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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달리와 감자탕’ 속 모딜리아니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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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달리와 감자탕’ 속 모딜리아니는 누구?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1.10.02 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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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예술가나 작품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있지만, 그 작품이 걸리는 미술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드라마는 처음인 듯하다.
 

‘달리와 감자탕’ 포스터 / KBS 공식 홈페이지
‘달리와 감자탕’ 포스터 / KBS 공식 홈페이지

KBS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달리와 감자탕’은 파산 직전의 청송미술관을 맡게 된 생활력 제로 미술관장 김달리(박규영 분)와 지식은 부족하지만, 생존력이 강한 식품업체 상무 진무학(김민재 분)이 벌이는 아트 로맨스다.
 

‘달리와 감자탕’ 아트 포스터. 유명 작품을 패러디했다 / KBS 공식 홈페이지
‘달리와 감자탕’ 아트 포스터. 유명 작품을 패러디했다 / KBS 공식 홈페이지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가 ‘미술관’이다 보니 장면 중간중간에 보이는 작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첫 회부터 드라마를 보다가 눈에 들어온 작품이 있다. 드라마 여주인공인 달리가 사랑하는 작가인 모딜리아니의 작품이다.


드라마 속 모딜리아니

‘달리와 감자탕’ 1회에서 김달리와 진무학은 우연히 만나게 된다. 달리는 미술관의 VVIP이자 세계적인 재일교포 컬렉터인 히토나리 진을 픽업해달라는 관장의 부탁으로 공항으로 간다. 하지만 ‘Mr. Jin’이라는 환영 피켓을 보고 진무학이 자신을 마중 나온 사람으로 착각해 함께 파티장으로 향하게 된다.
 

드라마 속 모딜리아니 작품 / KBS ‘달리와 감자탕’ 방송화면 캡처
드라마 속 모딜리아니 작품 / KBS ‘달리와 감자탕’ 방송화면 캡처

달리는 그곳에서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달리는 그 작품에 푹 빠졌고, 진무학은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달리는 이 작품이 모딜리아니의 진품이라면 1억 2천만 유로, 한국 돈으로 1,600억 원이라고 하자, 금액에 놀란 진무학은 먹던 체리가 목에 걸린다.
 

KBS ‘달리와 감자탕’ 방송화면 캡처
KBS ‘달리와 감자탕’ 방송화면 캡처

이에 달리가 등을 치다가 하임리히 요법으로 걸린 체리를 빼주는데, 무학의 입에서 나온 체리가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눈에 박힌다. 이를 본 사람들이 놀라 수군대며 파티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파티 주최자인 브롱크호스트 부인은 욕설을 퍼부으며 분노를 표출한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이 위작이라고 설명하는 김달리(박규영 분) / KBS ‘달리와 감자탕’ 방송화면 캡처
모딜리아니의 작품이 위작이라고 설명하는 김달리(박규영 분) / KBS ‘달리와 감자탕’ 방송화면 캡처

하지만 달리가 순식간에 파티장을 고요 속에 휘말리게 한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이 가짜라며, 위작 화가로 유명한 엘미르 드 호리가 그렸다는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를 믿지 않는 브롱크호스트 부인에게 “캔버스 뒤를 살펴봐도 되겠냐. 엘미르는 자신의 사인을 캔버스 뒷면에 숨겨둔다”며 설득력 있는 근거를 덧붙인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달리와 무학은 파티장에서 쫓겨나지만, 시청자들에게 ‘모딜리아니’라는 이름은 진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모딜리아니, 모자와 목걸이를 한 잔 에뷔테른 (1917)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모자와 목걸이를 한 잔 에뷔테른 (1917) / 위키미디어

드라마에 나온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모자와 목걸이를 한 잔 에뷔테른’이다. 모딜리아니의 뮤즈이자 사랑했던 연인인 잔 에뷔테른의 모습을 그렸다. 드라마 속의 작품과 실제 작품의 분위기는 다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눈빛을 보내는 여인의 느낌은 비슷하다.


위작이 많은 모딜리아니

실제로 모딜리아니는 위작이 많기로 소문난 작가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해 그의 작품은 희소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헝가리 태생의 화가 엘미르 드 호리(본명 엘레메르 알베르트 호프만)도 모딜리아니 외에도 샤갈, 모네, 마티스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을 20년간 그려 수십억 원을 벌기도 했다.

지난 2017년 3월 이탈리아 제노바 팔라조 두칼레에서는 모딜리아니의 작품 60여 점을 전시하는 특별전이 열렸었다. 10만 명이 다녀가는 등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전시회였지만, 같은 해 7월에 예정된 기한을 채우지 못하고 3일 전에 문을 닫아야 했다.
 

엘미르 드 호리의 위작까지 유명해진 모딜리아니의 ‘젊은 여인의 초상’ (1918) / 위키미디어
엘미르 드 호리의 위작까지 유명해진 모딜리아니의 ‘젊은 여인의 초상’ (1918) / 위키미디어

그 이유는 전시된 모딜리아니의 작품 중 21개가 위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언론에 따르면 모딜리아니 작품 전문 감식가인 카롤로 페피가 전시회의 그림을 보고 위작이라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림 중 하나는 인터넷에서 본 것이다. 20년 전에 그려진 뻔뻔스러운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탈리아 경찰이 위조가 의심되는 작품 20점을 압수해 조사가 진행됐다. 결과는 위작으로 판명 났다. 해당 작품을 조사한 전문가인 이사벨라 콰트로키는 “스타일과 안료 모두 20세기 초반 예술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조잡하게 위조되었다”라며 “(위작은) 동유럽과 미국에서 온 것이라, 모딜리아니의 역사적 시대와 연결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위작 논란으로 쇼를 주최한 몬도 모스트레 스키라의 사장인 마시오 비타 젤만, 딜러 조셉 구트만, 큐레이터 루디 치아피니 등이 조사를 받았다.

이 여파로 런던에서 전시 중이던 모딜리아니의 작품 100여 점도 진품임을 확인하려는 조치가 진행되는 등 세계가 떠들썩했던 이슈였다. 이런 위작 사건에도 불구하고,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경매에서 약 2천억 원을 호가하는 금액에 낙찰되며 컬렉터들에게 인기 있는 작가다.


화가이자 조각가로서의 생애

아마데오 클레멘테 모딜리아니는 188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화가이자 조각가다. 학자 혈통의 어머니와 성공한 사업가의 일원인 아버지를 둔 유대인 가정에서 자라난 모딜리아니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다고 한다.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 위키미디어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 위키미디어

어릴 때부터 재능이 있었는지, 그의 어머니도 일기에 “이 번데기(모딜리아니) 안에 무엇이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 아마도 예술가?”라고 적기도 했으며, 예술 공부가 아들에게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서도 모딜리아니의 예술성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고 전해진다.

모딜리아니도 예술에 엄청난 의지와 관심을 보였다. 14살에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면서도 피렌체의 팔라조 피티, 우피치 미술관의 그림을 보고 싶다고 헛소리를 했을 정도다.

그의 어머니는 모딜리아니에게 병이 나으면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는 병에서 회복했다고 한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어머니는 그가 살던 리보르노에서 최고 회화 명장으로 손꼽히던 굴리엘모 미첼리에게 배울 수 있도록 그의 아카데미에 등록시켜주기도 했다.
 

모딜리아니의 자화상 (1919)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의 자화상 (1919)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는 굴리엘모 미첼리 아래에서 1898년부터 1900년까지 풍경화, 초상화, 정물, 누드 등을 배우며 재능을 키워나갔다. 미첼리는 야외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주로 가르쳤지만, 모딜리아니는 실내 스튜디오에서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초상화나 실내를 그린 작품이 많다.

고향 이탈리아에서 고대 미술과 르네상스를 공부한 그는 1906년 파리로 넘어간다. 어쩌면 파리가 모딜리아니가 예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게 된 곳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파리에서 파블로 피카소, 콘스탄틴 브랑쿠쉬 등과 교류했다.
 

1910년 르 바토 라부아르.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인 곳이다 / 위키미디어
1910년 르 바토 라부아르.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인 곳이다 / 위키미디어

처음 파리로 건너온 모딜리아니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그런 그가 처음 정착한 곳은 몽마르뜨에 있는 무일푼 예술가 공동체 르 바토 라부아르였다. 그의 옷차림은 추레해졌고,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되어 갔다. 사교모임에서 여러 번 술에 취해 옷을 벗으며 알몸 상태가 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예술가는 괴짜라는 말처럼, 술과 마약에 취해 피폐해졌음에도 모딜리아니는 하루에 백여 개의 스케치를 할 정도로 그림에 미쳐있었다. 그래서 그의 초상화는 하나같이 우울하고 힘없어 보이는 모습이지 싶다. 그림은 작가의 생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랑도 잘 될 리 없었다. 1910년 러시아 시인이었던 안나 아흐마토바를 만났지만, 당시 안나에게는 남편이 있었다. 불륜 사이였지만, 안나의 검은 머리와 큰 키, 창백한 피부, 회색과 녹색이 섞인 눈동자는 모딜리아니의 미적 감각을 매혹시켰다. 하지만 1년 후 두 사람의 사랑은 끝이 나게 된다.
 

1912년 살롱 드 어텀에 전시된 그의 조각상 / 위키미디어
1912년 살롱 드 어텀에 전시된 그의 조각상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의 조각상 ‘테테’ / flickr (Futurilla)
모딜리아니의 조각상 ‘테테’ / flickr (Futurilla)

1909년 고향인 리보르노로 돌아와 조각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조각가인 콘스탄틴 브랑쿠쉬에게 1년여를 배웠지만, 조각에 대한 열정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12년까지 그의 조각품이 활발히 전시되었지만, 1914년부터는 그림에 집중했다.

그가 이 시기에 조각해서 완성한 ‘테테’는 2010년 6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익명의 입찰자에게 4,320만 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593억 6,846만 원에 낙찰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판매된 조각상 중 3번째로 비싼 가격이었다.
 

모딜리아니, 앉아있는 누드(1917)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앉아있는 누드(1917) / 위키미디어

조각에서 회화에 집중하게 된 모딜리아니는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파리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다시 예술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16년부터 1919년까지 그가 빠진 것은 누드화. 여인들이 관능적인 포즈로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모습을 주로 그려냈다.

그의 누드화는 1917년 열린 파리 개인전에서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이슈가 될 정도였다. 모딜리아니에게는 유일한 개인전이었는데, 7개의 누드화가 전시된 것으로 알려진다. 길거리에서 보이는 갤러리의 창으로 누드화가 비치자 경찰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개막 당일 전시를 폐쇄했다고 한다.
 

모딜리아니, 누워있는 누드(1917~1918)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누워있는 누드(1917~1918) / 위키미디어

이 중 1917년부터 1918년까지 그린 ‘누워있는 누드’라는 작품은 2015년 11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중국 사업가인 류이첸에게 1억 7,040만 달러에 판매됐다. 모딜리아니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판매된 그림이다.

‘누워있는 누드’는 당시 모딜리아니를 후원했던 폴란드 딜러 레오폴드 즈보로프스키의 의뢰로 그려졌다. 레오폴드는 모딜리아니에게 거주할 아파트와 모델, 그림 재료를 제공하고, 매일 15~20프랑을 지불했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 예술계에서 빛을 보나 싶었지만, 1920년 모딜리아니는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사망하고 만다. 파리에서 술과 마약으로 방랑하던 시기에 생긴 병이 그를 잠식시킨 것이다.


모딜리아니의 뮤즈, 잔 에뷔테른

모딜리아니가 첫사랑에 실패하고 약 7년 뒤에 마지막 사랑을 만나게 되는데 19세의 소녀였던 잔 에뷔테른이다. 모딜리아니와 에뷔테른은 1917년 러시아 조각가 차나 올로프의 소개로 만났다.
 

잔 에뷔테른 / 위키미디어
잔 에뷔테른 / 위키미디어

당시 모딜리아니의 나이는 34살로, 에뷔테른과는 15살 차이였다. 지금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을 보고 놀라는데, 보수적인 당시에는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특히나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던 에뷔테른은 가족에게 버림받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모딜리아니와 에뷔테른은 그랑 쇼미에르 거리의 스튜디오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고,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가 그림을 그릴 때 포즈를 취하며 예술 활동을 도왔다. 그래서 지금도 모딜리아니 작품 중에는 잔 에뷔테른의 초상화가 많이 남아있다.
 

모딜리아니, 잔 에뷔테른의 초상 (1918)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잔 에뷔테른의 초상 (1918)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앉아있는 잔 에뷔테른의 초상 (1918)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앉아있는 잔 에뷔테른의 초상 (1918)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와 에뷔테른은 파리에서 니스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딸을 낳았지만, 끝내 결혼하지는 못했다. 모딜리아니가 알코올과 마약 중독자라는 이유로 에뷔테른의 부모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모딜리아니와 에뷔테른의 무덤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와 에뷔테른의 무덤 / 위키미디어

그렇게 둘은 함께 사는 것으로 만족했고,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의 마지막을 옆에서 지킨 것으로 모자라, 그가 죽은 다음날 임신 8개월이었던 에뷔테른은 5층 창밖으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죽음도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에뷔테른의 가족들은 그녀가 죽은 후에도 모딜리아니와 따로 떨어져서 매장했고, 10년이 지난 1930년에야 모딜리아니와 함께 묻힐 수 있었다. 에뷔테른의 묘비에는 ‘극단적인 희생의 헌신적인 동반자’라고 쓰여있다고 한다.


눈동자가 없는 초상화

모딜리아니가 그린 초상화에는 특징이 있다. 일그러진 듯이 길어 보이는 얼굴형과 긴 코, 눈동자가 없는 듯한 흐리멍덩한 눈빛, 낮은 채도의 컬러다.
 

모딜리아니, 자크 립시츠 부부의 초상 (1917)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자크 립시츠 부부의 초상 (1917)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폴 기욤의 초상 (1915)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폴 기욤의 초상 (1915) / 위키미디어

그가 술과 마약에 빠져 중독자로 살아왔다는 배경을 보며 초상화를 이해한다면 이런 분위기가 이해된다. 어떤 것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힘든 상태임에도 사람의 형태는 분명히 그려냈기 때문이다.

눈동자가 분명하지 않은 것은 그가 남긴 명언으로 짐작할 수 있다. 모딜리아니는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면, 당신의 눈을 그릴 것이다(When I know your soul, I will paint your eyes)”라고 말했다.

 

모딜리아니, 아기를 안고 있는 집시 여인 (1919)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아기를 안고 있는 집시 여인 (1919)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젊은 농부 (1918)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젊은 농부 (1918) / 위키미디어

초상화는 그 사람의 외형적인 모습에 집중해서 그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내면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듯하다. 모딜리아니가 가진 철학이라고 할까. 학자 집안인 어머니의 영향인지 모딜리아니는 미술 외에 철학도 깊이 공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니체 철학에 깊은 감명을 받아 반항적이면서도 쾌락을 추구하는,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생활방식에 집중하는 보헤미안과 같은 예술 스타일을 추구했다.
 

모딜리아니, 부채를 든 여인 (1919)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부채를 든 여인 (1919)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파블로 피카소의 초상 (1915) / 위키미디어
모딜리아니, 파블로 피카소의 초상 (1915) / 위키미디어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도 “모든 것을 신성하게 여겨라. 너의 지능을 높이고 흥분시킬 수 있는 (중략) 자극하고 영속하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이런 자극은 지능을 최대한의 창의력으로 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전체 내용을 알 수 없어 이해되지 않지만, 무언가에 속박되지 말고 창의력을 키우자고 제안하는 것은 아닐까. 예술가에게는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창의력이 요구되고, 그를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과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4년 개봉한 ‘모딜리아니’. 앤디 가르시아가 모딜리아니 역을 맡았다 / 네이버 영화
2004년 개봉한 ‘모딜리아니’. 앤디 가르시아가 모딜리아니 역을 맡았다 / 네이버 영화

짧지만 강렬한 모딜리아니의 삶은 또 다른 분야에 예술적인 자극을 주었다.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가 2편이나 된다. 2004년 개봉한 ‘모딜리아니’에서는 대부 3,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로 잘 알려진 앤디 가르시아가 모딜리아니 역을 맡았다.

미국의 신스팝 밴드 Book of Love는 싱글 ‘Modigliani (Lost In Your Eyes)’를 1987년 발표했다. 가사 중에는 ‘가장 어두운 밤’, ‘피부가 너무 창백해’, ‘네 눈에서 길을 잃었어’, ‘당신의 시선이 느껴졌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아마도 모딜리아니가 그린 초상화의 느낌이나 그의 생애를 가사로 쓴 것이 아닐까 싶다.

예술가는 각자의 색이 있다지만, 모딜리아니처럼 삶 자체가 색이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가 술과 마약을 접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 전해지는 초상화는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울하고 음침하지만,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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