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7 19:40 (토)
손으로 빚어 만든 채화에도 인생이 있다, 궁중채화장 황수로
상태바
손으로 빚어 만든 채화에도 인생이 있다, 궁중채화장 황수로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2.14 18: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궁중채화 작업 모습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여기, 꽃을 만드는 장인과 화장이 궁중연향을 위해 전통적으로 만든 조화가 있다. 생화인 진화와 구별해 가화라 부르기도 했던 채화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진연을 재현한, 궁중진연을 장식하는 비단으로 만든 꽃이다. 

채화는 아름다운 비단에 풀을 먹이고 꽃과 풀의 즙, 열매즙으로 자연 채색하고 꽃술과 꽃잎마다 송화, 밀납을 입혀 손으로 빚어 만든 가화로 장인들의 혼이 스며든 조선왕조 최고의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조선왕조의 채화는 그 빛과 향이 자연스러워 벌과 나비, 온갖 새들이 날아드는 신비함을 간직한 꽃이다.

기록으로 남은 전통과 장인의 노력, 궁중채화

지당판 /문화재청

조선시대에 채화는 연회와 같은 특별한 날에 따라 격식을 달리하며 사용되었다. 용도에 따라 화병에 꽃아 어좌를 장식하는 준화, 머리에 꽂는 수화, 잔치상을 장식하는 상화 등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준화는 청화백자 화병에 홍색과 벽색의 복숭아꽃을 나뭇가지에 드리워 꽂아 만든 작품이며 상화에 오르는 수파련은 연꽃 여덟 송이로 구성된 작품으로, 왕실 가족 외에는 아무리 지위가 높은 자일지라도 제공하지 않았다.

핸드메이커는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적인 기사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화·예술 작품이 ‘기회의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핸드메이커와 동행해 주세요.

후원하기

왕실행사에 쓰이는 채화들은 재료 준비 절차에서부터 완성된 작품의 종류와 갯수, 그에 따른 소요 경비까지 모두 왕의 보고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궁중에 소속된 장인을 통해 궁중 채화를 제작하고, 이를 전담하여 총괄·관리하는 직책을 두어 연회에 참석한 외빈에게 왕이 직접 꽃을 하사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1886년 고종은 프랑스의 사디 대통령과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며, 대통령에게 꽃을 선물했는데 이것이 궁중채화였기도 했다.

꽃을 만드는 재료는 비단에서부터 견직물, 모직물, 광물, 깃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작품 대상으로는 과꽃, 국화, 도라지꽃, 모란, 복사꽃, 유자꽃, 연꽃, 월계꽃, 패랭이꽃 등 우리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꽃들이 주를 이룬다. 궁중에서는 생화가 아닌 조화로 장식을 했는데, 생화를 쓰지 않았던 임금이 즐겨야 할 장식이니 시들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란다. 대신 조화를 누구보다 생화처럼 보여야 했다. 

작업하는 모습 /문화재청

다만 종이는 오래 가지 못했기에 비단이나 모시를 재료로 썼다. 거기에 송화가루나 밀랍, 촛농을 더했고 접착제는 꿀이나 풀을 썼다. 밀랍은 벌집에서 꿀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를 끓였다가 찬물에 굳힌 것으로 매화를 만든 것을 ‘윤회매’라 불렀다. 꽃에서 꿀이 나오고 이 꽃에서 벌이 꿀을 따와 밀랍이 생기고 이것이 매화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생화가 아닌 비단으로 만든 꽃에도 나비가 찾고, 꿀과 밀랍향을 맡은 벌들이 모여들 수 있는 것이다.

궁중채화는 궁중에서 존중의 뜻을 표현하거나, 평화·장수·건강 등의 상징으로 꽃을 이용한 궁중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어 역사적 의의와 전승가치를 인정받아 이미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바 있다. 

궁중채화장 황수로 /문화재청

황수로 선생은 전승 단절의 위기에 처해 있는 궁중 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품격을 살려 전통공예로 되살리는 등 전승 능력과 전승 환경의 탁월함을 인정받아 해당 종목의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후,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아 그 명맥을 이어받고 지금도 기·예능을 전승하고 있다. 황 선생의 본명은 황을순으로, 신라시대 향가 ‘헌화가’에 소를 끌고 가던 노인에게 절벽에 피어 있는 철쭉꽃을 받은 수로 부인이 문헌상 최초로 꽃을 사랑한 여인이라고 생각해 개명한 것이다.

그는 제124호 궁중채화장으로 지정된 것을 두고 "자칫 소멸될 뻔한 우리의 전통 꽃장식이 다시 찬란한 햇살 속으로 나온 것 같아 무척 감격스러웠다"고 회상한다. 황 선생은 어린 시절 왕실의 종친이나 고종 때는 궁내부 신하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1935년 경남 함안 정현리에서 태어난 황 선생은 유년시절을 외가에서 지냈는데 외가는 효령대군의 직계로 양반 중에 양반 집안이었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이모, 외삼촌들, 이종사촌 사이에서 외가의 풍습대로 자랐다. 

꽃을 좋아했던 그의 외할머니는 붉고 흰 덩굴장미, 철쭉과 목단, 수국을 키웠고 그 또한 자연스럽게 꽃과 함께 자랐다. 밤늦도록 베틀에 올라 베를 짜는 어머니를 보며 물들이는 법을 그냥 알았고, 자연스럽게 비단과 친해졌다. 황 선생의 일상 속에 비단과 꽃이 그저 어느날 갑자기 들어온 것이다. 황 채화장은 “조선 시대 궁중에서는 생명을 존중하는 불교 사상과 왕가의 영원성을 드러내기 위해 시들지 않는 조화를 사용했다”며, “화장이 비단이나 모시, 삼배, 종이 등으로 조화를 만든 게 궁중채화”라고 전했다. 

궁중채화장 황수로 /문화재청

원래 그는 이대를 졸업, 설치미술 작업을 하던 작가였다. 그러다 사찰에서 필요한 나무를 깎던 중 뭔가를 깨닫고 조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후 1960년 일본 유학을 계기로 궁중채화 복원에 본격적으로 힘썼다. 당시 그는 꽃장식 문화는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만 있는 것이라 하던 일본인들의 말에 충격을 받아 우리나라의 전통 꽃장식 문화를 반드시 복원하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집에서 가화를 만드는 것을 본 건 기억나도, 막상 일본인들이 한국의 궁중채화에 대한 증거를 가져와 보라는 말에는 할말이 없어 귀국하자마자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사서를 찾아 수없이 연구했다.

순조기축진찬의궤의 그림을 재현한 궁중채화 /문화재청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문화 말살 정책으로 인해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채화 장식에 집중했다. 복원의 학문적 기초와 연구 및 근거에 대한 자료수집을 위해 동아대학원에 들어가 학문에 전념하기도 하고 채화에 관련된 기술이라면 나이와 직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 배웠다. 궁중에서 쓰인 꽃의 시초를 찾기 위해 고전 문헌을 찾던 중 그는 '순조기축진찬의궤'를 발견한다. 순조 즉위 3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효명세자가 창경궁에서 올린 잔치를 자세히 설명한 문헌이다.

남자들만 참석하는 외진찬, 여자들까지 참석하는 내진찬이 있는데 기축진찬의궤에는 내연과 외연 둘 다 실려 있었다. 이 의궤에 실린 잔치 그림을 본 황 선생은 한문으로 씌어 있는 설명을 직접 해석해 궁중채화를 재현하려 노력했다. 그의 손에서 서서히 궁중채화 기법이 되살아났다. 남아 있는 꽃의 유물은 없어도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재현이 가능했고, 황 선생의 끊임없는 노력까지 더해진 것이다.

2005년 부산APEC 개최했을 때 하필 부산에는 궁궐이 없었고, 이에 관계자 측에서 생각해낸 것이 궁중채화였다. 궁궐은 없어도 관람객들에게 왕조의 위엄을 보여줄 수 있는 궁중채화를 당시 황 선생이 만들었고 관람객들은 조화인데도 진짜 향기가 난다며 극찬했다고 한다. 1992년 제1회 국제 꽃 예술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2013년 프랑스 파리 세계문화유산박람회, 2016년 클리블랜드박물관 개관100주년 초대전 등 그의 궁중채화는 여러 곳에서 빛났다. 2004년 덕수궁 야외전시 때엔 벌과 나비가 진짜 꽃인 줄 알고 그의 궁중채화에 날아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한국궁중꽃박물관 풍경 /한국궁중꽃박물관

2021년 12월, 한국궁중꽃박물관이 한국관광공사의 ‘2021 대한민국 안심 여행 캠페인 시즌2’ 사업으로 추진한 ‘인바운드 안심 관광지’에 선정됐다. 인바운드 안심관광지는 한국관광공사가 추진한 ‘2021 대한민국 안심 여행 캠페인’을 제한적 국제관광 재개와 연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이 박물관은 어떤 곳의 지원도 없이 오로지 황 선생의 재산과 후원금을 들여 만들어진 곳이다. 박물관 건립은 황 선생의 일대 숙원 사업이었고, 과정 또한 험난했다. 사업비가 모자라 후원자들이 황 선생에게 돈을 보탰고 그중에는 함께 작업하다가 암 투명 끝에 숨진 제자의 아들도 있었다.

한국궁중꽃박물관에는 기본 전시실과 영상홍보실, 채화작업실 등이, 전수관에는 전수교육실, 염색실, 작품수장고 등이 있으며 전수교육실에서는 궁중채화연구는 물론 예절교육, 자연염색학습, 궁중음식연구 등을 진행한다. 박물관에 대한 황 선생의 애착은 한없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에 앞서 궁중채화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사장될까봐 두렵고 안타까워서다”며, “채화의 가치를 찾아낸 자신이 죽고 없더라도 박물관과 전수관이 있으면 그 명맥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고종전해진찬의-대왕대비진어찬안(제 1전시실) /박물관

그는 한국궁중꽃박물관 이외에도 한국궁중채화연구소를 열고 채화연구와 복원 등에 전념하고 있다. 채화제작기법 등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채화’, 한국의 꽃 문화를 알리기 위해 ‘한국꽃예술문화사’도 출간했다. 최근 문화재청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의 역사와 전승 가치 등을 수록한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를 펴냈다.

황 선생은 “인간이 손으로 빚어 만든 채화에도 일생이 있다”라고 말한다. 장인의 숱한 손놀림을 거쳐 한 송이의 꽃이 만들어지는 모습과 그 꽃들이 격식에 맞게 나무줄기와 가지에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 작품으로 완성되기까지의 모습을 섬세하게 조명한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는 궁중채화에 담긴 국가 번영과 안녕의 세계관과 가치관 등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라고 평했다.

궁중채화장 황수로 /문화재청
작업하는 모습 /문화재청

궁중채화는 자연 그대로의 꽃을 구현하기 위해 엄격하고 정교한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다. 직물의 정련, 염색, 매염을 거쳐 천에 풀을 먹인 후 오랜 시간 정성껏 다듬이질을 하여 재료를 손질한다. 섬세한 가위로 꽃잎을 마름질하고, 인두에 밀랍을 묻혀 잎맥과 잎사귀에 생동감을 준다. 그렇게 숱한 손놀림을 거쳐 한 송이의 꽃이 완성되는 것이다. 수많은 꽃들은 격식에 맞게 나무줄기와 가지에서 피어나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난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작년과 올해에 걸쳐 궁중채화의 기록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는 매일매일 양산시 매곡동에 있는 채화연구소에 나와 제자들과 함께 보다 나은 한국전통예술인 채화 재현과 현대화를 위해 연구하고 작품을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다. 다만 아직 전승자가 없다는 것이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다. 개인보다 이제 국가가 나서서 직접 궁중채화를 연구·계승해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채화장의 길을 갈 거라 한다. 그가 그동안 겪었던 시간과 수많은 일들 중 맞이했을 여러 고난과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했기에 그의 손에서 오늘도 생화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수 있는 것일 테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핸드메이커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독립 매체로서 주체 적인 취재와 기사를 통해 여러 미디어·포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광고 배너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독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핸드메이커가 다양한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된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후원을 통해 핸드메이커는 보다 독자 중심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미래를 관통하 는 시선으로, 독립적인 보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이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에는 항상 핸드메이커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가들 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 다. 앞으로 핸드메이커가 만들어갈 메이커스페이스에 동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단 한차례라도 여러분의 후원은 큰 도움이 됩니다. 후원하기 링크를 통해 지금 바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응원해 주세요.

후원하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경기도 시흥시 은계로338번길 36 3층 301호(대야동)
  • 대표전화 : 070-7720-2181
  • 팩스 : 031-312-10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리
  • 법인명 : (주)핸드메이커
  • 제호 : 핸드메이커(handmaker)
  • 등록번호 : 경기 아 51615
  • 등록일 : 2017-08-23
  • 발행일 : 2017-08-15
  • 발행·편집인 : 권희정
  • Copyright © 2024 핸드메이커(handmaker).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handmk.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