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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의 군 면제 이슈와 전주대사습놀이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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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의 군 면제 이슈와 전주대사습놀이의 상관관계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10.1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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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경연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이것은 몇 개월도 더 지난, 생각보다 꽤 오래전의 일이다. 어떤 아이돌 그룹의 군 면제라는 이슈를 두고 한 국회의원이 라디오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병역 혜택을 주는 제도가 총 42개가 있는데, 여러 콩쿠르나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병역 혜택을 준다는 얘기였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묻힌 말이지만 그중에서 인상 깊은 말이 있다. "콩쿠르나 발레 경연 대회에서 우승해도 면제를 해 주며,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우승을 해도 면제를 해 준다"는 말이다. 이런 대회들에서도 우승을 하면 군 면제를 해 주는데 국위선양을 하며 해외 대회에서 상을 탄 가수에게 대체 복무 혜택을 주지 않으면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얘기다.

당시 같은 날 국방부 장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아이돌 그룹의 성과는 분명 대단하나, 그 보상으로 병역 특례를 부여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라며 공정성 측면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유명 아이돌 그룹이 군대를 가네 마네 하는 걸 두고 국회와 정부에서 시끌시끌한 사이, 갑자기 끌려 나온 게 하나 있다. 이전에 언급한 '전주대사습놀이'다. 
 

전주대사습청 개막 특별공연 /전주시

전주대사습의 '대사습'은 해마다 단오 무렵 전주에서 벌어지는 판소리를 중심으로 한 민속음악경연 대회로, 판소리 명창들의 학습을 보여주는 큰 잔치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활쏘기 대회의 일종이었어서 ‘대사습(大射習)’으로 쓰기도 했다고. 경연 방법은 지금처럼 심사위원에 의한 심사가 아니었고, 어느 특정인에게 명창의 칭호를 안겨 주는 것도 아닌, 자연스럽게 대중들에 의해 명창으로 불리게 된 거였다. 전주의 전라감영과 전주부 통인청의 주관으로 해마다 동짓달이 되면 전주의 다가정 같은 정자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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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통인청은 따로 잔치를 벌이며 판소리 명창들을 불러다 소리를 시켰는데, 서로 보다 뛰어난 명창을 불러 청중들에게 더 좋은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많은 돈과 극진한 대접으로 명창들을 확보하거나 숨은 명창들을 찾는 경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해마다 동지 때가 되면 전국의 명창들과 젊은 판소리 학도들이 치열한 경연을 벌였고, 판소리를 즐기는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판소리의 가장 큰 잔치로 발전하였다.

전주대사습놀이의 연원 및 시기와 관련해서는 조선조 숙종 때로 보는 설과 철종·고종 때로 보는 두 설이 있다. 전자는 여러 가지 무예 및 연희를 겨루었던 숙종 대의 경연 대회에서 전주 대사습놀이가 비롯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며, 후자는 1864년 판소리 애호가였던 대원군이 '전주 단오절 판소리 경창대회'를 전주감영에서 열게 하고, 장원한 명창을 서울로 상경하도록 하면서 이 대회를 '전주 통인청 대사습'으로 승격시켰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만 『조선창극사』의 「정창업」 조와 「유공렬」 조에 전주대사습에 대한 언급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19세기 초 무렵에는 전주대사습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전주대사습의 경연 종목과 관련해서도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의 『전주대사습사』에서는 "조선 숙종 대의 마상 궁술 대회, 영조대의 통인 물놀이, 철종 후기의 판소리 백일장 등 민속 무예 놀이를 종합"한 것이 대사습놀이라 했지만, 홍현식이 조사한 이효산의 증언에 따르면 전주대사습은 무예 놀이와는 무관하게 통인들이 판소리 창자들을 불러 전문적으로 소리를 감상하는 행사였다고 한다. 물론 어느 경우든 전주대사습에서 판소리는 주요 종목이었으며 그 전통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40회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축하공연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전주대사습은 1910년을 전후한 시기까지 계속되었다가 여러 대내외적 사정으로 인해 행사 자체가 잠시 단절됐다. 그러다가 1974년에 전주에서 전통예술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인사들이 모여 '전주대사습놀이 부활 추진 위원회'를 결성하고,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전주대사습 보존회'로 승인을 얻으면서 이들이 주관하는 대사습놀이도 부활했다.
 

전주한옥마을에서 개최된 전주대사습청 개관식 /전주시

첫 대회는 1975년 판소리, 농악, 무용, 시조, 궁도 등 5개 부문의 경연으로 치러졌으며, 1977년에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의 사단법인화가 이루어졌다. 1983년도부터 ‘판소리 명칭, 농악부, 무용부, 기악부, 시조부, 민요부, 가야금병창부, 판소리 일반부, 궁도부 등의 9개 부문으로 개최되다가 2010년도에 ‘명고수부’ 신설로 10개 부문으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 대회”를 개최 중이다.

예술·체육요원 제도는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이 197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군 면제 이슈로 10년간 해외에 있었던 일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최초 도입은 1973년으로 국위선양 및 문화 창달에 기여한 예술·체육 특기자에 대하여 군 복무 대신 예술·체육요원으로 복무하게 하는 제도다.

아예 군 면제가 아닌, 4주간의 기초군사교육을 포함해 2년 10개월 동안 자신의 경력을 활용해 공익에 복무해야 하며 사회적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재능기부 등 봉사 활동도 544시간을 채워야 한다. 대회 기준은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2020년 7월 46개 대회를 42개 대회로 축소, 정비했다. 국내 경연 대회는 온 나라 국악경연 대회, 동아국악콩쿠르, 전주 대사습놀이 전국 대회, 동아무용콩쿠르, 전국 신인 무용 경연 대회 등 5개 대회가 인정된다. 전주대사습놀이가 예술·체육요원 제도로 편입된 건 1977년으로 기악, 판소리 일반, 무용 등 총 4개 부문이다.
 

제64회 그래미 시상식 레드카펫에 선 BTS /빅히트뮤직

국회의원이 언급했던 건 콩쿠르나 전주대사습놀이 대회 등 이런 것들이 42개가 있고, 이런 대회에서 우승해도 병역 특례를 받는데 빌보드나 AMA 등 세계적인 시상식에 등장한 아이돌이 병역 특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애초부터 전주대사습놀이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과 아이돌 그룹을 같은 선상에 놓는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무형문화재, 인간문화재들을 검색만 해 봐도 다들 비슷하게 말하는 것이 있다. 이쪽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적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적고, 그래서 이 일의 명맥이 언제 끊어질지 몰라 걱정된다는 이야기다. 전통문화와 관련해 배우려는 사람들은 갈수록 수가 적어지고, 다른 분야에 비해 지원이 적은 곳도 많아 생계에 허덕이면서도 전통을 끊어지게 할 수 없어 하루하루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전주대사습놀이처럼 전통문화 관련 대회에서 수상했을 때 병역 혜택을 주는 건, 그만큼 전통을 계승하려는 사람들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전통이라는 명맥을 끊지 않게, 계속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정말 솔직히 말해서,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지원을 해 줄 테니 아이돌 그룹을 할 것인가, 판소리를 할 것인가 묻는다면 어떤 걸 택하겠는가. 정말 안타깝지만 현재의 전통문화라는 길, 전통예술의 길은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는 조금씩, 관심 밖의 영역이 되어 가고 있다. 
 

JTBC '풍류대장'에 출연한 오단해 씨 /JTBC Music 유투브

그래서 전통 대회의 수상자에게 병역 특례라는 혜택이라도 주어서 그 길을 끊기지 않고 잇게끔 지키고 있는 것이다. 상과 상금을 수여하고 병역 혜택을 준다고 상을 받은 사람들이 마치 아이돌 그룹 멤버들처럼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최근 JTBC '풍류대장'에 출연한 오단해는 전주대사습놀이 장원 출신이지만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대리 기사 일을 했고, 지금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 중이다. 다만 생활고를 겪어도 이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오단해 또한 "아직도 무대가 목마른 35살 소리꾼"이라 자신을 소개했다.

빌보드나 미국의 유명 시상식에 진출해 국위선양한 것은 대단한 일이고 정말 박수받을 일이다. 하지만, 갑자기 머리채 잡혀 끌려 나온 전주대사습놀이가 아이돌 가수의 군 면제라는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비교당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48회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 박현영 씨 /전주시

지난 5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진행된 제4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 대회에서는 박현영씨가 판소리 명창부 장원을 차지했다. 그는 판소리 적벽가 중 ‘조자룡 활 쏘는 대목’을 열창해 경연에서 심사위원 평점 94.8점, 청중평가단 4.4점을 받아 총점 99.2점을 얻으며 대통령 상을 받았다.

이번 전국 대회 예선에는 판소리 명창부 13명, 무용 명인부 20명, 농악부 4팀(155명), 기악부 38명, 무용 일반부 22명, 민요 일반부 16명, 가야금병창 일반부 8명, 시조 일반부 32명, 판소리 일반부 14명, 판소리 신인부 26명, 고법 일반부 13명, 고법 신인부 11명, 무용 신인부 9명, 민요 신인부 17명, 궁도부 257명 등 모두 500팀 651명이 출전했다. 제40회 학생 전국 대회에서도 239팀 432명이 출전해 양 대회에 전체적으로 1,083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다.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송재영 이사장은 “대사습대회가 벌써 48회를 맞았다. 긴 세월 동안 우리 국악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화려한 지원을 받지 않아도, 여유 있게 돈을 벌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도 자신의 목소리와 노력을 포기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자신의 일이라고 포기하지 않고 전통문화가 계승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의 업적이 대단한 만큼, 비교당하는 대상의 업적 또한 지켜야 할 만큼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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