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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신의 도시, 치첸 이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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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신의 도시, 치첸 이트사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4.05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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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이는 엘 카스티요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아직도 비밀이 많은 곳, 수수께끼 투성이로 유명한 마야 문명의 3대 도시 중 하나인 치첸 이트사는 마야 문명이 남긴 유적들 중에서도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유적지로 유명하다. '이트사 우물 어귀에'란 뜻의 이 곳은 종교적, 군사적, 정치적, 상업적 중심지로 마야에서 가장 다양한 인구를 갖고 있었고 이는 다양한 건축 양식에도 기여했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있는 마야 문명의 유적지, 치첸 이트사는 현재 연방 소유지로 멕시코 국립인류학 역사연구소(INAH)가 관리 중이다. 건조한 석회암 지대에 있는 이 유적은 석회암, 회반죽한 흙·목재 등으로 되어 있다. 치첸 아트사에는 세노테라 불리는 커다란 우물이 있어 1년 내내 사람들에게 풍부한 물을 제공했고 이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주었다.

신을 향한 마야인들의 삶

치첸 이트사의 대표적인 구조물, 엘 카스티요 /pixabay

치첸 이트사는 서기 750년에서 9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한다. 유럽 식민지의 개척자들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 현재의 멕시코를 포함해 중앙 아메리카의 여러 지역을 지배했던 마야인들의 문화와 업적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곳이다. 본격적으로 언제부터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중심지로 발전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마야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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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첸 이트사는 소규모의 세노테라 불리는 우물을 포함해 물이 풍부해 농민 집단이 정착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다. 또한 경작할 수 있는 토양과 많은 돌들은 사람들이 거주지와 성벽을 쌓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은 테오티우아칸이 붕괴되며 메소아메리카의 여러 지역에 살던 이주자들이 찾아왔거나, 마야의 한 종족인 이트사족이 살았다는 설도 있다. 환경이 좋으니 인구들 또한 자연스레 많이 생겨났고 대제사장의 무덤, 신전, 성 등의 새로운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푸우크 스타일의 프리즈 장식 /flickr

치첸 이트사는 번성한 무역 중심지이기도 했다. 북쪽과 남족에서 온 녹색과 금색의 원반, 테우안테펙에서 온 흑요석, 메소아메리카의 여러 지역에서 온 상품들이 이곳에 오갔다고 한다. 통치자들은 북쪽 해안의 염전을 이용해 돈을 벌었고 카카오를 재배하기도 했다고. 치첸 이트사는 약 두 부분의 기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초기 남쪽에 살던 마야인들은 독특한 양식인 지붕이 평평하며 선이 날카롭고 시원스런 인상을 주는 '푸우크'의 건축 양식과 마야 상형 문자를 썼다. 이 시기 스톨록 세노테(우물)의 경로를 건설했다고도 한다. 

두 번째 시기에는 더 미스터리하면서도 메소아메리카 고고학과 관련해서도 가장 많은 논쟁거리가 많은 시기이다. 이 시기 지어진 건물들은 10∼13세기 툴라를 수도로 멕시코 중앙고원에서 번영한 문화였던 톨텍 문명의 많은 특징들을 보여준다. 학자들은 톨텍 문명이 그들의 제국을 넓혀 가다가 치첸 이트사를 정복했거나, 이 두 지역 사이에서 자연스레 문화 및 무역을 공유하는 사이였거나 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톨텍 문명은 케찰코아틀이라는 왕의 통치 하에 수도인 툴라에 정착했는데, '케찰코아틀'이란 말은 아즈텍 신을 부르는 '깃털을 지닌 뱀신'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또 마야 역사에서 자신을 쿠쿨칸이라 부르는 한 남자가 치첸 이트사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쿠쿨칸 또한 '깃털이 달린 뱀'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케찰코아틀과 이 쿠쿨칸이 동일인이라 추측하며, 그가 톨텍 문명의 관습과 문화를 치첸 이트사에 가져왔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건축에서 보이는 치첸 아트사와 톨텍 문명 사이의 공통점은 전사의 모습이 새겨진 기둥, 문양으로 표현된 개인의 이름이 새겨진 것 등이다. 반대로 톨텍 문명의 수도 툴라에서 발견된 건축 양식을 봤을 때 오히려 톨텍 문명에 영향을 준 것이 치첸 이트사라는 말도 있다. 이렇듯 아직 두 문화 사이에 정확한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치첸 이트사에는 다른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문화와 양식을 엿볼 수 있다. 
 

금성의 제단 /flickr

마야인들은 가장 진보적인 문명을 이룬 사람들 중 하나로, 뛰어난 천문학자와 건축가, 수학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치첸 이트사에는 이 마야인들이 갖고 있던 지식과 비밀을 알 수 있는 건물들이 많다. 모든 건물에는 각기 다른 목적이 있었고, 건물의 위치와 규모도 마야인들이 특정한 목적을 갖고 설계했다고 한다. 이들은 천체 관측과 함께 수학 지식을 이용해 달력을 정교하게 다듬고 태양, 달, 금성 등 행성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념할 수 있는 건물들을 만들었다. 마야인들은 매우 정교한 문자와 언어를 썼고, 질서 있는 사회 계급 체계를 만들었으며, 북쪽의 멕시코와 남쪽의 파나마까지 이르러 여러 도시들과 관계를 맺고 무역을 발전시켰다.

톨텍 문명은 치첸 이트사를 오랫동안 통치했는데, 이 도시는 어쩐 일인지 모를 이유로 다시 버려졌다. 도시의 쇠락 이유는 기근 혹은 살던 사람들의 내전으로 추측한다. 마야 문명은 하나의 제국이 아닌, 고유의 언어와 왕과 수도를 가진 다양한 민족 집단이었다. 5만 명이 넘게 이 도시에서 살았으니 여러 곳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인해 인구 구성이 다양했을 것이다. 즉 하나의 집단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 싸우는 일이 잦았고, 자연히 집단의 소멸 또한 빨랐다는 의견도 있다. 

16세기 초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 곳에 도착했는데, 이들이 이 곳을 지배하려다가 주민들에 의해 쫓겨갔던 기록도 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 탐험가들이 이 버려진 도시의 사진을 찍었고, 미국의 고고학자들이 20세기 초 이 유적지를 최초로 발굴했다. 
 

세노테 /flickr

치첸 이트사라는 이름답게 이 곳엔 우물이 많은데 아마 지하 동굴들이 무너지면서 생긴 원형 싱크홀로 추청된다. 이 우물들은 마야인들에게 식수와 농업에 대한 물을 제공했고, 세노테라 불린 우물은 마야인들이 의식을 치루는 장소이기도 했다. 마야인들은 이 우물 안으로 도기, 옥, 향 등 소중한 물건을 던져 넣어 그들이 믿는 비의 신인 차아크에게 바쳤다.

실제로 이 우물에서는 옥을 비롯한 여러 도기들과 수많은 뼈가 발굴되었는데 이 점에서 이들이 이곳에서 인간을 제물로 바쳤다는 점 또한 확인된다. 특히 심각한 가뭄이 들었을 시 인신공양을 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학자들은 이 유골들에서 세노테에 던져지기 전 죽임을 당했음을 나타내는 상처 자국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삭베, 길이 나 있다 /flickr

치첸 이트사에는 보존 상태가 훌륭한 석조 건물들이 있고, 지금도 복원 중이다. 치첸 이트사에는 특히 삭베가 많이 발굴되었는데, 삭베란 신전, 광장 및 도시 내의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길이자 크게는 마야 도시의 국가 간을 연결하는 도로 네트워크였다. 삭베는 돌이나 자갈로 땅을 메운 후, 그 위에 하얀색의 석회암 스투코로 덧칠하여 포장 도로를 완성한 형태였다.

당시 많은 유럽 도시들에 아직 포장 도로가 있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확실히 미스테리한 일이다. 석회암 색깔로 인해 유카텍 마야어로 ‘하얀 길’을 뜻하는 삭베라고 불렀지만 오늘날 하얀색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치첸 이트사의 삭베는 엘 카스티요에서 세노테까지 이어져 있으며 총 69개의 삭베가 발굴되었다고 전해진다.

치첸 이트사에 세워진 건물들의 대부분은 원래 빨강, 녹색, 파랑 등 화려하게 칠해졌고, 안료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해 칠했다. 화려한 색은 건물의 완성도와 상징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고 지금은 원래 돌의 색인 옅은 회색빛의 구조물만 볼 수 있다. 
 

엘 카스티요 /unsplash

치첸 이트사의 쿠쿨칸 피라미드 같은 경우는 마야어로 '깃털이 달린 뱀'이란 뜻으로, 마야인들이 신으로 섬기던 뱀신을 뜻한다. 스페인어로는 엘 카스티요라 부르며, '성'(castle)'이란 뜻이 있다. 스페인 군대가 이 곳에 왔을 때 거대한 피라미드의 모습이 마치 성채와 같다고 해 붙였다고.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9개의 층으로 된 테라스로 이루어져 있고, 피라미드의 네 면에는 각각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들이 있으며 면마다 경사각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춘분과 추분 즈음 석양이 피라미드의 북서쪽 사면을 비출 때, 이 조각들이 삼각형의 그림자들을 만들고 이 그림자들이 계단에 있는 뱀머리 조각들과 연결되어 아래에서 바라보면 마치 날개 달린 뱀이 정상에서 내려오는 환상을 보는 듯 하다고. 일부 학자들은 이 모습이 마야의 뱀신인 쿠쿨칸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도 한다. 다만 이 모습은 춘분과 추분 즈음에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특정한 날짜에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들어갈 수 없는 엘 카스티요의 신전 /unsplash

메소아메리카 문화에서는 오래된 피라미드 위에 주기적으로 더 큰 피라미드를 건설해 덧씌웠다고 한다. 엘 카스티요도 예외는 아니었다. 1930년대 중반 멕시코 정부는 엘 카스티요 발굴을 허용했는데 몇 번의 시도 끝에 이들은 피라미드 북쪽 아래 계단을 발견했고, 연대가 더 오래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엘 카스티요 피라미드 정상의 신전 내부에는 마야 문화에서 나타나는 신과 인간 사이를 중계하는 신을 뜻하는 착 몰 조각상이 있고, 재규어 모양의 왕좌가 있다.

멕시코 정부는 계단 하부에서 터널을 발굴했고, 옛 신전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통해 통로를 만들고 관람객들에게 공개했다. 그러나 2006년 훼손을 우려해 다시 신전 내부를 폐쇄해 현재는 들어갈 수 없다. 피라미드에 오르고 싶지만 불가능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는 대신 마야의 또다른 큰 피라미드인 노호치 물 피라미드를 추천하기도 한다고.
 

전사의 신전 /flickr
세부 모습 /flickr

전사의 신전은 거대한 피라미드와 그 앞에는 수많은 전사들을 조각한 기둥들로 이루어진 유적지다. 후기 고전기에 지어졌으며 톨텍 문명의 수도인 툴라에서 발견된 건축 양식과 공법이 유사해 문화적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이 신전은 톨텍 문명의 신전보다는 훨씬 더 큰 규모로, 신전 꼭대기에는 착 몰 조각상이 있고 두 개의 방이 있는 출입구가 보인다. 또 S자 모양의 뱀 기둥이 출입구 위의 나무 상인방(무게를 구조적으로 지탱해 주는 뼈대)을 지지했으며, 각 뱀의 머리에는 천문 기호와 장식이 새겨져 있었다.

뱀머리의 꼭대기에는 기름 램프로 쓸 수 있는 얕은 그릇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기둥 자체가 없어지고 없다. 사원의 내부에는 전사들과 포로들의 모습은 담은 벽화가 있고, 피라미드 앞에는 36개의 기둥이 있으며, 신을 표현한 것뿐만이 아닌 전사와 독수리, 재규어 등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전사의 사원은 치첸 이트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구기장(Great ball Court) /flickr
벽에 달린 고리 /flickr

이 시기에도 구기 종목이라는 게 존재했다. 고고학자들은 치첸 이트사에서 7개의 경기장을 확인했으며, 엘 카스티요에서 북서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이 경기장이 고대 에소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구기장이라 한다. 성벽은 높이 약 12미터로 각각의 성벽 위에는 서로 얽힌 뱀장식이 새겨진 고리를 볼 수 있다. 

벽 밑에는 벤치가 있고, 선수들의 모습을 새긴 패널이 있다. 경기장에서 열렸던 울라마(Ulama)라 불리는 공놀이는 지금의 게임이나 놀이의 의미라기보다는 신에게 올리는 의식 행위에 가까웠다고 한다. 예를 들면 7인조의 두 팀이 서로 마주보고 있고, 한 팀의 주장이 패배한 상대 팀의 주장을 참수하는 끔찍한 장면이 있다. 이 패널에서는 선수의 목이 잘려, 일곱 갈래의 피를 뿜어내는데 6갈래는 뱀이 되었고 나머지 하나는 중앙을 휘감는 덩굴 식물이 되는 모습을 그렸다. 
 

치첸 이트사의 촘판틀리 /flickr
치첸 이트사에 가면 해골 가면을 만드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flickr

'해골의 기단'이라 불리는 촘판틀리는 산 제물이 된 희생자들의 두개골을 새긴 곳이다. 치첸 이트사의 통치자들이 종교적, 군사적 목적을 위해 수행한 인신공양을 증언하는 기념물이기도 하다. 촘판틀리 근처에는 '독수리와 재규어의 제단'이 있는데 제단 옆면에는 독수리와 재규어들이 사람의 심장을 파 먹는 모습을 묘사한 석판이 있다. 이 구조물들은 동시에 사람들에게 약간의 공포심을 주었고, 지배층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는 의미이기도 했다. 두개골들을 촘촘하게 새긴 촘판틀리는 멕시코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치첸 이트사 /flickr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치첸 이트사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관광지 중 하나이며, 멕시코의 고고학 유적지들 중 두 번째로 많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언제나 일반에 공개되어 있어 성수기에는 하루에 약 8,000여명의 관광객이 방문할 때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 결과로 인해 많은 기념물들이 파괴되기도 했다. 현장의 관광객들이 돌에 낙서를 하는 일이 빈번했고, 사람들이 오르내렸던 돌계단들은 빠른 침식 위험에 시달렸다.

관광객들이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는 것 자체가 구조물을 손상시켰기 때문에 현재 INAH는 일반인의 접근을 제한했고 관람객들은 더 이상 건축물을 오르내리거나 신전의 여러 방에 들어갈 수 없다. 이 점 외에도 도시가 25㎞ 이상 걸쳐져 있고, 아직도 미발굴 유적이 많아 이 지역에는 개인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이용하고 있다고.

이제는 멀리서만 볼 수 있는 유적지지만 굳이 구조물에 올라가거나 손을 대지 않아도 치첸 이트사는 마야 문명을 얼마나 빛냈던 유적지였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신을 동경한 마야인들이 세운 도시, 찬란했던 영광은 사라졌어도 마야인들이 남긴 유산을 통해 이들이 어떤 꿈을 꾸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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