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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각] 청와대는 베르사유 궁전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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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각] 청와대는 베르사유 궁전이 될 수 없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8.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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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청와대 하면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곳이란 생각을 먼저 한다. 청와대는 공무를 수행하는 대통령 집무실, 퇴근 후 기거하는 대통령 관저 기능을 가진 곳으로 옛날 왕들로 치환하면 궁의 기능을 했다. 청와대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로 대통령들이 머물렀다.

2022년 5월 청와대는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청와대 활용 방안과 관련해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처럼 원형을 보존하면서 복합문화 예술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베르사유 궁전이야 대안 모델로 내세운 것이고 실상은 청와대를 미술관, 대여 전시장, 공연장 등의 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물론 시민들의 합의를 거쳐 한 것은 아니다. 현재 윤 정부가 대선 승리 후 자신들끼리 기획해 부처 관계자나 시민들에게 통보한 것이나 다름없다. 왜 하필 그럼 예시로 든 것이 베르사유 궁전일까.
 

이젠 유명한 관광지가 된 베르사유 궁전 /flickr

루이 13세에서 루이 16세, 이후 나폴레옹까지 베르사유 궁전을 사용했다. 매년 150만 명의 관광객들이 베르사유 궁전과 공원, 정원을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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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베르사유 궁전은 1623년 루이 13세가 파리에서 서쪽으로 19km 떨어진 작은 언덕에 사냥용 오두막으로 지었다. 루이 13세는 원래 생 제르맹 앙 레에서 살았고, '베르사유'라는 작은 도시 근처에 있던 이 오두막은 숲이 우거진 습지였다고. 이후 1643년까지 건축가 필리베르 르 로이가 루이 13세를 위한 거주지를 오두막에서 성으로 변경할 수 있게끔 작업한다. 그러다 루이 13세 사후 10년간 베르사유는 빈터로 유지되기도.
 

베르사유 궁전 /flickr

루이 14세가 자신만의 통치를 결정하고 자신의 어머니, 그 혈통의 왕자들을 정치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정부를 개혁하면서 궁정을 생 제르맹 앙 레로 옮기고 베르사유에 있던 성도 옮긴다. 루이 14세는 1661년까지는 딱히 베르사유란 곳에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보-르-비콩트 성에서 열린 연회에서 만난 건축가, 정원사, 화가들의 재산과 부유함에 영감을 받으면서 베르사유 궁전을 계획하고 건설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베르사유 궁전 초기 개발은 공원과 정원에 집중했다. 루이 14세가 스페인을 정복하겠다는 열망에 이 베르사유 궁전 또한 본격적인 화려한 왕궁으로 바꾸기로 결심한다. 이후 루이 15세, 루이 16세가 차례차례 베르사유 궁전을 물려받으며 인테리어에 집중하면서 궁정 극장, 무도장 등을 세운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고, 프랑스 혁명은 베르사유 궁전의 모든 것을 멈추게 했다.

1792년, 새 혁명 정부인 국민공회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루브르 박물관으로 모든 그림과 조각을 이전하도록 했다. 이후 군주제 폐지, 궁전에 있는 모든 왕실 재산도 경매로 팔린다. 이 빈 건물은 귀족에게 압수한 가구들, 예술품, 책을 보관하는 창고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프랑스 회화를 가르치는 미술 학교, 박물관 등으로 쓰인다.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베르사유 궁전의 역사이다.
 

루이 14세의 동상 /flickr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의 중앙집권화라는 정치적 의미도 있지만 프랑스 예술의 문화와 표현의 집중이 된 곳이기도 하다. 루이 14세는 17세기 중반 유행했던 화려한 바로크 양식을 비롯해 자신의 지적, 문화적 위상을 표현하며 프랑스의 군주를 미화하도록 디자인되었다는 것이 포인트다. 루이 14세는 근 72년을 프랑스를 통치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절대적인 태양과도 같은 군주였다. 즉 시민들이 직접 만질 수도 없는 사람이며, 그들에게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였다.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함 이면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대개 왕이 호화로우면서 복합적인 건물을 짓는 것은 절대주의라 부르는 군주제와도 연관 있는 것으로 베르사유 궁전 또한 루이 14세의 통치 스타일이나 신념과도 맞닿아 있다. 거대하고 화려하며, 수많은 공간으로 이루어진 궁전은 그의 나라가 얼마나 강대한지, 그리고 그의 부와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거울의 방' /flickr

당시 유럽에서 프랑스의 위상을 높이는 것 또한 중요했다. 살펴보자면, 베르사유 궁전에 유명한 '거울의 방'이 있다. 당시 거울은 거의 모두 이탈리아에서 많은 돈을 들여 수입해왔었다. 루이 14세는 프랑스가 이탈리에서 생산된 거울만큼 훌륭한 거울을 생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했고, 해서 '거울의 방'의 모든 거울을 프랑스에서 만든 것으로 꾸민다.

또 루이 14세는 프랑스 정부를 베르사유 도시로 옮길 것을 주장했다. 학자들은 왕이 베르사유에 거대한 궁전을 짓고 정부를 그곳으로 옮기고 싶은 수많은 이유들 중 여러 개를 꼽는다. 국왕의 거처를 파리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게 함으로써 국왕이 파리 시민들이 가지는 불만을 회피하거나, 그 불만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7월 26일, 문체부는 공식 입장을 내고 "대통령께 보고한 청와대 복합문화 예술공간화 방안은 '문체부가 주도하면서 문화재청,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실과 협의해 추진'하기로 이미 정리된 바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 활용방안의 짜임새와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문화재청과 관리비서관실과 긴밀히 협의하고, 대통령실이 운영하는 '청와대 관리·활용 자문단'이 마련하는 내용을 충분히 반영해 세부 계획을 더욱 다져나갈 계획"이라며 "민간 전문가들의 경험과 지혜를 계속 모아나갈 것이며, 이 방안이 민관 협력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청와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문체부의 입장에 문화재청 정책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회와 문화재청 노동조합에서 우려와 비판을 담은 공식 입장 때문인 것으로 확인된다. 문화재위원회는 7월 25일 "청와대를 거대한 미술관으로 재탄생시켜 베르사유 궁전처럼 꾸민다는 문체부 장관의 업무보고에 우려를 표명한다"라며 입장 표명을 했다.
 

청와대가 있는 곳은 오래된 시간과 역사도 존재한다 /flickr

문체부의 계획에 문화재청 노조는 "문체부 장관의 업무보고는 청와대의 역사성과 개방의 민주성을 도외시하고 거대하고 화려한 궁전으로 되돌리는 퇴행이 아닌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문체부는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고자 하는 관계 전문가, 현재 청와대를 관리하는 문화재청의 의견을 묻고 들은 적이 있는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화재청 노조는 “청와대를 개방한 취지가 무엇인지, 역사성을 어떻게 보존할지 다시 물어야 한다”라는 입장이다. 청와대 활용 방안을 두고 문화재청 쪽에서 입장이 나온 것도 처음이거니와, 문체부가 관계부처나 학계, 하다못해 시민들의 의견 수렴 하나 없이 일방적으로 가는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애초에 문체부에서 청와대를 자신들이 원하는 틀을 만들어 놓고 문화재청의 의견이나 문화재 관리에 대한 기민한 접근도 없이 관계자들과 그 문화재의 주인인 시민들까지 끼워 맞추려 하니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당장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7월 2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다는 계획과 관련된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문화재청 김대현 노조위원장은 “문화재는 한 번 손대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게 문제”라며 “미술관을 당장 안 하면 큰일 나는 게 아닌데 문체부 장관이나 다른 분들도 신중하게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일찌감치 청와대를 개방해 관람지처럼 시민들을 불러모오는 것도 급급하다는 얘길 듣는 판국에 광복이 된 날부터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역사, 사건, 기억들이 존재했던 청와대라는 상징성은 이제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미술관을 세우고 박물관을 세우고 정원을 만들고 광복절에는 K-POP 공연 계획까지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당장 미술관을 만들고 공연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는 것인가 싶기도.
 

청와대를 구경하는 시민들 /flickr

정부는 5년 후 바뀔 대통령도 청와대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란 뉘앙스를 남겼다. 당장 문체부는 청와대를 국민을 위한 문화 예술공간으로 바꿔버리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즉 '청와대를 시민들에게 돌려드리겠다'라는 얘기다. 그런데 사실 국민들은 청와대를 돌려받겠단 생각을 한 적도 별로 없을 것이다. 나라의 주인인 시민들은 돌려달라고 한 적도 없고, 청와대를 미술관이나 공연장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도 하지 않았다.

청와대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어떤 형태로든 굴릴 거라면 애초에 정부부처 관계자들뿐만이 아닌 시민들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터. 소통하고, 의견 수렴을 해도 절대 늦지 않다. 청와대를 베르사유 궁전처럼 만들라고 시민들이 소위 난리를 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하는 건 과연 누구를 위해서인가 의문이 든다.

중세부터 시작해 현대의 역사가 혼재되어 있는 청와대 개방 이후 사람들은 풀밭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먹방' 프로그램 방송 관계자가 답사를 온다. 한 문화재계 관계자는 “결혼식장으로 쓰게 해 달라는 개인신청까지 있다고 한다”며 허탈한 반응이다.
 

1974년 창경원의 코끼리(국가기록원) /서울시

김성도 국립문화재 연구원 안전방재 연구실장은 지난 6월 16일 건축학회 주최 토론회에서 "일본이 우리 민족, 문화의 정수인 경복궁과 경운궁(덕수궁)을 공원화해 위락화했고, 창경궁을 유원지인 창경원으로 만들어 위락화했던 치욕을 겪었음에도, 우리 스스로 또다시 경복궁 후원을 공원이나 유원지로 위락화해 우리 역사에 치욕을 안기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지금의 청와대의 예전의 동물원으로 전락했던 창경궁과 이제는 솔직히 뭐가 다른 점이 있는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권위주의 정치와 결별하는 결단의 시작으로 청와대 개방을 선택했다는 것이 이번 정부의 입장이다. 문체부의 계획대로라면 아마 청와대는 5년 후에도 원래 모습을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문체부는 베르사유 궁전이 프랑스에서 유명한 관광지이고, 왕이 대대적으로 세웠던 곳이니만큼 그 화려하고 웅장함을 비슷한 궤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지금 아이들은 어쩌면 몇 년 후엔 청와대를 그저 단순 복합문화공간으로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신세계까사 리얼리티 관찰 콘텐츠 ‘에브리웨어’ 에 나오는 소파 사진 /신세계까사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자신만만하게 공표한 지 석 달, 청와대 앞에 웬 하얀 소파가 떡하니 있는 이미지 하나가 인터넷 세상을 달구었다. 방송계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종합미디어그룹 IHQ의 모바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 '바바요'(BABAYO)는 지난 5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에브리웨어' 청와대 편을 공개했는데, '대한민국 최초 청와대를 방문한 00소파!'라는 자막이 달린 채 소파를 홍보하는 모습이 담겼다.

청와대에서 특정 기업의 제품을 홍보하는 것도 생전 처음이거니와 문화재청 측도 청와대 권역 내에서 촬영할 때는 비상업적인 용도에만 촬영 허가를 내주고 있으며, 특정 제품명이 노출되거나 홍보 목적으로 촬영하는 것은 금지한 상태다. 신세계 까사 측은 광고 목적으로 진행한 것이 아닌 시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한 것이라 해명했지만,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는 '국내 최초 청와대 입성', '아름다운 청와대 경관과 함께한 ○○ 소파 공개' 등의 문구를 사용해 누가 봐도 광고성이 짙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문화재청은 IHQ에 해당 콘텐츠를 내려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원래 있는 상징조차 제대로 관리가 안 되고 있는데 어떤 거창한 계획을 꿈꾼단 말인가. 지금의 청와대는 베르사유 궁전은커녕, 제2의 창경궁 동물원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 됐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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