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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사랑한 도자, 오채와 두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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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사랑한 도자, 오채와 두채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8.19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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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중국 도자기 하면 전세계적으로 도자기 공예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서구권에서는 도자기를 가리키는 용어로 포슬린이라는 단어 말고도 'china'라는 말을 쓸 정도다. 그중에서도 다섯 가지의 색채의 안료를 쓴 도자기를 두고 '오채(五彩)'라 하며, 두채(斗彩, or 豆彩)는 오채의 한 종류로서 녹색 안료로 색을 낸 도자기를 뜻한다.

두채는 일반적으로 무늬가 깨끗하고 묘하며 무늬와 윤곽을 가는 선으로 그리고 녹색을 주로 한 엷은 색조가 특징이다. 그 색이 마치 푸른 콩과 닮아 두채라 부른다는 설이 있고 여러 가지 색채가 서로 다투는 것처럼 쓰인다고 해 투채(闘彩)라고 쓴다는 설 등이 있다.
 

나비와 식물 무늬의 오채 /flickr

오채는 여러 색을 입힌 중국의 도자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지금의 코발트블루 안료를 쓰고 일부 디자인에는 빨강, 초록, 노랑의 안료를 써 오버 글레이즈하는 식이다. 도자 기법엔 오버 글레이즈와 언더 글레이즈가 있는데, 오버 글레이즈는 유약을 바른 후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고 언더 글레이즈는 유약을 바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다. 

'오채'라는 명칭이 지어진 것은 명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황제는 오채 스타일로 장식된 다양한 도자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색상의 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변화를 겪었지만 '오색 도자기'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게 중요하다. 특히 중국 미술에서 숫자 5는 꽤 각별하다고 하는데,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5'라는 숫자를 신비롭게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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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에는 대체적으로 빨강, 초록, 노랑, 파랑, 고동색의 다섯 가지 색을 썼지만 색 배합을 하면서 검은색 또한 쓰기도 했다. 그래서 오색이 아닌 '다색'이라고도 부르며, 많은 중국 도자기와 마찬가지로 오채 제조의 중심지는 중국 장시성 북동부에 있는 도시 징더전이었다.

대부분의 오채는 약 1100°C에서 그릇을 굽고, 850~900°C의 낮은 온도에서 적색, 청색, 보라색, 황색, 녹색을 포함한 여러 색상을 사용해 오버 글레이즈한 뒤 굽는 식이다. 오채를 만드는 기술, 도자기 스타일 등은 강희제 시대인 청나라에 들어오고, 만드는 사람들에 따라 발전하면서 오채 도자기 생산의 절정을 이뤘다. 
 

이간의 머리를 한 용 무늬가 독특한 오채 /flickr

특히 용의 모티브를 포함한 복잡한 무늬가 특징이었고 그 외에도 꽃, 식물, 물고기 등이 다양한 무늬로 쓰였다. 도자기에는 금색과 검은색 윤곽선을 써 마치 실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품질 또한 엄청나게 향상됐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모티브에서 화려한 것까지 장식의 유무도 매우 다양하며, 특히 강희제 시대 오채는 그 시대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제품으로 당시 생산되었던 오채는 일명 '강희 오채'라 불리기도.

징더전에서 생산되는 오채의 도자 기법은 명나라 왕조에서부터 시작됐다. 안료의 색상은 철, 망간, 코발트와 구리를 포함한 금속 광석에서 얻었다. 이후 300년 넘게 수백 가지의 안료를 개발하며 도자기 장인들은 일본 에도 시대의 나베시마 도자기, 18세기 유럽의 정교한 도자기와도 견줄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었다.

중국의 도자 장인들은 청나라 왕조가 시작할 때까지 여러 가지 조합을 사용했지만 주로 '오색'을 썼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오채는 다소 무거우면서도 음울한 느낌이 있는데, 후기의 오채 도자와 비교했을 때 좀 더 어두운 코발트블루를 썼기 때문이라고. 후기 전까지 과도기를 겪었던 오채의 디자인의 주요 주제는 주로 사랑 이야기나 영웅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다. 
 

꽃 무늬가 풍성하다 /flickr

상징적인 인물, 불멸의 인물, 때로는 황량한 풍경에 고립되어 있는 인물이라든가 엄청난 무리를 지어 있는 꽃이나 식물들이 주로 장식에서 눈에 띈다. 강희 오채는 주로 오버 글레이즈 기법으로 특히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도자에서 보이는 붓놀림과 절제미, 도자 곳곳에 보이는 디테일은 강희 오채의 두드러진 특성이라 한다. 강희제의 통치가 끝날 무렵 중국인들은 색상의 범위를 넓혀 갔는데, 이때 불투명한 상회구를 써 색의 수가 많고 세밀한 묘법이나 농담이 자유로운 '분채'가 탄생한다. 
 

흰색과 녹색이 인상적인 두채 /flickr

두채는 문자 그대로 '색상의 대조'를 의미한다. 명나라의 제5대 황제인 선종 선덕제 때 등장했는데, 징더전에서 발견된 가마에서 빨간색과 녹색 에나멜을 칠한 접시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두채는 모두 1472년에서 1487년 사이에 제작되었으며 지금도 매우 희귀한 제품이라고.
 

닭 무늬의 작은 두채 /flickr

황제는 대부분 작으면서도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도자에 관심을 가졌고, 황제의 부인이 이 취향을 좋아했다는 말도 있다. 특히 닭으로 장식된 두채는 다산의 상징이었고 결혼식에서도 주고받았다고 한다. 부인은 황제에게 매일 두채를 선물로 주었다고 하는데, 아이를 많이 갖고 싶은 욕망을 표현했다는 말도 있다. 
 

신선들과 용을 그린 두채 /flickr
학을 그린 두채 /flickr

두채는 대개 청색과 흰색의 언더 글레이즈와 오버 글레이즈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두채는 770-800°C 가마에서 파란색과 흰색의 윤곽으로 초벌 된 도자를 구워 만든 장식용 도자기로 불린다. 흰색과 파란색이 두채의 주요 무늬와 윤곽으로 채워지고 나머지 색들이 빈 영역을 채운다면 오채는 윤곽이 딱히 없고 흰색과 파란색이 빨강, 노랑, 초록 등 다른 색들과 똑같이 바탕에 칠해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

두채는 매끄러운 흰색 유약을 사용해 전체적으로 우아함을 풍긴다. 아쉬운 건 명나라 중기부터 후기까지 살아남은 두채 진품은 많이 없다는 점이다. 두채는 절묘한 패턴, 명나라 왕조 특유의 세련된 디자인이 더해져 소장 가치가 매우 높은 작품으로 꼽힌다. 
 

용과 여러 식물 무늬들의 두채 /flickr
용 무늬가 인상적인 두채 /flickr

실제로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 징더전에서 다양한 오버 글레이즈 기법이 절정에 이르렀으며, 꽃으로 장식된 도자는 대표적인 두채의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또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용 무늬는 황제가 쓰는 물건에만 국한되어 사용할 수 있었다고. 또 나비는 중국에서 상서로운 상징으로, 장수를 기원하기 때문에 황제의 가족이나 지위가 높은 신하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오채 같은 경우는 명나라 중기에 대량 생산해 해외로 수출하기도 했다. 또 청나라 때에는 두채 말고도 금채, 분채, 양채 등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다. 징더전의 여러 도예가들은 처음 두채를 개발할 때 유약을 한번 칠하면 고온에서 다시 구워도 변색되지 않는 방법을 고민했고, 화재로 인해 에나멜이 변색되어도 제품 본체와 유약 색상이 변하지 않는 기술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여러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두채를 비롯한 여러 기법과 훌륭한 도자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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