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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올림픽 폐막식은 어디서? 베로나 아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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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올림픽 폐막식은 어디서? 베로나 아레나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3.07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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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 아레나 /unsplash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2026년 열릴 제25회 동계올림픽은 이탈리아 북부로, 동계올림픽 대회 공식 명칭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두 도시 밀라노와 코르티나 담페초를 붙인 ‘2026 밀라노 코르티나 올림픽’이다. 폐막식과 패럴림픽 개막식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베로나 아레나에서 진행된다. 

베로나 아레나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원형 경기장으로 이 경기장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통치 시기였던 서기 1세기에 세워졌다. 로마의 시인 카툴루스부터 셰익스피어에 이르기까지 여러 유명 대문호들이 사랑했던 도시 '베로나'에 위치하고 있다.

검투사의 싸움장에서 올림픽 폐막식장이 되다, 베로나 아레나

베로나 아레나 /flickr

옛날부터 원형경기장은 검투사들의 경기, 해상 전투, 동물 사냥, 공개처형 등의 모습을 일반인들도 볼 수 있게 만든, 로마 제국 전역에 있는 구조물이다. 보통 동그란 형태를 띄며 어느 좌석에 앉든 시야가 확보될 수 있게 하는 형태다. 대개 이 경기장은 수만 명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어 짭짤한 돈벌이가 가능한 오락 사업들이 많이 열렸다. 로마 건축에서 원형경기장은 가장 잘 남아 있는 예시들 중 하나이며, 고대 검투사의 싸움부터 시작해 오늘날은 오페라 콘서트 등으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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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원형경기장이 언제 지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가장 오래된 원형경기장은 기원전 75년에 지어진 폼페이의 원형경기장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건축물은 암벽이나 흙언덕 등을 이용해 구조물을 쌓아가는 형태였다. 로마의 문화가 전국으로 퍼지며 다양한 크기의 원형경기장이 전역에 지어졌고, 실제로 군대마다 전용 경기장이 있었을 정도라고. 이 경기장은 보통 목재를 사용해 지어졌고 군인들의 훈련과 오락에 쓰였다.

로마인들은 오락을 좋아했고, 이 여가 시간은 몇 시간만이라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다. 팍팍한 삶에 평소에 쉽게 볼 수 없었던 자극적인 쇼는 사람들이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검투사 대결은 사람들이 열광했는데, 이 싸움은 항상 승리자와 패배자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언제든지 이변이 일어날 수 있는 싸움이었다. 때로는 소시민 같은 약자들이 1등을 꺾을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로마 전역의 도시들은 로마라는 나라에 대한 그들의 자긍심이나 연대를 과시하기 위해, 혹은 황제의 생일 같은 주목할 만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검투사들의 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는 충분한 인기를 끌었고 승리자가 된 사람들은 거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될 정도였다. 참고로, 이 때에도 팬클럽은 있었다. 승리자들이 몰고 다니는 팬들이 이때에도 존재했다는 얘기다.

베로나 아레나의 내부 모습 /flickr

검투사 대회 외에도 원형경기장에서는 코뿔소나 기린 같은, 먼 나라에서 포획해 온 이국적인 동물들을 이용한 행사를 열었다. 동물끼리 서로 싸움을 붙이거나 또는 사람과 싸움을 붙이는 볼거리인 베네이션(고대 로마에서 야수끼리의 또는 야수와 인간과의 싸움을 뜻하는 말)이 주로 원형경기장에서 열렸다. 이 쇼는 개최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 후원자인 부유층들의 부와 관용을 톡톡이 알릴 수 있는 수단이었다. 또 이국적인 동물들은 로마의 지배가 어느 나라에까지 미치는지에 대한 무언의 과시기도 했다.

고위층들은 자신들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경기장을 물을 채워 실제 해전을 재현하기도 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와 페니키아 함선끼리 싸우게 해 알렉산드리아 전쟁을 기념했고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악티움 전쟁에서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전투를 벌였다. 또 네로 황제는 원형경기장 전체에 물을 채워 그만의 해상 전투 쇼를 열기도 했다.

다만, 전투는 매우 실제적이었기 때문에 사형수들이나 전쟁 포로들은 만류하는 군중 역을 맡아 현실감을 돋구는 역할을 하고 희생되어야 했다. 로마의 통치자들은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호화롭고 화려한 쇼를 열었다. 

폼페이 원형극장 /flickr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폼페이우스 대왕은 폼페이 원형극장을 만들었는데, 현재 기초만 보존되어 있는 이 극장은 최대 2만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가장 오래된 원형경기장이다. 폼페이우스의 군사 작전을 계기로 만들어진 이 곳은 승리의 여신상과 폼페이우스가 전투에서 제압한 국가들을 의인화한 장식으로 꾸며졌다. 이 극장은 로마 제국의 원형경기장에 영향을 주었는데, 로마의 원형경기장은 전통적인 그리스 원형극장과는 달랐다. 

콜로세움 /unsplash

그리스의 원형극장은 말발굽 모양의 좌석 공간과 무대 건물을 각각 분리한 구조였지만 로마의 원형경기장은 지붕이 없이 하나로 되어 있는 구조였다. 그리스 시대 무대 건축은 상당히 낮은 구조였고 대규모로 조각된 조각상들은 드물었지만 로마의 원형경기장은 여러 층으로 된 높은 무대 구조가 특징이며 신상이나 영웅상, 초상화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것이 대부분이다. 당장 콜로세움만 봐도 동물 우리, 기계식 엘리베이터를 포함한 지하 편의 시설이 있었고 신과 영웅을 새긴 조각상들을 볼 수 있다.

특이한 건 로마의 관객들은 철저하게 계급, 성별, 국적, 직업, 결혼 등의 유무에 따라 좌석에 나뉘어 앉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노예와 주인, 어린이와 어른, 부자와 가난한 사람, 군인과 민간인 등 철저하게 따로 나눠 앉도록 했다. 자연히 앞줄은 앞도 잘 보이고 안락했기 때문에 지역 의원들을 비롯한 부자들의 몫이었다.

당시 행사를 주최한 주최자들은 원형경기장을 단순한 수입원을 넘어 그들의 재력과 여유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썼기 때문에 시민들에게는 거의 무료로 제공했다고 한다. 이후 기독교를 종교로 가진 나라들이 등장하며 검투사 대회는 후기 황제들 시대에서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고, 원형경기장은 때로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거나 교황 알렉상드르 6세에 들어서는 공공 채석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베로나 아레나 /flickr

제25회 동계올림픽의 폐막식, 패럴림픽의 개막식이 열릴 베로나 아레나는 이탈리아 베로나에 있는 원형경기장이다. 오늘날에도 대규모 오페라 공연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며, 고대 건축물 중 잘 보존되어 있는 곳들 중 하나다. 고대에서는 최대 수용 인원이 3만여명에 달했으며, 현재는 콘서트와 오페라가 열릴 시 약 15,000석으로 줄인다고. 건물 전면은 석회암으로 만들어졌다가 큰 지진이 일어나 외부가 거의 파괴되어 재건을 한 상태다. 원래는 3층까지 있었지만 현재는 2층까지 있다. 베로나 아레나는 만들어진 순간부터 검투사의 대회부터 시작해 현재의 푸치니 오페라 콘서트까지 여러 행사가 열리고 있다.

베로나 아레나에는 화가 피노 카사리니가 그린 프레스코화에서 볼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범죄를 저질러 사형 선고를 받기 전날, 감옥에 있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사형수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악마와 계약을 맺는다. 악마는 그에게 제안을 하나 하는데, 다음날 남자는 도시의 시장에게 요청을 하나 한다. 자신을 사면하는 대가로 베로나 시민들이 게임이나 쇼를 즐길 수 있는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시장은 이를 받아들이고, 밤이 오자마자 지옥에서 올라온 모든 악마들이 이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짓기 위해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는 자신이 악마와 한 약속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를 깨닫게 된다. 결국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성모 마리아에게 계약을 파기해 달라고 요청한다. 곧 수탉이 울부짖고 일출이 시작되자 악마들은 원형경기장을 미완성으로 놔둔 채 사라졌다는 설이다. 이것은 현재 베로나 아레나에는 날개라 불리는 4개의 아치만 남아 있는 것을 묘사하기도 한다. 

'날개'라 불리는 4개의 아치 /flickr

베로나 아레나는 아디게 강 쪽에 있었던 전략적인 위치 덕분에 로마 제국이 넓어지는 데 첫걸음을 뗀 장소였으며, 북쪽 지역을 통제하기 위한 근거지로도 쓰였다. 지금이야 도시의 역사적인 중심에 서 있지만 로마 시대까지만 해도 도시를 감싼 성벽 바깥의 경계 쪽에 있었다. 베로나 아레나는 처음부터 도시 중심에 위치한 것도 아니었고, 도심이 붐비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도시의 성벽 밖에 있었다. 

그러나 점점 외적 침입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해야 할 필요가 생기며 이 원형경기장은 주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게르만 부족 집단인 알레만족이 로마 제국의 국경을 자주 넘었는데, 베로나 아레나가 그 경계에 있어 외적들이 이 곳을 요새로 점령하고 베로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염탐하는 일이 잦았다. 결국 갈리에누스 황제가 도시의 방어를 위해 베로나 아레나의 바깥쪽 벽의 일부를 해체하고 성벽을 낮추거나 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가 나중에는 성벽을 새로 쌓아 베로나 아레나를 도시 안으로 통합시켰다.

콜로세움처럼 베로나 아레나도 검투사들의 싸움을 포함한 오락용으로 쓰였다. 싸움이 잦으니 유혈 사태도 매번 벌어졌는데, 베로나 아레나의 '아레나'도 서로 싸우면서 흘리는 피를 흡수하기 좋도록 모래를 깔아 이 모래를 라틴어로 'Harena'라 불렀고 이것이 지금의 '아레나'가 된 것이다. 유혈 낭자한 이 쇼들은 고대 로마인들이 매우 좋아했고 짧은 시간 내 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오락으로 변했다. 황제와 지방 관리들은 누가 더 정교하면서도 웅장한 쇼를 열 수 있는지에 대해 무섭게 경쟁했다.

베로나 아레나 /flickr

여러 유사한 로마 건축물들과 마찬가지로 베로나 아레나 또한 제국의 쇠퇴와 몰락을 겪었다. 검투사 경기도 쇠퇴하고 기독교가 성장하며 베로나 아레나는 오페라나 연극, 무도회 같은 다른 쇼를 열기 위해 용도 변경이 자연스럽게 됐다. 현대의 베로나 아레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예술가인 지오반 프란체스코 카로토나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손을 거쳐 수백년 전 향유했던 문화적 지위를 얻게 된다.

베로나 아레나는 오페라 공연이 열리기 전까지 노숙자들을 위한 피난처, 시장, 투우장, 서커스가 열리는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쇼핑 센터가 있기 전까지는 공예품 가게들도 가득했다고.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베로나 아레나는 오페라 공연에 적합하도록 재건과 복원이 이루어졌다. 이후 1913년부터 본격적으로 베로나 아레나에서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을 열게 됐다. 

베로나 아레나에 있는 지하 통로 /flickr

콜로세움처럼 베로나 아레나에도 지하실이 있었는데, 무슨 기능을 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검투사와 싸울 동물들이 있는 곳이라는 설도 있고, 소품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확실한 건 없다. 베로나 아레나엔 원래 지붕 없는 극장의 차일을 뜻하는 '의연막'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로마 시대에는 전등도 없었다. 또 쇼는 낮에 열려 새벽까지 계속되는 날도 허다했다. 

무엇보다 하루종일 앉아서 경기를 봐야 하는 관중들에게는 내리쬐는 햇빛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고, 특히 싸움 경기는 대부분 여름철에 열렸으니 햇빛에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고 경기를 봐야 하는 날도 다수였을 것이다. 그 햇빛을 가려줬을 의연막이 베로나 아레나의 천장을 덮으려면 적어도 면적이 수천미터였을 거고, 천의 무게 또한 어마어마했을 테다. 그 천을 어떻게 만들어 씌웠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당시의 의연막은 개폐도 가능했다고.

연주회가 열리는 베로나 아레나 /unsplash

로마인들은 도시 성벽 밖에 아레나를 세우고, 지역의 산지에서 캐내 온 하얀 대리석 마름돌을 쌓아 아름답게 꾸몄다. 지진이 일어나 외부의 원형 벽이 크게 파손되었던 때도 있었지만 그 외에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잘 버텨 왔다. 실제로 베로나 아레나는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축에 속한다.

베로나 아레나는 만들어진 지 이래 한번도 여유로웠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했고 이탈리아와 북유럽 사이의 주요 도로들이 지나가는 곳이기도 했다. 매일 검투사들이 싸우고, 재판이 열리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으로 비극적인 로맨스를 연출했던 베로나 아레나는 이제 2026년 동계올림픽을 마무리하는 장소가 되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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