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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시대 '집조'라 불렀던 여권, 티라노사우스와 람세스 2세도 발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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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시대 '집조'라 불렀던 여권, 티라노사우스와 람세스 2세도 발급받았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10.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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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여권 '집조'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대한제국 시대 여권인 <집조(執照)>를 10월의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정해 국립고궁박물관 1층 상설 전시장 ’대한제국‘ 전시실에서 소개하고, 6일부터는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로도 공개했다. 

집조는 국경을 넘어 출국을 확인하는 조선시대 문서로, 대상자가 국경을 통과하도록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 3개 언어(한문, 영문, 불문)로 인쇄되어 있다. 발급일, 인적사항, 출발지와 도착지는 대상자에 따라 수기로 작성했고, 외부(外部)와 발급요청기관의 도장을 각각 찍었다. 형태는 낱장의 종이로 상단에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와 오얏꽃 무늬가 찍혀 있다.


고대에도 있었던 여권, 왕과 공룡도 발급받았다

여권 /pixabay

고대에는 통행을 허락하는 증서의 역할을 한 것이 있었다. 성경 느헤미야 2장 7절 기록에는 페르시아 제국 시절인 기원전 450년경 당시 페르시아 황제인 아르타 크세르크세스 1세가 유대로 여행가는 총독에게 국경을 넘어도 유효한 문서를 건네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의 여권과 같은 개념으로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국경을 넘는 데 필요한 자격을 주었다는 것에서 여권의 시초라고 봐도 무방하다.

중세 아랍 제국에서는 세금을 납부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영수증인 "바라아"가 여권을 대신했다. 당시 아랍 제국에서는 시민만이 세금을 냈다고 한다. 무슬림은 자카트를 납부하였고 딤미는 지즈야를 납부했으며, 바라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곧 아랍 제국의 시민임을 뜻했고 여권의 역할 또한 수행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항구나 도시의 성문을 통과할 때 신분 증명서를 요구했고 증명서에는 소지자가 여행한 도시나 항구들의 목록이 적혀 있었다고. 참고로 자국 시민이 외국을 여행하는 동안의 안전을 위해 국가가 신분을 증명하는 근대적 의미의 여권을 처음으로 시행한 사람은 잉글랜드의 헨리 5세라고 한다. 

1922년 모험가, 작가, 영화 제작자인 프랭크 벅과 그의 아내의 여권 사진 /flickr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기차 여행이 시작되자 이전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수많은 국경을 지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이에 국가마다 서로 다른 이전의 여권법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유럽은 보편화된 여권법을 마련하게 된다.

곧 사진이 일반화가 되면서 여권에도 사진을 붙이게 된다. 제1차세계대전 기간 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보안상의 이유와 인력의 관리를 위해 출입국심사절차를 만들었고, 이는 표준 절차가 되어 전쟁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1980년대에 국제민간항공기구가 지원하는 가운데 새로운 여권 발급 표준에 대한 총의가 형성되었다.

우리나라의 여권 /pixabay

우리나라는 1949년, 해외여행규칙에 따라 여권 발급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1961년에는 여권법 제정으로 60년대 이후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늘어 여권 발급도 늘어나게 된다. 1994년 기계판독여권을 발급, 문서를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계로 여권 소지인의 정보를 읽어 출입국 심사가 빨라지게 된다.

이후 2005년 사진전사식 기계판독여권 발급을 시작한다. 사진을 교묘하게 바꾸거나 교체하지 못하도록 사진을 풀로 붙이는 것이 아닌 인쇄한 지금의 여권이며, 2008년에는 전자칩에 신원정보면의 정보가 한번 더 들어가 보안성이 좋아진 전자 여권 도입했다. 

람세스 2세 미라의 여권 사진 /Wikimedia Commons

대개 여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쓴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색적인 이유로 여권을 특별 발급받는 일도 있다. 1976년,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는 람세스 2세의 미라가 보관 중이었다. 1213년 90살의 나이로 사망한 후 1881년 발견돼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했다. 이 미라는 머리카락까지 온전하게 보관되어 문화적 가치가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보관을 하던 중 보존 상태가 점점 나빠져 어느날 이집트 연구원들은 미라 머리에서 곰팡이를 발견하게 된다. 막상 이집트에서는 기술력이 부족했고, 기술이 앞섰던 프랑스에 미라를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러자 프랑스에서는 국제법상 신원을 증명할 수단이 없으면 입국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통보했고,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이 직접 람세스 2세 미라의 여권 발급을 허가한 것이다. 람세스 2세 미라가 도착했을 때 프랑스에서는 국가 원수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의장대를 동원하는 등 국빈급의 대우를 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연구원들은 곰팡이를 제거하기 위해 냉온요법, 방사선 치료 등을 강구하다 냉온요법은 미라 안에 있는 송진이 온도 변화에 반응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방사선 치료를 결정한다. 연구원들은 곰팡이 균을 파악해 8개월간 방사선 치료를 진행했고, 미라는 완치되어 무사히 이집트로 돌아갔다는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트릭스의 여권 사진 /Naturalis Biodiversity Cente

2016년, 미국 몬테나주에서 발굴된 티라노사우르스(트릭스)공룡 화석이 시카고 공항을 떠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한다. 이 화석은 백악기 말기에 생존한 것으로 추정하며, 전세계 트릭스 화석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보존 상태가 완벽했다. 전문가들의 작업을 거친 공룡의 뼈는 80% 복원되었고, 라이든시의 나투랄리스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재미있는 건 화석을 네덜란드로 이송할 때 주미 네덜란드 대사관이 트릭스에게 발급한 ‘특별 여권’이다. 이 여권에는 사람처럼 성, 출신지, 출생일 등이 기재되어 있다. 이벤트성으로 제작된 이 여권과 함께 네덜란드 정부는 당시 탑승수속장에 승객들이 트릭스와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특별 스크린을 설치하는 등 기념 행사도 준비했다고. 어쨌든 다른 나라로 가는 만큼 실제 사람들처럼 트릭스에게도 비록 진짜는 아니지만,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집조 /문화재청 유투브 
학부의 인장 /문화재청 유투브

이번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개한 여권은 대한제국 당시 쓰였던 '집조'로, 출국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문서다. 지금의 여권과는 달리 한 장의 종이에 모든 정보를 담았고 정형화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 집조는 한성에 살았던 '이상목'의 집조로, 아마도 이상목이란 사람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발급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집조에는 인천에서 출발해 일본 도쿄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출국을 허가받았다고 기재되어 있고 발급 요청기관인 '학부'의 인장이 찍혀 있다. '외부(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 현재의 외교부)'와 '학부(교육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 현재의 교육부)' 사이의 업무 기록인 '학부내거문'을 살펴보면 집조 발급일과 동일한 1904년 10월 7일 기록에서 일본 유학생으로 선발된 이상목의 이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상목은 대한제국 황실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일본으로 보낸 유학생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태극기와 오얏꽃 무늬 /문화재청 유투브
'흥판'과 '유력'이 보인다 /문화재청 유투브

집조의 상단에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와 오얏꽃 무늬가 찍혀 있으며 본문에는 집조 소지자가 아무 지장 없이 국경을 통과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이 한문, 영문, 불문으로 인쇄되어 있다. 발급일, 인적사항, 출발지와 도착지는 수기로 작성했다. 대개 여행의 목적을 기재하는 란에는 장사를 한다는 뜻의 '흥판'과 여행을 뜻하는 '유력'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급자가 임의로 표기하거나 공란으로 두는 경우도 많았다. 집조의 발급을 담당하는 관청인 '외부'의 도장과 발급 요청 기관의 도장을 각각 찍었으며 만료일, 발급에 필요한 수수료도 함께 적었다. 

영사관과 감리서 /문화재청 유투브

집조의 발급은 출국 목적에 따라 절차가 다르다. 관리들이 공무상 출국하는 경우 방문국의 영사관으로 바로 발급을 요청한다.  일반인들의 경우 개항장의 '감리서'에서 집조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감리서는 외부로부터 발급받은 무기명 양식에 발급자의 인적사항과 출국 정보를 기입해 집조를 작성했다.

이상목 집조와 같이 학업을 위한 출국은 유학생을 선발한 학부가 외부에 직접 발급을 요청한 특별한 경우다. 집조를 발급받은 사람은 배에 승선해 집조의 소지 여부를 감리 경찰에게 검사받은 후 출국할 수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집조는 여러 행정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출입국 제도를 운영하였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장봉환 집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여권은 무엇일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장봉환 집조는 현존하는 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여권이라고 한다. 기존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왕태자궁 부첨시 윤헌이 1895년 7월 29일 외국에 가기 위해 받은 집조가 제일 오래 된 여권으로 알려져 있었다. 장봉환 집조는 1893년 1월 24일 조선 정부가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부임하는 장봉환에게 발급한 것이다. 재단 관계자는 "공사관 개관 준비 과정에서 장봉환 후손인 장한성 씨가 집조를 소장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장봉환 집조는 앞쪽에 한문, 뒤쪽에 영어와 불어가 있다. 앞쪽에는 외무독판 조병직이 미국에 부임하는 흠차전권대신 서기관 장봉환에게 주는 제31호 집조라고 기록됐다. 발급일은 조선 개국 502년 정월 24일이며, 가운데에는 "지나는 길의 각 관리는 혹 관섭(關涉)이 있으면 그 인원이 편하게 해 주시고, 지나는 길에 막힘과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해 주시고, 만약 절박한 일이나 중요한 경우에는 별도의 도움을 주고 보호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당부글이 있다. 영어와 불어로도 직조 소유자, 문서 발급 번호와 발급일, 부임 지역, 여정을 돕고 보호해 달라는 글이 기재되었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은 "집조는 1887년 6월 흠차변리대신 민영준에게 1호가 발급됐다"며 "장봉환 집조는 31번인데, 조선이 매년 10건 이하만 발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장봉환 집조는 생산 연대와 사용처가 분명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서 근대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는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1904년, S.S. 몽골리아호를 타고 하와이에 이민을 간 김만수 집조 /한국이민사박물관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규모로 여권을 가지고 해외로 나간 건 1900년 초의 하와이 노동 이민이었다. 1903년 1월 13일 첫 이민선 갤릭호로부터 1905년 8월 8일 마지막 배 몽골리아호까지 11개의 증기선을 타고 64회에 걸쳐 총 7,415명의 이민자가 호놀룰루항에 도착한다.

하와이 이민의 경우 외부가 아닌 임시기구인 '유민원'을 설치하고 이곳에서 집조를 발급했다. 그래서 하와이 이민에 사용한 집조는 ‘유민원’에서 발급된 것과 그 후 ‘유민원’과 ‘외부’에서 발급된 것, 두 종류가 같이 사용되기도 했고 유민원이 폐지된 후 ‘외부’에서 새로 제작된 것을 사용했다. 

김도삼 집조 /독립기념관

수민원 발급 집조에는 일련번호, 소지인의 주소, 성별, 나이, 여행 목적, 보증인의 성명과 직업 및 주소가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오른쪽 사람이 미국 하와이를 여행함에 있어서 길을 가는 데 방해가 없게 하며 또 보호하고 돕는 모든 일을 지나는 길의 각 관청에게 요청합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발급일, 발급자, 소지인 자서[서명]가 있고, ‘대한제국 해외여행장’이라는 관인과 ‘수민원총재지장’이라는 수민원 총재 관인이 날인되어 있다.

이 집조에는 평안도 삼화군에 사는 김도삼이 인천항을 통해 미국 하와이 등지로 가고자 하며 김도삼은 37세이고 처 1명과 아들 2명을 동반한다는 내용이 한문본에만 적혀 있다. “The Imperial Korean(대한제국)”이라는 영문을 통해 하와이의 이민국 담당자는 집조 소지자가 한국인(Korean)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초기 하와이 이주 노동자들의 출국을 허가하는 정부의 공식 인증서와도 같은 집조를 통해 이민자들과 관련된 대한제국의 정책을 알 수 있다.

안창호 집조 /독립기념관

일제강점기 시기, 나라를 잃은 독립 운동가들에게 여권은 필요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미국 유학을 위해 1902년 9월 4일 인천항을 떠난다. 당시 그가 가진 여권은 대한제국의 외교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인 외부에서 1902년 8월 9일 제51호로 발급한 ‘집조’였다.

집조에는 “본국 평안도 평양에 사는 사인(士人)안창호가 인천항을 통해 미국 워싱턴 등지로 가려 한다”며, 안창호가 대한제국의 신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그가 미국으로 여행하는 데 편의를 봐 달라는 요청이 들어 있다. 집조의 뒷면에는 서울에 있던 주한 미국 총영사관에서 1902년 8월 23일 자로 집조의 소지자인 대한제국 신민 안창호에게 발행해 준 비자가 영문 타이프로 찍혀 있다. 안창호 선생은 이 증명서를 갖고 일본에서 미국을 향해 태평양을 건넜다고 한다. 

학부대신이 외부대신에게 보낸 일본 유학생 명단 중 ‘李相穆이상목’이 눈에 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고궁박물관의 대한제국 시대 '집조' 전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가운데 진행되며,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국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과 문화재청 유튜브,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에서 국·영문 자막과 함께 해설 영상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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