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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안녕, 우리 모두의 안녕을 비는 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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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안녕, 우리 모두의 안녕을 비는 모란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10.0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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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모란 /국립고궁박물관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10월 31일까지 모란꽃을 매개로 조선왕실 문화를 살펴보는 특별전 「안녕安寧, 모란」을 개최한다. 전시에는 모란도 병풍을 비롯하여 궁궐의 그릇, 가구, 의복 등 각종 생활용품과 의례용품에 즐겨 장식되던 모란꽃을 담은 여러 유물 120여점이 대거 공개되었으며, 모란을 수놓은 창덕궁 왕실혼례복도 처음 공개했다.

전시 곳곳에 창덕궁 낙선재에서 포집한 모란향으로 제작한 꽃향기가 퍼지도록 하고, 빗소리와 새 소리 등 정원에서 들을 수 있는 생생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구성해 한결 생생한 감상의 공간이 되도록 꾸몄다.


옛 선조들에게 사랑받은 모란
 

모란 /unsplash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꽃은 사람들이 구경하는 대상이었고, 꽃들이 가진 각색의 형상과 생태적 특성을 사람의 성향이나 덕목에 빗대는 식으로 은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모란은 꽃송이가 화려하고 풍성해 부귀를 상징하는 꽃으로 간주되었고, ‘꽃 중의 왕’(花王)으로도 칭송받았다. 중국에서 모란은 황제의 꽃으로 국화나 난초가 여성을 상징하는 것과 대응되는 의미로 빛, 영광, 사랑, 행운, 여름, 청춘을 상징한다.

또 국색천향으로 '진선진미(선을 다하고 아름다움을 다하다)'와 화목을 상징해 복식, 가구 등의 장식으로도 널리 쓰였다. '국색천향'이란 모란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말이며, 후세에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말로 썼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선덕여왕 때 당 태종이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도와 씨 세 되를 보내 왔다는 고사가 『삼국유사』 「선덕여왕 지기삼사」에 전하며, 설총이 지은 「화왕계」에서는 ‘꽃 중의 왕’으로 불리며 군주로 의인화되어 나타난다.

모란병풍 /국립중앙박물관

중국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던 모란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널리 심어졌으며, 전통 예술작품에서의 소재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조선 시대 민예품에 나타난 목단문양 연구에서는 모란 문양이 민화, 능화판, 도자기 등에 쓰여 부귀의 상징으로 길상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외에도 결혼식 등에 쓰이는 병풍과 도자기, 의복 등에 이르기까지 모란 무늬는 다양한 곳에서 보인다. 특히 모란 병풍은 일반 사가의 행사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왕실에서의 종묘제례, 가례, 제례 등의 주요 궁중 의례 때 사용되었다.

모란의 재배와 감상이 활발했던 건 고려 시대부터였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는 현종이 대궐 안에 직접 모란을 심었다는 기록과 함께 국왕들이 궁궐 안에 핀 모란을 감상하며 시를 짓고, 신하들에게 화답시를 짓게 했다는 기사가 다수 전해져 내려온다. 고려 후기의 문장가였던 이규보가 지은 ‘여러 사람이 지은 산호정 모란 시에 차운하다’라는 시에는 “대궐 안 산호정에 모란이 한창 피면 이를 읊는 사람이 많아 백 수(首)에 이른다”라는 구절이 있어 당시 군신이 함께 모란을 감상하고 여기에 시를 붙이며 즐기던 문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 이은 조선 시대에도 모란을 감상하는 문화는 계속되었다. 태종 대에는 광연루에서 상왕인 정종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함께 모란을 감상하고 타구하는 것을 구경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산수화훼도첩 중 ‘모란’ /문화재청

특히 꽃에 취미를 가졌던 연산군은 모란에도 각별한 취향을 보였다. 신하들에게 모란꽃을 내려 관련된 시를 지어 바치도록 했으며, 팔도 관찰사에게는 “도내의 모란이 있는 곳에서는 꽃 필 때에 품종이 좋은 것을 가려서 표를 세워 두었다가 가을이 되거든 봉진하라”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성종도 재위 13년 입직한 당상관과 홍문관, 경연관 신하들로 하여금 모란을 주제로 시를 쓰게 한 일이 있었다. 당시 홍문관 교리였던 김흔의 문집에는 왕이 내린 시제를 받아 쓴 ‘모란 족자에 붙임’이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었다고. 

조선 왕실에서는 풍요와 영화로움이 깃들기를 기원하며 궁궐이나 생활용품을 꾸밀 때 용과 봉황, 거북에 견줄 만큼 모란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모란에 담긴 의미는 살아서의 부귀뿐만이 아닌, 왕실 인물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무늬로도 모란을 썼다. 왕실 흉례 때 고인의 시신과 혼이 자리하는 곳에는 모란도 병풍을 둘러 고인을 지키고, 죽음 후 조상신이 된 국왕과 왕비가 나라에 영원한 안녕과 번영을 가져다줄 것을 기원했다.

모란에 대한 애호는 모란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18세기 화훼화의 유행, 식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모란이 그려지기 시작해 19세기 절정에 달했다. 민간에서는 모란이 상징하는 부귀화의 염원을 담은 모란도가 크게 성행해 민화의 대표 주제로 자리잡았다. 

모란은 이렇듯 조선 왕실에서는 흔하게 사용된 꽃으로, 황실과 성군의 상징이었다. 양(陽)에 속하는 꽃으로 알려져 남성적인 성격을 부여했고, 꿀벌 이외의 곤충은 가까이 올 수 없다 하여 황제의 꽃이라고 불렸다. 또 모란은 전형적인 부의 상징이며, 사랑과 호의의 상징이고 사람들에게 희소식을 가져다 준다고 여겨졌다. 부의 의미를 담고 있어 여러 가지 다른 길상 무늬들과 조합을 이루어 부귀 계열의 의미를 나타내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민화에 홀리다', 모란과 고양이 /효형출판

고양이와 모란을 함께 배치하면 부귀가 피어난다는 것을 상징하는데, 모란이 활짝 피는 정오에 고양이의 눈동자가 12시를 가리킬 때와 같은 가는 막대기 모양으로 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나비, 고양이, 모란이 함께 있는 것은 나비와 고양이가 장수를, 모란이 부귀를 나타내므로 부귀를 누리며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이다.

모란이 화병에 꽂혀 있는 경우에는 모란꽃이 지니는 부귀의 평안의 의미가 결합되어 ‘부귀평안’이 된다. 모란이 다른 식물과 같이 있는 대표적인 예로는 당초와 결합되는 모란당초문을 들 수 있다. 부귀영화가 당초 줄기처럼 길게 이어져 만대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밖에도 모란은 벼슬길에 올라 이름을 얻는 것, 과거급제 등의 상징도 있었고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 또한 상징했다. 그래서 모란병풍은 혼인과 같은 경사스러운 날에 사용했고 조류의 왕이라 할 수 있는 봉황과 모란을 조합시키는 경우에는 행복과 광명을 나타냈다. 모란이 춘분 무렵에 꽃이 피어 낙화해 봄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묵모란도, 심사정 /국립중앙박물관
모란도 /국립중앙박물관

모란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은 아무래도 그림이다. 조선시대 그림 속 모란은 새와 풀, 모란이 함께 어우러지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조선 초·중기에 자주 그려졌던 이러한 전통은 조선 말기까지 이어진다. 조선 후기에는 모란의 비중이 커지고 풍성함이 강조되었으며, ‘채색모란도’와 먹으로만 그린 ‘묵모란도’로 표현된다. 조선 말기에는 모란만 단독으로 그려지는 모란도가 유행했다. 10폭에 이르는 대형 화면에 연속적으로 펼쳐진 모란 나무들은 화려하고 당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색색의 꽃과 무성한 잎이 돋은 모란이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모양의 괴석과 어우러진다. 

조선시대 궁중 행사에서 모란도 병풍을 사용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1627년 『소현세자가례도감의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내려오는 모란도 병풍은 대부분 19세기 이후 제작된 것이다. 4폭·6폭·8폭·10폭의 병풍 형태이며, 병풍 높이가 250㎝에서 330㎝에 달하는 것과 200㎝ 이하의 것이 있다. 조선 후기 단독으로 그려진 모란도로는 발묵기법이 돋보이는 강세황의 《표암첩》 중 「모란도」, 심사정의 《제가화첩》 중 산뜻하게 채색한 「모란도」, 허련의 「묵모란」 등이 있다.

4폭 모란도 병풍 /문화재청

모란 병풍은 특히 왕실의 조상을 섬기는 의례에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국왕이나 왕비 등이 상을 당하면 우선 시신을 궁궐 내 빈전에 안치하고, 이후 시신은 능을 마련하여 봉안하며 그 혼을 담은 신주는 다시 궁으로 모셔와 궁궐 내 혼전에 안치해 삼년상을 치르게 된다.

삼년상을 마치면 신주를 종묘로 옮겨 봉안함으로써 왕업을 돌보는 왕실의 조상신으로 모시게 된다. 흉례의 전 과정과 종묘에서 행하는 친제 의례에서 모란 병풍은 필수로 사용되었다. 특히 빈전에 시신을 안치하고 있을 때나 시신을 능에 봉안하는 과정에서 관이 정자각과 능상각에 잠시 머무를 때면 그 주위에는 반드시 모란 병풍을 둘렀다고 한다.

창덕궁 신선원전 /문화재청

이 전통은 대한제국 때까지 지속된다. 1921년 건립된 창덕궁의 신선원전에서는 그 구체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선원전에는 각 감실마다 어진이 위치하는 자리를 둘러싸고 일월오봉도 그림을 삼면에 두르고, 뒤쪽 벽에 모란 그림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감실 입구 기둥과 보 주변에도 모란꽃 모양을 조각하여 장식을 더했다. 조상을 섬기기 위한 의례와 공간을 모란으로 장식함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는 동시에, 부귀와 풍요 등 모란에 담긴 의미를 빌어 조상의 가호 속에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청자 상감 모란무늬 매병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기에서도 모란 무늬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보물 제346호 청자 상감 모란무늬 매병은 고려 청자에 동화 기법(주성분이 구리인 안료를 사용하여 무늬를 그린 후 구워내면 무늬가 선홍색으로 나타나는 기법)을 이용하여 무늬를 나타낸 경우는 매우 드물고, 매병을 장식하는 데 사용한 예는 더 찾기 어렵다. 몸통에는 모란 가지 세 개를 흑백상감으로 묘사한 후 꽃잎에 동화 기법으로 붉은색을 입혀 화려함을 더했다.

상감기법으로 장식한 모란꽃가지는 꽃잎과 꽃술의 세부까지 정교하게 묘사했을 뿐더러, 동채 기법으로 마치 꽃잎이 붉은빛으로 피어나는 듯이 화려한 느낌을 주었다. 무엇보다 꽃가지가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나부끼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청자 상감 모란무늬 매병 /국립중앙박물관

매병의 어깨를 덮은 것은 네 갈래의 능화형 화판으로 가느다란 두 줄의 흑상감 선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사이에 백토를 채워 넣었으며 끝부분을 늘어뜨렸다. 화판 안에는 휘돌아 움직이는 듯한 국화 넝쿨을 가느다랗게 흑백상감 장식하였고, 그릇 밑동의 연판도 백상감한 뒤 세부를 여러 줄의 짧고 가느다란 넝쿨로 채워 넣었다. 전체와 부분, 형태와 무늬를 자유로운 듯 조화롭게 구성한 것이 돋보인다. 

청자 음각 모란 상감 보자기무늬 뚜껑 매병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342호 청자 음각 모란 상감 보자기무늬 뚜껑 매병은 뚜껑을 덮을 때 몸통과의 마찰로 인한 파손 위험을 줄이고 장식 효과를 더하기 위해 아마도 어깨 위에 수를 놓은 보자기를 덮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을 중심으로 네모 반듯한 보자기를 씌운 것 같은 보자기 무늬를 상감하였다. 장식이 많은 것 같아 보이지만 전체 디자인은 단순하며 특히 상감 장식을 어깨 부분의 보자기 무늬에만 넣고, 음각무늬는 중간 부분 이하에만 한정해 디자인을 이원화했다. 

청자 음각 모란 상감 보자기무늬 뚜껑 매병 /국립중앙박물관

이 매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깨에 늘어뜨린 보자기 형태의 상감 장식이다. 네모반듯하면서 네 모서리가 기다란 보자기가 마치 매병의 입과 어깨를 덮은 것 같은 모습이며 네 귀퉁이에는 구슬이 달린 수술이 늘어지도록 했다. 상감 보자기 무늬의 안쪽이자 매병의 입 주위로는 국화 넝쿨을 흑백상감하였고, 레이스를 연상시키는 연주문(점이나 작은 원을 구슬을 꿰맨 듯 연결시켜 만든 문양)으로 보자기의 가장자리를 둘러 우아하게 표현했다.

두 군데 수술이 이루는 아치 형태에 맞추어 매병 밑 부분에는 넓은 ‘U’자형으로 구름무늬를 음각하여 섬세한 장식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몸체 네 군데에는 커다랗게 모란꽃가지를 음각 장식하였는데, 상감동채 모란무늬 매병과 달리 꽃가지가 똑바로 서 있는 모습으로, 고려청자 모란절지문의 전형에 가깝다. 

복온공주가 입었던 활옷 /문화재청

모란은 혼례복이나 가마 같은 왕실 혼례에서도 보인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총 2벌의 혼례복 중 한 벌은 복온공주(순조의 둘째딸가 혼례 때 입은 것인데, 남아 있는 활옷 중 제작 시기와 착용자가 명확한 유일한 것이다. 나머지 한 벌은 창덕궁에서 전해 내려오는 활옷인데, 보존처리 중에 옷 속에서 발견한 종이심이 흥미롭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넣어 옷의 형태를 유지하도록 한 이 종이심이 연구 결과 1880년 과거시험 답안지를 재활용한 종이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참고로 창덕궁 활옷은 이번 전시에서 일반에 최초로 공개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안녕安寧, 모란」 전시를 위해 전시장 곳곳을 꾸몄다. 1부, ‘가꾸고 즐기다’의 전시실은 영상과 조경물로 연출된 정원 형태로 만들었다. 관람객은 창덕궁 낙선재 화계에 핀 모란에서 포집해 제작한 향을 맡으며 빗소리, 새의 지저귐이 어우러진 정원에서 18~19세기의 대표적 모란 그림인 허련, 남계우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미디어아트를 배경으로 전시되어 있는 복온공주 혼례복과 창덕궁 활옷 /국립고궁박물관

2부 ‘무늬로 피어나다’ 전시실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유리 벽면을 설치해 연속성과 단절성을 함께 살렸다. 전면부는 방 형태로 공간을 구성하고, 창덕궁 낙선재 문살 장식을 활용해 벽면을 연출하고 천장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조명 아래 유물을 배치했다.

혼례용품이 있는 부분은 주변에 삼베를 길게 늘어뜨린 후 혼례복의 다양한 꽃무늬를 활용한 미디어 아트를 연출하여 활옷 무늬에 담긴 각종 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관람객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했다. 3부 ‘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빌다’ 전시실은 왕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선원전을 연상시키는 공간을 조성하여 모란도 병풍과 향로, 교의, 의궤를 함께 전시해 왕실의 조상을 모시는 의례와 모란의 관계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안녕, 모란을 만나다> 영상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최근 「안녕安寧, 모란」 특별전 전시장에서 펼쳐졌던 춤 공연을 담은 <안녕, 모란을 만나다> 영상을 온라인(유튜브)에 공개했다. 박물관 전시와 현대 춤 공연을 접목한 최초의 시도인 이번 공연은 관람객들이 무용수들의 몸짓을 따라가며 참신한 시각으로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공연 순서는 ‘모란 정원’, ‘피어오르고, 또 피어오르며’, ‘모란, 꽃 그림자’, ‘아름다운 무늬로 피어난 모란’ 등 4부로 구성했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이번 「안녕安寧, 모란」 특별전에 조선 왕실에서 모란을 사랑했던 마음을 정성껏 담아 전례 없는 전염병 속에서도 국민 모두가 탈 없이 평안하고 아름다운 일상을 되찾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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