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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의 자부심 피렌체, 끊임없이 이어지는 장인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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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의 자부심 피렌체, 끊임없이 이어지는 장인 정신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3.12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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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그리고 피렌체의 가죽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구찌를 만든 창업자, 구찌오 구찌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죽을 만드는 업체인 프란지에서 가죽 만드는 기술을 익혔고, 40살이 되던 해 피렌체의 비냐 누오바 거리에 구찌라는 이름을 달고 첫 매장을 열었다. 그리고 2018년 가죽 및 신발 제품의 수공예 산업과 실험을 진행하는 연구 센터인 '구찌 아트랩'을 구찌 피렌체 본사 인근에 설립해 활발히 운영 중이다.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3'에서 김영하 작가는 피렌체를 두고 "피렌체는 가죽 공예 산업이 발달했다. 가죽은 공예품을 만들고 남은 고기는 구워 먹는다"란 말을 하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가죽 산업이 널리 발달한 나라며,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수많은 가죽 관련 산업과 시장, 상점들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 장인의 계속되는 유산, 가죽과 피렌체

여러 가죽들 /flickr

선사 시대부터 인간은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옷으로 입었다. 다만 동물 가죽이라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쉽게 썩어버리기 일쑤였다. 이에 고대 사람들은 가죽을 건조시키는 등의 여러 화학적 과정을 동원해 가죽을 더 오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던 중, 태닝이라는 과정을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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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있는 세계 최고의 무두장이들은 대개 식물 태닝이라 불리는 방법으로 가죽 제품을 만든다. 식물 태닝은 가죽을 만들기 위해 나무껍질, 식물, 과일에 있는 유기 물질인 식물 타닌 엑기스를 쓰는 방식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견고하고 신축 및 탄성이 적을 뿐만 아니라 가소성(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영구적 변형을 의미하는 물질의 특성)이 풍부한 가죽을 얻을 수 있다.

특정 식물에서 얻을 수 있는 타닌 엑기스를 가죽에 염색하면 탄력이 있으면서도 튼튼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끔 돕는다. 또 사용자가 제품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자연스러운 색감의 변화도 특징이다. 식물 태닝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며 길게는 두 달까지 걸려, 제품 자체를 완성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태닝은 오늘날까지도 쓰이는 방식으로 엑기스를 뽑지 않고 식물 그 자체를 사용하는 식으로도 쓴다. 

샵에서 작업중인 모습 /flickr

이탈리아의 가죽은 기원전 8세기 에트루리아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식물 태닝 기술을 발명하고 이용한 최초의 사람들로, 오늘날에도 무두장이들은 전통 기법을 쓰고 있다. 처음 이 기술을 쓴 사람들은 일상 생활에서도 쓸 수 있는 튼튼한 가죽 샌들을 만드는, 신발 전문 제조업자들이었다.

로마에서 가죽은 운송, 의류, 전쟁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쓰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물건이었다. 중요성이 커지니 자연스럽게 가죽 산업 또한 법의 규제를 받게 되고, 가죽 공장들이 하나둘씩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의 고대 도시이며 화산 폭발로 현재는 터만 남은 폼페이에서도 한때는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무두질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람들에게 가죽으로 만든 의복은 처음에는 추위를 막아주는 수단이었지만, 12세기 무렵 고급 의복이 만들어지면서 상류층들에게 가죽 수요가 엄청나게 커지기 시작한다. 여러 무역 루트로 오가는 가죽은 서로 다른 나라간의 문화적 교류를 성사시켰고 태닝 작업 또한 방식이 다양해졌다. 가죽의 부패를 늦추기 위해 사람들이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으면서 최초의 식물 태닝이 발견되고 나서 19세기 후반까지 장인들은 이 방법으로 작은 작업장에서 각자 작업하곤 했다. 

여러 가죽 제품들 /flickr

1282년 생긴 가죽 장인 길드는 피렌체에서 많이 생겨난 길드 중 하나였다. 가죽 장인 길드는 처음 가죽 제조 기술을 서로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피렌체의 경제적 성공의 기반에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길드가 있었던 것도 컸다. 더불어 이 장인 길드는 피렌체의 장인 정신을 유럽에 널리 퍼지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특히 가죽 생산 과정에서 나는 악취가 심해 톱 그레인(두꺼운 가죽을 위아래로 나누었을 때의 위쪽 가죽)을 생산하는 곳들은 저 멀리 있는 도시 외곽의 변두리로 밀려나야 했다. 그러나 장인들은 많은 가죽 공장에서 이 고약한 냄새와 함께 오늘날에도 여전히 쓸 수 있는 연마 기술을 개발해 냈다.

이 길드는 가죽 생산에 대한 영업 기밀을 보호하고, 품질 표준 기준 등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길드 규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매우 엄격한 처벌을 받았고, 길드에는 가죽 생산에 관한 까다로운 규칙들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이 규범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탈리아의 피렌체가 가죽의 도시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했고, 피렌체에서의 가죽 산업이 한발짝 더 성장할 수 있게 했다. 많은 가죽 공장과 길드가 이탈리아 북부 전역에 생겨났다. 

아르노 강의 베키오 다리 /flickr

장인들은 소파, 지갑, 샌들, 지갑 같은 사람들이 흔히 쓰는 여러 가죽 제품들을 생산했다. 피렌체의 아르노 강을 따라 지금도 여러 가죽 장인들이 일을 하고 있으며 가죽의 다양한 질감, 색상 등을 연구하며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유연한 가죽을 생산하는 데 여념이 없다. 아르노 강은 식물 태닝 기술 발전과 함께 피렌체의 가죽 생산에도 매우 중요했다. 이 강은 상품 수송에 유용했고, 상류 및 하류에서 가죽을 태우기 전에 물에 담가두는 식으로 쓰였다.

15세기 피렌체 공화국이 피사 공국을 정복하면서, 피렌체의 부유층들은 피사에 있는 무두질 장인들이 가죽 생산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투자를 시작했다. 마침 아르노 강이 근처에 있어 태닝 과정에 필요한 많은 물을 공급할 수 있었고, 상품 운송도 쉬워 가죽 공급이나 산업 발전에 있어 어려움은 없었다. 중세 후기 가죽 제품의 생산은 늘어나 산타 크로체 광장과 시뇨리아 광장을 연결하는 골목에 특히 많은 공방들이 세워졌다. 산타 크로체, 푸체키오 등은 최초의 산업용 무두장이 번창했던 곳들이었다.

이탈리아는 여러 지역의 특화 산업들을 활용한 산업 클러스터가 대략 200여개 정도 있다. 생산 시설이 밀집해 있는 것이 아닌, 클러스터 중심에 명품 의류 기업들과 상생할 수 있는 중소 기업들이 있다. 소규모 공장들과 판매 가게들이 모여 있어 생산과 소비가 같이 이루어지는 식이다. 산업 부문에는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있으며, 전세계에 있는 이탈리아산 가죽 재킷, 지갑, 신발 등의 상당수는 피렌체 외곽에 몰려 있는 공방과 가게들에서 생산된 것이다.
 

작업 중인 장인 /flickr

메디치 가문의 유산, 화려한 르네상스의 상징, 인문주의적 사고의 발전 등으로 잘 알려진 피렌체 하면 자연히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 피혁 장인의 아들이었던 구찌오 구찌는 런던의 사보이 호텔에서 벨보이로 일하며 부유한 방문객들의 짐을 운반하던 중 영감을 받는다. 그는 1921년 피렌체로 돌아와 부유층들을 위한 고급 가죽으로 만든 가방과 액세서리를 디자인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그는 패션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브랜드들 중 하나를 갖게 되고, 사람들이 사랑하는 그의 제품 한 켠에는 고향인 피렌체가 있다.

뭐니뭐니해도 피렌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인들의 솜씨다. 피렌체에는 오래된 가죽 장인들이 많으며, 주로 가죽을 자르고 바느질하는 등의 수공예 작업에 초점을 두고 있다. 책을 넣는 박스나 책상 등에서 시작해 장갑, 신발 같은 여러 액세서리를 온전히 손으로만 만드는 장인들을 볼 수 있다. 큰 가죽 제품들도 그렇지만 특히 장인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 지갑, 카드지갑 등의 작은 제품들이 특히 인기가 많다.
 

피렌체 가죽학교에서 작업중인 모습 /flickr

'피렌체 가죽학교 Scuola del Cuoio' 는 가죽 관련 교육기관이자 관광이지기도 하며, 가죽 전문 장인들을 양성하는 교육 과정이 있다. 특이하게 이 학교는 산체 크로체 대성당 안에 있다. 성당을 지나다 보면 책상처럼 보이는 작업대들이 주루룩 늘어서 있는 복도를 발견할 수 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바실리카 수도회와 카시니 가문 등에 의해 설립된 이곳은 전쟁으로 인해 남겨진 아이들을 거두고, 이들에게 가죽을 생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즉 전쟁 고아들에게 피렌체에서 오래 된 문화를 전수하는 기회를 준 것이다. 학교는 수도원 기숙사에 세워졌으며 기술 습득에 재능을 보인 아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한 장인들은 피렌체의 가죽 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좋은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아이젠하워 장군도 이 학교의 장인들이 만든 수제 책상 세트를 갖고 싶어했다고 하며 나중에 차례차례 뽑힌 미국 대통령들에게 특별한 선물로 집무실에 놓을 수 있는 책상을 보내는 게 전통이기도 했다고.

세워진 지 60여년이 넘은 이 학교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가죽 제품을 만드는 것을 가르친다. 입문 과정인 견습레벨 과정과, 심화 과정인 장인 과정이 있다. 기존에 나와 있는 다양한 가죽 핸드백의 패턴에 대해 알아보고 기본 지식을 습득하며, 구조와 미적 부분에 대해 어떤 기능으로 쓰이는지를 배우고 패턴을 만드는 작업 기초를 익힌다. 또 가죽 제품에 쓰이는 여러 재료들을 학습하고 가죽 패턴에 따라 안감, 보강재 등을 고르는 법을 배우며 가방 형태나 크기에 따라 가죽 재료가 달라지는 것도 배울 수 있다고. 

작업에 쓰이는 여러 도구들 /flickr

가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강의 과정을 제공하며 단순히 여행 중에 가죽 생산에 대한 기술을 배워보고 싶은 여행객들을 위한 하룻동안의 워크샵을 여는 등의 편의도 제공한다. 장인들은 평일 내내 학교 작업장에서 작업하며, 관광객들은 이들이 직접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피렌체 가죽학교를 졸업한 장인들은 매일매일 수제 가죽 제품을 만들고 가죽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제품을 둘러보는 시민의 모습 /flickr

피렌체에서 가죽 관련 제품을 구입하고 싶다면 대개 큰 제품보다 지갑이나 상자 등 작고 휴대하기 쉬운 것들을 장인에게 직접 구매하는 게 좋다고 한다. 좋은 가죽 제품은 화학 물질 같은 인공적인 냄새가 아닌 천연 향이 난다고 하며, 가죽이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워야 좋다고. 황갈색이나 갈색의 천연 가죽은 가죽 소재의 자연스러운 결이 드러난다고 한다. 피렌체 가죽학교에서도 장인들이 손수 만든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어딜 봐도 가죽 제품을 볼 수 있는 곳이며 피렌체 관광지의 성지 중 하나이기도 한 산 로렌조 시장은 예전에 하도 가죽 공방이 많아 설치되어 있던 베키오 다리에 악취가 배어 메디치 가문이 따로 다니는 통로까지 만들어 놨을 정도였다고. 거리를 걸으며 볼 수 있는 수많은 작은 가게들에서부터 고급 부티크까지, 가죽의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피렌체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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