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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평면적이지만 그럼에도 추상적이다, 키클라데스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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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평면적이지만 그럼에도 추상적이다, 키클라데스 조각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7.14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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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클라데스 조각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미노스 문명, 미케네 문명과 더불어 에게 3대 문명의 하나인 키클라데스 문명은 기원전 1100년까지 에게 해에서 번성했다. 현존하는 키클라데스 예술품들 중 가장 잘 알려진 형태는 조각상으로, 팔짱을 낀 여성과 남성의 모습이다.

날카로운 윤곽이 드러난 코를 제외하고 얼굴은 온통 공백으로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이들 중 대부분은 매장된 부장품으로 보인다. 중기에 가장 많이 발견되었으며 팔짱을 가슴 앞으로 끼고 꼿꼿이 서 있는 여성상이 많다. 드물게는 1.5m 이상의 크기도 있으며 남성상은 거의 희소하다. 
 

키클라데스 조각 /flickr

그리스 문명은 키클라테스 문명, 전기 크레타 문명, 후기 미케네 문명으로 흘러간다. 에게 해 남서부에 있는 키클라데스 제도는 약 30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의 대부분은 광물 자원이 풍부했는데 철광석, 구리, 납, 금, 은, 대리석 등 여러 자원들은 높은 품질을 자랑했다. 학자들은 키클라데스 제도에 적어도 기원전 6000년 사람들이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초기 정착자들은 보리와 밀을 경작했고, 에게 해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특히 뛰어난 조각가들이 많았고, 기원전 3000년 키클라데스 예술이라 불리는 문명이 출현한다. 초기 청동기 시대, 지중해에서는 광석에서 금속을 골라내는 기술인 야금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광물이 풍부하고, 키클라데스 산맥과 소아시아 해안 등이 있어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서 무역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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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들을 가로질러 사람들이 이동하고, 공유 문명이 발달하면서 야금술이 발달할 때까지 작았던 농업 공동체들은 석조 건물을 가진 커다란 마을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어업, 조선, 자원 수출에 시선을 돌렸고 빈부의 격차 또한 나타나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들과 함께 묻은 대리석 조각상들은 종류도, 품질도 다양했고 이 당시 키클라데스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의 사회적 지위가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소아시아에서 온 항해자들은 키클라데스에 살기 시작했고 풍부한 천연자원 덕분에 꽤 큰 번영을 이뤘다. 
 

조각상 /flickr

키클라데스 예술은 그리스의 작은 섬인 안티파로스의 살리아고스 발굴 현장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은 신석기 시대부터 초기 기독교까지의 폭넓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 시기 나온 조각상이나 도자는 크레타 섬, 그리스 예술과도 비슷한 경향을 띤다. 이 시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키클라데스 예술은 '피규어'라 불리는 대리석 조각상들이다. 고고학자 코엘 렌프류는 키클라데스 조각을 두고 '조용하면서 단호한 리듬, 균형잡힌 비율을 지닌 이 인물은 인간 형태를 그린 가장 설득력 있는 예시 중 하나다'

이 조각상들은 에게 해 주변에 흩어져 있었으며, 크레타 섬의 주민들이나 그리스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가장 유명한 조각상들은 음악가로, 하프나 파이프를 연주하는 모습이 많다. 주로 여성을 고도로 양식화한 이 조각상들은 나체로, 팔짱을 끼고 있다.
 

나체로 팔짱을 낀 양식화된 모습 /flickr

이러한 여성 조각상은 일부 고고학자들이 인류학적, 또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같은 신석기 시대 여성상들처럼 자연의 여신, 또는 다산을 대표한다고 추정한다. 물론 확실한 이론은 아니며, 여러 학자들은 이 조각상들이 죽음, 신, 어린이 등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한다.

어떤 학자는 이 조각상들을 두고 '단순한 인형보다는 귀한 의미지만, 신성불가침의 우상보다는 의미가 덜 하다'라고 주장한다. 이 이미지들이 엄연한 의미에서 우상의 대상이었다는 주장은 딱히 증거가 없으며, 학자들은 우상이란 단어가 종교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키클라데스 조각을 우상의 대상으로 보진 않는다. 오히려 묘에서 발굴된 것으로 보아 장례식에 정기적으로 쓰였다는 주장이 더 크다. 
 

조각난 상 /flickr

일부는 무덤에서 발견되었지만, 다시 칠하고 만든 흔적들도 있어 고인이 생전에 소중히 생각했던 물건으로 함께 묻혔다는 뜻도 된다. 조각상들은 무덤에서 온전히 발견된 것도, 산산조각 난 채로 발견된 것도 있고, 고인이 생전에 쓴 흔적이 남은 것도 있지만 어떤 무덤에는 아예 조각상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 조각상들은 남성과 여성의 무덤 모두 똑같이 묻혔는데 간혹 사당이나 개인 집에도 세워졌을 거라고도 추측한다. 

초기 청동기 시대, 키클라데스인들은 그들의 시체를 석판에 매장하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발견된 키클라데스 조각들은 유럽에서 발달한 최초의 양식적이면서, 일관된 조각 형태를 띠고 있다. 19세기 이전까지는 조각에 대해 미스터리였지만 케로스 섬에서 발굴된 유물들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낸다. 발굴 현장에서 발견한 거대한 퇴적물에서, 부서진 수백 개의 조각들이 발견되면서 학자들은 그 장소가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일종의 성지였다고 믿는다. 
 

밀로스의 비너스 /flickr

키클라데스 예술의 가장 유명한 예들 중 하나는 1820년, 그리스 남동부 키클라데스 제도 서쪽에 위치한 밀로스 섬에서 발견된 '밀로스의 비너스'다. 밀로스의 비너스는 파블로 피카소를 포함해 모딜리아니, 헨리 무어 등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피카소는 '큐비즘을 창조한 건 나였지만, 내 앞엔 키클라데스가 있었다'라 했기도.
 

바이올린 모양의 여성상 /flickr
목걸이가 눈에 띄는 조각상 /flickr

키클라데스 조각상은 지역의 거친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일관적인 모습을 보인다. 바이올린 모양의 여인상들을 포함해 조각상들은 여러 특이사항이 없이 양식화된 모습으로 기원전 2000년까지 계속 만들어졌다고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각상은 다리를 구분하기 위해 선을 긋고, 머리 윗부분은 뒤로 더 젖혀지거나, 무릎은 덜 구부러졌지만 어깨는 더 각지고 팔은 옛날보다 덜 교차하는 식이다. 머리카락이나 눈 같은 세부 사항을 강조하기 위해 색상을 칠하기도 했다. 도트 모양은 팔찌와 목걸이로 인물을 장식한 것이다. 
 

비율이 심하게 과장된 모습 /flickr
캅살라 조각상 /flickr

키클라데스 조각상의 초기 형태는 과장된 몸 비율을 지녔다. 다리는 파손되기 쉬웠고, 여성의 가슴까지 조각된 것이 특징이다. 조각상들은 일반적으로 키가 30cm를 넘지 않고 발도 작고 뾰족하다. 학자들은 발이 뾰족한 점을 미루어 보아 이 조각상들이 서는 것보다는 눕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고 추측한다. 대개 대리석으로 조각했지만 나무로 조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캅살라라 불리는 조각상은 팔이 훨씬 아래쪽에 있고, 얼굴은 딱히 형태가 없다. 특히 다리가 가늘고, 길고 오래되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사람과 말을 그린 토기 /flickr
흑색의 항아리 /flickr

키클라데스 제도는 광물과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고, 조각가들은 풍부한 재료들을 이용해 조각상뿐만이 아닌 토기도 수작업으로 제작했다. 토기는 주로 검은색 또는 붉은색으로, 연한 담황색의 토기도 발견됐다. 원통형 토기와 항아리가 가장 인기 많은 형태였고, 사람이 아닌 동물 모양이나 에게 해라는 바다에 기반을 둔 생활 양식을 상기시키는 자연 주의적 모티브도 발견할 수 있다. 
 

음악가를 조각한 모습 /flickr

키클라데스 조각상 또한 토기와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을 묘사하며, 다양한 고대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들의 묘사도 있다. 키클라데스 조각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우아하고 소박하면서도 인간의 형태를 확실히 묘사하고 있고, 선사 시대에 만들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현대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조각상의 형태는 생략, 왜곡, 과장에 의해 완성되며 추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조성한다.

초기 키클라데스 예술은 대리석으로 단순한 의인화 조각상을 만들었다면 청동기 시대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예술적 교양 또한 발전해 나갔다. 헬레니즘, 소아시아와의 무역을 통해 더 정교하면서 정확한 조각상을 만들었고 이 조각상들은 키클라데스 후기에 들어 흔해졌다. 무덤에서 발견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조각상들의 정확한 기능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세심하게 조각한 모습 /flickr

19세기 발굴 이후 키클라데스 발굴품 중 약 75%가 골동품 시장에 내다 팔려는 목적으로 도난당했다고 한다. 키클라데스 예술은 기원전 2000년, 갑자기 사람들이 살던 모든 거주지가 사라지면서 인류의 정착 또한 끝이 난다.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키클라데스 조각상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문화를 알려주는 남은 잔해 중 하나이며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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