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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예술, 작품은 주변 환경과의 관계로 온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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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예술, 작품은 주변 환경과의 관계로 온전해진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1.11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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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자 알베스, 'Seeds of Change'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작품을 그 자체의 단독이 아닌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만드는 경향을 환경 예술이라 부른다. 작품을 보는 사람과의 교감을 의도하면서, 관람객의 주위를 작품으로 둘러싸고 필요하다면 빛이나 소리를 동원해 아주 특별한 분위기를 만드는 형식이다.

환경 예술은 자연 환경에 대한 예술적 접근이다. 생태학적 접근법은 1990년대에 등장했으며, 기후 변화나 환경 문제 등이 본격적인 화두로 떠오르며 친환경이라는 주제와 함께 전 세계 전시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환경 예술은 물론 자연과 관련이 있지만 꼭 그것에 특정된 것은 아니다. 자연적인 재료를 사용해 예술가와 자연을 연결한다. 전통적인 미디어 수단에서부터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하며, 시골이든 서울이든 모든 곳의 환경을 포함한다. 

환경과 예술, 관객의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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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다 계곡의 동굴들, 벽화 /flickr

대개 환경 예술은 구석기 동굴 벽화에서 시작했다고들 말한다. 옛날 동굴 벽화에서 풍경화가 발견된 건 아니지만 동굴 벽화는 동물, 인간의 모습을 같이 그려내 자연의 일부를 보여 주었다. 옛 고대인들은 동굴 안에 동물뿐만이 아닌 비, 번개, 구름 등을 그렸고 지금의 예술가들은 자연 환경을 묘사하거나 작품으로 표현하는 데 열중한다. 이전의 풍경화가 사람이 자연에 대해 품는 존경심을 보여주거나, 사람을 묘사하는 데 배경으로 존재하는 자연의 모습으로 그쳤다면 요즘의 아티스트들은 환경 문제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원래 자연이란 것은 옛날부터 예술가들에게 영원한 영감의 대상이었다. 자연 환경의 아름다움은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에게 항상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것이었다. 유럽 르네상스 전성기 시절,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을 표현하려 했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풍경 화가인 존 컨스터블과 같은 자연주의 화가들은 집과 농장의 이미지를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했고, 프랑스의 인상주의 바르비종 학파 화가들도 컨스터블의 영향을 받아 자연 환경 속 실제적인 모습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밀레, '이삭줍기' /flickr

밀레의 '이삭줍기'는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이 학파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은 그림이 보다 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림과 배경을 구분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점점 풍경화의 전통적인 구성은 일부 비평가들과 예술가들에겐 자연을 그림에만 국한하며, 지나치게 자연의 모습을 통제한다고 여겨졌다. 풍경에 보이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닌 화가의 눈이 개입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본격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자연 환경을 관련지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운동으로서의 환경 예술은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했다. 구식이고, 자연 환경과의 조화는 없었던 전통적인 조각 형태에 대한 비난이 일어나면서부터다. 초기에는 미국 서부의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하면 1970년대 말부터 작품들이 공공 사회의 풍경으로 옮겨갔다. 미국의 조각가이며 개념주의 예술가인 로버트 모리스와 같은 예술가들은 방치되어 있는 구덩이와 같은 공간에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공공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안나 멘디에타의 '실루에타스' 시리즈 /flickr

1970년대에는 많은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이 여성의 신체와 자연 환경과의 관계를 탐구했다. 그 중에서도 쿠바-미국계 예술가인 안나 멘디에타는 그 중심에 있었다. 그는 '실루에타스' 시리즈를 위해 1961년 미국으로 망명했을 당시, 고향인 쿠바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에 자신의 몸을 결합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 인간에 대한 통찰을 시도했고 사회적 경계를 깨려 노력했다. 주로 자연의 재료, 피, 불 등을 이용해 인간의 몸과 성 정체성에 대한 것을 연구했다. 그는 스스로를 라틴아메리카적, 여성주의적 같은 제한된 표현에서 벗어나 트랜스문화적, 트랜스미디어적 예술가로 규정했다. 여성, 정체성은 그를 규정하는 하나의 요소였지만 자연과 대지에 흡수되었을 때 그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작품이 된다. 

환경 예술가들은 사람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자연과 인간이 교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뇌를 자연을 이용해 표현한다. 환경 예술은 1990년대 이후 예술가들이 단순히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아닌, 실제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환경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예술가들은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탐구한다. 일반적인 예술가들이 대개 개인적인 스튜디오나 작업실을 갖고 있다고 하면 환경 예술가들은 외부로 나가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하거나 자연에 있는 재료를 도구로 쓰며 훨씬 더 동적이고, 즉각적으로 작품을 만든다. 

안드레아 폴리, 'Particle Falls' /flickr

작가들은 최대한 주변 환경과 작품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노력하며, 개인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에 작품을 위해 자연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그대로 존재하는 환경과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 이들은 꽃이 피고, 지고, 비와 눈이 내리고 가끔 산사태가 나기도 하는 통제 불가능한 환경에도 그대로 스며들어야 한다. 예술가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꽃, 잎, 얼음, 흙과 모래, 물 같은 재료를 도구로 쓴다. 자연의 재료나 자연에 녹아드는 과정은 환경 예술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가령 어떤 작품을 한 곳에 배치한다고 하면, 자연 환경이 바뀌면서 그 작품은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작품들은 때때로 한 번만 전시될 수도 있고, 한동안 그 자리에 전시될 수도 있다. 또 같은 환경에 작품의 배치만 바꿔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작품 자체는 관객들에게 어떤 경험이 된다. 관객이 작품 주변에 있는 환경을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지, 우리가 그냥 지나쳐 버리던 자연이 사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더 주의깊게 볼 수 있게 한다.

환경 예술은 작품이 어떤 환경 속에 놓여 있는지를 중요시한다. 이들은 끊임없이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그 작품이 자연 환경과 어떻게 더불어 태어났는지를 강조한다. 예술가들은 작품의 완성보다는 탄생 과정을 중요시한다. 환경 예술에 대한 똑부러지는 정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 사회,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 얽혀 있고 주로 환경 문제에 집중하는 편이다. 

닐스 우도의 작품, 꽃잎들이 흐뜨러져 있다 /flickr
나무와 놀이터 /flickr

'마이 모던 맷(My Modern Met)'에서는 흥미로운 환경 예술가들 몇몇을 소개하고 있다. 닐스 우도는 자연을 작품의 한 일부로 사용하는 환경 예술가다. 캔버스에 뭔가를 그리는 것이 아닌 땅에 물을 주거나, 풀을 베거나 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는 현장에서의 자연 재료를 즉흥으로 조합해 작품을 만들거나, 도시에서 대규모 설치 작업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한다. 구조물을 세우고 식물을 심거나, 특정 장소에 자연 재료를 덧붙이는 방식이다.

그는 나뭇잎, 나뭇가지 등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그는 땅을 신비롭고 몽환적인 어떤 왕국의 유토피아로 만든다. 연못에 섬세하게 배열된 꽃잎, 나뭇가지, 잎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둥지까지 마치 그의 작품은 숲에 사는 요정들과 난쟁이들이 만들어 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식물을 심고, 더 복잡한 구조물에 같이 둠으로써 작품은 자연에 흡수된다. 자연의 일부로서의 작품은 계절의 리듬 속에서 살아가며, 사라진다"고 전했다. 

아그네스 데니스, 'The Living Pyramid' /flickr

수십년간 가장 위대한 환경 예술가들 중 하나, 아그네스 데니스는 종종 초기 환경 예술 활동의 '할머니'라 불렸다. 그는 1970년대에 등장해 환경의 영향을 받은 여러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좁디 좁은 캔버스에서 벗어나 넓디 넓은 땅으로 나아갔다. 그는 국가나 기업에서 활용했던 대지를 자신의 감각을 이용해 예술로 승화했다. 그의 목적은 넓은 땅, 환경을 자연적인 형태 그대로 복원하고 재생하는 것이었다.

그의 가치관은 원래 존재했던 아름다운 자연의 본연의 아름다움을 되찾아 주기 위해 환경 그 자체를 지키고 돌보는 환경 예술과도 맞아떨어진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밀밭'은 1982년, 배터리파크 랜드필에 자유의 여신상과 마주하는 거대한 우림을 만드는 것이었다. 사람 많고, 차 많고 말 그대로 자연이란 것을 느끼기 힘든 그 곳에서 식물을 가꾸고 돌보는 모습을 보여주어 사람들에게 환경에 대한 문제 의식을 일깨운 프로젝트였다. 

밀밭과 아그네스 데니스 /imgur

넓은 땅 가득히 농사 지어 수확한 밀은 세계기아종식을 위한 국제예술쇼를 통해 각국에 나누었다. 환경을 이용한 예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이후까지 생각한 작품이다. 그는 "나는 미약한 사람이지만, 가능한한 인류를 돕기 위해 싸울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현재 뉴욕에 있는 그는 손으로 글을 쓰는 것부터 컴퓨터까지 모든 것을 이용해 자연과 도시 사이의 관계를 탐닉한다.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알바트로스 /성곡미술관

미국의 사진작가이자 영상 촬영 감독인 크리스 조던은 작년 우리나라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크리스 조던 : 아름다움 너머' 전주전은 작년 6월부터 한달여간 전주 팔복예술공장 전관에서 열렸다. 크리스 조던은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100여 회 이상 전시를 할 정도로 환경예술사진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인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 찬 알바트로스’ 는 현 인류가 초래한 환경 문제와 생태적 비극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크리스 조던, 'Cell Phones #2' /flickr

그는 우리가 지구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을 항상 상기시키기 위해 플라스틱 쓰레기의 충격적인 이미지를 사용한다. 그는 그 장면들이 소름이 끼치면서도, 경외심과 매혹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의 그 규모는 섬뜩하면서도 아이러니하고, 어두우면서도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고 그는 전했다. 그에게 있어 쓰레기들은 일관적이면서도 복잡함 그 자체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세상의 일부이고,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너무도 간단하고 명확해서 오히려 쉽게 잊히는 이 사실을 모두가 기억해낼 때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로버트 스미스슨, 'Spiral Jetty' /flickr

환경 예술에서는 예술 작품이 환경에 끼칠 수 있는 피해를 고려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구분된다. 미국의 대지 미술가인 로버트 스미스슨의 'Spiral Jetty'는 불도저를 사용해 땅을 파헤치는 등 자연 풍경에 손상을 입혔고, 불가리아 출신의 미국 미술가 크리스토가 1969년 호주 시드니 남쪽에 있는 리틀베이 해안가를 천으로 감싸버렸을 때에도 비판 여론이 있었다. 지속 가능한 예술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는 만들어질 수 없다. 어떤 예술가들은 환경에 끼칠 영향을 최소화하는가 하면, 어떤 작가들은 작품 자체를 자연으로 복원시키기도 한다.

영국의 전위미술가 리처드 롱은 수십년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흙, 바위, 나뭇가지들을 재배치해 일시적인 작품을 만들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줄였다. 걷는 예술가라 불리는 해미쉬 폴턴은 걷는 행위를 작가로서의 수행 과정이자 명상이라 주장한다. 1년 동안 하루에 한 번, 명상하며 산책하는 '걷기'란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닌 하나의 실천이자 행위로 작가 자신의 내면의 상황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예술가 톰 데이닝어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대중이 환경 문제를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환경 예술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단어이며, 예술가들에게 있어 서로 온전해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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