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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 속 해방의 세계, 사이키델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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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 속 해방의 세계, 사이키델릭아트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4.08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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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그레이의 사이키델릭 아트를 관람하는 관람객들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그리스어로 ‘정신’이라는 뜻인 ‘psyche’와 ‘눈으로 보이는’ 또는 ‘분명한’이라는 뜻의 ‘d'elsos’를 결합시킨 '사이키델릭'은 줄여서 사이키라고도 부르며, 환각제 등을 사람이 복용한 뒤 일어나는 환각적 상태에 취해 예술을 행하는 것을 '사이키델릭 아트'라 부른다.

원래는 회화에서 비롯된 현상이지만 그림에서 멈추지 않고 사진, 영화, 음악 등 예술의 모든 방면에서 확대되었고, 문학에서는 울프Tom Wolfe의 《차가운 LSD 교감 테스트》 등 환각제 문학을 만들기도 했다. 사이키델릭 아트는 대개 화려한 색깔, 유기적이면서 규칙적인 곡선의 형태로 마치 꿈 속의 세계를 그린 듯한 느낌을 준다. 

내면의 해방, 사이키델릭 아트

사이키델릭 아트 /flickr

정신, 내면 세계를 묘사하는 모든 노력과 시도는 사이키델릭 아트의 범주에 들어간다고들 한다. 1960년대 후반 대항 문화 예술 운동과도 관련이 있으며, 사이키델릭 아트의 특징은 매우 현실과 동떨어진 초현실적인 내용, 총천연색,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실험적인 시도를 포함한다. 콘서트의 포스터, 라이트 쇼, 만화책, 신문 등 환각제를 섭취한 정신 착란 상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지며 때로는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반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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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키델릭 아트는 약물이나 환각제에 의해 만들어진 혼란스러운 상태 자체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라는 개념에서 시작했다. 마치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하는 초현실주의와도 유사한 결이 있다. 다만 초현실주의가 꿈과 무의식을 주요 소재로 한다면 사이키델릭 아트는 마약에 의한 환각과 환상에 집중했다. 초현실주의가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기반으로 했다면 사이키델릭 아트는 환각제(LSD)를 합성, 섭취한 최초의 인물로 알려진 스위스의 과학자인 알버트 호프만 박사의 LSD발견에도 기반을 두고 있다. 

LSD를 합성한 호프만 박사는 맥각균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다가 환각 증세를 경험하였고, 이것이 LSD를 합성하는 데 아이디어를 제공하게 된다. 이 마약은 발견 이후 20년 동안 심리학 및 신경학적 연구를 위한 약으로 판매되었는데, 독일의 작가 에른스트 융거를 포함한 여러 시인과 예술가들이 이 마약에 관심을 보였다. 

마약에 기반을 둔 초기 사이키델릭은 1950년대 미국 정신과 의사인 오스카 재니거가 주도한 실험에서도 알 수 있는데, 재니거는 50명의 미술가들에게 평범한 상태에서 어떤 주제에 대한 그림을 그리도록 요청한다. 이후 마약을 투여한 뒤 같은 그림을 그리도록 했고, 두 그림을 비교하는 실험이었다. 결과는 마약을 투여한 채 수행한 예술이 기존에 만든 예술보다 밝은 색채, 추상적인 표현, 캔버스 전체의 활용 등 창의력을 향상시켰다고 한다. 
 

1960년대 콘서트 포스터 /flickr
필모어 포스터 /flickr

미국에서 대항 문화 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방랑가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든 '비트닉'의 미국 시인 긴즈버그나 윌리엄 버로어스 등이 이 사이키델릭 아트에 매료된다. 비트닉은 '감각의 완벽한 혼란'을 지켰던 초현실주의자들의 철학에 공감했다고 한다. 환각제는 예술가들의 영혼을 발현시키는 촉매제나 다름없었다. 1960년대 대항 문화 운동 당시 사이키델릭 아트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웨스 윌슨, 릭 그리핀 등 주로 공연 포스터를 작업한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사이키델릭'한 이들이 작업한 락 콘서트 포스터들은 아르누보, 다다이즘, 팝아트 등 다양한 장르에 영향을 받았다. 히피들의 성지나 다름없었던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이키델릭 문화가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포스터들 또한 당시 가장 주목받던 것들 중 하나였다. 선명한 색들의 대조, 정교한 글자 장식, 칼 같은 대칭, 어딘가 기괴한 초상화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사이키델릭 아트 포스터 스타일들의 특징이다. 1972년까지 융성했던 이 스타일들은 나중에 음반 커버 아트에도 영향을 준다. 
 

핑크 플로이드의 커버 아트 /flickr

1970년대 초까지 샌프란시스코가 사이키델릭 아트의 중심지였다면 이후에는 전세계로 뻗어나가게 된다. 핑크 플로이드는 런던에 본부를 둔 영국 미술 디자인 그룹인 '힙노시스'와 함께 음반의 커버 아트를 제작했고, 1967년 9월 1일자 미국 잡지 '라이프'에서는 표지와 리드 기사 모두 예술가들이 사이키델릭 아트에 열광하는 것을 다루기도 했다. 이후 사이키델릭 아트는 컴퓨터의 발명으로 더 큰 힘을 얻게 된다. 컴퓨터는 사이키델릭 아트를 더 깊고,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게 했다. 2D 및 3D 그래픽은 어떤 이미지도 구현할 수 있었고, 알고리즘을 통해 패턴을 만들고 구체화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사이키델릭 아트라 하면 가장 먼저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건 1960-70년대 한창 유행했던 락 음악을 포함한 팝아트와 히피 운동, 마약 등이다. 대량 상품 생산, 우리에게 친숙한 이미지의 대량 복제를 만든 팝아트는 사이키델릭 아트에 큰 영향을 줬다. 1960년대 유명했던 히피 운동은 주류 사회에서 조용히 '이탈'하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다. 애초에 히피 운동이 일어난 곳도 미국 샌프란시스코였다.

베이비붐 세대는 사이키델릭 아트의 창시자들이라 불렸는데, 이 집단은 1950년대까지 미국을 지배했던 자본주의와 물질주의의 가치에 대해 본격적인 항의를 시작했다. 미국 사회에 분노와 절망감을 느꼈던 사람들은 주류 문화를 거부했다. 이성이 아닌 자유로운 감성을 추구하며 대항 문화를 추구했고, 마약을 자신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썼다. 
 

컴퓨터로 작업하는 사이키델릭 아트 /flickr

호프만 박사가 발견했던 LSD는 환각제 같은 약이 가져다줄 수 있는 '해방'이라는 것에 영감을 찾고 싶어하는 예술가들에게 좋은 수단이었다. 가뜩이나 주류 문화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사이키델릭 아트, 사이키델릭 락 등의 새로운 문화를 간절히 원했다. 다만 사이키델릭 아트는 가장 정치적인 미술이라는 평을 듣는 추상표현주의도 아니었고, 소비 문화가 만들어낸 팝아트도 아니었다. 단지 그때 유행했던 대항 문화처럼 기존의 예술에서 해방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사이키델릭 아트는 예술가들이 환각적 경험을 통해 시각적인 매체로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콘서트 포스터와 기업 광고 등의 여러 매체로 뻗어나갔다. 1970년대 초까지 많은 광고주들과 기업들은 수많은 상품들을 팔기 위해 사이키델릭 아트를 광고에 차용했다. 자동차, 담배, 헤어 제품들의 광고는 마치 사이키델릭 아트와 비슷한 느낌의 만화경을 빙빙 돌렸을 때 나오는 나선형, 동심원, 페이즐리 패턴 등의 화려한 풍경을 자랑했다. 

사이키델릭 아트는 어쩌면 전통적인 예술 사회를 답답해했던 예술가들에게 후련함을 선물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환각제만이 줄 수 있었던 자유를 얻으면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수많은 예술가들, 디자이너들이 만들어낸 작품들 속 사이키델릭 아트는 그들만의 독특함을 유지해 나갔다. 
 

알렉스 그레이의 작품 /flickr
환상 그 자체인 알렉스 그레이의 작품 /flickr

하버드 의과대학 해부학과에서 해부학을 배웠던 알렉스 그레이는 뉴욕대에서 10년 동안 해부학과 사람의 몸을 가르쳤다. 그의 아버지와 선생님들은 그의 재능에 대한 칭찬을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알렉스는 어렸을 때 죽은 동물이나 곤충들을 모아 뒷마당에 묻곤 했는데, 어떤 존재의 소멸에 대한 이 주제는 알렉스의 그림과 조각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꿈에도 많은 영향을 받곤 했는데, 어느 날 그는 꿈에서 쓰레기통 뚜껑을 열었을 때 안에서 머리가 반쯤 깎인 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반년간 머리를 반만 깎고 다녔다고. 그는 20대 초반 LSD를 접했을 때 '눈을 감자 검은색과 흰색 나선을 보았으며, 몇 번 더 시도하자 그것은 빨간색과 노란색 나선으로 바뀌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의 몸 /flickr

그의 작품은 이력에서 보듯이 사람의 몸을 주요 골자로 한다. 마치 사람의 몸을 투과한 엑스레이 사진을 보는 느낌이다. 그는 티벳 불교에도 관심이 있었고, 신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로 인해 그의 작품은 육체와 정신의 복합적인 결합이 주를 이룬다. 개인의 물리적, 형이상학적 구조를 아주 자세하게 표현하며, 그가 그린 사람의 내부는 해부학적으로 정밀할 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피사체로서도 정교하다.

그가 그린 인물은 골격, 신경계 등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으며, 오오라나 차크라 등을 포함한 여러 종교적 상징들도 포함한다. 그의 정신적, 영적, 초자연적인 관점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두고 사이키델릭 아트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그를 두고 '자아초월 transpersonal'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티 시리즈 – 서울’ /케이옥션

미술, 타이포그래피, 그래픽디자인 등 여러 장르를 초월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영국의 스티븐 윌슨은 스크린 기법을 활용한 판화와 디지털 기술, 팝아트와 그래피티 등을 혼합하여 전통과 현대 사이의 교차점을 탐구하며 대중 예술을 추구한다. 로버트 로젠버그와 앤디 워홀 등 팝 아티스트의 영향을 받아 1960~1970년대 유행했던 사이키델릭 아트를 팝아트에 혼합해 독창적인 장르를 만든 그는 1998년형 폭스바겐의 뉴 비틀로 대표되는, 과거의 향수를 신선하게 재현해 사랑받는 레트로스타일(retro-style)에 매우 강렬한 색감과 네온 이펙트를 결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렌치 불도그(French Bulldog)' /케이옥션 
 ‘퓨처 펩시(Future PEPSI)’ /케이옥션

그의 작품은 화려하고 독특하다. 생기 넘치고 활기찬 스타일로 흔히 잘 알려져 있는 오브제들을 수집한다. 그 수집품들을 자신만의 컬러와 시각으로 표현하여 다양한 광고, 상품 등에 접목, 전 세계에서 그의 작품을 소비하고 있다. 

2017년에는 패션계의 거장 칼 라거펠트와의 협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현대미술에서 새롭게 선보여질 수 있는 영역으로 제품과 작품, 상품과 예술 사이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작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팝과 사이키델릭의 경계’라 규정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브랜드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현대 미술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0년대 크리스마스 기프트 태그 /flickr

사이키델릭 아티스트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면서도 계속 끊임없는 영감을 얻기 위해 여러 스타일을 추구했다. 당시의 작품들이 아르누보나 초현실주의의 요소들을 반영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항 문화 시대와 관련해 대중들이 직접 발전시킨 사이키델릭 아트에서 예술가들은 환각제를 통해 예술에 대한 여러 실험을 시도했다. 

지금의 사이키델릭 아트는 옛날만큼 혁명적이지도, 반항적이지도 않고 극렬하게 혁신적이지도 않다. LSD는 1960년대 사이키델릭 아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택이었지만 이제는 꼭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왔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발달하고, 꼭 환각제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사람의 머릿속은 얼마든지 많은 환상을 가능케 한다. 지금의 사이키델릭 아트는 처음 발현했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해도, 특유의 환상적인 이미지는 지금도 여러 장르와 혼합되어 활발히 쓰이고 있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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