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8 20:40 (일)
BMA 소장품 기획전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
상태바
BMA 소장품 기획전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
  • 곽혜인 기자
  • 승인 2022.07.22 15: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시립미술관 2층 10월16일 까지
BMA 소장품 기획전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 포스터 /부산시립미술관

[핸드메이커 곽혜인 기자] 부산시립미술관(BMA)의 소장품 기획전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가 지난 15일 개최됐다.

이번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이 지난 25년 간 축적해온 부산 작가와 작품에 대한 수집·연구·전시 성과를 토대로 세계자본주의 전개 과정 안에 놓인 한국근현대사와 부산 미술을 새롭게 꿰어보고자 마련됐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역사를 토대로 인간은 스스로 살아갈 환경을 만들고, 주어진 환경은 인간을 변화시켜 나간다는 점에 주목했다. 미술작품 역시 순수미술의 영역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시대마다 주어진 제약과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생산물로서 존재한다. 이 같은 전제에 따라 부산의 역사와 미술 또한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시사하고자 한다.

부산 작가 23명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 제작 연도가 가장 이른 우신출의 1929년 작품 <영가대>부터 가장 최근작인 이창운의 2018년 작품 <편도여행>에 이르기까지 약 90여 년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작품 50여 점을 ‘근대, 도시, 자본주의, 국가, 역사’라는 키워드와 네 가지 주제 속에서 살펴본다.

근대, 도시, 자본주의, 국가, 역사

이창운 <편도여행> 2018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의 도입에는 조형섭, 정진윤, 이창운, 서평주, 전준호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다섯 명의 작가는 이번 전시가 드러내고자 하는 총체적 세계의 모습을 각각 근대, 도시, 자본주의, 국가, 역사라는 주제로 제시한다.

근대 문명의 발전과 인간성의 후퇴는 서로의 전제가 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해방은 결핍과 욕망, 상실과 쟁취, 자유와 평등이 불완전한 채로 영향을 미친다. 이는 곧 문명과 인간은 서로를 만들어 나가며 역사를 이루는 한 세계의 구성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창운의 <편도여행>은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구조에 대해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미로같이 짜인 철선이 질서정연하게 엮인 형태를 갖춘 이 거대한 구조물은 내부에 있는 모형 달걀이 끊임없이 하강하며 소리와 움직임을 생산해낸다. 시각적 경외감의 이미지를 증폭시키는 이 반복된 움직임은 형성된 구조물이 내포하고 있는 한계와 모순, 문명과 인간의 관계를 직감하게 한다.

식민도시 부산

우신출 <영가대> 1929 /부산시립미술관

현재까지 부산시립미술관이 수집한 부산미술 소장품 중 가장 이른 시기 작품이 부산근대작가 우신출의 <영가대>라는 사실은 이번 전시에서 부산과 미술의 관계를 꿰어보는 데 있어 흥미로운 단서가 된다. 첫 번째 소주제 ‘식민도시 부산’에서는 제국주의 시대에서 어떻게 부산을 근대 식민도시로 만들어 나간 것인지 들여다볼 수 있다.

‘영가대’라는 작품 제목은 역설적으로 사라진 영가대를 지시하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망루를 겸해 세워진 영가대 대신 그림에 담긴 전차는 식민도시 부산에서 전개된 일본인 자본가의 대규모 독점적 토지 소유와 일본의 대대적인 수탈의 역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작품 <영가대>는 그동안 부산시립미술관이 연구해왔던 부산 근대기 작품의 표현기법이나 형식상 면면 혹은 작가 개인의 이력 연구를 넘어, 식민도시 부산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담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의 자본주의가 어떤 발전과 모순의 과정을 겪으며 성장하게 되는지 문제의식을 이끌어냄으로써 부산시립미술관의 상징적인 작품으로 재등장할 수 있게 된다.

귀환과 피란의 부산항

양달석 <판자촌> 1950 /부산시립미술관

우신출의 <영가대>가 제국주의와 식민지 출현의 맥락에 닿게 한다면, 1950년 작품인 양달석의 <판자촌>에서는 일제 패전 이후 부산이 재형성되어가던 시간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두 번째 소주제 ‘귀환과 피란의 부산항’에서는 일본 패망 이후 한국전쟁기를 거치며 역사의 중심이 된 부산의 변화와 민중들의 고단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엿볼 수 있다.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형성된 현재의 산복도로는 1945년 해방과 함께 고국으로 귀환한 동포들을, 1950년에 시작된 한국전쟁기에는 피란민을, 그리고 1960-70년대에는 산업노동자들을 수용했던 비탈길에 세워진 거주지이다.

해방과 통일에 대한 시대적 과제를 이루기도 전에 미군정과 전쟁 그리고 분단국가를 맞이해야 했던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부산에 집중적으로 유입된 각지의 사람들은 겹겹의 집을 짓고 삶을 지탱하며 일제 식민지 이후의 도시를 다시 만들어 나가게 된다.

전쟁특수와 산업화

최종태 <침묵의 대화> 1970 /부산시립미술관

세 번째 소주제 ‘전쟁특수와 산업화’에서는 도시 부산이 한국전쟁 이후 가난에서 벗어나 고도성장의 역사로 돌아서게 되는 1960-70년대 한국적 상황을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들여다본다. 이 시기에 진행된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파병, 미국의 경제원조 전략와 한국의 군수물자 수출생산증대는 역설적으로 부산을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계기가 됐다.

1970년 작품인 최종태의 <침묵의 대화>는 1966년 베트남 전쟁으로 4차 파병을 떠난 한국 전투병 백마부대를 지시하는 ‘백마. 9×29R3’와 ‘병장 최판수’라는 이름을 그림 속 물품운송나무상자 표면에 정확히 표기하고 있다.

당시 국내 최대 국제무역항이었던 부산항은 동시에 미해군 수송선에 오른 백마부대를 환송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했다. 냉전체제라는 세계사적 상황 속에서 한국은 군사 정치와 경제발전의 역사를 동시에 만들어 나가게 되고 그 안에서 부산은 군부 정권에 의한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 낸 ‘베트남특수’ 속에서 산업 성장과 변화를 겪으며 긴장과 침묵의 역사를 써내려 나간다.

부마민주항쟁과 노동자투쟁

이혜주 <무제> 1996 /부산시립미술관

미국의 경제원조와 군사독재가 결합한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 선성장 후분배라는 경제정책 기조 하에 억압되었던 노동자 경제 평등에 대한 요구는 1970년대 말 부마민주항쟁을 통해 대중의 정치적 공간이 열리는 계기를 맞이하며 거대한 사회적 힘이 되어 전국적 투쟁으로 번져 나갔다. 네 번째 소주제 ‘부마민주항쟁과 노동자투쟁’에서는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에 의해 소외되고 이에 대항하는 민중의 역사적 두 모습을 다룬다.

소외되고 대항하는 민중의 집단적 두 모습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 한국 사회의 정치적 공간을 여는 사회적 힘이 되어 격렬한 사회변혁을 이끌었다. 부마민주항쟁과 노동자투쟁,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 상호작용하며 서로의 길을 여는 힘이 되었다면, 1990년대 들어서면서 세계정세 변화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바람 속에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점차 힘을 잃어간다.

1996년 노동법개악과 함께 닥친 1997년 외환 위기는 자본과 국가 권력의 새로운 공격이 되어 노동에 기반해 삶을 구성해 나가는 모든 인간을 자유라는 허울 속에서 원자화된 개인으로 타락시키고, 개인이라는 미명하에 보편적인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으로부터 더욱 소외시켰다.

1996년에 제작된 이혜주의 <무제>는 한편으로 민중의 소외와 대항의 두 모습을 동시에 제시하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분리된 두 인간 집단과 이들의 서로 다른 의식을 상하 구도로 형상화하며, 양갈래의 길을 걷게 된 인간 대중의 욕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 전시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의 소주제를 통해 살펴본 각각의 사건은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닌 각 단계의 발전과 모순을 포함해 역사적으로 나타나고, 어떤 단계에서는 특정한 문제의식이 폭발적으로 분출돼 새로운 역사로 나타나기도 한다.

현재의 미술 역시 과거의 성과와 유산을 토대로 창조된다. 모든 것은 역사적인 관계 안에서 창조되며 서로를 발전시키거나 때로는 후퇴시키며 창조되고 재생산된다. 이러한 관점은 반대로 오늘날의 조건이 현재와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를 재창조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이번 소장품 기획전은 그간 미술관이 축적해 온 모든 활동의 전제와 조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시 바라보는 현재적 관점에서 시작된다. 미술관 소장품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재해석해 새로운 맥락을 이끌어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번 전시는 부산과 미술을 한국과 세계라는 중층적 의미로 연결함으로써 미술관의 활동 범위를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BMA 소장품 기획전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는 오는 10월 16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 2층에서 진행된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핸드메이커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독립 매체로서 주체 적인 취재와 기사를 통해 여러 미디어·포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광고 배너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독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핸드메이커가 다양한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된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후원을 통해 핸드메이커는 보다 독자 중심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미래를 관통하 는 시선으로, 독립적인 보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이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에는 항상 핸드메이커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가들 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 다. 앞으로 핸드메이커가 만들어갈 메이커스페이스에 동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단 한차례라도 여러분의 후원은 큰 도움이 됩니다. 후원하기 링크를 통해 지금 바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응원해 주세요.

후원하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경기도 시흥시 은계로338번길 36 3층 301호(대야동)
  • 대표전화 : 070-7720-2181
  • 팩스 : 031-312-10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리
  • 법인명 : (주)핸드메이커
  • 제호 : 핸드메이커(handmaker)
  • 등록번호 : 경기 아 51615
  • 등록일 : 2017-08-23
  • 발행일 : 2017-08-15
  • 발행·편집인 : 권희정
  • Copyright © 2024 핸드메이커(handmaker).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handmk.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