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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탐구] 자연에서 자신의 예술과 철학을 찾다, 앤디 골드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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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탐구] 자연에서 자신의 예술과 철학을 찾다, 앤디 골드워시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2.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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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cks Framing a Lake'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영국의 조각가, 사진작가,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앤디 골드워시는 영국의 대표적인 대지 미술 작가다. 그는 1970년대부터 자연과 도시를 배경으로 자신의 작업을 해 왔으며 특히 작품의 대부분은 야외에서 제작한다. 장소는 영국, 캐나다, 일본, 미국,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 북극의 자연 등 다양하다. 

그는 자연물을 이용하여 기후와 풍토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을 주로 제작한다. 그의 예술은 생태계의 사이클과 리듬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과정을 작품에 그대로 수용하여 자연이 순환하는 과정 속에서 변형되고 분해되는 형태로 남는다. 

자연에서 답을 찾다, 앤디 골드워시

석공과 함께 작업 중인 앤디 골드워시(右) /flickr

1956년 태어난 그는 13살이 되던 해 주말 농장에서 일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농장 일꾼들처럼 반복적인 수작업을 하는 일이었다. 그가 자연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는 반복적인 농장 일이 마치 조각을 만드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 건초를 쌓거나, 밭을 갈거나 하는 등의 일이 조각을 깎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가 밖에서 접한 농업이라는 일은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자연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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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접하며 일했던 당시의 경험은 그에게 풍경에 대한 단순한 감상에서부터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도움도 되었다. '내 작업의 많은 부분은 마치 감자를 따는 것과 같다. 그 리듬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을 남긴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농부나 정원사가 될 것이고, 예술이라는 것은 그저 취미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고. 

브래드포드 칼리지 오브 아트와 프레스턴 폴리테크닉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영국의 전위미술가 리처드 롱 교수의 '롱 아트'에 대한 수업을 들었고, 이 수업은 앤디에게 나무나 물과 같은 자연의 요소를 예술과 어떻게 통합하는지를 알게 했다. 리처드 롱의 작품을 찍은 사진들은 앤디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고. 

학교에 다니는 동안 앤디는 아주 작은 스튜디오에서만 일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자연스럽게 야외로 나가게끔 했는데, 이 때의 경험이 그의 인생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야외에서 영감을 얻었고, 풍부한 재료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바닷가에 나가 모래사장에 줄을 긋고 파도가 치는 것을 보며 그는 조수, 모래의 질감 등에 대해 연구했다. 그 후로 그는 다시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게 아닌, 밖에 나가는 것으로 계획을 바꾼다. 

앤디 골드워시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로버트 스미스슨의 'Spiral Jetty' /flickr

스튜디오에 갇혀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 속에서 예술을 창조하려는 그의 열망도 시작된다. 그의 초창기 작품들도 그가 다녔던 학교와 가까운 해변이었던 랭커셔주 모어캠베이에 만들었던 조각상들이 많았다. 밀물이 들어오면 저절로 부서져 사라지는 형태였다. 그는 1985년 스코틀랜드로 이주하기 전 랭홈에 머무르며, 미국의 대지 미술가인 로버트 스미스슨과 같은 다른 대지 미술 전문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여러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소수에게만 보이고, 주류에 무시받았던 여러 야외 조각품들을 계속해서 지었다. 1980년대 내내 그는 환경 예술 운동에 참여했고 사용한 재료들 중에는 돌, 바위, 막대기, 나뭇가지, 얼음 등 자연에서 나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는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했고, 작품을 사진으로 남김으로써 그가 만들었던 작품을 형태로 남겼다. 

작가가 재료로 즐겨 쓴 눈송이 /flickr

그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데 시간을 두었다. 즉 얼마나 걸리든 딱히 시간 제한을 두지 않았다. 작품이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에 그는 2분이 걸릴 수도 있고, 하루종일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작품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신경쓰는 것보다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것을 더 중요시했다. 그의 예술에 사용되는 재료들은 꽃, 고드름, 잎, 솔방울, 눈과 돌을 포함한다. 그는 꽃과 나뭇잎으로 작업하는 것이 정말 대단한 일임과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전한다. 예술에 쓰이는 재료는 손을 댈 수 없고, 자연 전체와 함께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존재할 작품을 위해 앤디는 종종 맨손을 쓰지만 영구적으로 남는 작품에는 기계를 사용하기도 한다. 작품은 주위 풍경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것을 알기에 그는 펼쳐져 있는 자연 환경에 자신이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동화될 시간을 가진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의 존재들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며 그는 작품을 만든다. 앤디는 자연 재료들을 의도적으로 엮은 다음, 자연 환경과 함께 둔다. 바다에 돌로 형태를 쌓아 만든 다음 밀물과 썰물이 이 작품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관찰하고 작품을 옮기거나, 녹이거나, 또는 그 물 위로 흐르게끔 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작품의 변화를 관찰하며 자연의 미지성을 탐구한다. 그는 "바위를 만질 때 그 주변의 공간을 생각하며 작업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작품이 주변과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같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고 설명한다. 자연은 항상 변화하며, 그 변화는 관객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키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내 작품이 재료, 계절, 날씨의 변화에 민감하며 관객이 계속 경계하면서 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Stone Coppice' /flickr

그의 작품은 자라거나, 이변이 없는 한 머물러 있거나, 쇠퇴한다. 과정과 부패는 그에게 암묵적인 현상이다. 1990년대까지 앤디는 유명한 예술가였지만, 비평가들은 가끔 그의 작품이 오로지 자연을 아름답게만 보이게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개념예술가들이 대세였던 시절 그의 작품은 개념적이지 못하고, 작품에 대한 그의 접근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각각의 작품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스러져 가는지'에 대한 입장으로 고수했다.

그는 자연의 형태를 훼손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자연의 매력을 강화시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그에게 죽음과 부패는 삶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붕괴와 부패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이제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단순히 부패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아름답다"고 회상했다.

 'Japanese Maple' /flickr

그의 '일본 단풍'은 강렬한 색감이 특징으로 그에게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다. 그는 1987년 일본을 여행하던 중 단풍잎을 꿰어 물에 떠 다니는 것처럼 만들었다. 일본에서 마주친 이 붉은색은 그가 본 것 중 가장 강하면서도 밝은 색이었다고. 특히나 산중턱의 푸른 나무들 사이로 이 붉은색은 더 눈에 띄었다. 물에 떠 있는 단풍잎을 작업하면서 그는 작품에 쓰이는 재료의 색깔에 집중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자연이 갖고 있는 밝은 색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터득할 수 있었다고. 

'Storm King Wall' /flickr

'스톰킹 돌벽'은 앤디의 첫 영구 작품으로, 이 돌벽은 1997년부터 1년간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그의 가장 크고, 야심찬 설치 작품이다. 원래는 숲을 뚫고 나오는, 약 220여미터 정도 길이의 돌담이었던 돌벽은 더 길어져 연못까지 내리막길로 되어 있다. 원래라면 영토를 표현하기 위해 돌담을 쌓거나 나무가 벌목될 공간을 표시하는 거였다면 앤디는 대신 나무를 감싸고 보호하는 형태로 담을 쌓았다.

스톰킹 돌벽 특유의 유달리 강조된 곡선은 18세기에 시작해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결 형태의 벽을 기반으로 한다. 돌벽 끝으로 가서는 근처에 있는 뉴욕 스테이트 스루웨이와 관련이 있어 직선 형태의 돌담으로 이어진다. 처음 앤디는 숲에 남아 있던 오래된 농장 벽 일부에 돌을 하나씩 쌓기 시작했다. 수많은 돌이 이 돌벽에 쓰였고 콘크리트나 시멘트는 사용되지 않았다. 대신 돌들이 서로 단단하게 얽히는 식으로 쌓였다. 앤디는 세심하게 돌을 골라 여기저기 쌓으며 작품 전체를 매혹적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Roof' /flickr
'루프'를 본다 /flickr

앤디는 워싱턴 국립 미술관 동쪽 빌딩의 지상 정원에 '루프'라는 작업을 완성한다. 9개의 속이 빈 슬레이트 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기 가운데에는 구멍이 있다. 관람객들이 돔을 향해 위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 박물관의 관람 구역에서 이 돔을 내려다보는 형태다. 그는 그의 조수, 영국에서 온 4명의 석공들과 함께 9주 동안 이 '루프'라는 조형물을 설치했다.

이 작품의 근원은 워싱턴에서 석조 작업의 기원에 대한 예술가의 순수한 관심에서 나왔다. 그는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돔 형태의 스타일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의 다른 영구적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이 작품에도 오랜 시간을 투자했는데, 이 구조물 자체는 마치 신석기 시대의 주거지 같으면서도 현대의 공공 건물 같은 느낌을 준다. 루프에 난 구멍은 그가 계속 관심을 가졌던 소재로, 그 구멍에 깊이를 주고자 했던 작가의 열망이기도 했다. 

전시 풍경 /flickr
전시를 구경하는 관객 /flickr

그에게는 사진이 작품만큼이나 중요했다. 사진은 그에게 작품을 포착하는 매개체였다. 작품이 자연에 스러지기 전 그는 자신의 작품을 촬영했다. 사진 촬영은 그에게 있어 예술이 절정에 위치해 있을 때를 포착하고, 작품이 가장 살아 있을 때를 증명하며 그의 작품이 한때 존재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앤디는 사진으로 기록을 해 둠으로써 자신의 작품 안에 제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가 표현되기를 바랬다. 사진은 작품이 완성되기 전, 또는 도중, 그 후에 촬영했으며 대부분은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작품의 건설 과정을 찍은 건 나중에 이 작품이 미완성이 되거나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는 만드는 과정을 찍음으로써 작품의 사실성을 돋보이게 했다. 그래서 관객들은 사진으로 그의 작품이 성공하거나, 또는 실패하거나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또한 그의 진정성이다. 작품과 그 사진은 때로 영상물과도 결합되어 더 많은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Striding Arch' /flickr

그는 수십년간 리처드 롱, 크리스 드루리 등과 함께 환경 예술 운동에 참여했다. 2001년에는 다큐 영화가 공개되어 그가 작업하는 과정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영국 런던의 코톨드 미술학교, 뉴욕의 스톰킹 아트센터, 워싱턴D.C. 국립미술관 등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스타일은 변화, 생소함, 또는 덧없음을 탐구하며 수많은 조각들은 기원부터 시작해 해체에 이르기까지 많은 과정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그에게 인간과 자연 사이에 그어진 경계란 딱히 없다. 그는 갤러리나 스튜디오 같은 제한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자연 환경에서 제 예술을 확장시켰다. 그는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고, 영원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단지 그의 작품이 파도에 밀려 나가거나, 바람에 쓰러지거나 할 때에 조용히 작별 인사를 하고 또다른 영감을 찾아 자연에 제 예술을 덧입힌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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