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8 20:35 (일)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갓 쓰고 米國에 公使 갓든 이약이’
상태바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갓 쓰고 米國에 公使 갓든 이약이’
  • 곽혜인 기자
  • 승인 2022.10.19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갓 쓰고 米國에 公使 갓든 이약이’ 전시 포스터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곽혜인 기자] 한·미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관련 기록물을 살펴보는 전시 <갓 쓰고 米國(미국)에 公使(공사) 갓든 이약이> 특별전이 오는 12월 13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된다.

올해는 한·미 수교 140주년이자,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유물 「미국공사왕복수록」과 「미국서간」이 국가문화재로 등록된 해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주요 출품작인 두 유물은 1887년 미국 주재 외교 사절로 파견된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1841~1905)과 그를 수행했던 이상재(1850~1927) 서기관의 업무와 생활에 대해 기록된 자료이다. 

「미국공사왕복수록」은 미국정부와 직접 주고받은 문서와 외교활동 참고사항을 담고 있으며 「미국서간」은 이상재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것으로, 당시의 미국 상황과 공관의 임대료, 청나라로 인한 업무 수행의 어려움 등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 자료들은 서양 국가 중 최초로 조선이 워싱턴에 개설한 공사관의 실상과 경인철도 부설 초기 자료 및 자주적인 외교 활동 노력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이번 전시는 두 기록물과 관련 자료를 종합적으로 구성해 주미공사 박정양과 공사 관원 일행이 펼쳤던 초기 외교 활동을 살펴보는 자리로, 전시 구조물과 그림 요소 등을 곳곳에 활용해 관람객이 마치 주미조선(대한제국)공사관에 실제로 방문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연출했다.

Prologue. 새로운 세계와 마주하다

조미조약, 조선, 1882년 이후, 27.8x18.7cm, 복제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국립고궁박물관
보빙사 일행, 조선, 1883년, 13.0x15.0cm,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국립고궁박물관

미국에 대한 조선의 인식은 개항기의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변화했다.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이후 미국은 조선을 강제로 개항하려 한 무지한 오랑캐, 즉 양이(洋夷)였다.

1882년 조선은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다각적 외교 관계의 필요성을 느끼고 서양 국가와는 최초로 미국과 조미수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조약 체결 이후 1883년 미국으로 파견된 보빙사(報聘使)는 미국의 발전된 도시와 기술을 경험했다.

보빙사 대표 민영익(閔泳翊)이 미국을 ‘광명 세계’라 칭할 만큼, 조선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미국은 ‘오랑캐 나라’에서 ‘배워야 할 나라’로 탈바꿈했다.

- 전시 서문 中

1부. 자주 외교를 향한 노력, 첫 발을 내딛다

초대 주미조선공사관원 일행, 조선, 1888년, 28.2x41.5cm, 연세대학교 동은의학박물관 소장 /국립고궁박물관
좌) 미국공사왕복수록, 조선, 1887-1891년, 25.3x17.8cm, 국가등록문화재 /국립고궁박물관
우) 미국서간, 조선, 1888년, 29.0x20.5cm, 국가등록문화재 /국립고궁박물관

1887년 조선은 중국의 내정간섭을 견제하고 자주 국가임을 알리기 위해 박정양을 초대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하고 미국에 파견하려 했다. 그러나 청나라가 파견을 반대하며 간섭을 해오자, 청의 3가지 요구사항인 영약삼단(另約三端)을 준수한다는 조건 하에 공사 일행을 파견하게 된다.

박정양 공사 일행은 언어와 문자가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고군분투했다. 이들은 청국 공사관을 통하지 않고 고종의 국서를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해 조선이 자주국임을 알렸다. 또한 미국에 상주하면서 주미조선공사관을 개설하고, 미국 실정을 살피며 대미 외교의 기반을 마련했다.

1부 '자주 외교를 향한 노력, 첫 발을 내딛다'에서는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 공사 일행이 청나라의 간섭 속에서 1888년 1월 워싱턴 D.C.에 상주 공사관을 열고 독자적인 외교를 펼치고자 한 모습을 조명한다. 아울러 미국의 근대 시설과 제도를 돌아보고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낯선 나라에서 노력한 주미공사 일행의 일상생활을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주요 출품작은 ▲워싱턴 D.C.에서 촬영된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 일행 사진' ▲수행원이자 서화가였던 강진희가 최초로 그린 미국 풍경인 '화차분별도' ▲고종과 순종의 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각각 그렸던 '승일반송도'와 '삼산육성도' ▲'미국공사왕복수록'과 '미국서간'을 비롯해 박정양이 남긴 기록을 정리한 '죽천고' 등이다.

2부. 본격적인 외교 활동을 펼치다

대한제국기 전차, Angus Hamilton, Korea, 1904 /국립고궁박물관

주미공사관원 일행은 미국의 각종 외교 행사에 참석하고 주요 기관을 살피며 경험을 쌓았다. 이들의 경험은 근대 전환기 조선의 개화 정책 추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박정양의 후임인 제2대 대리공사 이하영은 1889년 2월 주미조선공사관을 워싱턴 D.C. 로건 서클(Logan Circle)에 위치한 두 번째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 건물은 공사관원이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본격적인 외교 활동을 할 수 있는 근거지가 됐다. 박정양 공사와 그 일행은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당한 1905년까지 16년 동안 외교 활동을 펼쳤다.

2부 '본격적인 외교 활동을 펼치다'에서는 박정양 공사가 청나라의 압력에 의해 조선으로 소환된 후 1889년 2월 두 번째 상주 공사관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외교 활동을 펼치는 주미공사들의 미국 언론 소개 모습을 살펴본다. 대한제국기 근대적 통신시설과 체계를 나타내는 지도인 '우전선로도본', 전등이 설치된 궁궐 및 전차 사진 등을 통해 조선에 도입된 근대 문물의 사례를 소개한다.

Epilogue. 미국 속의 한국, 주미조선(대한제국) 공사관

두 번째 주미공사관(재미국워싱턴조선공사관지도), 1889년 5월 /국립고궁박물관

미국 워싱턴 D.C.에 개설됐던 주미조선공사관은 조미수호조약 체결에 따른 성과물로, 현재 남아있는 주미조선공사관은 한·미 외교의 초창기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지 교민 사회와 대한민국 정부 등 각계각층에서 이 공사관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이어갔고, 2012년 10월 문화재청이 공사관 건물을 매입해 다시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공사관 관리와 운영을 위탁받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고증 조사 및 보수·복원 공사 등의 사업을 추진한 끝에 2018년 5월 공식적인 개관이 이뤄졌다.

현재 워싱턴 D.C.에는 한·미 외교 활동의 초기 근거지인 주미대한제국공사관과 오늘날 외교의 장인 주미대한민국대사관이 공존하고 있다. 이들 외교공관은 한·미 외교의 역사를 보여주며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시의 마지막 에필로그 '미국 속의 한국, 주미조선공사관'에서는 현재 워싱턴 D.C. 로건 서클에 남아있는 두 번째 공사관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선보인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고립에서 벗어나 근대로 나아가려 했던 시기에 박정양 공사와 이상재 서기관 일행의 외교적 노력을 관람객이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며 "국민 누구나 이를 경험할 수 있도록 문화재청 유튜브와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전시해설 영상 및 가상현실(VR) 전시실을 공개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바란다”라고 전했다.

한·미 수교 140주년 기념 특별전 <갓 쓰고 미국에 공사 갓든 이약이>는 오는 12월 13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핸드메이커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독립 매체로서 주체 적인 취재와 기사를 통해 여러 미디어·포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광고 배너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독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핸드메이커가 다양한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된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후원을 통해 핸드메이커는 보다 독자 중심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미래를 관통하 는 시선으로, 독립적인 보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이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에는 항상 핸드메이커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가들 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 다. 앞으로 핸드메이커가 만들어갈 메이커스페이스에 동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단 한차례라도 여러분의 후원은 큰 도움이 됩니다. 후원하기 링크를 통해 지금 바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응원해 주세요.

후원하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경기도 시흥시 은계로338번길 36 3층 301호(대야동)
  • 대표전화 : 070-7720-2181
  • 팩스 : 031-312-10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리
  • 법인명 : (주)핸드메이커
  • 제호 : 핸드메이커(handmaker)
  • 등록번호 : 경기 아 51615
  • 등록일 : 2017-08-23
  • 발행일 : 2017-08-15
  • 발행·편집인 : 권희정
  • Copyright © 2024 핸드메이커(handmaker).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handmk.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