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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공예품의 정수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국보 지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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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공예품의 정수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국보 지정 예고
  • 곽혜인 기자
  • 승인 2022.10.31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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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 수습 장면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곽혜인 기자] 문화재청은 백제시대 공예품의 정수로 알려진 보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31일 밝혔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서탑 심주석(탑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기둥)의 사리공(불탑 안에 사리를 넣을 크기로 뚫은 구멍)에서 나온 유물로, 2018년 6월 27일 보물로 지정됐다. ‘사리장엄구’란 사리를 불탑에 안치할 때 사용하는 용기나 함께 봉안되는 공양물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에서는 639년(백제 무왕 40년) 절대연대를 기록한 금제 사리봉영기와 함께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 사리내호,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았던 청동합 6점을 포함해 총 9점이 발견됐다.

특히 얇은 금판으로 만들어진 금제 사리봉영기에는 앞·뒷면에 각각 11줄, 총 193자가 새겨져 있다. 내용은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시주해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639)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것으로, 그동안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진 미륵사 창건설화 가운데 구체적인 조성 연대와 주체가 밝혀져 있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계기가 됐다. 서체 역시 곡선미와 우아함이 살아있는 백제서예의 수준과 한국서예사 연구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보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금제 사리봉영기 앞면 /문화재청
좌)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 사리내호 /문화재청
우) 청동합 /문화재청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 사리내호는 모두 몸체의 허리 부분을 돌려 여는 구조로, 동아시아 사리기 중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형식이다. 전체적으로 선의 흐름이 유려하고 양감과 문양의 생동감이 뛰어나 기형의 안정성과 함께 한국적인 멋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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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합은 구리와 주석 성분의 합금으로, 크기가 각기 다른 6점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하나에는 ‘달솔 목근’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통해 달솔이라는 벼슬(2품)을 한 목근이라는 인물이 시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명문을 바탕으로 시주자의 신분이 백제 상류층이었다는 사실과 그가 시주한 공양품의 품목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와 함께 백제 최상품 그릇으로써 희귀성이 높다. 또한 그릇을 만들거나 문양을 넣을 때 사용하는 돌림판인 ‘녹로’로 성형한 동제 그릇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유기 제작 역사의 기원을 밝혀 줄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백제 왕실에서 발원해 제작한 보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석탑 사리공에서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되어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에 있어 절대적 기준이 되고 있다. 제작 기술면에서도 최고급 금속재료와 백제 금속공예 기술의 역량을 응집돼 있어 한국공예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유물로서 위상이 높다. 이에 문화재청은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에 대해 7세기 전반 백제 금속공예 기술사를 증명하고 동아시아 사리공예품의 대외교류를 밝혀주는 자료로써 역사·학술·예술적 가치가 매우 크므로 국보로 지정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 /문화재청

한편, 같은 날 문화재청은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 「손소 적개공신교서」,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 고려·조선 시대 전적, 근대 등록문화재 6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으며 비지정문화재인 「봉화 청암정」, 「영주 부석사 안양루」,「영주 부석사 범종각」 3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

보물로 새롭게 지정 예고된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과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은 모두 고려 11세기에서 12세기 동안 만들어진 불교경전이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은 총 100권으로 구성된 『유가사지론』 중 권66에 해당하는 고려 11세기 자료로, 해당 권차는 현재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는 유일본이다. 고려시대에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해 읽을 수 있도록 치밀하게 토를 단 석독구결(한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문장 사이에 단 구결)이 표시되어 있어 국어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 이 구결을 통해 고려시대 유식학에 대한 연구 수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불교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 표지 및 내지 /문화재청
「불조역대통재」 전체 14책 /문화재청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은 총 120권으로 이루어진 『대방광불화엄경소』의 권88에 해당하는 자료로, 1087년 우리나라에 목판이 전래되면서 국내에서 간행되기 시작했다. 이후 1424년 일본이 여러 차례 대장경판을 요구할 때 다른 경판들과 함께 일본에 하사했으므로, 그 이후에 찍은 간행본은 국내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귀중본이다. 지정 예고 대상은 판본 및 인쇄상태로 보아 12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며, 동일 판본 가운데 유일하게 알려진 권차이다. 또한 보존상태가 우수하고 조선·중국·일본 삼국의 불교교류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있다.

원나라 승려 염상이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1334년까지 고승들의 전기나 일화들을 시간 순으로 엮은 책 「불조역대통재」 22권 14책 역시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이는 1430년 간행된 판본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 새로 새긴 목판을 1472년 인수대비의 발원으로 찍은 것이다. 인수대비가 왕과 왕자, 공주 등 왕실의 안녕과 장수를 위해 발원하고 간행한 것으로, 전체 권차가 남아 있는 완질본일 뿐 아니라 현재까지 국내에서 두 건만 확인되어 자료적인 완전성과 함께 희소성 또한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사시찬요」 /문화재청

「사시찬요」는 중국 당나라 말기인 996년 한악이 편찬한 농업 서적으로, 춘하추동 사계절을 12달로 나누고 월별의 농법과 금기 사항, 가축 사육법 등을 수록해 놓은 책이다. 조선 초기 농정과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도입했으며, 세종 때 『농사직설』이 편찬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농업경영에 참고한 대표적인 관련 서적으로 활용됐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대상은 조선 전기까지 사용한 고려 서적원 제작 활자를 바탕으로 조선 초에 사용한 금속활자인 계미자 중자를 함께 사용해 인쇄한 책이다. 「사시찬요」 중 지금까지 한·중·일 삼국에서 공개된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 서지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학술적으로 인정돼 왔다. 간행 시기는 계미 중자의 사용례로 보아, 1403년부터 1420년 사이에 해당하는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 금속활자를 사용해 「사시찬요」를 인쇄하게 된 배경에는 단지 농업 활동의 증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극복이라는 의지도 포함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이 책은 민생을 위한 농업의 증진, 고려와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사실 뿐 아니라 간행 당시의 사회경제사의 배경까지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손소 적개공신교서」 /문화재청
좌) 「이봉창 의사 선서문」 국가등록문화재 /문화재청
우) 이봉창 의사 한인애국단 입단 기념사진, 독립기념관 제공 /문화재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손소 적개공신교서」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동마을에 대대로 거주해 온 경주손씨의 후손 손소가 하사 받은 적개공신교서 1점이다. 적개공신은 1467년 세조가 이시애의 난(1467년 세조의 집권정책에 반대해 무신 이시애가 주동하여 함경북도 길주에 일어난 반란)을 평정한 공신 45명에게 내린 교서로, 이 중 2등 공신 장말손, 3등 공신 정종의 교서가 이미 보물로 지정된 바 있다.

해당 교서에는 수급자명, 공적내용, 특전과 포상, 등위별 공신명단 그리고 발급일자가 기록돼 있고 마지막 발급일자 위에 ‘시명’이라는 어보를 찍었다. 전반적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16세기 관련 의궤에 수록된 교서의 재질과 장황(표구) 형식 등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새롭게 꾸미거나 후대의 보수 없이 550년 넘게 원래의 형태를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유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조선 전기 중요 사건 가운데 하나인 이시애의 난 및 그에 대한 국가의 조치, 공신으로 책훈된 인물, 공신에 대한 각종 은전 및 특전에 대한 구체적 사례 등에 관한 역사적 내용을 제공하고 있어 조선시대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공신교서 문서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고, 현전하는 적개공신교서나 관련문서들과 비교할 때에 보존상태가 가장 우수한 자료이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1931년 12월 13일에 작성된 것으로, 이봉창 의사가 일본에 대한 항쟁을 다짐한 국한문혼용 선서문이다. 이 선서문은 김구가 결성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인 한인애국단에 제출된 것으로, 이 날 서명을 마친 이봉창 의사는 안중근 의사의 막내동생이자 한인애국단 임원이었던 안공근의 집에서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선서문을 가슴에 단 채 기념사진을 촬영했고, 이 때 찍은 흑백사진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이듬해 훙커우공원에서 의거를 단행한 윤봉길 의사가 작성한 선서문과 함께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유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봉화 청암정 전경 /문화재청
영주 부석사 안양루 전경 /문화재청

보물이 되는 봉화 청암정(경상북도 봉화군)은 안동권씨 충재종택 경역 내에 위치한 정자로, 「청암정기」 등의 역사 문헌에 1526년 충재 권벌이 살림집의 서쪽에 세운 사실이 기록돼 있다. 경상도 지역을 대표하는 丁자형 평면을 가진 정자 건축으로, 16세기 조선시대 사대부의 주거문화를 대표하는 사례이다. 또한 자연 암반 위에 높은 기단을 쌓아 마루와 온돌을 구성했으며, 영쌍창과 공포의 특징은 17세기 이전에 건축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주 부석사 안양루(경상북도 영주시)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부석사 내에 자리하고 있는 문루이다. 안양루는 국보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위치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다포계 팔작지붕의 형식을 가진 16세기 사찰 문루 건축의 대표적 사례이다. 문헌자료에 의하면, 본디 ‘강운각’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1555년 화재로 인해 소실된 이후 1576년 ‘안양루’를 그 자리에 지은 것으로 확인된다. 사찰의 진입 방향을 꺾어 무량수전 영역에 진입하도록 배치한 점, 누마루 아래로 진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 공포와 대들보의 구성 등에 조선 중기 또는 그보다 이전에 사용된 오래된 기법이 남아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역사·예술·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사찰 문루 건축이다.

영주 부석사 내에 자리하고 있는 범종각은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의 중층 익공계 팔작지붕 건물 형식을 가진 18세기 대표 종각 건축이다. 「청량산유록」에 의하면 ‘범종각 내부에 쇠종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19세기 이후 해당 범종의 소재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종각이 사찰 좌우에 배치되는 것과 달리 사찰의 진입 중심축에 위치한 점, 아래층 가운데 칸을 지나 계단을 거쳐 안양루로 통하는 형식인 점, 지붕의 포와 포 사이에 놓여 무게를 받치는 부재인 화반을 덩굴나무 모양의 파련초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점, 지붕 내부에 범종각 재건 당시 것으로 판단되는 단청이 남아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학술적 가치가 충분한 사찰 종각 건축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보물로 지정 예고되는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 7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또한 보물로 지정된 「봉화 청암정」, 「영주 부석사 안양루」, 「영주 부석사 범종각」 3건이 체계적으로 보존 및 관리될 수 있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할 계획이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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