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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울미술관 2022 유휴공간 프로젝트 ‘(오, 수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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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울미술관 2022 유휴공간 프로젝트 ‘(오, 수줍음)’
  • 곽혜인 기자
  • 승인 2022.10.26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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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휴공간 프로젝트 ‘(오, 수줍음)’ 포스터 /북서울미술관

[핸드메이커 곽혜인 기자] 미술관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유휴공간 프로젝트 ‘(오, 수줍음)’이 지난 21일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됐다.

북서울미술관은 국민들이 미술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도록 2017년부터 전시장이 아닌 미술관 곳곳에 작품을 전시하는 유휴공간 프로젝트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이번 프로젝트는 ‘수줍음의 예술’을 주제로 숨어있는 작품들을 탐색하며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새로이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당신은 수줍음을 많이 탑니까? 숫기 없는 아이들을 보면, 숨어버리고 싶고 도망가고 싶어 하지만 그리 멀리 가지는 않습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사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적응하기 위해 한 발 뒤로 물러난 채 관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수줍음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데 익숙하지만, 낯설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수줍음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 수줍음에 주목한 네 명의 작가가 있습니다. 루카 부볼리와 김범, 시오번 리들, 에란 셰르프는 1993년 뉴욕에서 함께 만들었던 전시 《(oh, shyness)》를 2022년 서울로 소환했습니다.

- 전시 서문 中

루카 부볼리, 김범, 시오번 리들, 에란 셰르프 4명의 작가가 참여한 1993년 전시 ‘(oh, shyness)’는 뉴욕 소호에 위치한 갤러리 3곳의 주 전시장이 아닌 부차적인 공간을 전시 장소로 정했다. 지하, 뒷방, 서고와 같은 숨겨진 공간을 연결하는 관람 방식이 전시의 특징으로 제안된 것이다. 당시 작가들은 수줍음에 대해 ‘조심스럽게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획일주의적 사회 시스템을 수용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전시에서 드러내고자 했다. 전시 제목 역시 괄호와 소문자로 표기해 수줍음의 감수성을 담아냈다.

올해 유휴공간 프로젝트에서는 미술관 2층 로비에 ‘시대의 방’과 ‘리딩 룸’을 만들고 1993년 전시에 출품되었던 작품, 기록 영상, 책자 등을 다시금 선보인다.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네 작가의 작업 근저에 공통으로 존재했던 수줍음의 태도가 어떻게 지속되고, 또 변화되었는지 조망해볼 수 있다.
 

좌) 루카 부볼리 <슈퍼히어로-아님 표지> 1992-1993, 플라스틱 봉투, 튜빙, 플렉시글라스, 찢어진 옷가지, 사탕 포장지, 철사, 압정, 228x447x109cm, 개인소장 /서울시립미술관
우) 김범 <무제(문 두드림 #3)> 1993/2022, 혼합재료, 240x102x33cm /서울시립미술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멀티미디어 예술가 루카 부볼리는 슈퍼히어로의 영웅적 모습 뒤 연약하고 가녀린 내면을 비닐봉지와 헌옷, 철사, 사탕 껍질과 같은 재료로 표현해 왔다. 최근 부볼리는 전염병과 환경오염이 창궐한 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쓰는 의심 많은 우주비행사 캐릭터 아스트로다우트(Astrodoubt)를 창조했다. 미술관 1층 물품보관함의 작은 창문을 통해 아스트로다우트가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 있는 장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진지하지만 장난스러운 방식으로 인간 지각이 근본적으로 의심되는 세계를 다루는 김범은 2층 로비에 미술관 문과 똑같이 생긴 문을 만들어 설치했다. 이 문에는 노크 소리를 내는 스피커가 내장돼 있으며 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미술관 카페에 전시한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언뜻 보기에 카페 주방에 있는 전자레인지에서 통닭이 조리되는 것 같지만, 사실 통닭 모양의 조각이 돌아가는 영상이 모니터에서 상영되고 있다.
 

좌) 시오번 리들 <잘못된 안도감> 2006/2022, 압정 253개, 43.18x706.12cm /서울시립미술관
우) 에란 셰르프 <알베르스와 함께 II> 1993/2022, 고무줄, 못, 옵셋인쇄(텍스트: 에란 셰르프), 가변 크기, 작가 소장 /서울시립미술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오번 리들은 재료와 환경에 대한 미묘하고도 섬세한 인식을 바탕으로 공간에 개입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리들은 지하 1층 복도에 ‘잘못된 안도감’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를 253개의 압정으로 형상화해, 우리가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바로 우리의 불안한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곳에 있다고 말한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에란 셰르프는 문학작품 등장인물을 인용해 텍스트 밖에서도 계속되는 인물의 삶을 상상한다. 셰르프는 언어나 문화를 번역할 때 우리가 처하는 감정 속에서 수줍음을 읽어낸다. 작가에게 번역이란 대상에 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신 그 대상에 가깝게 되어가는 과정이다. 미술관 2층 조각 테라스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셰르프의 테이프는 한 지점만 고정된 채 바람에 휘날린다. 이는 구역을 가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여기서 수줍음은 무언가를 말함에 있어서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고, 열려 있고자 하는 작품의 구현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전시장을 벗어나 수줍은 얼굴을 내미는 네 작가의 유휴공간 프로젝트 ‘(오, 수줍음)’은 2023년 1월 29일까지 북서울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핸드메이커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독립 매체로서 주체 적인 취재와 기사를 통해 여러 미디어·포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광고 배너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독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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