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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각] 면치기를 강요하는 사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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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각] 면치기를 강요하는 사회에게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8.2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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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을 끊어 먹지 않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지 말자 /MBC 유튜브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언제부터인가 '먹방'이 우리나라 문화의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음식을 많이 먹는 것, 쌓아두고 먹는 것, 그리고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음식을 '후루룩', '쩝쩝' 등 소리를 크게 내서 먹기다. 'MUKBANG' 이란 단어까지 생겼을 정도로 음식을 많이, 그리고 소리를 내서 먹는 먹방이 어쩌면 면치기의 시초였는지도 모른다.

먹방 유튜버들이 성행하며 방송가에도 자연스럽게 음식을 많이, 소리내어 먹는 연예인들이 나타났다. 음식을 많이 먹는 연예인들은 음식을 쌓아두고, 정말 엄청난 소리를 내서 먹는다. 아마도 방송계는 이때부터 먹을 때 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시청자들이 좋아할 포인트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크게 소리를 내서 먹는 연예인들은 언제부터인가 방송에 점점 자주,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면치기'라는 말은 원래 없던 단어다. 먹방이 TV로 옮겨오면서 연예인들이 창조해낸 말이다. 사실 이 면치기라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들어온 것도 아니다. 그저 방송가에서, SNS에서 소리를 내서 먹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연예인들이 후루룩 소릴 내며 먹어대는 모습을 소비자들에게 주입시킨 셈이다. 방송에서 연예인들은 특히 면 요리를 먹을 때 유독 소리를 크게 내서 먹는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아주 당연했던 것처럼.

일종의 이 주입식 문화에 정작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해했고, 결국 일이 터진다. 한 방송에서 음식을 조용히 먹는 한 연예인에게 다른 연예인이 왜 음식을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냐고 묻는 게 방송에 직접적으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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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자기들끼리 음식을 소리 내서 먹는 것을 당연히 여겼던 사람들이 이제 조용히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뭐라 하는 시점까지 온 것이다. 이 점에서 그동안 이 '면치기'를 사실은 싫어했고, 이해하지 못했던 시청자들이 면치기는 이제 보기 싫다고 외치고 있다.
 

면치기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끝도 없는 결과물들 /유튜브

사실 시초는 먹방을 하며 ASMR을 조합한 유튜버들에게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많은 음식을 쌓아 두고 먹는 푸드파이터들은 보여지는 것, 들리는 소리를 중요시하게 되며 일부러 과장되게 소리를 크게 내며 먹는 모습이 많았다. 다만 이 소리를 내며 먹는 것이 그저 SNS에서나 흥하고 있었으면 상관이 없었겠지만 문제는 이 '면치기'가 언제부터인가 수면으로 올라오면서 방송에도 필수처럼 등장하게 됐다는 거다. 

여기서 또 하나, 유튜브 등 SNS에서 알음알음 퍼져 있던 거였고 방송에서 누군가 면치기를 한 번 정도 했다고 해도 그건 차라리 그 사람의 개인기나 장기자랑 정도의 느낌으로 넘어갔어야 하는 게 맞다. 포인트는 기다란 면을 끊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입에 넣으면서 씹는 소리, 넘기는 소리를 내는 것이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 식사 예절도 아닐뿐더러 보는 사람과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실례라는 점이다. 시청자들은 그 면치기가 일반 사람들의 식사 예절이라 생각해 그저 보고 있었던 것 또한 아니다.

조선시대 유교가 들어오면서 음식 먹는 예절은 정해져 있었다.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뿐만이 아닌 음식을 먹는 사람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절은 존재했다. 연장자와 식사할 때는 연장자가 먼저 수저를 든 다음에 든다든지, 식사 중 재채기나 기침이 나올 것 같으면 얼굴을 옆으로 돌려 손으로 가리고 한다든지, 수저로 반찬이나 밥을 뒤적거리지 말고 한 번에 음식을 집는다는지의 기본적인 일들이다.

사실 이런 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재채기가 나온다고 해서 그대로 사람들 면전에서 한다든지, 어른이 아직 수저도 들지 않았는데 먼저 수저를 들고 밥을 먹는다는 건 예절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 것이다. 그 예절 중에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 손에 쥐지 말고, '음식 먹는 소리나 수저 소리를 내지 않는다'라는 것도 있다. 어렸을 때 아마 밥상머리에서 어른들이 한 번쯤은 그런 말씀을 했을 것이다. 어른이 먼저 수저 드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 또 음식을 소리 내서 먹는 건 실례니 조용히 먹어야 한다는 등의 말이다

「소학(小學)」에는 식사 예절을 성현들의 교훈을 통해 가르치고 있는데, 곧 먹는 것에 욕심을 부리는 일은 성욕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절제된 식사를 하는 것이 군자의 도리라고 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는 《사소절》에서 선비·부인·자녀의 예절을 다루었는데, 선비의 음식에 대한 예절도 책에 나와 있다. 지금의 면치기와는 상반된 내용이 들어 있는데 '너무 크게 싸서 입안에 넣기가 어렵게 하지 마라, '국수와 국 그리고 죽을 먹을 때는 갑자기 들어 마셔 후루룩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며, 물을 마실 때는 목구멍 속에서 꿀꺽꿀꺽 소리 나게 하지 말라'라는 등의 내용이 있다고.
 

규합총서 /국립한글박물관

1809년(순조 9) 빙허각이씨(1759~1824)가 쓴 규합총서란 책에 '식시오관'이라는 식사 예절에 대한 규정이 있다. 첫째,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하라. 둘째, 총효와 입신의 뜻을 살펴 음식의 맛을 너무 따지지 말라. 셋째, 마음을 다스려서 과하게 하지 말고 탐내지도 말라. 넷째, 음식을 좋은 약으로 생각해 모양에 너무 치우쳐 먹지 말라. 다섯째, 군자로서의 도리를 다한 후에 음식을 먹어라 등이다. 

아마 면치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내용이 없어 상관이 없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과하게 하지 말고 탐내지도 말라'에서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군자가 될 수 없다 해도 밥은 제대로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전통적인 식사 예절을 현대에 굳이 맞추라는 얘긴 아니다. 애초에 다 지키는 것도 어렵다. 전통 예절대로 한다 치면 제대로 밥 한술 뜨기 어려운 상황들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밥을 먹을 땐 말하지 않는 것이 기본 예절이라 누구든지 알고 있겠지만 옛날 조선의 세종 대왕은 세자와 밥을 같이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며, 퇴계 이황 또한 관직에 올라 있을 땐 집에 있는 아이들이 밥을 먹을 때 편지를 보내 밥상머리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예절이 정해져 있다고는 하지만 정해진 선에서라면 상대가 기분이 나쁘지 않은 선에서,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유연하게 대응했던 조상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면치기는 이런 것과는 거리가 조금, 많이 멀어 보인다. 

먹방에서, SNS에서나 유행하던 요소가 어느샌가 방송이라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연예인들과 개그맨들이 음식을 많이, 크게 소리 내어 먹는 것을 '면치기'라 이름까지 붙이면서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먹는 모습마다 마치 내가 이렇게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지 못해 안달인 듯하다. 일부가 시작한 문화라는 모습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원래 있었던 문화처럼 방송에 등장하고, 유튜버나 연예인들이 면치기를 해야 맛있다며 음식을 먹는 모습조차 이제 안타깝게도 더 이상 맛있어 보이지 못하게 됐다. 
 

면치기를 하지 않았을 때,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나온 패널들의 반응 /MBC 유튜브

방송에서 마치 연예인들이 누가 더 소리를 크게 내는지 경쟁하듯, 너도나도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들이 대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길 원했는지는 모를 노릇이다. 면치기는 더 이상 퍼포먼스도 아니고 먹부림도 아니다. 먹방 유튜버든,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을 뽐내며 맛있어 보이려고 노력하는 연예인들에게 면치기는 오히려 피하고 싶은 모습이 됐다. 가뜩이나 면치기랍시고 면을 한 번에 먹어대며 주변에 국물이 튀고 음식을 씹어 삼키는 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한없이 거북스러워질 뿐이다. 

여기에 면치기란 모습을 복스럽게 먹는다며 포장하고, 음식을 먹는 연예인들에게 면치기를 유도하도록 만든 방송계의 안이한 태도 또한 이 일에 한몫한 셈이다. 면치기가 애초에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문화가 아닌데도 심지어 왜 면치기를 하지 않냐며 통박을 주는 모습까지 방송에 나오게 만든 사람들의 잘못도 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방송만 보고 면치기가 정말 올바른 예절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며, 서양인들이 우리나라의 예능을 보고 잘못된 편견을 가질 수 있다.

면치기랍시고 자신 혼자 맛있게 먹는 게 남들과 같이 지켜야 할 식사 예절보다 중요한가. 시작부터 잘못된 문화가 너무 빨리 퍼지게 되면 고치지도 못하고 고착되어 버릴 수 있다. 특히나 미디어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방송 업계의 종사자들이 알고 있다면 이제는 자신들만의 세상에 갇혀 면치기 찬양 프레임을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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