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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 섬 속 독특한 불교 예술의 앙상블,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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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 섬 속 독특한 불교 예술의 앙상블,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4.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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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두루 불교 사원 /pixabay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장대하고 복잡한 사원, 인도네시아의 앙코르와트라 불리는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은 인도네시아 자바섬 정글 속에 고요히 놓여 있다. 어떤 사람들이, 왜 지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불가사의의 건축물로 사원이 있는 곳 자체가 엄청나게 넓어 관람객들은 사원에 도착하기까지 트램이나 마차로 가야 할 정도다. 물론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위의 풍경들을 느긋하게 관람할 수도 있다.

마치 미지의 정글을 탐험하듯 한참을 걷고 있으면 눈앞에 거대한 건축물이 나타난다.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은 지금으로 치면 15층 빌딩 높로 암석 100만개가 넘게 쓰였다. 아시아에 있는 유적으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주도로 대규모의 보존과 보수 작업을 시행했고, 앙코로와트보다도 먼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정글 속 숨은 최대의 불교 사원, 보로부두르

보로부두루 불교 사원 /flickr

인도네시아에서는 사원을 '칸디'라 부른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보로부두르 사원(Borobudur Temple)을 칸디 보로부두르(Candi Borobudur)라 부른다. 보로부두르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의 비하라 부다 우르(vihara Buddha uhr)에서 나온 말로, '언덕 위에 있는 불교 사원'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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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두르 불교 사원은 인도네시아 자바에 있는 세 개의 불교 사원으로 보로부두르 근처에는 믄두트, 파원 사원이 있다. 보로부두르와 일직선에 놓여 있는 믄두트와 파원 사원의 이어져 있는 길은 개인이 열반에 도달하기 위한 순례길을 상징한다고들 한다. 학자들은 이 세 사원이 일직선으로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세 사원간의 어떤 교류를 추측하고 있지만 확실한 건 없다.

8-9세기 걸쳐 자바섬에 있던 사일렌드라 왕조가 통치한 기간 동안 지어졌으며, 14-15세기 많은 자바인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이 사원이 버려지기 전까지 불교도들은 보로부두르에서 순례와 의식 등을 치렀다. 다만 대지진과 화산 폭발 때문에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1814년 네덜란드로부터 한시적으로 자바 통치권을 인계받은 영국의 토머스 스탠포드 라플즈 경(卿)은 섬의 각지를 시찰하면서 보로부두르 유적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라플즈 경은 자신이 직접 유적에 뛰어들어 조사하기 어려워 현지 사정에 밝은 코르넬리우스라는 네덜란드인에게 조사를 의뢰해 유적을 뒤덮고 있던 숲부터 없애게 했다. 이후 모습을 감췄던 보로부두르 유적의 모습이 드러났고, 이때서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져 1907년에 네덜란드 정부는 대대적인 유적 조사와 수리 복원 사업을 시행했다.
 

보로부두르의 세부 모습, 정교하다 /flickr

작업이 시작된 지 4년 후인 1911년에 유적의 구조가 정확하게 밝혀짐으로써 풍화로 파괴된 부분에 대한 수리·복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에도 대규모 복원이 한 차례 더 이루어졌는데, 흥미로운 건 보로부두르에 대한 정보, 세운 목적 등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힌두교, 불교를 가진 상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했고 지역 주민들과 결혼해 인구가 많아졌으며, 토착민들이 인도와의 장거리 무역 관계를 하게 되면서 고대 인도의 문화와 종교를 들여와 자신들의 문화와 혼합했다는 의견이 있다. 이 사원이 언제 세워졌는지 등의 주요 정보는 인도네시아,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된 부조와 비문의 문자를 분석해 나온 정보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일렌드라 왕조의 사마라퉁가 왕은 영토 확장보다 왕국의 영향력을 굳히는 데 주력했다고 하며, 비슈누 왕 때무터 건설하기 시작해 약 50년 후인 824년 비슈누 왕의 손자인 사마라퉁가 왕이 5단계 건축을 마무리하며 완성되었다고 한다. 초기 공사는 언덕에서 시작했고, 계단식 피라미드처럼 단계별로 배열해 건축했다. 
 

프람바난 사원 /flickr

사마라퉁가 왕은 보로부두르의 건축 완성을 전체적으로 감독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9세기 후반 사일렌드라 왕조가 쇠약해지자 중앙 자바 남쪽의 마타람 지역에서 산자야 왕통을 자칭하며 일어난 시바교도의 왕조인 산자야 왕조의 힌두교 자바인들이 힌두교 사원인 프람바난 사원을 세웠는데, 이것은 보로부두르 사원에 대한 정치적·문화적 경계라는 가능성도 있다고.

보로부두르 사원은 중세 초기 불교 신자들의 순례와 제사 등의 행사로 북적거렸다. 이 사원이 버려진 이유는 지금도 논의 중이지만 확실한 건 지금도 모른다. 가장 유력한 설은 10-11세기 마타람 왕국의 수도가 화산 폭발로 인해 이동하면서 보로부두르도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한번씩 들르는 순례의 중심지가 되었다가, 15세기 자바인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며 늘어나기 시작했고 자바인들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만큼 보로부두르의 입지 또한 약해져 갔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랜 시간 꾸준히 이어진 지진, 화산폭발, 열대우림의 성장 등으로 보로부두르는 자바 섬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보로부두르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베트남의 미선 유적 등과 비교했을 때 인상적인 특징들이 있다. 힌두 문화가 발달했던 굽타 왕조 건축 양식과 자바 문화의 혼합으로 고대 자바와 인도의 문화 융합이 깔려 있다. 보로부두르 주변에는 500여개의 불상이 있고, 약 3,000여개의 부조 조각상이 있다고들 한다. 이 조각품들은 부처의 가르침과 생활, 지혜를 묘사하고 있다. 전체적인 규모를 봤을 땐 단일 유적지 중 가장 많은 양의 불교 조각상을 보유하고 있다고. 
 

부처 조각상과 스투파 /pixabay

상단에는 원형 테라스가 있고 건물 꼭대기에는 메인 스투파가 있으며, 현지인들은 스투파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넣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구조물은 1층 밑부분부터 시작해 세 단계를 거친다. 불교에서는 세상을 세 가지 단계로 보는데, 인간이 지상의 성욕과 식욕이라는 욕망에 묶여 있는 가장 낮은 단계인 '욕계'의 세상을 사원 1층 아랫부분에 새겼다. 약 1,460여개의 부조물은 욕계의 세상을 그렸고, 1,212개의 부조물은 장식 역할을 한다. 다음 단계인 '색계'는 2-5층으로 욕계의 두 가지 욕망을 초월했지만 물질에 얽매인 세계를 상징하며, 부처의 전생을 부조로 묘사했다. 마지막으로 위쪽인 6-9층은 '무색계'로 욕망도 물질도 초월한 순수한 정신적 영역을 의미하며 부처가 사는 세계를 묘사한다. 
 

부처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 /flickr

보로부드르 사원은 평지 대신 산 위에 지어졌다. 다른 신전에 있는 내부 공간이 없고, 구조는 피라미드와 비슷하다. 기단 위의 첫 단은 크기별로 층층이 쌓은 동심형 정사각 5층 계단으로 피라미드의 밑동을 이룬다. 이 단 위에는 주 탑을 얹어 놓은 3단의 원형 받침돌이 있으며 주 탑으로 가는 길에는 계단이 있다. 기단과 사각형 대석을 둘러싼 난간은 석조 부조로 장식했는데, 깨달음을 향한 수양 과정과 부처의 생애에 관한 일화를 그려 넣었다.

원형 받침돌에는 투조 세공에 각각의 불상을 지닌 탑 72기가 장식되어 있다. 이 많은 돌을 어떻게 쌓았는지는 미스테리지만 엄청나게 많은 노동자가 열대의 무더위 속에서 60,000㎦의 돌을 나르고 조각했다는 사실만이 남아 있다. 노동자들은 일정한 크기로 돌을 잘라 현장으로 운반했고 시멘트나 모르타르 없이 돌을 붙여 차곡차곡 쌓았다. 비에 대비해 배수 시스템도 갖추었다. 

가장 아래층에 있는 테라스는 단순한 플랫폼 형태의 통로이지만, 2층부터 5층까지는 바깥쪽으로 나 있는 난간 같은 벽 구조물에 둘러싸여 회랑을 이루고 있다. 2층부터 6층까지의 테라스는 4각으로, 각 가장자리는 움푹 파여 있다. 7층에서 9층까지는 정상에 있는 스투파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는 형태이며, 테라스 위에는 다고파라 불리는 틈이 있는 격자로 만들어진 종 모양의 구조물이 늘어서 있다. 
 

1층의 릴리프(부조) /flickr
스투파 /pixabay

7층에는 32기, 8층에 24기, 9층에 16기가 배치되어 있다.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스투파는 돌로만 제작한 건조물로 내부는 텅 비어 있다. 가장 아래층에 있는 테라스는 보로부두르 완성 이후에 추가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며, 그 안쪽으로는 릴리프(부조)가 새겨져 있는 160매의 패널이 숨겨져 있었다. 이 패널은 선업과 악업에 따라 인간이 어떠한 업보를 받는지 표현한 것으로, 불교 세계에서 가장 낮은 차원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몰래 숨겨놓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보로부두르의 노동자들은 이 릴리프들을 숨길 의도는 없었으며, 학자들은 토대 보강을 위해 가장 아래층에 테라스를 만들었기 때문에 마치 숨어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게 아니냐는 의견이다. 불교 순례자들은 동쪽 사원으로 들어와 시계방향으로 순례를 시작하며, 한 층 한 층 보다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부처의 삶과 가르침을 회화로 표현한 조각을 벽을 따라가며 볼 수 있다. 방문객들은 이리저리 이어져 있는, 바람이 잘 통하는 회랑과 햇빛 가득한 테라스를 거쳐 한참을 돌아 올라간다. 이것은 열반을 향해 승천하는 붓다의 여행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이 곳은 원래는 사원 대신 부도(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사당)의 역할을 했을 거란 추측이 있으며, 부도는 원래 불교의 상징으로 세웠지만 사원은 승려들이 썼던 곳이고 보로부두르 사원 자체가 너무나 정교한 구조물이기 때문에 사원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새겨져 있는 부조는 부처의 모습이나 생활을 묘사한 것뿐만이 아닌, 왕의 궁정 생활부터 마을에 사는 평민들의 생활까지 8세기 고대 자바인들의 일상을 묘사했다. 사람을 포함해 다양한 동식물, 토착 건축물 등도 새겼다. 

묘사된 사람들은 왕, 왕비, 귀족 등 부유층에서 군인, 하인, 평민, 사제 등 다양했다. 부처의 모습도 아수라, 보살, 킨나라, 간다르바 등 불교 신화에서 추앙받는 신들도 묘사했다. 부조에 새겨진 다양하고도 방대한 정보로 역사학자들은 당시의 건축, 무기, 경제, 교통 수단 등의 여러 주제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몸을 비틀고 있는 모습의 사람 /flickr

부조에는 특정 의미와 미적 가치를 담고 있는 자세가 많은데 왕이나 보살 등의 높은 존재들은 몸이 세 번 꺾인 자세. '삼곡' 자세인 트리방가 자세로 묘사되며 한쪽 다리를 올려놓고 나머지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있다. 덧붙여 보로부두르는 현재는 어두컴컴한 화산암으로 뒤덮여 있지만, 학자들은 사원의 발굴 과정에서 청색, 녹색, 검은색, 금박 등의 여러 색소를 발견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오랜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진 열대 강우로 인해 색소가 벗겨졌고, 원래는 다채로운 색조의 구조물이었을 거라 추측한다. 
 

출입 통제 전 시기, 계단을 오르는 관광객들 /flickr

1937년 유네스코의 재정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한 뒤 보로부두르는 다시한번 옛날처럼 예배와 순례의 장소로 쓰였다. 1년에 한 번 인도네시아의 불교도들은 파원에서 보로보두르까지 걸어가며 순례를 한다고. 인도네시아에서 제일 많은 관광객들이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문제는 너무 많은 관람객들이 오갔던 탓에, 유네스코는 현재의 보존 상태를 두고 방문객에 의한 파괴, 토양 침식, 누락된 건축물 분석 및 복원 등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토양이 워낙 부드럽고 지진과 폭우가 많아 보로부두르 사원 자체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이 났다. 특히나 지진은 돌을 무너뜨리고 구조물을 쉽게 파괴할 수 있어 가장 큰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특히나 관람객들의 통제도 쉽지 않은데, 건축물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기본 철칙이지만 지켜지지 않는 일이 더 많았다고. 2014년 보로부두르 환경보호청은 방문객들이 보로부두르를 오르내리면서, 구조물의 돌계단이 심하게 마모되었다는 보고를 전했다. 

이후 자바 주 소재의 켈루드 화산 폭발로 인한 화산재로 인해 보로부두르를 포함한 주요 관광지를 폐쇄하기도 했으며, 테러범들이 보로부두르를 파괴하겠다는 소식도 잇따라 들려와 사원 안과 밖의 보안을 강화하기도 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보로부두르 안을 들어갈 수 없다. 원래라면 꼭대기에서 일출 체험도 했다고 하니 어쩌면 보로부드르 사원 입장에서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일몰 사이로 보이는 보로부두르 /unsplash

보로부두르 사원은 인도네시아에서는 일종의 상징이다. 많은 박물관들이 보로부두르 사원의 축소 모형인 복제품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고고학적 유물들은 복제되어 인도네시아와 여러 해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보로부두르의 재발견, 재건과 복원은 인도네시아의 불교 부흥의 신호탄이 되었고 인도네시아 불교 신자들에게도 큰 환영을 받았다. 보로부두르 대학교, 보로부드르 호텔 등 몇몇 시설들의 이름으로 자리잡았고 인도네시아 화폐인 루피아에도 등장한다. 수많은 책과 우표, 다큐멘터리, 홍보물 등도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의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에도 톡톡히 일조하고 있다

보로부두르 사원을 관통하는 단어가 있다. '카르마(업)'다. 보로부두르 사원을 설명하는 표지판 한 쪽에는 '하늘에도, 바닷속에도, 산 동굴에도, 어디에도 자신이 저지른 죄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다'라고 씌어 있다. 업의 본성에 관해 《화엄경(華嚴經)》〈보살명난품(菩薩明難品)〉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생은 4대(四大)로 이루어져 그 안에는 자아의 실체가 없고, 모든 존재의 본성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과보를 받는 것은 업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 업이라는 것도 실체는 없다. 마치 맑은 거울에 비친 그림자가 여러 가지이듯이 업의 본성도 그와 같다. 많은 새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듯이 업의 본성도 그와 같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남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마음, 사랑 등을 통해 사람도 선업을 쌓을 수 있으며,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항상 가장 기본적인 덕목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인간다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선업을 쌓는다면 부처까진 되지 못해도 이 세상을 마치 부처처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와 힌두교의 독특한 혼합이 만들어낸 거대한 불교 사원이 이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내리는 충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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