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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조화, 빌레로이앤보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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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조화, 빌레로이앤보흐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4.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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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로이앤보흐의 티세트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빌레로이앤보흐는 장 프랑수아 보흐와 그의 세 아들이 프랑스의 한 마을에서 시작한 브랜드로, 독일의 전통적 가치를 보유하여 빌레로이앤보흐만의 특별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빌레로이앤보흐는 설립자인 니콜라스 빌레로이와 장 프랑스와 보흐, 두 사람의 성에서 따왔다. 

유행을 타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프랑스 디자인, 전통적인 독일 엔지니어링의 품질 등을 비롯해 숙련된 직원들의 뛰어난 기술을 지니고 있으며, 설립 이래로 수많은 디자인상을 수상하며 빌레로이앤보흐만의 길고 우수한 전통을 증명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 그리고 두 사업가들의 만남

빌레로이앤보흐의 식기 세트 /flickr

유럽에서 빌레로이앤보흐는 도자나 일반 식기 말고도 화장실이나 집을 꾸미는 인테리어로도 유명하다. 자연과 도시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을 모두 반영하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중요시한다. 1748년 빌레로이앤보흐의 첫 공장은 아우든르티쉐라는 작은 프랑스의 한 마을이었다. 빌레로이앤보흐의 창시자 프랑스와 보흐는 원래 마을의 철 주조 공장에서 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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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5세가 재임하던 시절 왕실 대포 창시자라는 별명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사유지에 공장을 설립, 세 아들과 함께 룩셈브르크 근처에서 식기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막내아들인 피에르 조세프 보흐는 두 형제와 처남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가 죽은 후 도자 생산을 감독하고 만들 수 있는 상품들의 범위도 넓혔다.

로렌의 프랑스 합병 이후 세 형제는 룩셈부르크로 이주하기로 결심했고, 본격적인 시장 진출의 필요성을 느껴 새 도기 제조공장을 세운다. 1766년,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 왕후로부터 왕가의 특권을 부여받은 이들은 자신들만의 창의력, 도자 제작 기술을 포함해 모두가 열심히 노력한 끝에 공장을 번성해 나갔다.

1784년까지 300여명의 노동자를 고용했다고 하며, 세 형제는 새 공장에서 도자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원시적인 대량 생산 기법에서 벗어나 효율적인 도자 가마를 포함한 비용 절감까지 연구했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모든 도자의 수요는 감소 추세였지만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노력이 한몫했다. 

1794년 프랑스군이 세트퐁텐느 지역을 점령하고 모든 공장의 건물을 파괴했을 때, 피에르 보흐는 공장을 재건하고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가마를 비롯한 여러 기계들을 새롭게 교체하는 동안 남아 있는 인력들 또한 그를 도왔다. 1802년, 세트퐁텐느에서 만들어진 상품들은 다시 시장에 내다 팔았고 파리에서 열린 산업박람회에서는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오래된 본사 /flickr

피에르 보흐가 전쟁을 겪으며 사업을 재건하는 것을 지켜본 아들 장 프랑스와 보흐도 이 사업을 계속하고 더 확장시키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면서 얻은 실질적인 경험과 함께 그는 파리의 에콜 데 리브르데 시앙스에서 물리학과 화학을 공부했다. 1809년 독일 메트라흐로 이주한 장 프랑스와 보흐는 프랑스 합병으로 버려진 베네딕틴 수도원을 구입한다.

이것은 빌레로이앤보흐 도자 산업의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곳에서 현대적이면서도 기계화된 생산 라인을 활용할 도기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 많은 일꾼들도 데려와 일을 했다. 최첨단 생산 시설들은 수작업에서 산업 생산으로 이어지는 새 기준을 수립하게 했다. 이 수도원은 빌레로이앤보흐 주식회사 본사로 남아 있으며 지금도 지나가다 볼 수 있다.
 

1875년, 빌레로이앤보흐 공장 모습의 묘사 /flickr

특히 독일 서부를 흐르는 자르 강은 자재와 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고, 연탄이 풍부해 목재 대신으로 쓰면서 가마를 쉴새없이 태울 수 있었다. 보흐의 아내는 공장을 설립할 수 있는 자본을 댔고, 회사는 '보흐-부쉬만'이라는 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당시엔 나폴레옹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잉글랜드와 대륙봉쇄령을 실시하면서 이 정책은 새로 만들어진 공장들에게 큰 타격을 줬다. 수입 없이 자재들을 직접 수급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매우 컸다고.
 

아카풀코 티세트 /flickr

1815년 나폴레옹의 패배 후 무역 봉쇄는 풀렸고 수출입이 자유로워지며 도자 상품 또한 프랑스 시장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보흐 부부는 이때 이웃 사업가였던 니콜라스 빌레로이를 알게 되었고, 빌레로이는 1797년 자르 강에 세워졌던 도기 공장의 주인이 된다. 그는 사업 감각이 뛰어났고, 경영 경험도 풍부해 도자 생산에 익숙한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그가 고용한 장인들은 1813년까지 나폴레옹 전쟁 포로수용소에서 온 사람들이기도 했다.

빌레로이는 이전 공장에서의 사업 체계를 알아본 뒤 기술적인 과정을 좀 더 익히기 위해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장 프랑스와 보흐 역시 그와의 경쟁을 통한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장 프랑스와 보흐는 다른 관리자들과 함께 생산 방법의 효율성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난다. 그의 여행 일기를 보면 맨체스터, 리즈, 요크셔, 웨지우드의 에트루리아 공장을 포함해 여러 곳을 시찰했다고.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빌레로이는 메트라흐에 있는 보흐 가문에 재료를 공급하면서 사업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진보적인 두 도자 사업가가 경쟁자 대신 파트너가 되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꽤 멋진 일이었다. 1836년 드디어 도자 브랜드 '빌레로이앤보흐 Villeroy & Boch'가 탄생하고, 1842년 장 프랑스와 보흐의 아들 오이겐 보흐와 빌레로이의 손녀인 옥타비의 결혼으로 두 가문 간의 유대는 더욱 강화된다. 
 

쾰른 성당의 모자이크 타일 /flickr

1869년에는 건축용 타일을 전문으로 제조하는 첫번째 공장을 오픈했고, 로마의 모자이크에서 영감을 얻어 타일 생산을 시작한다. 1870년까지 이 바닥 타일은 회사 매출의 60%를 차지했다고 하며, 회사에서는 타일 설치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 세계를 다녔던 타일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이들은 쾰른 성당의 바닥 타일 디자인도 의뢰를 받았는데, 5년 동안 바닥의 모자이크는 총 1,300여평에 걸쳐 우주에 대한 중세 시대의 관점과 쾰른 대교구의 역사를 묘사하는 디자인으로 설치됐다.

빌레로이앤보흐는 독일, 룩셈부르크, 벨기에 등 여러 공장에서 7,000여명의 노동자들을 고용하며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도자 회사 중 하나가 되었다. 빌레로이앤보흐는 단순하면서도 질 좋은 일상 식기들도 생산했고 대부분의 가정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것들이었다. 1900년대까지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세면대, 항아리, 접시, 세면대 등이 있었는데 19세기 후반 빌레로이앤보흐의 드레스덴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빌레로이앤보흐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화장실 /flickr

또 각 가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빌레로이앤보흐는 위생적인 세라믹 제품들을 계속 생산했고, 유럽 전역의 화장실 위생 문화를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독일의 산업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의 제품 컨셉이 더해지며 욕실이란 이미지를 기분 좋은 곳으로 바꾸게 되었고, 화장실은 단순히 비밀스러운 개인 공간이 아니라 다른 생활 공간과 같은 지위로 올라서게 됐다. 

빌레로이앤보흐는 전통을 중요시했고, 처음에 식기류 제품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위생용품과 타일 등으로 넘어간 것처럼 상품의 다양화를 추구했다. 이들은 제품을 품질이 높으면서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싶어해 디자인이나 생산 과정에서 끊임없는 혁신을 꿈꾸며 전세계 시장으로 진출해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도자기 제조 회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이들은 전통과 미래의 결합을 중요시하며, 변화를 지속적으로 수용하고 더 발전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크리스마스 식기 /flickr

빌레로이앤보흐 패턴의 성공 요인은 트렌드에 대한 빠른 캐치, 세라믹 생산 관련 광범위한 노하우 등이다. 균형 잡힌 조화로운 디자인과 라인 지향은 정교한 빌레로이앤보흐만의 독특한 특성을 만든다. 또한 빌레로이앤보흐는 회사 자체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유명 디자이너들과도 협업 중이며, 새롭게 생겨나는 트렌드들에 영감을 받아 편견 없는 시각을 유지하며 제품 생산에 기여하고 있다. 
 

이노바 라인 /flickr

빌레로이앤보흐에는 여러 패턴이 있으며 대표적인 '이노바'라인은 선의 굴곡과 라인 사이의 균형을 꾀하는 디자인이다. 직선과 곡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 주방에서 고려할 수 있는 선의 미학적인 이미지를 충분히 구현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머그컵과 컵 받침, 접시 세트 등 다양한 테이블 세팅이 가능한 아이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아이템별로도 활용도가 높다. 
 

아우든 패턴 /flickr
마리플뢰르 /flickr

'아우든' 패턴은 빌레로이앤보흐의 250번째 기념 패턴으로 첫 도자 공장이 세워졌던 마을 아우든르티쉐에서 이름을 따 왔으며 한가로운 시골 농장 일상의 풍경을 묘사한다. 화사한 꽃과 줄기가 특징인 '마리플뢰르' 라인은 따스한 태양빛, 공기 중의 부드러운 속삭임, 가벼운 바람결에 부드럽게 물결치는 꽃망울과 초원의 향기 등 여름의 시골 정원을 접시나 찻잔에 그대로 옮겨온 듯한 것이 특징이다. 
 

빌레로이앤보흐의 여러 식기들 /flickr

최근 빌레로이앤보흐는 친환경 측면에 대해 에너지 소비를 개선하고, 이산화탄소나 여타 가스와 같은 오염 물질의 방출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특별한 모임이나 행사, 또는 일상적인 저녁을 준비할 때 언제든 이상적인 테이블을 마련할 수 있도록 고품질의 티세트, 디너웨어, 커트러리 등을 생산하는 데 힘쓴다. 이들은 '도자기는 패션이다'라는 구호 아래 도자가 사람들의 일상과 조화를 이루도록 매년 제품을 생산해내고 있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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