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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의 아웃사이더, 나이브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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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의 아웃사이더, 나이브 아트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2.23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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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보샹 'Large Bush of Pansies'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아도 아름다운 예술가라 불리며 여러 작품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나이브 아트'는 특정 유파를 가리키는 게 아닌 일부 작가들의 작품 경향을 가리키는 말로 정규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아도 자신의 취향과 순수한 즐거움을 그림에 표출하는 것을 뜻한다. 

‘나이브’라는 용어는 ‘자생적으로 획득된’이란 의미의 라틴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포크 아트와는 달리 나이브 아트는 대중 문화나 전통에서 꼭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지역의 전통 문화에서 나온 산물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취향과 재능에서 시작한 것이다. 어린이 같은 단순함과 솔직함이 특징이며 종종 숙련된 예술가들이 모방하기도 한다.

미숙하지만 순수하다, 나이브 아트

앙리 루소 'Surprised!' /flickr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다른 직업도 있지만 자신의 결대로 그리는 나이브 아트는 전세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도 인정받는 예술 장르이기도 하다. 회화의 형식적인 특성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으며, 르네상스 시대 진보적 화가들에 의해 섬세함보다는 단순함으로 주목받았다. 나이브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대중적이고, 누가 보든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이 부문에서는 앙리 루소처럼 예술 학교나 미술 아카데미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예술가로 활동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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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 아티스트들이 언제 처음으로 나타났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앙리 루소가 활동했던 1885년 즈음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파리에서 활동한 미술평론가·화상인 빌헬름 우데는 1928년 파리에서 열린 첫 번째 나이브 미술전을 기획해 앙리 루소를 비롯해 앙드레 보샹, 세라핀 루이, 루이 비뱅 등이 참석했다. 이 미술전은 예술가들의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성향과 본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열렸다고 한다.

나이브 아트가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건 인간의 서사, 자연과 계절의 풍경 등을 묘사하는 데 있어 두드러지는 화가의 순수함이란 점이 크다. 이른바 '작가의 가슴에 물감을 찍어 바르는 것'인데, 세상에 펼쳐진 모든 모순과 혼란에서 벗어나 작가의 순수함이 담긴 이상적인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해 열심히 붓놀림을 하는 식이다. 나이브 아트는 삶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할 수 있도록 밝은 색으로 사람의 일상, 시골의 풍경, 다양한 축제와 계절의 변화를 표현했다. 

현대 미술이 삶의 찌듦과 아픔, 가끔 냉소적인 시선이 담겨 있는 것이라면 나이브 아트와 아티스트들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삶을 아주 단순한 것으로 생각하도록 한다. 나이브 아티스트들은 숙련된 화가들과 동일한 열정을 갖고 있으며, 단지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방법에 공식적인 지식이 없는 것 뿐이다. 원근법도 없고, 미묘한 색의 혼합과 예술 이론을 빗겨나가고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이들에게 온전한 자기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라스코 벽화 /flickr

예로부터 원시적인 예술은 예술가들에게 혁신적이며 마르지 않는 샘이라 여겨졌고, 오늘날 주요 디자이너나 삽화가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있다. 나이브 아트는 언제 시작된 걸까. 동굴 벽화라고 한다면 아마 이것이 최초일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 라스코 동굴 벽화에 그려진 그림들도 어디서 딱히 교육을 받았거나 한 전문 화가들이 그린 것은 아니다.

지극히 원시적이고, 단순하고,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예술가들이 그렸을 테지만 동굴 벽화에서 보인 들소의 특징이나 색채의 다채로움 등은 이들이 전문 화가가 아니었더라도 뛰어난 화가였음을 알게 한다. 프로가 아닌 예술가들에게는 마땅한 재료도 없었을 것이고,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재료를 총동원해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재료를 실험했을 것이다. 정해져 있는 예술적인 기준에 맞지 않았더라도 그 벽화를 그린 사람들은 지금도 뛰어난 예술가로 칭송받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어떤 유파가 딱히 정해지지 않았을 때, 그 화가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을 갖고 이들을 어떻게든 기준에 맞게 분류하고 정의하려 한다. 그래서 나이브 아트가 특별한 건, 이들이 어떤 예술 학파에도 속하지 않고 특정 체계를 따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이브 아트의 매력이다. 나이브 아티스트들은 처음부터 어떤 곳에서도 속하지 않았고, 독립적인 성향을 띄었다. 나이브 아트의 본질이며 다른 학파와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이 독립성이기도 하다. 

카미야 봉부아 'Breakfast among the Trees' /flickr

'나이브'라는 단어에는 자연스러움, 순수함, 미숙함 등을 포함한다. 나이브 아트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 수 있지만 오히려 눈에 띄게 서투르고 미숙한 회화 스타일을 논평할 때에도 이 단어를 씀으로써 약간의 경멸적인 의미로도 쓰였다고. 하지만 역시나 '나이브'한 독자, 관람객들에게 나이브 아티스트라는 용어는 비평가들의 비웃는 어조와는 반대로 이 그림이나 조각을 작업한 사람이 인간적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원근법의 부재는 나이브 아트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원근법이 없으니 인물들이 마치 공간에 그대로 박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색의 자유로운 조합은 화려하고 풍부한 느낌을 주며 그림 속 인물들은 정면의 모습, 또는 딱 떨어진 옆모습을 보인다. 얼굴을 가리거나, 뒷모습 등은 거의 없다. 작가의 열정은 그림에 있는 인물들에게서 표출이 되는데 특히 인물의 눈빛이나 선과 색의 정밀함이 특징이다. 동굴 벽화부터 지금의 현대에 이르기까지 나이브 아트는 존재하며, 유명한 사람들도 있지만 몇몇은 또 영원히 익명으로 남기를 원해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앙리 루소 'The Family' /flickr

앙리 루소는 특정 화풍이나 전문적인 지식 등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이 자신을 예술가로 바라보기를 원했던 사람이었다. 그만큼 비평가들에게는 비웃음의 대상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루소라는 이름 대신, 세관 사무원이었던 그의 직업을 빗대어 '르 두아니에'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그러나 말년에 들어 루소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점차 호의적으로 변했다. 그는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이 파리 세관에서 세관원으로 근무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40세가 되던 해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에 들어가 그림을 모사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받는 등 그에게는 열정 또한 있었다. 이후 그는 정식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독학으로 주말마다 그림을 그려 ‘일요화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초기의 그의 작품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다는 것, 맞지 않는 인체 비례, 환상과 사실을 섞어놓은 듯한 색조합 등으로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의 그림에는 '소박한', '어린애 같은', '원시적인'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나이브 아트의 특징은 그의 그림에서도 잘 드러나 있는데, 비례와 원근법이 미숙했으며 당시 1880년대 화가들이 인상파 기법을 수용한 반면 그는 인상주의 이후 거의 쓰지 않는 검은색을 주로 썼다고 한다. 인상주의 하면 떠오르는 빛, 순간적 효과 등에 그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초상화도 많이 그렸는데, 참고로 그의 초상화는 모델과 전혀 닮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초상화를 의뢰한 의뢰인조차 초상화를 보고 거부하거나 버리기도 했다고. 

앙리 루소 'Boy on the Rocks' /flickr

루소는 초상화를 그릴 때 모델의 얼굴 치수를 직접 재고 피부의 정확한 색을 찾기 위해 물감 튜브를 모델 얼굴에도 대 봤다고 한다. 그러나 공들여 그린 그의 초상화는 막상 모델과 비교하면 전혀 닮지 않아 디테일에만 치중하느라 전체적인 모습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원근법이나 비례를 따르지 않고 부분 부분을 덧붙여 그리는 이 방식으로 인해 입체파 이후의 콜라주 기법이 탄생했다고. 

루소가 세상의 빛을 본 건 피카소와의 만남이 컸는데, 피카소가 자주 이용하던 골동품 가게에서 루소의 작품을 사 왔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당시 피카소를 포함한 신진 화가들이 모여 '루소의 밤'이라는 모임을 개최한다. 그곳에서 루소의 가치관과 철학이 알려졌고 그의 작품들 또한 인정받게 된다. 당시 루소의 작품에 관심이 있었던 건 비단 피카소뿐만이 아니었다. 미술품 거래상인이었던 앙브루아즈 볼라르도 루소의 그림 몇 점을 소장했고 앞서 언급했던 '루소의 밤'에는 비평가인 모리스 레이날, 소설가이자 시인인 거트루드 스타인도 있었다.

앙리 루소 'The Sleeping Gypsy' /flickr
앙리 루소 'Woman Walking in an Exotic Forest' /flickr

풍경이나 초상화 등을 그렸던 그에게 '잠자는 집시'는 초현실적이면서도 몽상적이다. 그러나 또 자세히 뜯어보면 현실적인 분위기도 있어 두 가지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모든 요소는 디테일하지만 모였을 때엔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혀 알 수 없다. 나이브 아트의 특징처럼 사자는 옆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자고 있는 여인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한 화면이지만 시점은 여러 개인 이 그림은 피카소 등 초기 입체파 회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루소는 자신이 직접 가지 않은 곳도 직접 상상해서 그렸다. 정글은 물론이고 프랑스 밖을 나가본 적도 없지만, 대신 그는 파리의 식물원인 자르뎅 데 플랑트에 자주 가 식물들의 모습을 스케치했고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는 동물학 갤러리에서 박제된 야생 동물을 관찰해 작품에 응용했다. 

모지스 할머니 'Ecuador' /flickr
모지스 할머니 'The Old Checkered House in Winter' /flickr

75세의 나이에 처음 그림을 시작해 현재는 미국의 국민 화가로 불리는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일명 '모지스 할머니'는 겨울에 내리는 첫눈, 추수감사절의 준비, 봄의 푸른색을 포착해 그림으로 그렸다. 그는 그림을 정식으로 배워 본 적이 없었지만 어린 시절 속 그가 보았던 풍경들은 그림으로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그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을수록 평론가들은 그 사실을 외면했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그의 그림은 예술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93세에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고, 100번째 생일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됐다.

자수 놓는 게 취미였던 모지스 할머니는 관절염이 심해지자 더이상 바느질을 할 수 없게 되어 빈 시간을 그림을 그리는 데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어도 그가 눈을 감았을 때 떠오르는 추억과 기억을 화폭에 옮겨 놓았다. 기술을 습득하지 못해도, 아마추어 특유의 과장이나 기교 없이 '나이브'한 그의 그림은 대중들이 아직도 사랑하는 작품들이다. 

세라핀 루이 'Senlis (Oise)' /flickr

나이브 아트는 예술가의 순수한 영혼과 순수한 감정을 작품에 반영한다. 기준이나 체계를 따르지 않아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자신의 감수성을 담아내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예술가의 소망, 순수함, 감성과 에너지를 작품에 담을 때 기술과 재능 또한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 나이브 아트의 등장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또다른 예술이 언제든지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의 상상력과 독립성이 만나 독특하고 독창적인 나이브 아트라는 예술을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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