 가하는 행동은 병적 증상으로 타인의 행복과 권리를 무시하고, 이를 해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이른바 ‘사이코패스’로 불리는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눈사람 /unsplash

눈사람을 이유 없이 부수는 사람들의 특징은 눈사람이 부서져서 슬퍼하거나, 또는 화를 내는 사람들의 반응을 즐긴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남이 만든 것 또는 만들어진 결과물이 보편적으로 귀여운 것이라면 봤을 때 걷어차서 부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말 그대로 반사회성이란 요소로 인해 인생을 살면서 즐길 것이라곤 보통 사람들이 즐겁게 눈사람을 만들 때, 밖을 돌아다니며 남들이 만든 눈사람을 부수며 희열을 느끼는 것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들에게는 폭력성만 존재할 뿐 누군가의 감정과 행위에 공감하는 공감 능력이나 사회성은 없다. 그러나 또 눈치는 있어 일명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들의 '눈사람 부수기'를 하지 못한다. 만일에 눈앞에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 덩치 큰 격투기 선수라든지,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고 있을 것 같은 덩치의 사람이라도 과연 그 사람의 눈앞에서 눈사람을 부술 수 있을까? 그럴 일은 단언컨대 없다. 

임 교수의 말처럼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은 그저 아무것도 성취한 게 없고, 타인의 관심을 받아본 적도 없어 남이 정성스럽게 만드는 것을 부숨으로써 성취감을 느낀다는 얘기다. 그리고 눈사람이 부서져 분노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 것마냥 기뻐한다. 이들은 눈사람을 부수는 행위에 화를 내는 것을 지켜보며 더 많은 눈사람을 부수고 싶어할 것이다. 현실에서 철저히 도태되어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저 화풀이하는 수단으로 기껏 눈사람을 부수는 이들이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해 기뻐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결혼지옥' /MBC

눈사람을 부수며 사람들의 분노를 자신의 기쁨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방송가에는 시청자들의 분노를 끌어내어 관심을 받는 프로그램들로 인해 시끄럽다. 최근 MBC ‘오은영 리포트- 결혼 지옥’(이하 ‘결혼지옥’)과 ‘고딩엄빠2’는 나란히 2주간 재정비 시간을 가진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방송된 '결혼지옥'에서는 재혼 가정의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는 장면에서 아동 성추행이 논란이 있었다. 아이는 싫다고, 하지 말라는 표현을 계속 했지만 새아빠는 이것이 놀이이며 애정 표현이라 칭했고 이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고딩엄빠2' /MBN

또한 '고딩엄빠2'는 10대에 부모가 된 고딩엄빠들이 사회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 함께 돕는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취지와 달리 미성년자 여성과 성인 남성의 교제와 임신 이슈가 꾸준히 다뤄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제작진은 “다음 주 28일 30회 방송을 마지막으로 시즌 2가 마무리된다”며, “약 2주간의 재정비를 거쳐 내년 1월 18일 시즌 3가 방송된다”고 전했다.

두 프로그램 내용 모두 어떻게 보면 '가관'이다. 한 프로그램은 명백한 아동 성추행의 장면을 여과 없이 그대로 내보냈고 전문가와 패널들도 마치 어른을 아이 달래듯 건네는 조언에 그쳤다. 또 한 프로그램은 미성년자 여성과 성인 남성의 임신과 교제 사실을 다루면서도 심리 상담가와 이혼 전문 변호사를 세워 놓고 그저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두루뭉실한 자세가 다다.

심지어 각각의 내용은 더 가관이다. '결혼지옥'은 아동 성추행 논란에 공식입장으로 "해당 가정의 생활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고 전문가 분석을 통해 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부의 문제점 분석에만 집중한 나머지 시청자분들이 우려할 수 있는 장면이 방영되는 것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고 전했다. 해당 장면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일반 시청자들도 잘 아는데 하물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짠 제작진들은 정말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는 말로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그 장면 자체가 문제라는 걸 정말 몰랐다면 참담한 수준일 지언대, 일반 시청자들도 다 범죄라며 비판하는 그 장면을 편집하고 내보낸 제작진들이 정말 몰랐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고딩엄빠' 또한 미성년자 여성과 미성년자 남성도 아닌, 미성년자 여성과 성인 남성의 교제와 임신 소재를 꾸준히 내보내고 있다. 심지어 여성은 이제 미성년자가 아닌 나이인데도 마치 '고딩'인 것처럼 교복을 입혀 방송에 내보내며, 30살이 넘은 성인 남성에겐 '고딩아빠'라는 기괴한 호칭을 붙인다. 
 

20살 여성에게 교복을 입힌 건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MBN

두 프로그램 모두 시청자들의 분노를 사는 건 흔히 '범죄'라 생각 할수 있는 일을 방송에 여과없이 내보냈기 때문이다. 아동 성추행 장면의 결론은 가족의 사랑과 용서로 포장하며 전문가의 조언은 사실상 별 도움이 되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나이 많은 성인이 미성년자를 임신시키는 것이 통상적으로 범죄인 것이지만(현행법 상 만 16세 경우 쌍방 합의된 관계에서는 처벌이 어렵다) 같이 잘 살겠다고,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으로 미화시킨다. 진짜 책임이라면 성인이 미성년자에게 그런 짓 자체를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책임이다.

성인과 미성년의 만남, 임신을 비정상적인 관계가 아닌 격려가 필요한 가족이라며 아름답게 포장하려 애쓴다. 그저 '그루밍 범죄'라 불러도 할말이 없는 짓을 일반 시청자들에게 이해하라며 들이미는 것 자체가 또다른 폭력이라는 것을 제작진들만 모르는 듯 하다. 18세 미성년자가 10살 연상의 교회 선생을 만나 임신해 출산하는 것이 시트콤이고, 사랑꾼인가? 방송은 이렇듯 누가 봐도 유해한 것을 아무렇지 않다며 시청자들에게 전시한다.

'결혼지옥'이나 '고딩엄빠' 모두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2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오전까지 아동 성추행 논란이 불거진 ‘결혼지옥’ 방송분과 관련한 시청자 민원은 총 3729건 접수됐다고 한다. '결혼지옥'과 '고딩엄빠'는 당분간 휴식기를 가진다고 선언했다. 과연 프로그램을 만든 이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하고 잘못을 반성하고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눈사람을 부수고 받는 비난을 즐거워하는 그들처럼 오히려 관심을 받고, 시청률을 올렸다고 이것이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다.

자극적인 방송은 대중의 분노를 유발한다. 방송국과 광고주들은 대중의 분노를 먹고 자란다. 그것이 관심이고, 방송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광고를 계속 내보낼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지옥'에서의 아동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했고, '고딩엄빠'에서 미성년자가 성인과 사귄다 해도 말리는 사람은 결국엔 없었다. 이 현상에 대해 대중들은 분노하고, 비난한다. 그럼 방송사들은 더욱 분노할 거리를 던진다. SNS나 유투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다. 욕을 먹으면서도 일명 '어그로'를 끄는 채널이 수백, 수천 개다. 그래야 관심을 받을 수 있어서다.

방송국은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자극적인 방송을 내보내고, 대중들에게 더 물어뜯고 분노하라면서 먹잇감을 던진다. 이제 더이상 '양심냉장고' 같은 공익 예능에 사람들은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국은 대중의 측은지심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대신 분노를 일으켜 이슈화되는 것을 선택한다. '고딩엄빠'가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시청률이 2.5~2.9%를 넘나들어 효자 노릇을 톡톡이 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청률만 된다면 욕을 먹어도 이미 상관없다. 분노는 조금 있으면 사그라들지만 시청률은 돈이 되어 광고를 유지하고 누군가의 주머니에 돈을 넣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 개탄스러운 현실을 주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제2의 '결혼지옥'과 '고딩엄빠'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방송국은 대중의 '관심'의 끝에 있는 돈을 위해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거나, 또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시청자들이 건강한 컨텐츠를 더 소비하든지, 그 분노를 방송에 지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프로그램을 폐지하라고 소리를 치든지. 무작정 쏟아내는 분노는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배를 불릴 뿐, 해당 프로그램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나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제 시청자들도 자극적인 프로그램에서 조금 더 물러나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씻어야 하지 않을까.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이나 자극적인 것만을 좇는 일부 방송 프로그램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줘야 할까. 더 화를 내 달라고, 분노해 달라고 말하는 이들에게는 그냥 '무관심'을 표하자. 분노와 화를 내는 것을 원하는 이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지 말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모르고, 오히려  아주 잠깐의 '재미'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노를 희열로 소비하는 '분노 포르노'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서라면 대중 또한 얼마든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핸드메이커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독립 매체로서 주체 적인 취재와 기사를 통해 여러 미디어·포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광고 배너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독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핸드메이커가 다양한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된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후원을 통해 핸드메이커는 보다 독자 중심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미래를 관통하 는 시선으로, 독립적인 보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이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에는 항상 핸드메이커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가들 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 다. 앞으로 핸드메이커가 만들어갈 메이커스페이스에 동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단 한차례라도 여러분의 후원은 큰 도움이 됩니다. 후원하기 링크를 통해 지금 바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응원해 주세요.

후원하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경기도 시흥시 은계로338번길 36 3층 301호(대야동)
  • 대표전화 : 070-7720-2181
  • 팩스 : 031-312-10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리
  • 법인명 : (주)핸드메이커
  • 제호 : 핸드메이커(handmaker)
  • 등록번호 : 경기 아 51615
  • 등록일 : 2017-08-23
  • 발행일 : 2017-08-15
  • 발행·편집인 : 권희정
  • Copyright © 2024 핸드메이커(handmaker).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handmk.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