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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가 20년간 공들인 룩소르 라메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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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가 20년간 공들인 룩소르 라메세움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2.03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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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복원사업에 참여
(MOU체결식) 왼쪽 김현모 문화재청장_오른쪽 모스타파 와지리국가유물최고위원회 사무총장(이집트 카이로 마니얼 팰리스)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문화재청은 대통령의 한국-이집트 정상회담을 계기로 1월 20일 낮 12시(현지시각) 이집트 룩소르 카르낙 신전에서 한-이집트 문화유산 분야 고위급 회담을 가진 데 이어 1월 21일 오후 7시(현지 시각) 이집트 카이로에서 국가유물최고위원회(사무총장 모스타파 와지리, Mostafa Waziri)와 문화유산 교류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1월 20일 열린 한-이집트 문화유산 분야 고위급 회담에서는 모스타파 와지리 국가유물최고위원회 사무총장은 한국의 뛰어난 석조유물 보존·복원 기술 등을 활용하여 세계유산인 이집트 룩소르 라메세움 신전 복원과 기존에 발굴되지 않은 이집트 왕의 신전(투트모세 4세 신전)의 조사․발굴과 복원에 문화재청의 적극적 참여를 요청하였으며, 문화재청 쪽에서 이를 수용한 것이다.

람세스 2세의 역작, 룩소르 라메세움

룩소르 라메세움 /flickr

라메세움(장제전)은 파라오 람세스 2세의 신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나일강 서쪽에 있는 이집트 테베에 있으며 룩소르 건너편에 있다. 라메세움이란 이름은 1829년 이 유적지를 방문했던 프랑스의 이집트어 학자인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이 곳이 어떤 곳인지, 누구의 것인지도 몰랐으며 '오시만디어스의 무덤' '테베의 수백만년 된 신전' '멤노니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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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멤노니움이라 불렸던 건 그리스인들이 신전 앞에 있는 거대한 조각상을 그들의 전설적인 영웅인 트로이 전쟁의 영웅 멤논과 연관시켜 불렀던 것이다. 그러다 샹폴리옹이 '라메세움'이라 짓고 사원 벽에 적힌 람세스의 이름을 밝히면서 룩소르 라메세움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 거대한 사원은 영국 낭만파 시인인 퍼시 비시 셸리의 시 'Ozymandias'의 구절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람세스 2세는 왕실의 매장 문화에 따라 많은 건물들을 개조, 약탈, 건축했고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했던 건 파라오를 섬기는 예배의 장소이기도 했던 그의 사원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사업은 그가 재위한 직후 시작해 약 20년간 지속되었다고 한다.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인 람세스 2세는 67년의 긴 재위 기간 동안 20년을 라메세움을 세우는 데 썼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가 통치하던 시기는 고대 이집트의 권력과 영광이 빛을 발하던 시기였다. 

라메세움은 그의 권력과 영향력을 증명하는 곳으로 모든 건축물 중 가장 위대한 곳으로 여겨졌다. 그 후 약탈, 자연재해 등으로 파괴되기까지 교회로도 쓰였다고. 사원에는 람세스의 어머니와 아내에게 바친 작은 신전과 왕궁, 여러 창고들이 있다. 1991년 이후 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SCA),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Association pour la Sauvegarde du Ramesseum' 등이 라메세움의 탐사와 보존에 협력 중이다. 

람세스 2세 모습이 새겨진 기둥 /flickr
람세스 2세 동상 /flickr

람세스 2세는 이집트 황금기, 그 시절을 통치했던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파라오 중 하나다. 이집트 제19왕조에서 가장 강력한 파라오들 중 세 번째로, 세티 1세는 람세스 2세에게 왕관을 수여했다. 그는 영토를 넓히고 자신의 목표를 하나 하나씩 달성하는 데 집중했다. 역사 학자들이 그를 위대한 람세스로 칭송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겨우 25살이었던 람세스가 1279년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이집트 국경을 지키기 위해 시리아인, 리비아인, 히타이트인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채색된 부조와 연꽃 기둥 /flickr
자칼 석상 /flickr

또 그는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기념물들을 용도·변경하는 습관도 있었다. 건축에 크게 매료된 람세스 2세는 여러 기념물과 사원에 관심이 있었다. 대왕의 막강한 부, 백성들의 경외심과 함께 권력층의 끝없는 허영은 라메세움을 가장 크고 멋진 장소로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라메세움은 람세스 2세의 업적을 묘사한 부조와 조각들을 볼 수 있다. 

람세스 2세의 위대한 부의 표시는 라메세움에서 볼 수 있는 대형 통 모양의 아치로, 무덤을 만드는 데 쓰는 재료와 일꾼들의 소유물을 보관하는 데 쓰였고 곡식과 옥수수를 보관하는 창고로도 쓰였다. 고대 이집트에서 곡식은 거의 금과 같은 존재였고 풍부한 곡식들은 아치형 창고에 보관했다. 이 곡식들은 전국으로 운송되었고 라메세움과 같은 거대한 사원들에 보관된 수많은 곡식들은 파라오의 엄청난 부를 나타내는 사치스러운 상징이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에서 국왕의 영혼을 제사하던 숭배전, 즉 장제전(mortuary temple)은 여러 표준 규범을 따랐다. 사원은 북서쪽, 남동쪽을 향해 두 개의 석탑이 세워져 있고 안뜰로 이어지는 형식이다. 왕궁 뒤쪽에는 거대한 왕의 동상이 있는 커다란 탑이 서 있고, 이 탑은 진흙 벽돌 대신 돌로 지어졌다. 제 2중정에 있는 이 탑의 오른쪽 블록에는 람세스 2세의 통치 기간 동안 정복한 도시들과 죄수들이 왕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라메세움에 새겨진 카데시 전투 장면 스케치 /Wikimedia Commons

탑의 왼쪽 불록에는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사이에 일어난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장면으로 장식되어 있다. 람세스 2세는 기원전 13세기경 히타이트의 무와탈리 2세와 시리아를 두고 벌인 전쟁인 카데시 전투에 꽤 많은 의미를 두었는데, 위대한 파라오와 그의 군대가 카데시 앞에서 도망치는 히타이트 군대를 격파하는 장면이 탑에 묘사되어 있다.

람세스 2세가 카데시 전투에서 꽤 중요한 건, 역사상 최초로 히타이트와의 주요 평화 조약 중 하나에 서명한 것이다. 그는 평화 조약에 서명한 세계 최초의 통치자였고, 나머지 통치 기간 내내 평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전투 이후 이집트 신전 벽에 자신이 단독으로 침략자들을 물리치는 모습을 묘사한 벽화를 만들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반쯤 무너진 조각상 /flickr

현재는 라메세움 제 1중정에 높이 19m, 무게 천 톤이 넘는 파라오 석상의 바닥과 몸통만이 남아 있다. 조각상 발치에는 '내 이름은 왕 오시만디어스, 내 업적을 보아라. 권능아, 그리고 절망하라' 란 글귀가 씌어 있었다고. 이 조각상은 '다른 군주들의 태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왕의 자비로운 덕망을 공유하고자 했던 이집트인들의 기원들을 기록한 수많은 봉헌 석탑들이 근처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이포스타일 홀 /flickr

하이포스타일 홀에는 29개의 기둥이 서 있으며 가운데의 기둥은 옆에 있는 것들보다 길이가 짧아 사원 안으로 빛이 들어올 수 있게끔 만들었다. 남쪽에는 더 작은 하이포스타일 홀이 있는데 이 곳은 천문관으로 최초의 달력 12개가 그려져 있다. 이 홀은 모든 신의 신인 아몬 라에게 제물을 바치는 장면, 그의 신성한 배를 묘사하는 장면 등이 있다. 

서쪽에는 아몬 라 신에게 바친 도서관과 여러 유적들이 있으며 람세스 2세가 지혜와 정의의 신인 토트와 세스헤트 여신이 그의 이름을 생명의 나무에 기록해 영원한 삶을 기원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훼손된 유적지 /flickr

다만 다른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라메세움도 현재는 여러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계속 건설되는 아스팔트 도로가 사원의 자연 경관을 가로막는 등의 문제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지원으로 전체 구역에 대한 발굴, 기초 학술조사, 출토유물 복원(석상 등) 진행 중이며 매년 1월~2월(2개월간) 정기적으로 현장 조사 및 작업 수행 중이다. 

문화재청과 이집트 국가유물최고위원회는 이번 협약을 계기로 고고학(해양고고학 포함) 발굴·복원, 불법 문화재 환수, 디지털기술 지원, 국제개발협력(이하 ODA), 세계유산등재협력, 학술·인적·물적 교류 등 문화유산 전 분야에 걸쳐 협력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이번 협약의 후속조치로 문화재청은 기존 ODA사업을 확대하여, 2023년부터 한-이집트 국제개발협력(ODA)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룩소르 라메세움 신전 탑문 복원 사업(ODA)과 이집트 문화유산 디지털화 사업(ODA)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집트 최대 신전 중 하나인 룩소르 라메세움 신전은 이집트 왕인 람세스 2세 시기 테베의 나일강 서안에 세워진 람세스 2세의 신전으로 현재 그 일부만 전해지고 있어, 문화재청은 붕괴된 신전 탑문의 전체를 해체·복원하고 진입로를 정비하는 복원사업을 시행한다.  

라메세움 탑문 현장 /문화재청

이번 문화재청이 라메세움 복원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룩소르 라메세움 신전 탑문 정비 및 보존으로 탑문 내부 및 답도 시발굴조사, 탑문 상부 붕괴부 부분 해체복원 및 석재 보존처리와 보강, 탑문 진입로 구역 정비 등이다. 또한, 이집트의 중요 6개 박물관 및 연구소(이집트박물관, 콥트박물관, 고고연구센터 등)가 소장한 유물들에 대한 디지털 원형기록과 디지털 데이터 베이스와 플랫폼을 구축하는 이집트 문화유산 디지털화 사업도 진행할 것이다. 

문화재청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성공적인 보수 등 풍부한 문화유산 보존·복원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우수한 문화재 보수․복원분야의 인적 자원과 대한민국의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 기술을 종합적으로 투입하여 인류 발상지 이집트의 문화유산의 복원·보수에 임할 계획이다. 

덧붙여 이집트 박물관과 고고학연구센터 등에 소장된 문화유산 및 문화유산 관리물에 적합한 2차원 및 3차원 디지털 기록 기술의 조사·연구를 비롯해 파피루스, 미술공예품, 건조물, 조각물, 회화 등의 유형문화재와 기록유산(도서, 지도, 도면, 관리대장, 유리건판 사진 등)에 대한 보존처리 기술, 디지털 형상 기록 및 데이터 베이스 구축도 진행할 예정이다. 

 룩소르박물관 보존처리실 장비(컴퓨터, 현미경) /문화재청

또 4천년 전에 제작된 고고학적 유물과 기록물에 대한 보존처리와 각종 유물에 적합한 디지털 형상기록기술을 보유한 디지털 헤리티지 청년 전문가를 양국에 양성하고 비공개 유물의 디지털화 및 데이터 베이스 구축과 인터넷 포털 구축을 통해 유물정보의 활용과 접근성 확대, 관광 활성화 기반 구축 등의 계획도 진행 중에 있다.

이번 협약은 이집트 정부의 문화재 보호·보존 등에 관한 협정 체결 요청을 계기로 지난해 물꼬를 트게 되었으며, 해당 문화유산 대상지에 대한 전문가 자문과 사업 타당성 조사를 위한 현지 조사를 거쳐 이번에 결실을 보게 되었다. 정부혁신과 적극행정의 하나로 추진되는 이번 업무협약은 정부의 2022년도 신규 중점협력국 대상사업 발굴 확대 정책 기조에도 부응·연계하여 진행하는 것으로, 문화유산 ODA 다각화와 다변화를 추구하고 아프리카 지역까지 문화유산 외교력을 넓히는 것에 의미가 있다. 

룩소르 라메세움 /flickr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우리 역사와의 관련성은 물론, 문화유산 분야의 성장 가능성, 국정 기조, 수원국 요청 등을 체계적으로 반영하여 문화유산 공적개발사업(ODA)의 내실을 기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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