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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이슈] 영국의 새 왕을 두 번이나 거슬리게 한 그것,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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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이슈] 영국의 새 왕을 두 번이나 거슬리게 한 그것, 만년필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9.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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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통을 치우라고 손짓하는 찰스 3세 /Bloomberg Markets and Finance 유튜브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이 19일 오전 11시 시행되었다. 여왕이 세상을 떠나고 큰아들이었던 찰스 3세가 자동으로 국왕을 임명받아, 바쁜 일정을 수행하고 있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일들만 해도 문젠데, 요즘 찰스 3세의 심기를 두 번이나 거슬리게 한 것이 있다. 바로 만년필이다.

지난 10일 세인트 제임스궁에서 열린 즉위 위원회에서 문서에 서명할 때 찰스 3세는 책상에 놓여 있는 만년필 통을 치우라는 손짓을 했고, 수행원이 그 통을 치우자 찰스 3세는 품에서 자신의 만년필을 꺼내 서명을 했다. 

찰스 3세는 13일 북아일랜드의 힐스버러 성을 방문해 방명록에 서명을 할 때에도, 펜의 잉크가 터져 손에 묻는 걸 보고 질색하는 모습이 영상에 잡혔다. 만년필 때문에 연달아 짜증을 내는 모습에 대해 바다 건너 한국의 누리꾼들의 반응 또한 시끌시끌했다. 하나 확실한 건, 찰스 3세는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라는 것.
 

만년필 /flickr

만년필의 뜻은 잉크가 마치 '샘물처럼 솟는다'란 뜻에서 'fountain pen'이라 부른다는 것이 현재까지는 가장 유력한 설이다. 만년필의 개발은 19세기 중반까지 더디게 진행되었는데, 펜촉에 적당한 잉크를 공급하는 역할의 '펜심'을 잘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펜심은 주로 펜 끝까지 잉크를 끌어내고, 유출된 잉크의 양만큼 외부 공기를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맡는다. 이 시스템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고, 설상가상 만년필에 필수인 잉크는 부식성도 강했고 잉크가 쉽게 굳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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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에 대한 첫 특허는 1809년 5월 프레드릭 폴슈라는 사람이 냈는데, 잉크 저장탱크를 가진 밸브식의 만년필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잉크의 저장 기능만 있었고 흐르는 잉크의 양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로 작용했다. 그러다 1828년엔 만년필의 잉크가 나오는 곳인 '닙'을 개선해 생산하기 시작했고, 대량으로 제조하는 방법도 고안됐다. 강철로 된 펜은 편리하면서도 값싸게 제조할 수 있게 됐고, 수천 명의 숙련된 장인들이 이 만년필 제조 산업에 동원되었다.

도시에 깔린 공장들은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펜을 대량 생산해 냈고, 이전에는 글을 쓸 여유가 없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자연히 만년필은 교육과 문맹 퇴치에도 도움이 됐다. 1850년대부터 만년필 특허와 생산은 꾸준히 진행됐지만, 지금처럼 널리 인기가 있는 필기구가 된 것은 티타늄이나 이리듐, 금으로 만든 니브, 고무, 자유롭게 흐르는 잉크라는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된 후였다. 
 

'워터맨' 만년필 /flickr

1883년 뉴욕에서 보험 외판원으로 일했던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은 계약 중 펜의 잉크가 흘러 계약을 망친 후, 잉크가 흐르지 않는 펜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펜 촉에 긴 홈을 파내어 잉크가 흐르지 않는 펜을 만들게 된다. 세 개로 갈라진 공급장치는 만년필을 만드는 모든 제조사들이 가져다 썼고, 세계 최초의 '지금의 만년필'이 탄생한다. 1960년대까지 볼펜 생산이 발전하며 대중적인 이미지를 굳혔다면 만년필 또한 어른들과 학교 아이들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또 수집가들의 수집품,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치르는 행사에서 쓰는 물품, 누군가에겐 신분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만년필이 들어온 시기가 1897년으로 워터맨 만년필이 일본을 거쳐 수입된 것이라 한다. 박종진 만년필 연구소장이 기고한 글을 보면 "만년필은 1880년대에 들어서며 실용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얼마 되지 않아 극동까지 전해졌다. 처음에는 영문을 직역한 천필(泉筆), 먹물을 토해낸다는 의미의 토묵필(吐墨筆) 등으로 부르다, 누군가 '잉크만 넣어주면 수십 년이 넘도록 오래 쓸 수 있다' 하여 만년필(萬年筆)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라고 되어 있다. 처음에 우리나라에서 수입이 될 때 고가의 만년필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지금도 만년필이라 하면 비싸고 사치스러운 물건이라 특별할 때만 쓰거나, 수집가들이 즐겨 모으는 아이템 중 하나라는 인식이 강한 물품 중 하나다.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하기 위해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모인 고위 인사들, 저 자리에 '워터맨' 만년필도 있었을 것 /flickr

만년필이 국가 수장이 쓰는 펜이나, 국가 정상이 만나는 자리에서 쓰이는 펜으로 즐겨 쓰이게 된 건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 시 만년필 '워터맨'이 쓰이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중요한 서명을 할 때에는 만년필로 쓴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많이 쓰이는 만년필은 독일제인 '몽블랑'으로, 찰스 3세가 직접 품에서 꺼내 쓴 만년필도 몽블랑의 '마이스터스튁 146 솔리테어 르그랑’ 모델이다.

몽블랑은 IMF 구제금융 당시 합의문 서명에 사용된 펜으로도 유명하며 1945년 세계 2차대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에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파카 듀오폴드 오렌지’ 만년필로 서명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만년필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시작하고 닫을 때 등장했다. 
 

'브이펜'으로 서명 중인 관계자 /Sky News 유튜브

찰스 3세가 만년필로 인해 짜증을 냈다는 것도 정황을 살펴보자면, 애초에 찰스 3세는 자신이 쓰는 개인 만년필인 몽블랑의 '마이스터스튁 146 솔리테어 르그랑’을 쓰려 했지만,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던 건 다른 만년필이었던 것. 영국 BSkyB 계열의 뉴스채널인 '스카이뉴스'의 찰스 3세의 국왕 즉위식 영상을 보면, 서류에 측근들이 서명할 때 준비되어 있는 만년필 통엔 여러 종류의 만년필이 있었고 그중에는 일본 파이롯트(Pilot)회사에서 만든 브이 펜(V-pen)이 있었다. 파이롯트의 브이펜은 저렴한 일회용 만년필로, 의전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품에서 아들들에게 선물받은 만년필을 꺼내는 찰스 3세 /Bloomberg Markets and Finance 유튜브

뭐 관계자들이야 저렴한 만년필로 서명하든 별 상관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이후에 찰스 3세가 따로 서류에 서명을 할 때 들어 있는 만년필이 맘에 들지 않아 짜증을 냈다는 식으로 비쳐 네티즌들이 시끌시끌해졌다. 얼마나 반응이 뜨거웠던지 심지어 만년필 통에 있는 만년필이 아들인 윌리엄 왕세자가 선물해 준 거라 일부러 찰스 3세가 성질을 냈다는 등의 루머까지 쏟아졌다.
 

잘 보면 만년필 통에 팔이 걸친다, 화가 날 수도 있겠다 /Bloomberg Markets and Finance 유튜브

의외로 이 일은 그저 해프닝에 불과하다. 찰스 3세는 그냥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가 선물한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모델과 잉크통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준비되어 있던 만년필들은 윌리엄 왕세자가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고. 이미 찰스 3세는 아들들이 선물해 준 만년필과 잉크 통으로 서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개인 펜이 없는 다른 관계자들을 위한 여분의 만년필들이 테이블에 있었고,  팔을 대야 할 곳에 만년필 통이 또 놓여 있으니 치우라고 손짓한 것이다. 애초에 찰스 3세는 만년필을 보고 짜증을 낸 게 아니었다.
 

서명하고 쓴 만년필을 나눠주는 바이든 대통령 /Reuters 유튜브
만년필을 나눠주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WPRI 유튜브
놓여 있는 여러 개의 만년필들 /WPRI 유튜브

만년필 자체가 국가 간의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 쓰이는 것 외에도 일종의 상징적인 의미로 여기는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서류에 서명을 할 때, 여러 개의 만년필을 이용해 서명한 뒤 주변 관계자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 또한 서류 옆에 거의 10개가 넘는 만년필을 놓고 각각 다른 펜으로 서류에 서명을 한다. 서명이 끝나면 역시 주변에 있는 관계자들에게 펜을 하나씩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까운 측근이어도 고위 관계자가 쓴 펜을 하나씩 나눠 갖는다는 것은 분명히 큰 의미일 것이다.
 

이번엔 만년필 잉크가 터져 화가 난 찰스 3세 /Daily Mail 유튜브

옛날 만년필의 기원이 계약서 작성 중 잉크가 흘러 계약을 망쳐버린 것에서 비롯된 만큼 펜을 사용해 서명하는 행위 자체 또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찰스 3세가 만년필 통을 치우라고 손짓했던 것도, 힐스버러 성을 방문해 방명록에 서명을 할 때 잉크가 터져 손에 묻은 것도 두 가지 경우 다 짜증이 날만 하지는 않은가.

물론 사방에서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들이 있으니 공식 석상에서 고스란히 짜증을 낸 모습이 전 세계로 퍼진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나 그동안의 인생에 잡음이 많았던 사람이니 어쩌면 더 욕을 먹는 부분도 있다. 고작 '만년필' 하나일 수도 있지만 그 만년필 하나로 인해 파생되는 새 국왕의 적나라한 모습에 전 세계의 사람들이 온갖 말을 얹게 되는 것도 볼 수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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