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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이 술을 즐기는 곳엔 이것이 있었다, 크라테르와 킬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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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이 술을 즐기는 곳엔 이것이 있었다, 크라테르와 킬릭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9.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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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릭스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20-30대가 와인을 많이 마시면서 올해 와인 수입량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 한다. 점점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면서 모임이나 행사가 많아져 술자리도 늘고 있는 요즘이다.

와인과 위스키 등 술 즐기는 문화는 생각해 보면 정말 오래됐다. 옛날 그리스인들은 많은 양의 맥주와 와인을 마셨다고 하며, 그리스의 술집에서는 자정 무렵이면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고 이른 아침 시간에 문을 닫았을 정도라고.

일반 시민뿐만이 아닌 군인들도 전투를 끝내고 나서 자축할 때 술을 마셨는데, 술을 담당하는 병사도 따로 있었다. 병사가 커다란 도기인 '크라테르'에 와인을 담고,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닌 물을 섞어 희석시켜 '킬릭스'라 불리는 잔에 덜어 골고루 나눠 마셨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 /flickr

술은 그리스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리스는 현대 와인 문화가 발전하는 것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은 와인을 디오니소스가 준 일종의 선물이라 생각해 저녁 모임에서 거의 필수로 곁들였다고 하며 심지어 10세 미만의 아이들도 탁주를 몇 모금 마시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부활절 같은 종교적인 기념일에는 양고기를 굽고, 와인을 마시면서 즐거움을 표현하는 게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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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들은 음주 전, 음주 중, 음주 후에 등 술을 마시는 어떤 때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관습도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너무 취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주변에서 규제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와인을 마실 때 물을 섞어 마시면 그리스인이고, 희석하지 않으면 야만인(바르바로이)라 불렀기도.

특이한 건 그리스인들이 와인을 마실 땐 물에 희석을 해 마셨다는 점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는 신과 인간이 와인을 나눠 마시는 모습이 나오는데 둘 다 와인에 물을 타 마신다. 시인 유불로스도 디오니소스를 주제로 읊을 때 '나는 절제를 위해 세 개의 잔을 채우네'라고 하며 술을 마셔도 절제를 생각했음이 보인다. 이것은 취한 모습이 남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과도 연관 지을 수 있다. 물뿐만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단맛이 나는 재료와 향신료도 술에 넣었다. 
 

크라테르 /flickr

모임이라는 뜻의 '심포지엄'은 그리스의 '심포지아'에서 유래했다. 심포지아는 ‘함께 술을 마시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symposion’에서 나온 것으로, 일종의 와인 파티였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면서 사랑, 문화, 예술, 또 철학에 대해 밤새 논의했다. 기나김 밤을 보내는 이 모임에서 와인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생산케 했다. 모임에서 그리스인들은 특별한 그릇에 와인과 물을 담았고, 물의 비율이 와인과 거의 동등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 와인을 마실 땐 필요한 그릇이 있었다. 바로 '크라테르'라는 그릇 모양의 도기와 술잔인 '킬릭스'다. 심포지엄에서 크라테르는 방 중앙에 배치되었다고 하며, 생각보다 꽤 컸기에 술을 다 채우면 휴대하고 다닐 수 없었다고. 그래서 와인과 물을 희석한 혼합물은 암포라나 킬릭스 같은 다른 술잔에 따라 마셨다고 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보면 연회에서 크라테르에 담긴 와인을 추출해 손님들의 술잔에 와인을 따르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하인의 모습을 묘사한다. 작은 도기나 가죽 주머니에 크라테르에서 추출한 술을 넣고, 잔에 따르는 식이었는데 너비가 좁으면 흘릴 수 있어 술잔의 폭이 넓었다고. 심포지엄이 시작할 때 일종의 '와인의 주인'을 선정하는데, 선정된 사람은 참가자들에게 와인을 나눠주는 역할을 했다. 와인과 물의 희석 비율을 따지거나, 와인의 리필 또한 통제하는 일도 맡았다. 
 

손잡이가 기둥 모양인 크라테르 /flickr

크라테르는 와인과 물을 담는 것 외에도 미적인 이유로 표면의 그림들이 화려했다. 크라테르의 외관에는 그리스인들의 생활상이나 묘지까지 행렬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기둥 모양, 회오리 모양 등 다양하며 재질 또한 점토가 아닌 금속으로 만든 크라테르도 있다. 기둥 모양의 크라테르는 손잡이가 기둥 모양이라 이름이 붙었고 그리스 아테네의 도예가들이 5세기 전반까지 생산했다. 고대 폴리스 및 현대 도시인 코린토스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오리 모양의 손잡이가 특이한 크라테르 /flickr

회오리 모양의 크라테르 역시 손잡이 부분이 회오리 모양이라 이름이 붙었다. 손잡이가 마치 이오니아 기둥의 소용돌이 모양처럼 단단하게 말려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인들의 솜씨로 더 정교해지는 모양을 갖추며 훌륭하고 멋진 장식을 가진 것들도 많다. 
 

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의 앞면 /Public Domain
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의 뒷면 /Public Domain

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Euphronios krater) (사르페돈 크라테르(Sarpedon krater))는 고대 그리스의 테라코타 크라테르로 물과 포도주를 섞는 데 쓰였다. 고대 그리스의 도기 화가이자 도공으로 유명했던 유프로니오스가 만든 도기 중 현존하는 27개 중에서 가장 온전하며,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의 도기 중에서도 가장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

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는 두 개의 장면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우선 앞면에는 트로이 전쟁의 장면 중 하나가 표현되어 있다. 제우스와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사르페돈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으며, 도기의 뒷면은 기원전 6세기의 아테네 청년들이 전투 중 무장을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사르페돈이 죽는 장면은 일반으로 양식화된 모습이 아닌 자연 주의적 포즈와 정확한 인물 묘사가 특징이다. 뒷면에 있는 신원 미상의 청년들도 자연스러운 포즈와 자연 주의적 스타일을 공유한다. 
 

킬릭스 /flickr

킬릭스는 양옆에 두 개의 손잡이가 달렸고, 바닥이 얕은 술잔으로 술을 따르기 쉽게 너비가 넓게 만들었다. 킬릭스도 크라테르처럼 심포지엄 같은 공식 행사에서 흔히 쓰였던 술잔이다. 주로 붉은색, 주황색 빛을 띠는 점토가 많다.
 

부엉이를 그린 듯한 모양의 킬릭스 /flickr
하프를 든 여성의 모습 /flickr

술잔의 너비는 넓고, 두 개의 손잡이가 몸통 양쪽에 달려 있다. 와인이 차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와인이 빠져나가면 그릇에 그려진 그림들이 단계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장인들이 주로 이것을 염두에 두고 술잔을 만들었는데, 술잔 안쪽 그려진 그림들이 드러날 때 주로 마시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또는 즐겁게 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주로 남성들이 모여 있는 심포지엄이나 '음주 모임'에서 쓰여서 그런 건지 유머러스하거나 농담, 또는 성적인 장면들도 그려져 있었다고. 
 

화려한 금속 장식이 인상적인 크라테르 /flickr

요즘이라고 하면 와인을 그냥 투명한 유리가 빛나는 와인잔에 마시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와인에도 꽤 많은 의미를 부여한 모양이다. 취한 사람은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았다거나, 물을 희석시켜 먹지 않으면 야만인이라 불렀다는 걸 보면 술의 의미뿐만 아니라 술 마시는 예절까지 어느 정도로 신경을 썼는지가 보인다.

특히 크라테르나 킬릭스 같은 도기도 그냥 술잔이나 술병으로 끝나는 게 아닌 직접 그림을 그려 넣어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보는 재미, 마시는 재미까지 더했다. 그림이 그려진 술잔들을 들고 모여 놀았을 그리스인들을 생각하면 시간이 지나도 사람 사는 모습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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