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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벙커 아카이브 프로젝트 ‘기록하는 기억’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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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벙커 아카이브 프로젝트 ‘기록하는 기억’展
  • 곽혜인 기자
  • 승인 2022.05.09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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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기억’ 전시 포스터 /서울시립미술관

[핸드메이커 곽혜인 기자] 서울시립미술관이 5년간 진행해온 ‘SeMA 벙커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전시 <기록하는 기억>을 통해 여섯 작품으로 탄생했다.

1970년대 군사 정권 시절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SeMA 벙커는 2005년 여의도 환승센터 건립을 위한 현지 조사 중 발견됐으며 일종의 정황 증거를 통해 그 정체성이 정립되어 왔다. 사실에 기반한 기록물이 부재한 벙커는 정치·사회적 배경을 추론하는 관점에 따라 가변적인 정체가 됐고, 사실상 서울 시민의 삶 속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벙커의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지난 2017년 권혜원, 김다움, 손광주, 신지선, 윤지원, 이정우 작가에게 영상 아카이브를 의뢰한 바 있다. 제작이 거듭되는 동안 각 작품은 과거를 닫아 두는 기록보관소의 의미를 넘어 미래를 향해 언제나 열려 있는 창고와도 같은 아카이브로 자리 잡았다.

여의도 벙커를 지속적인 문화 생산의 장소로 전환하기 위해 마련된 영상 프로덕션 ‘SeMA 벙커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시각예술가들의 자유로운 해석을 영상으로 기록하며 서울 시민을 위한 미술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여섯 작품은 벙커에 대한 불분명한 기록과 기억 사이에서 공간의 미학적 특성을 반영한 예술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권혜원 ‘암흑물질’ /서울시립미술관

권혜원 작가의 〈암흑 물질〉은 벙커를 설계한 가상의 건축가를 설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허구의 건축가는 1970년 당시 과학계에서 제기된 암흑 물질에 스스로 매료되어 벙커를 구상하고 활용했음을 고백한다. 그의 고백에 중심에는 SeMA 벙커 역사갤러리에 전시 중인 아카이브 자료에 대한 해석과 기록의 표면적 요소가 바탕이 된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영상 〈암흑 물질〉에서 벙커는 거대한 공간적 덩어리이기도, 추억의 대상이기도 한 역사적 물질로 등장한다. 이로써 도시 한 복판에 놓인 비밀스러운 지하 세계를 향한 보편적 판타지는 무너지게 된다.
 

김다움 ‘모드’ /서울시립미술관

김다움은 벙커를 덮고 있는 현재의 구조물 뒤에 남은 타일이나 벽과 같은 시설에 집중했다. 2018년 프로덕션 당시 제작했던 영상 〈모드〉는 벙커의 안과 밖을 유연하게 사유하며 기록이 가지는 오류 너머 기억이 가지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해당 작품은 관람객이 현재의 공간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도록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굴’을 편집해 나레이션으로 추가했으며 음향에서 추출되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벙커의 미로 같은 공간 구조에 반영했다.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김다움의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벙커의 기록을 기억으로 변모시킨다.
 

손광주 ‘거울 없는 방’ /서울시립미술관

손광주는 벙커에 대한 기록 부재와 그로 인한 추정에 주목했다. 작가는 그 어떤 목적 없이 그 자체만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가상의 무고한 정치범을 통해 벙커를 의인화했다. 이는 기록과 기억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공백의 역사를 그럴듯하게 채워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 속에 놓인 벙커를 묘사한 것이다.

작가는 대한뉴스의 아카이브 영상과 소리를 주요 소재로 삼았으며 벙커를 해석하는 보편적 방식에 질문을 던졌다. 작가의 손을 통해 벙커는 일상적인 의미가 사라진 낯설고 공허한 공간이자, 의지를 빼앗긴 존재로 관람객을 만난다.
 

신지선 ‘백호소서’ /서울시립미술관

경제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능했던 1970년대의 대표적 사건 ‘쥐잡기 운동’은 온 국민이 일제히 쥐약을 놓았던 범국민적인 캠페인이었다. 당시 쥐약은 쥐의 개체 수를 급격히 감소시키며 본래의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였지만, 한국 토종 여우를 멸종시키고 생태교란을 초래하는 비극을 낳았다.

신지선 작가는 이 부수적 결과에 집중했다. <백호소서>는 한 인물이 사라진 여우를 찾아 나서며 과거와 조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상 속 벙커는 경제발전이라는 시대 명분 앞에 가려진 개인의 자유와 희망을 담은 여우 구슬로 표현됐다. 이 같은 우화적 상황을 통해 작가는 검은 아스팔트 아래 묻혀 있었던 역사 속 벙커를 찾아가는 여정을 묘사하고자 한다.
 

윤지원 ‘나, 박정희, 벙커’ /서울시립미술관

윤지원은 벙커를 향한 보편적 해석에 충실하면서도 그를 투영하는 역사 해석에 집중한다. 〈나, 박정희, 벙커〉에서는 벙커를 1970년대 설계된 경호용 방공호로 해석하는 기록을 따르고 있다. 작가는 이창환 배우를 통해 그 해석의 중심에 있는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해 조명했다.

그가 배역을 맡았던 1995년 MBC 드라마 ‘제4공화국’은 큰 인기를 끌며 박정희라는 인물을 대중에게 새롭게 인식시키는 동시에 배우 이창환의 얼굴을 박정희로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작가는 이창환에게 남겨진 박정희의 잔상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도려낼 수 없는 일종의 무의식, 벙커와도 같다고 말한다. 〈나, 박정희, 벙커〉를 통해 2017년을 살아가는 배우 이창환과 1979년의 박정희, 그리고 벙커의 의미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우 ‘언-오토리버스’ /서울시립미술관

이정우 작가의 〈언-오토 리버스〉는 2018년 SeMA 벙커 아카이브 프로젝트 이후의 작업을 재구성한 2채널 영상이다. 작가는 벙커를 마주한 프로덕션 이후의 작업 궤적을 다시금 정리하면서 역사라는 선형적 시간을 전제로 과거의 벙커를 현재로 재소환한다.

자동 역-재생이라는 의미로 직역되는 오토 리버스(Auto Reverse)는 카세트 테이프 양면을 교차로 재생해 정지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능이다. 작가는 이를 단순한 기계적 반복을 넘어 함축적인 순환으로 보고, 벙커의 역사적 오류 또한 이같이 지속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전시공간은 총 3개 구획으로 나뉘며 모니터 1개, 싱글 채널 스크린 4개, 멀티 채널 스크린 1개로 구성되어 무작위 상영된다. 해석과 시선에 순서를 두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자동 재생되는 시스템을 통해 6명의 작가가 기록하는 벙커의 기억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 ‘기록하는 기억’은 SeMA 벙커 B1 전시실에서 오는 6월 5일까지 진행되며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팅 앱을 통해 작품 해설을 감상할 수 있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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