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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방식 그대로 가치있게, 참빗장 고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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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방식 그대로 가치있게, 참빗장 고행주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10.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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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주 참빗장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2019년 7월 4일, 문화재청은 ‘참빗장’을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으로 지정 예고하고, 고행주 씨를 보유자로 인정 예고하였다. ‘참빗장’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고행주 씨는 현재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5호 참빗장’ 보유자로서, 1945년에 입문해 지금까지 74년간 참빗장의 기술을 전승하고 있는 장인이다. 

현재 고행주 씨의 집안은 그의 증조부인 고(故) 고찬여 옹이 생계를 위해 참빗을 제작한 이후 현재 아들까지 5대가 대를 이어 담양에서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동안 고행주씨는 전라남도와 담양군에서 시행하는 각종 시연행사에 참석하고, 전국공예품 경진대회 등 다수의 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하는 등 참빗이 국민의 관심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전승 활동을 이어 왔다. 

특히, 보유자 인정조사 과정에서는 참빗 제작의 숙련도가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 고행주 씨가 전승능력, 전승환경, 전수활동 기여도 등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 국가무형문화재 참빗장 보유자로 인정 예고됐다.

여러 참빗 /문화재청

참빗은 얼레빗으로 머리를 대강 정리한 뒤 머리카락을 보다 가지런히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때로는 머리카락의 때·비듬 등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쓰이기도 하였다. 대개 대나무로 빗살을 촘촘히 박아 만들지만 대모로 만든 것도 있으며, 빗살도 성긴 것과 촘촘한 것 등 종류가 다양하다. 참빗의 형태는 직사각형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전통 빗의 종류는 다양한데 참빗, 얼레빗, 면빗, 상투빗 등 크기와 모양에 따라 용도가 각각 달랐다. 참빗은 얼레빗으로 머리를 대충 정리한 다음 머리카락을 더 단정하게 하려고 사용했다. 머리카락의 때나 비듬 등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머리카락에 기름을 바를 때도 썼다. 기름을 바를 때 대개 머리 겉면에만 칠해지기 쉬운데 참빗에 기름을 묻혀 빗으면 머릿속 깊은 부분까지 바를 수 있다. 머릿기름은 흔히 동백기름을 썼지만 비듬 제거에는 들기름이 효과가 있었다.

옛 참빗 /문화재청

우리나라 빗의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광주 신창동 초기 철기시대 유적에서 목제 빗이 출토되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 여인들은 바다거북 등껍데기·상아·뿔·나무 재질로 된 빗을 계급에 따라 구분해 사용하였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는 어용 장식품을 제작하던 중앙관청 중상서에 빗을 만드는 '소장'이 소속되어 활동하였고, 태안 앞바다에서 출수된 고려 시대 선박 마도 1호선과 마도 3호선에서도 참빗이 나와 당시 왕실과 귀족층을 비롯하여 참빗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빗을 만드는 장인들이 세분화되면서 참빗 명칭이 기록으로 등장한다. 조선 초기 세종실록의 ‘오례(五禮)’에서 참빗을 가리키는 ‘죽소’라는 명칭을 확인할 수 있으며, 경국대전에 따르면 경공장에 대나무로 빗을 만드는 ‘죽소장’을 별도로 두어 참빗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1477년 성종실록에는 중국에 참빗 1,000개를 하례품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어 참빗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산품이었음을 보여준다. 현재 대표적인 유물로는 조선 23대 임금 순조의 셋째 공주인 덕온공주가 7세의 나이에 공주로 책봉되던 때에 사용했던 ‘덕온공주 유물(국가민속문화재 제212호)’에 참빗이 포함되어 있다.

참빗 /문화재청

참빗은 빗살의 사이가 촘촘하여 일반적으로 옛날 사람들이 머리를 단장하고 때를 빼거나 이를 잡아내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참빗은 대나무를 가늘게 자르기, 빗살을 실로 매기, 염색하기, 접착과 건조, 다듬기 등 약 40여 가지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기본적으로 대나무를 다양한 크기로 자르고 손질해야 하며, 빗살의 간격을 촘촘하고 고르게 유지시키는 세밀한 작업이 핵심적인 공정이라 장인의 손놀림이 중요하다.

예로부터 대가 나는 영·호남 지역 특산품으로 많은 농가에서 부업으로 제조하였으나, 개화기 이후 두발 간소화와 펌 등의 유행으로 점차 소멸되어 현재는 오직 전라남도 영암과 담양에서 관광 상품으로만 만들고 있다. 

대나무를 다듬는 고 장인 /문화재청

참빗은 3년생 이상의 알맞게 굳은 대를 골라 마디를 버린 다음 마디 사이를 얇게 쪼개고 자른다. 그런 다음 속대를 버리고 겉대만을 모아 피죽을 훑어내어 빗살을 만든다. 빗살의 두께와 너비는 판에 찍은 듯이 똑같다. 대축에 빗살을 실로 하나하나 감아서 고정하되 머리카락이 지날 정도로 간격을 조절한다. 이렇게 만든 참빗의 양쪽 등에 골을 판 다음 골에 부레풀을 바르고 겉대를 마주 붙여 맞댄다. 다시 빗살을 고르게 깎고 다듬어 광택을 낸 다음 불에 달군 인두로 무늬를 지져 완성한다. 

죽소공은 참빗 하나를 만드는데 열 가지 이상의 연장을 사용한다. 대나무를 절단하는 작은 톱, 마디 사이를 쪼개는 투박한 대칼, 빗살을 똑같이 가르는 전집칼, 빗살을 밀어서 가르는 등미칼, 참빗의 등 사이에 골을 파는 칼, 참빗 살에 광택을 내는 가래칼, 참빗살의 바닥을 파는 충볼칼, 참빗살을 다듬는 밀칼, 참빗살을 고르는 밀대, 참빗에 무늬를 내는 인두가 이용된다. 이런 연장들은 모두 수제품이며 오직 참빗을 만드는 데에만 이용되었다. 이렇듯 몇백 년에 걸쳐 내려 온 참빗 만드는 기술은 참빗뿐만 아니라 연장을 만드는 기술도 함께 발전하게 만들었다.

색동빗 /죽향참빗 홈페이지

예로부터 참빗은 머리를 정갈하게 정돈하거나 기름을 바를 때 사용하였으며, 진소(眞梳)라고도 불렀다. 전라남도 영암과 담양 지역은 참빗 생산지로 유명하며 특히 영암 참빗의 품질이 높았다. 영암읍 망호리에서는 약 300여 년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참빗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영암 참빗의 특징은 참빗 양쪽 가장자리 마구리 재질이 소뼈이고, 등대는 대나무로 만든다. 붓 끝에 염산의 일종인 청강수를 찍어 등대에 매화 무늬를 그린 후 불에 지져 문양을 내기도 했다.

함께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던 전남 영암의 이식우 씨가 타계한 이후, 고행주 장인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참빗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참빗은 100% 대나무로 만든 수공예 작품으로 습한 곳에 두면 모양이 변형될 수 있어 대체로 주문받은 후 제작에 들어간다. 자신의 대에서 가업이 끊기게 할 수는 없었다는 고 장인의 뒤는 그의 아들 고광록 씨가 이어받아 참빗을 만들고 있다.

살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 때문에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1986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면서 고 장인은 더욱 책임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참빗의 매력을 두고 "참빗의 '참'은 대나무를 말하며, 대나무로 만든 것이 아니면 참빗이라 부를 수 없다.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플라스틱 빗에서 느낄 수 없었던 시원함도 느끼고, 정전기고 없을 뿐더러 윤기도 더 좋아진다"고 전했다. 

참빗을 만드는 고 장인 /문화재청

고 장인은 10살 무렵부터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며 어깨 너머로 참빗 만드는 것을 보고 배웠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게 벌써 70년이 넘었다. 광복 전만 해도 참빗은 사람들에게 참 많이 쓰였다. 머리에 기생하는 머릿니를 잡으려고 고생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을 정도였다.

이는 주로 옷의 재봉 부분에 서식하며, 밤이면 집집마다 이가 까놓은 알들을 불에 태워 죽이는 모습이 흔했다. 이때 참빗은 워낙 촘촘한 덕에 웬만한 이는 빗에 걸려 나와 쉽게 잡았다고. 옛날 사람들은 참빗으로 머릴 빗으면서 두피 맛사지 효과도 보았다고 한다. 참빗으로 머릴 빗으면 혈액 순환도 되고 두뇌에 영양 보급도 해 주며 머리가 맑아지고, 또 시원해지며 머릿결이 부드럽고 곱도록 만들어 주었다고.

그러나 광복 이후 머릿니가 사라지고, 파마와 염색 등 머리 관리가 잘 되면서부터 번성하던 참빗 제작과 이용도 쇠락하기 시작했다. 참빗으로 생계를 꾸리던 사람들도 곧 직업을 바꿔 갔다. 그러나 고 장인은 공급도, 수요도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홀로 자리를 지켰다. 

이유는 하나였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또 그 선대부터 이어진 가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70여 년 전에는 지금과 달리 의식주 해결이 어려웠다. 그때 아버지 심부름을 다니면서 들여다보고 시늉을 내 보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다”며, “우리 집안은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었다”고 전했다. 

작업중인 장인의 손 /문화재청

그의 작업은 대나무를 베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고행주 장인은 담양에서 생산되는 왕대를 사용하여 매기는 뿔대죽나무, 먹갈나무 등을 사용한다. 3년생 어린 대나무를 쓰는데, 3년생보다 어린생이면 너무 쉽게 휘어지고 3년생보다 위면 단단해 잘 부러지기 때문이란다. 대나무는 일정 간격으로 쪽을 놓고 겉과 속을 분리하는 대 뜨기, 또 4등분을 한 뒤 쪼개는 대 때리기 과정을 거친다.

썰린 대쪽 두께를 조절하기 위해 겉껍질인 피죽을 벗기기 위한 훑기 과정까지 끝나면 0.3밀리미터로 더 얇아져 빗을 엮을 수 있다. 보통 고급 빗은 120개의 빗살을 만들지만 일반 빗은 100개 정도로 정교하게 0.4밀리미터의 빗살을 만든다. 1950년대 전에는 빗살 염색을 주로 호장근 나무뿌리로 했지만, 만주에서 수입해 들여오는 거라 분단 이후에는 수입 경로가 막혀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당시 고 장인은 빗 만드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을 때, 대나무를 구하러 간 산에서 벌목을 거친 야막나무(오리나무)가 붉은 거품을 내고 있는 것을 보고 그 껍질을 구해다 삶았다고 한다. 옷을 염색하는 독한 화학 제품을 사용해도 대나무 속살까지 염색시키기 어려웠는데 야막나무 껍질은 안까지 잘 스며들어 내세탁성도 뛰어났다고. 딱 알맞은 색이 나와 야막나무 껍질을 이용해 염색하기 시작했지만, 얼마 후 군에서 제재가 들어와 열매를 쓰라고 권장해 써 봤지만 많은 양이 필요했고 색도 잘 나오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여러 염료를 사용한 후에 이후부터는 염료를 사용해 빗을 만들고 있다. 

참빗 /문화재청

고 장인은 “빗살을 만들 때까지 두께를 조정하는 게 가장 어렵다. 70회 이상의 과정이 있기 때문에 잔손이 많이 간다”며 “그 중에서도 45도로 빗살을 깎아내는 일은 장인들도 어려워하는 작업이다”고 밝혔다. 얼대로 빗살을 하나하나 일정한 간격으로 조절하는 ‘빗살 간격 고루기’, 양면을 45도 각도로 깎아 빗살을 뾰족하게 만드는 '빗 꾸미기', 사포로 빗끝 고르게 만드는 '괘한질'의 과정을 거친다. 

빗살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모난 곳을 긁어내는 중볼치기와 빗살 간격을 일정하게 떼어내는 얼 잡기가 끝나면 참기름을 발라 빗에 광을 낸다. 고행주 장인은 인두로 등대에 그림을 그려 작업을 마무리하며, 약 10~15일 동안 500개 정도의 참빗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작업 공정이 복잡하고 어려운 탓에 아들 고광록 전수자가 현대적인 방식을 권하기도 했지만 고 장인은 거절했다. 그는 옛 방식 그대로 만들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며, 절대 전통 방식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어중소 /죽향참빗 홈페이지

고 장인의 대를 잇고 있는 고광록 씨는 25년 동안 전수장학생을 거쳐 지금은 조교로 일하고 있다. 그 또한 고 장인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 어깨 너머로 빗을 배웠으며, 벌써 경력도 40년을 넘어갔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대나무로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으며 어떤 장난감도 자신이 직접 만들어 갖고 놀았다고. 고광록 씨는 처음엔 참빗을 전수받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저 뭔가를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참빗 만드는 것이 직업이 됐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지금도 참빗이 팔릴까 걱정했는데, 지금은 하루에 대략 20개 정도를 판매한다고 한다.  

고 장인은 무엇보다 참빗의 맥을 잇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 지금은 플라스틱 빗이 많아 참빗이 유물이 된 현실이지만, 그는 ‘무형문화재 고행주’라는 글귀가 쓰여져야 구입하는 고정 손님이 있을 정도라며 웃었다. 이나 비듬이 있는 사람들에겐 참빗이 특히 효과가 좋다고 하니 플라스틱 빗도 좋지만, 가끔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장인이 만드는 수제 참빗도 하나 구비해 두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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